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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1-4)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박국은 주전 약 600년경에, 선지자 예레미야와 함께, 남유다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 당시, 남유다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한 왕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국운은 점점 쇠퇴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호야김 같은 왕은 예레미야의 예언이 적힌 두루마리를 칼로 조각 조각 잘라서, 불살라 버리고,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을 따르며, 의로운 선지자들을 박해했습니다.
1:2-3절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강포”, “죄악”, “패역”, “겁탈”, “변론”, “분쟁”이라는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강포”라는 말은 누군가의 습격을 받을까봐, 길거리나 공원에 마음 놓고 나가지 못하는 사회적인 상황을 말합니다.
“간악”이라는 말은 악인들이 잘되고, 형통함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패역”이라는 말은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더 가진 자들과 권세자들에 의해서 착취당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겁탈”이라는 말은 성적인 폭행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변론과 분쟁”이라는 말은 어디를 가나 입씨름이 있고, 인신공격이 있고, 다툼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4절을 보면,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해이해졌다”고 하는 말은 “법이 있기는 있지만, 법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정의가 굽게 행하여졌다”고 하는 말은 법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사회 상황은 혼란과 어두움으로 가득찼습니다.
의롭게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었습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고, 핍박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얼마 전, 2018년 백마문화상 수상작인 단편 소설 “뿌리”의 작가인 김민정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 도용되었으며, 소설을 도용한 손‥이 2020년 다섯 개의 문학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였다고 폭로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소설을 제목과 내용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자기가 쓴 글인양, 공모전에 제출하여, 상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이 온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제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 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 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 등 5개 문학상을 탔습니다.
22일 방송된 SBS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거짓된 삶을 살아온 한 남자, 그는 왜 남의 것을 훔치나”를 타이틀로 손‥에 대해 집중 조명했습니다.
손창현은 전문 문학도도 아니었고, 표절 행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김민정 작가는 ‘궁금한 이야기 Y’와 인터뷰에서 “인생이 통째로 도난당하는 느낌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제껏 작가로서 살아오며 흘린 땀과 눈물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느껴진다”고 속내를 토로했습니다.
손‥은 자신의 SNS에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공군 장교 출신에, 항공사 조종사로 근무 중이라는 본인의 이력을 자랑했습니다.
또한, 사진첩에는 상장과, 임명장, 수료장 등이 가득했고, 심지어 그는 작년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던 트럭 기사를 구해 의인상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상장 역시, 가짜였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제작진의 취재 결과, 손창현의 거짓된 이력은 한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조종사도 아니었으며, 그가 탄 수많은 상들은 모두 본인의 창작물이 아닌, 그가 무단 도용한 타인의 창작물들이었습니다. 그는 작품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사진까지도, 본인의 얼굴인 것처럼 속였습니다.
제작진은 “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애매한 경계를 드나드는 삶을 살고 있는 한국판 ‘캐치이프유캔’의 실제 주인공”이라며, “그는 왜 남의 것을 훔쳐 이런 이력들을 쌓았을지, 남의 것을 훔쳐 살고 있는 한 남자의 거짓된 삶에 대해 알아본다”고 소개했습니다.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은 2002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미국의 전기 범죄 코미디 영화입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부모가 이혼을 한 뒤, 가출을 하고, 팬암 조종사, 하버드 의대 수석 졸업 의사, 버클리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를 사칭한 최연소 사기꾼 프랭크와 그를 쫓는 FBI 수사관 칼의 이야기로, 1965년에 실제로 일어난 사기극의 주인공인 프랭크 애버그네일(Frank Abagnale)의 실화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 같은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런 거짓과 속임수, 마약과 폭력, 사기와 강도 등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일반화되어 있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시대 상황이나,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 상황을 보면, 나아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악해졌습니다. 더 나빠졌습니다.
