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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그리스도 또는 광야의 그리스도 Khristos v pustyne는 러시아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가 1872년에 그린 그림으로, 그리스도의 유혹을 반영하고 있다. 크람스코이는 러시아 미술 아카데미 평의회로부터 이 그림으로 교수직을 제안받았으나 1873년 초에 거절했다. 그는 이전에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했으며, "젊은 시절 아카데미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헌신"을 유지하기로 선택했다.
이후 이 작품은 파벨 트레티야코프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는 그림이 완성된 해에 자신의 갤러리에 구입했다.
그리스도의 유혹이라는 주제는 이미 1860년대 초반부터 크람스코이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그 시기에 그는 이 작품의 첫 스케치를 그렸다. 『광야의 그리스도』의 첫 번째 버전은 1867년으로 추정되었으나,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크람스코이는 세로 형식 선택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수평 형식을 선택하고 배경에 창백한 바위 사막을 도입했다. 크람스코이는 작가 브세볼로드 가르신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의 초기 역사를 묘사했다.
이 그림이 태어난 19세기 후반 러시아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 작품의 깊이에 다가갈 수 없다. 크람스코이가 '광야의 그리스도'를 완성한 1872년은 도스토옙스키가 <악령>을 연재하던 해이자,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한 무렵이다. 러시아 지식인 사회가 거대한 시대적 질문 앞에 서 있던 때다. 서구의 합리주의와 물질주의가 밀려오는 가운데, 러시아는 어떤 시대 정신으로 살 것인가. 비관주의가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혁명의 기운이 감도는 시대에 그리스도는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인가?
크람스코이는 여느 러시아인들처럼 정통 러시아 정교회 신자는 아니다. 그는 제도화된 종교에 깊은 회의를 품고 있었고,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교리보다는 그리스도의 도덕적 가르침에 끌린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예수는 후광도, 신적 위엄도, 초자연적 표지도 갖추지 않는다. 대신 그의 예수는 인류가 직면하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 앞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선언이 나오기 직전의 그 순간, 정말로 빵 없이 살 수 있는가를 온몸으로 시험받고 있는 신의 아들을 보여 준다. 정말 신의 아들이 성육했다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고통에 참여했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작품에 반영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유명한 '대심문관' 장에서 거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유명한 장면이다. 대심문관이 돌아온 그리스도에게 말한다. "당신은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했다. 인간에게는 자유보다 빵이 필요하다." 크람스코이의 그림은 이 질문에 대한 시각적 응답이다. 돌 위에 앉은 예수의 굳게 쥔 손은, 빵의 유혹으로 상징되는 권력과 욕망의 유혹, 기적의 유혹, 안락함의 유혹 앞에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단의 표현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물음이 생긴다. 크람스코이 자신은 과연 이 광야를 살아 본 사람이었을까? '14인의 반란' 이후 아카데미의 지원도, 귀족 후원자의 보호도 없이 자립의 길을 걸어야 했던 그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 그 자신의 40일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이 그림에 자기 피를 섞었다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반응은 인상적이다. 1872년 제2회 이동전람회에서 이 작품을 본 관람자들은 오랫동안 그림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수집가 파벨 트레차코프는 이 그림을 반드시 사겠다고 했지만, 크람스코이는 한동안 팔기를 거절했다. 자신의 피가 섞인 그림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결국 트레차코프의 끈질긴 설득에 양도된 이 작품은 지금도 모스크바 트레차코프미술관에 걸려 있다.
이 그림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에게 광야는 어디인가. 40일의 굶주림은 무엇인가. 나를 시험하는 유혹은 어떤 얼굴로 다가오는가. 크람스코이의 예수가 보여 주는 것은 승리가 아니다. 승리 이전의 것, 즉 선택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신앙이란 이미 결정된 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답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버티는 것임을, 이 침묵하는 그리스도가 묵직하게 전한다. 우리는 각자의 광야에서, 각자의 돌 위에 앉아 있다. 이 그림이 15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초상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각자의 광야가 있다. 거기서 우리의 시선, 우리의 손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가?.
그림에 묘사된 예수님의 맞잡은 손 '광야의 그리스도'는 크람스코이의 예수를 주제로 한 그림 중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유대인과 헤롯왕'이다. 크람스코이는 배경의 차가운 새벽을 반영하기 위해 주로 차가운 색을 사용했다. 어두운 랩을 두르고 그 아래 붉은 튜닉을 입은 사려 깊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약간 중앙 오른쪽으로 이동해 있다. 크람스코이는 이렇게 썼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아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생겼는지 아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러나 실제로 살아있는 그리스도조차도 인정받지 못했다'고 스스로 답했다." 이 그림은 예수의 인간적 구성 요소인 위격적 연합을 강조하며, 행동 대신 투쟁하는 마음을 그려낸다. 지평선이 캔버스 평면을 거의 반으로 나누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상이 그림 공간을 지배하며 동시에 엄격한 광야와 조화를 이룬다. 이반 크람스코이는 자신의 작품을 트레티야코프에게 6,000루블에 팔았다.
