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은 대개 월요일 저녁엔 술 마실 약속을 잡지 않는다. 아마도 월요일 부터 입에 술을 데기 시작하면 그 주 내내 술을 마시게 된다는 징크스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파찌아삐는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이다. 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는 업무의 연장이던, 개인적인 일이던 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퇴근 이후의 시간도 자유롭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파찌아빠는 홀가분한 월요일 저녁에 편한 이들과 어울려 맛집순례를 즐긴다.
따르르릉...따르르릉... “파찌아빱니다.” “주말에 뭐했냐? 난 어쩌구 저쩌구...<하략>” “응, 나도 이렇궁 저렇궁...<하략>” “주말에 푹 쉬었으니 한 잔 해야지?” “좋지~” “그럼 내가 맛집순례단에 사발통문을 돌릴테니까 파찌아빠, 니가 예약을 맡아라.” “그래~”
낙원동에서 적당히 취기가 오른 맛집순례단의 강력한 요구로 2차는 명동에 있는 이자까야인 ‘가쓰라’로 정해졌다. 6명의 순례단은 택시 2대에 나눠 타고 가쓰라가 위치한 명동으로 향했다.파찌아빠가 명동에 도착했더니만 먼저 출발했던 3인이 가쓰라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딱 한 테이블이 비어 있긴 한데 자기네들이 저녁식사를 해야 한다구 자리가 없다고 하네...”대충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중국대사관 앞에 테이블 서너개 짜리 작은 중국집이 하나 있는데 그집 오향장육이 맛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더라고...거기 한번 가볼래?” “좋지~”
소공동 프레지던트호텔에 사무실을 두고 오랫동안 무역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구시가(북창동, 소공동, 명동 등)에 있는 전통있는 맛집에 대한 첩보 제공으로 파찌맛집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혜인아빠의 의견에 파찌아빠가 솔깃하였다.
“나도 안 먹어 봐서 어떤지는 모르겠어...”혹시나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둔 혜인아빠가 도피성 연막을 살짝 뿌려 놓는걸 잊지 않았다.
두 눈 똑바로 뜨지 않으면 바로 앞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허접한 ‘산동반점’의 출입문에 붙여놓은 ‘오향장육 전문’이라는 빨간색 문구가 파찌아빠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 놓았다.
자, 그럼 파찌아빠를 따라서 메뉴를 하나 씩 뜯어먹어 보도록 하겠다.
[오향장육]
일단은 달랑 오향장육 하나만 시켜 보았다. 1만6천원이라는 착한 가격 만큼이나 만족스러운 분량의 오향장육이 나왔다. 큰 접시에 오이를 담고 그 위에 장육을 듬뿍 얹은 후, 파와 짠슬(오향소스를 졸여내어 만들어진 젤리)을 올리고, 초간장 소스가를 뿌려진 상태로 나왔다.
장육 한 쪽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생각보다 장육이 뻣뻣했다. 오향도 그리 진하게 느낄 수 없었고...이번엔 장육 위에 짠슬 한 덩이와 파를 얹은 다음 빼갈 한 잔을 비우고서 먹어 보았다. 짠슬의 짠맛이 강해 이번에도 제대로된 오향장육의 맛을 음미하지 못했다. 이제 세번 째 시도이다 장육 위에 짠슬 반 토막과 파, 오이를 얹어 한꺼번에 먹어 보았다. 입안에 남아있던 빼갈의 향에 오향이 보태지니 이제서야 만족스러운 맛이 난다. 그래도 장육이 좀 더 부드러웠으면 좋겠다. 오향도 좀 더 짙게 베어 있고...
[부추잡채]
파찌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니 부추잡채 보인다. 오랫만에 보는 부추잡채였다.
“부추잡채는 동네에 있는 중국집에선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더라고. 이걸 여기서 맛 보니 무지 반갑구만...ㅎㅎ”
일행의 추임새에 파찌아빠도 한 입 가득 물고 우적우적 씹어 보았다. 기름진 즙, 단 맛이 감도는 즙, 풋내가 나는 즙이 한꺼번에 파찌아빠의 입안에 가득 고인다. 이를 일시에 깔끔하게 진정시켜 줄 꽃빵이 그리웠으지만 참기로 하였다. 왜냐구? 이미 2차 째 이니까...
[계란탕]
개운한 국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산라탕’을 주문하였더니만 산라탕은 없단다. 대신 서비스로 계란탕을 내주었다. 이건 그냥 평범한 맛이다.
[물만두]
‘산동교자’에 왔으니 맛배기 만두라도 먹어주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물만두를 주문하니 주방장이 우동 그릇에 담아 온 물만두를 오향장육의 소스가 남아있던 접시에 쏟아 붓는다. 뜨거운 물만두의 기운에 접시에 남아있던 짠슬이 스멀스멀 녹아 초간장소스와 섞여 물만두의 피를 파고 들었다. 물만두의 맛이 한층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