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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그리스도의 군사 지침서 187
권두언
복된 새해를 맞이하여 독자 여러분들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한 해 더 가까워졌습니다. 이 해는 영적으로 더욱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는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모든 의혹과 불신을 영원히 쫓아버리고, 지난 해 우리의 길을 지도하신 하나님을 단순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첫 발자국을 떼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발을 드려놓는 이 해가 복된 해가 될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들은 결정해야 합니다. 매 순간 의로운 길을 선택할 것인가, 매 순간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면서 살겠는가, 매 순간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겠는가 하는 것들을… 만일 우리가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친 사람들이라면, 한 해를 살 수 있는 모든 능력과 하늘의 보화들은 우리 앞에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귀한 약속을 믿는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전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팔에 거하며 주님을 믿고 찬양하면서 진군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하십시오!
우리는 이 해가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한 해가 되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전투에 임하는 한 우리는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마지막 시대에 벌어지는 선과 악의 대 쟁투에서 하나님께 승리를 안겨드리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강병국 목사
제1부_ 하늘에서 온 입영 통지서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하늘의 크신 은혜로 우리 모두를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해를 맞으면서, 이 해에는 우리 모두 실패와 패배를 모르는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그리고 우주와 세계에 구경거리가 될 우리들의 삶은 어떤 삶이 되어야 할까요?
이번 호 신앙기사에서는 새롭게 시작되는 이 한 해에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 위한 지침을 조명해 보았습니다.
이 기사가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편집실 -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대한민국에 사는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공평하게 받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입영 통지서이다. 조국을 지키는 군인이 되라는 국가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과 모습은 사뭇 다르다. 당황하거나, 걱정하거나, 혹은 두려워하거나 기뻐하는 등… 그러나 그것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과 감정이 천차만별일지라도 그들이 져야 할 의무는 똑같다. 국민의 4대 의무 중의 하나인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에서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소유한 남자라면 예외 없이 반드시 감당해야 하는 의무이다. 나라를 든든히 하고 국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자국을 적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군에 지원하여 훈련을 받으므로 국방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아는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늘에서 온 입영 통지서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그리고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싸우는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왕국과 그분 나라의 확장과 승리를 위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어떤 왕이나 국가로부터 받은 부르심보다 더 높은 부르심(high calling)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매 순간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군에 입대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국방의 의무를 훌륭하게 감당해내는 군사로 훈련받기 위해, 전투에 임하는 법과 자세를 배우기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울 때 승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우리도 그리스도의 훈련 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준비하여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1) 그리스도 군사의 복무 신조
군에 입대하면 누구나 암기해야 할 수칙이 있는데, 그것은 군인들이 아침저녁으로 큰소리로 외치도록 요구받는 복무 신조이다. 군인들은 매일 복무 신조를 외우면서 군인 정신과 군인의 임무를 머리에 입력하며 자신의 신분을 자각한다. 그 외에 기억해야 할 다른 수칙들도 있는데, 이 수칙들은 어느 상황에서도 절대 지켜야 하고,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되는 일종의 명령 같은 것으로, 군인 정신과 사상에 근간을 이루는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군사 생활에도 복무 신조와 행동강령이 있다. 한갓 지상의 국가를 섬기는 데에도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하늘 왕국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지켜야 할 수칙은 얼마나 많겠으며, 그것은 얼마나 고귀한 것일까! 더구나 이 수칙들은 우리의 영생과 내세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므로 이 수칙에 입각한 투철한 그리스도인 군사 정신을 갖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군사로서 하나님과 그분의 주권과 나라에 충성을 다짐하며 복무 신조를 매일 외쳐야 할 것이다.