이 그림은 폭넓은 호평을 받았으며 1873년 페레드비즈니크 제2차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파벨 트레티야코프는 이렇게 썼다: "나는 크람스코이의 구세주를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그를 사려고 급히 달려갔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 생각에 이 그림은 최근 우리 화단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이다; 아마 내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
평론가 블라디미르 스타소프는 "슬픈 음이 작품의 전반적인 생리학적 배열에 합리적으로 울려 퍼진다"고 평했다. 브세볼로드 가르신은 "엄청난 도덕적 힘의 표현, 악에 대한 증오, 그리고 악과 싸우겠다는 완전한 결의"를 설명했다. 이반 곤차로프가 쓴 "광야의 그리스도"에 따르면, 크람스코이 씨의 그림" (원제 러시아어: "Христос в пустыне». "전체 형상은 자연스러운 크기에서 약간 작아진 듯 보이며, 이는 굶주림, 갈증, 악천후 때문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힘이 싸우는 동안 그의 생각과 의지를 내면적이고 비인간적으로 통찰한 결과였다."
가로 210cm, 세로 180cm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의 정중앙, 약간 낮은 위치에 예수가 앉아 있다. 그의 자세는 어떤 권위와 고전적 위엄과도 거리가 멀다. 어깨는 살짝 웅크러져 있고, 두 손은 깍지를 끼듯 꽉 맞잡혀 있다. 이 손을 본다. 손가락은 핏기가 가셨을 만큼 세게 쥐어져 있고, 손마디의 긴장이 관객에게까지 전달된다. 이 손은 기도하는 손이 아니다. 무언가를 참고 있는 손, 자기 안의 격렬한 싸움을 온몸으로 억누르고 있는 사람의 인내하는 손이다.
시선은 더 인상적이다. 예수의 눈은 관객을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늘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의 시선은 먼 곳, 화면의 왼편 아래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데, 어디를 보는지조차 알아채기 힘든다. 크람스코이는 이 시선의 방향을 수십 번 수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응시는 바깥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향한 것이다. 40일의 굶주림 끝에 도달한, 인간 의지의 극한 지점에서 자기 안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눈을 크람스코이가 이런 식으로 그려 낸다.
색채 역시 고독을 말한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회색빛 도는 파란색과 흙빛 갈색의 교차다. 하늘은 여명인지 황혼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빛으로 물들어 있고, 지평선 가까이에서만 희미한 분홍빛이 번진다. 이 색조는 예수가 처한 시간의 모호함을 드러낸다. 밤이 끝나 가는 것인지, 이제 막 어둠이 내려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빛과 어둠 사이의 경계에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크람스코이는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가답게 이 모든 것을 과장 없이,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구현한다. 광야의 돌멩이 하나하나에 닿는 빛의 질감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림 전체에서는 비현실적일 만큼 깊은 고요와 적막이 흐른다. 현실과 초월 사이의 긴장이 이 그림 속에 팽팽히 깃들어 있다.
1872년, 그는 평생의 역작이자 가장 위험한 얼굴인〈광야의 그리스도〉를 완성하였다. 캔버스 속 예수는 우리가 상상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크람스코이는 팔레스타인과 가까운 크림반도에서 고뇌하는 예수의 모습을 마주하기 위해 밤낮으로 광야를 걸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10년이 넘는 시간과 씨름한 후에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 그의 눈물과 열정으로 그려낸 그리스도는 후광도 없고, 신성한 빛도 없다. 거친 광야에 상처투성이의 맨발로 황량한 돌밭에 앉아, 밤새 기도했던 두 손을 아직 풀지 못한 채 앉아 있다. 퀭한 얼굴과 굳게 다문 입, 40일 동안 먹지 못해 깊이 팬 볼과 창백한 얼굴. 그저 힘없이 아래를 바라보는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 땅에 왔는지 알게 되어 비장하지만, 초점을 잃어버린 눈동자. 40일을 굶은 예수의 얼굴은 신의 아들이라기보다, 노숙자, 러시아의 농노와 같이 지쳐버린 한 인간의 얼굴이다.
이 작품을 본 비평가들은 들고 일어났다. 성경을 왜곡했다, 반종교적이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달랐다. 이 그림 앞에 서서 그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본 그리스도 중 최고다.” 크람스코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기적을 행하는 신이 아니었다. 십자가를 지고 인류를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과 인간으로서의 한계 사이에서, 처절하게 홀로 갈등하는 존재였다. 그 고뇌하는 눈빛은 어쩌면 크람스코이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예술가로서, 지식인으로서, 시대의 모순 앞에 매일 홀로 서야 했던 한 인간의 표정이다. 이 작품은 볼 때마다 나를 바라보시는 예수의 눈빛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위로를 받는다. ‘내가 너의 고난을 안다, 내가 너의 고통을 잘 안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 어떤 세미한 소리도 없는 광야의 거친 바위 위에 홀로 앉아 있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그리스도. 그분의 옆에 조심스럽게 앉아 나도 모르게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된다.
그는 또한 "축제적이거나 영웅적이거나 승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세상과 모든 생명체의 미래 운명은 그 비참하고 작은 존재, 거지 같은 모습, 누더기 아래 겸손한 단순함 속에 숨겨져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미술 연구자 게오르기 바그너는 "I. N. 크람스코이의 그림 "사막의 그리스도" 해석에 관하여(러시아어: "Об истолковании картины И.Н. Крамского "Христос в пустыне")라는 글을 썼다.

첫댓글 크람스코이는 "이 그림에 내 피를 섞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