문화와 문명이 발달했으면 범죄라든가 하는 것이 사라져야 하는 데, 그렇지를 않고, 더욱더 세상은 악해져만 갔습니다.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넘쳐나고 있고, 그 방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정도로, 다양해져 가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할 것인지를 가늠하기 힘든 별 희한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이 그 악한 자들을 다 심판해 버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세상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 “하나님은 죽었다”고 외치는데, 하나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잘 살고, 악한 사람이 잘못을 범할 때마다,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다고 한다면, 우리의 고민과 갈등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이 더 악랄하게 죄를 범하는데도 불구하고,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보게 될 때에, 우리의 고민과 갈등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기 자신들을 자랑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등진 채,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화려한 포장을 했지만, 속은 썩을 대로 썩은 모습이었습니다. 악취 덩어리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부패와 타락이 최고점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모두 이방인 취급을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우상숭배에 바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 니다. 어떤 면에서는 유대인들보다도 더 악했습니다. 더 많은 벌을 받아야 할 존재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잘못이 100이라고 한다면, 이방인들의 잘못은 200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방인들은 더 악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더 빨리 심판받아야 할 악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한다면, 먼저, 이방인들을 심판하시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기 때문에, 가볍게 심판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를 비롯하여,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무슨 일을 행하고자 하시기에, 그들이 믿지 못할 것이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네가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너희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로 하여금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민족인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대인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니, 유대인들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 작은 실수를 범한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13절)라고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방 민족인 갈대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라고 따졌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믿기 때문에, 이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습니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그 내용들이 다 이해가 됩니까? 어떤 영화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 내용을 이해해 보려고 집중해 보지만,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해가 안되도, 그냥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다 되어야만 믿을 수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과 이해를 다 동원한다 해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두 다 이해한다고 하면, 하나님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방 민족인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대인을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잘못을 범하였을지라도, 더 나쁜 사람들인 갈대아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을 치라고, 그들에게 회초리를 쥐어 준다고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에게, “그가 무자비하게 백성들을 죽이는데, 그가 이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질문을 던진 하박국 선지자는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파수하는 성루에 섰습니다.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켜 보았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숨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실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 하박국 선지자는 기다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등진 채, 교회를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파수하는 성루에 올라가,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렸던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셨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판에 똑똑하게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종말은 반드시 임한다.”
“종말이 온다고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누구든지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 성경은 특별한 사람들만 가질 수 있었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특별한 사람들이란, 신부들입니다.
언어 가운데, 라틴어가 있습니다. 라틴어는 고대 로마 언어입니다. 라틴어에서, 영어를 비롯하여, 불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루마니아어 등, 여러 언어들이 파생했습니다.
신분이 높은 귀족들은 라틴어로 말하고, 라틴어로 글 쓰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우리나라 양반들도,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문으로 말하고, 글을 썼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엣날 자료들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없는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쓴 글인데, 번역해야만 읽을 수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록한 구약성경은 그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신약성경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언어인 그리스어(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그후, 복음이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된 성경이 라틴어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상류층인 귀족들은 말은 자기 나라 말로 해도, 글은 라틴어를 사용하여 기록했습니다.
그때, 교황은 라틴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성경을 기록하면, 사형에 처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라틴어로 된 성경을 누가 읽을 수 있습니까? 신부만이 라틴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신부들이 미사 때, 라틴어의 성경을 읽고, 그 내용을 그 나라 말로 해석해 주었으면 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미사 때, 라틴어로 성경을 읽고, 노래도 라틴어 노래를 부르고, 신부들도 라틴어만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미사 때, 그 내용들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황이 “죽은 누군가를 위하여, 면죄부를 사면, 그 사람이 지옥에 가 있을지라도, 동전 소리를 듣는 즉시,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외쳐도, 그것을 그대로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반 평신도들은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줄로 알고 믿었던 것입니다.
1962년, 로마에서, 바티칸 제2차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결정된 것 중에 하나가,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한민국 말로 미사를 드려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1962년까지, 우리나라 성당에서도, 신부들이 오직 라틴어로 성경을 읽고, 라틴어로 노래를 부르고, 라틴어로 말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다니는 우리는 너무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글로된 성경을 읽어왔습니다. 예배 시간에는 한글로만 말하고,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신학교 때, 영어, 독일어, 히브리어, 헬라어를 공식 과목으로 배웠지만, 라틴어는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교수님이, 영어책을 가지고 강의하면서, 라틴어를 사용하는데, 그것을 이해하느라, 엄청 힘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중세 시대, 종교개혁의 문이 열리면서, 개혁가들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성경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잡히면, 사형을 당해야 함을 알면서도, 성경을 자기 나라 말로 번역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독일 사람이었기에,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이것이 신학 공부할 때, 독일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신부였던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경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성경을 읽으면서, 교황의 면죄부 판매가 틀렸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박국 선지자의 기록된 말씀을 알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고 기록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지금 우리들 눈 앞에 펼쳐진 세상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우리의 눈을 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을 가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이 진짜가 아닙니다. 우리의 귀에 들리는 것이 진짜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영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악인이 형통하고, 세상이 그들의 손에 움직인다고 할지라도, 전혀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행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지금은 혼란과 어두움으로 덮여 있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혼란과 어두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밝고 희망찬 내일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현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감으로, 이 혼란과 어두움의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혼란과 어두움이 물러가고, 밝은 내일이 다가오기를 기대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큰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을 믿고 따르는 믿음, 세상을 이기는 믿음,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