2) 특수 정예부대 십사만 사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군사이지만, 마지막 시대에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군사가 아닌 특수부대와 정예부대들이다. 특수부대는 특수한 목적과 임무를 지닌 부대로, 정예부대는 훈련이 가장 잘 되고 전투력이 강화되어 어떤 전투를 위해서도 준비된 최고의 부대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정예부대는 완수해내야 할 매우 중요한 임무를 띤 하나님의 군사로서,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치열한 접전을 치러야 하는 군사들이다. 선과 악의 최후의 전쟁에서 사탄과 그의 군대들을 직접 대항하여 싸워야 할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다. 우리의 싸움은 지상의 어느 전쟁보다 치열한 전쟁인데, 그 이유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1일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의 특수부대 “네이비실 팀 식스(Navy SEAL-team 6)”에 의해 사살됐다. SEAL이라는 이름은 바다ㆍ공중ㆍ지상(sea, air and land)을 의미하며, 육ㆍ해ㆍ공 어디서든지 전투가 가능한 전천후 부대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는데, 그들의 숨막히는 작전은 온 세계가 뉴스를 통해 목격한 바이다. 그 외에 델타포스라는 특수부대도 있는데, 그들은 정규군이 투입되기 힘든 상황에 뛰어들어 인질 구출, 적 기지 파괴 등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미 육군의 특수부대이다. 그런데 네이비실이나 특수부대 요원이 되기 위한 훈련은, 훈련과정에서 지원자의 80%가 탈락할 정도로 혹독하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체력훈련은 물론 극강의 정신력 훈련까지 받는데, 24주간의 잠수훈련, 수중파괴훈련, 28주간의 적성훈련을 포함해 폭파ㆍ정찰ㆍ전략전술 훈련 등 총 30개월에 걸친 훈련을 최종 통과해야 정규요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정예부대나 특수부대는 무엇으로 비유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 하나님의 특별한 증인의 역할을 하는 십사만 사천일 것이다. 그들이 담당해야 할 임무와 사명은 매우 특별하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룬 자들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이며, 우주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명예를 위해 증거할 증인들이다. 십사만 사천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다.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간다는 표현에는 매우 광범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이것은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침으로, 드디어 충성된 주의 군사가 되어 주님께서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법을 터득한 것을 가리킨다. 주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로 같지 않은 상황과 같지 않은 사건과 고난과 시련을 겪게 하시고, 그 사람이 온유와 인내로 불평 없이 그 시험들을 이겨내는가를 시험하신다. 또한,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우상들과 정면충돌하는 상황을 당면하게 하셔서 그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우상을 포기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꼴지어지는지 시험하신다. 평안한 때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과 믿음으로 하나님과 진리에 충성하는 것이 입증되어야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정예부대가 될 수 있다.
십사만 사천인은 사방 바람이 놓이고 환난이 닥칠 때에,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을 통과하며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고 싸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 담대하게 적그리스도의 비밀과 오류와 바벨론의 죄악을 경고하고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해내는 사람들이다. 곧 사탄과 죄악에 포로되어 있는 인질을 구출해 내는 임무를 띤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강건하며, 어떤 고통과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입을 열어 불평하거나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투옥과 협박과 고문과 위협이 그들의 앞에 놓일지라도, 생계가 끊어지고 매매하지 못하므로 음식에 굶주리게 될지라도,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짐승의 표의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은혜의 시간이 마치고 지성소에서 예수님께서 중보 사업을 마치고 나오신 후, 이 세상에 칠 재앙이 내리는 동안에 짧은 시간 동안 중보자 없이 홀로 서야 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죄를 승리하는 법을 터득하고 성령의 힘으로 무장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로서 거문고를 손에 들고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설 것이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 노래는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 곧 구원의 노래인데,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명 외에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체험의 노래, 곧 다른 어떤 사람도 체험하지 못한 경험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 땅으로부터 끌어올림을 받은 사람들이며,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다(계 15:2,3, 14:1-5). 또한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기근과 질병으로 황폐해지고, 태양이 심한 열로 사람들을 태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들 자신도 고통과 기갈을 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이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계 14:5, 7:14-17).
이 마지막 시대에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르심을 받은 특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우리는 부하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의 모든 영광과 보화와 생명까지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령관으로 모시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승리하는 군사가 되기 위한 모든 지침과 상세한 안내가 주어져 있다. 우리가 알게 된 진리의 진수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하나님의 용감하고 선한 군사가 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제2부_ 그리스도 군사의 병기 (I)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고후 6:7).
