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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9일..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쉔부른 궁전을 들리고선 곧장 벨베데레 궁전을 향한다. 아직 날씨는 쌀쌀하다.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은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가 설계한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궁전이다. 위 상궁(Oberes)은 1723년, 하궁(Unteres)은 1714년에 세워졌다.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빈을 구한 구한 사보이 왕가 오이겐 공의 여름 별궁이었으나, 현재는 오스트리아 갤러리로 공개되고 있다. 특히 상궁 2층 붉은 대리석 홀은 1945년 오스트리아의 주권 회복 조약이 조인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더불어 상궁은 1955년 5월에 미국과 영국, 그리고 프랑스와 소련 4개국 외무장관이 모여 오스트리아의 자유와 독립을 부여한 조약을 체결한 장소로 유명하다. 또한 상궁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페르디난트가 잠시 거주한 곳이기도 하다. 벨베데레 궁전으로 들어서는 좌측에는 예전에 말과 마부들이 휴식을 취하는 등 공간이었다는데! 벨베데레 궁전 상궁은 19~20세기 회화관으로, 실레ㆍ코코슈카 등 세기말 화가들의 작품에서 빈 환상파 작품까지 전시한다. 자크 루이 디바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2층에 있는 붉은 대리석 홀은 가히 웅장하고 경외롭다! 와~아~~~ 드디어 위 그림, 벨베데레 궁전 상궁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1907~08)이다. 오스트리아의 국보급 화가인 클림트의 《키스》는 외국 반출도 불가! ㅎㅎ 클림트 예술의 특징은 세밀한 장식성, 여성의 성적 매력, 신비스러움의 강조에 있다. 1897년에는 일군의 예술과들과 '인생은 예술이며 예술은 곧 자유'라는 기치 아래 기존의 예술 협회에서 탈퇴하면서 빈 분리파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클림트는 '퇴폐적인 에로티시즘'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키스》는 처음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세상에 내놓자마자 오스트리아 정부가 사들였다. 두 남녀가 아름다운 꽃밭에서 입맞춤하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이 왜 걸작으로 평가 받는 걸까? 그것은 클림트가 개발한 황금장식 기법으로 그려진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오스트리아 부유층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던 황금장식 기법은 효과는 어떠했을까? 문양화된 꽃과 작은 금속 조각을 이어 붙인 듯한 화려한 장식은 마치 비잔틴 모자이크를 보는 듯하다. 금빛 가운은 순간의 감흥을 더해 주고, 말려들어가는 여인의 손과 발끝은 하늘로 떠오르는 듯한 황홀경을 상상하게 한다. 또 얼핏 보면 이들이 하나인 듯하지만, 남성의 옷에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직사각형의 장식을 넣고 여성에게는 둥근 원형의 장식을 넣음으로써, 결국 두 사람이 엄연히 다른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키스》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육체적인 환락을 넘어 영원으로 진입하게 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 아닐까!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20대에 부르크 극장의 장식을 직접 맡을 정도로 성공한 천재적인 화가로, 빈 분리파의 초대 회장을 맡으며 실레나 코코슈카 같은 젊은 인재를 발굴해냈다. 연예 편력도 다채로워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1918년에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위 그림, 벨베데레 궁전 상궁 미술관에서 《키스》와 함께 또 하나의 대표적인 작품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유디트》(1901)이다. 홀로페르네스는 구약성서의 외경에 나오는 유대인을 공격한 앗시리아의 장수이다. 그리고 유디트는 밤을 틈타 그를 유혹한 뒤 술을 먹여 그의 목을 자른 우리나라의 논개 같은 여자이다. 이 그림은 적장을 살해한 유디트를 신비로운 요부의 이미지로 표현한 클림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유디트의 환희에 찬 표정과 보석으로 번쩍이는 목의 장식이 홀로페르네스의 잘린 목과 연결되어 미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에곤 쉴레의 작품 《가족》(1918)이다.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 16세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한 천재 화가이다. 클림트에게 강한 영향을 받았고, 포르노적인 작품을 많이 그려서 성범죄로 기소당한 적도 있다. 1918년 스페인 감기로 임신한 아내를 잃고 3일 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 죽기 직전, 분리파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아 더 큰 아쉬움을 남겼다. 역시 에곤 쉴레의 작품 《어머니와 두 아이들》이다. 자조적 우울함과 정서적 메마름 등이 느껴지는데, 에곤 쉴레의 작품에서 많이 나타난다. 프란츠 아이블 《책 읽는 소녀》, 1850년 캔버스에 유채 53×41cm 벨베데레란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이다. 정확히 이탈리아어로 '좋은 전망의 옥상 테라스'를 가리키는 건축 용어이다. 그 이름대로 벨베데레 궁전 상궁 2층에서 내려다본 빈의 시가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멀리 하궁도 보이고. 슈테판 대성당의 모습도 보여.. 와~우~~~ 벨베데레 궁전을 나오니 드넓게 펼쳐진 정원이 있다. 그리고 여성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가진 스핑크스 조각상이 버티고 있으니! 사진이나 같이 한 번 찍어~~~ ㅋㅋ 배경 좋아 점프샷이라도 한 번 찍고 싶었는데! ㅋㅋ 벨베데레 궁전을 나서면서 색채 예쁜 그림의 굴곡진 안경집을 2개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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