그리스도의 군사는 승리하는 군사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의 명예는 곧 주님의 명예이며, 그들의 승리가 곧 하나님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쓰인 손자병법은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싸움에서 이기는 전략과 전술을 가르치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병서이자 군사교과서로 알려진 손자병법은 전쟁의 전략뿐만이 아니라 경영학이나 일반인들의 처세학으로도 회자되고 있는데, 그 전략 중에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먼저 이길 수 있는 준비를 다 해 놓은 다음에 적과 싸워 이길 기회를 기다린다”라는 말이 있다. 사탄과 싸우는 선과 악의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비무환만이 승리의 지름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병법처럼 우리는 싸워야 할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우리의 적은 가족이나 이웃이나 혈과 육의 인간이 아니라 악의 권세와 초자연적 하늘의 영들이다. 사탄은 이미 예수님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존재이지만, 그는 아직도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여러 전술을 동원하고 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병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고 있다. 다음의 성경 절에 명시된 병기들을 살펴보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1-17).
1) 하나님의 “전신 갑주”
우리 각자가 선과 악의 대쟁투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으로 영적인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 사탄에게는 그리스도의 군사를 패배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규모의 기만적인 계략이 있다. 성경은 그것을 “마귀의 궤계”라고 부른다. 성경은 사탄의 기만과 계략과 간계에 대처하고 그 공격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만이 승리가 보장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최첨단 방탄 군복을 만들어 무장한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꿈의 슈트'라고 불리는 이 새 전투복은 방탄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병사의 힘을 몇 배 증강시켜 빨리 달리게도 해준다고 한다. 이 군복은 헬멧에 달린 접안경에 GPS를 장착, 전장 상황을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받으며, 자동온도조절 시스템을 갖춰 극지방에서도 체온이 정상 유지되고, 무선 컴퓨터, 비디오카메라, 통신장비 등도 장착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최첨단 전투복으로도 사탄의 공격은 막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전신갑주만이 우리를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다.
군인들은 만일에 대비하여 항상 개인 장비를 점검한다. 그리고 전투 상황이 발생하는 즉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심지어 잘 때도 전투화를 벗지 않고 병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영적인 전쟁에 임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한다. 사탄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 적의 공격을 살펴야 한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누구나 전투에 임하라는 부르심을 받지만, 준비는 개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치 열 처녀의 비유에서 부족한 기름을 남이 채워줄 수 없었듯이, 영적인 상태와 준비에 서도 아무도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충해 줄 수 없다. 자신의 준비와 점검은 스스로 해야 한다. 사령관이신 주님께서도 가르쳐주시고 힘을 주시지만 싸워야 할 사람은 군인 자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도 자신이고 이를 준비하는 것도 각 개인 스스로 할 일이다.
이제부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2) 진리의 허리띠 – 곧바른 진리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엡 6:14).
허리띠는 의복이나 갑옷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허리띠가 없으면 옷이 흘러내리고, 옷이 흘러내리면 뛰는 것은 물론 걷는 것조차 할 수 없다. 허리띠는 허리의 부상을 방지하고 칼이나 탄창, 수통을 달아주고, 행동을 자유스럽게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씨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씨름은 상대의 중심을 뺏는 경기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는데, 허리띠는 중심을 잡아주는 의미가 있다. 싸움에서 상대를 제압할 때 허리띠를 풀어버리면 힘을 쓰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허리띠는 기본적인 무장의 첫걸음이자, 갑옷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은 허리띠를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병기로 추천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허리띠가 아닌 “진리”의 허리띠이다.
왜 진리의 허리띠인가? 신앙생활에서 진리가 빠진 것은 헛된 신앙생활이다. 성경이 말하는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오류가 섞인 복음, 반쪽 복음 위에 기초를 둔 신앙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론이나 교리가 신앙 전부이거나 그것이 영생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바른 진리의 올바른 기초 위에 신앙을 쌓을 때에야 영적인 경험이 바르게 따라오게 되고 그렇게 될 때에 그 진리는 영혼을 영생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가르친다고 다 진리가 아니다. 성경에 기초한 변질하지 않은 진리, 현시대에 올바른 양식이 되는 현대진리, 참된 증인의 증언처럼 영혼의 영적인 상태를 날카롭게 깨워 그 영혼으로 살게 하는 곧바른 진리가 진리이다. 신앙생활과 영적 삶을 싸움이라고 생각할 때에, 곧바른 진리를 모르고 헛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바울은 그 점에 대해 이렇게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고전 9:26). 진리가 빠진 신앙생활은 허공을 치는 싸움과 같다. 이와 같이 진리는 우리 신앙생활에 허리띠와 같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진리의 띠로 허리를 동이라는 말은, 사탄이 좋아하는 거짓, 위선, 부정, 나태하고 게으르고 무질서한 삶을 떠나서 정직과 진실, 열심과 성실, 경건과 거룩함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곧 진리이신 주님과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이러한 삶은 영적 긴장이 풀리지 않게 날마다 진리로 마음의 허리(벧전1:13)를 바짝 졸라매야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 12:35)고 명령하셨다. 이렇게 진리 속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당신의 의의 갑옷을 입혀주시는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보장하는 전투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의의 갑옷이 벗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매주는 진리의 허리띠를 단단히 매어야 한다. 진리의 영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도록 자아를 굴복시켜야 하며, 우리 생활에 진리가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한다.
3) 의의 호심경 –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엡 6:14).
바울은 진리의 허리띠에 의의 호심경을 붙여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호심경은 흉배로도 번역되어 있는데, 호심경이란 갑옷의 가슴 쪽에 호신용으로 붙이는 구리 조각이다. 갑옷을 입을 때 가슴 부분, 특히 심장 부분을 추가로 보호하기 위해 왼쪽 가슴, 즉 심장 주위 부분에 덧대는 얇은 쇠판을 말하는 것이다. 호심경이 없으면 비록 갑옷을 잘 입었더라도 화살이 가슴에 정통으로 맞았을 때 심장이 꽤 뚫려 죽임을 당할 수가 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진리와 의의 개념을 연결시켰다. 그 의미는 진리가 우리 속에 역사하여 의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진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거하실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우리가 변화되며,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된다는 것이다. 즉 바울은 이것을 통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믿음의 의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우리에게 의가 된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사상과 정신과 마음이 예수님과 합쳐져 하나가 되고 우리 마음 속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의 능력으로 의로운 생애를 살게 된다.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의가 되는 것, 이것이 의의 흉배를 붙이는 것이다.
흉배가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처럼, 옳은 일을 행하고 의를 실천하며 “진리”대로 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옳은 일을 게을리하고 진리로 알고 있는 것에 등을 돌릴 때에 쉽게 사탄의 공격 목표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갑옷에 큰 구멍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하도록 사랑과 헌신과 희생과 의의 선한 행실의 표를 새기라는 뜻이다. 주님의 모습과 성품이 나타나지 않는 신앙은 세상과 사탄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게 만들 뿐이다. 또한, 우리는 구원의 유일한 소망이 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항상 기억해야 한다. 진리와 의는 사탄의 공격에 가장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무기이다. 우리의 의와 구원이 예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에 품고 전쟁에 임하도록 하자.
4) 복음의 신 – 영원한 복음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엡 6:15).
군인에게 전투화 신발은 매우 중요하다. 병사의 신발이 편안해야 전쟁에서 잘 싸울 수 있다. 구두가 편하지 않으면 오래 보행을 하거나 뛸 수 없다. 당시 로마 군인의 신발은 보통 신발과 달라서, 놋 재질로 되어 있었으며, 모양은 발을 덮은 부분과 정강이 받이가 있어서 부츠 같았다. 신발 윗부분 끝은 놋과 가죽끈으로 연결되어 있고, 바닥에는 7.5cm 정도의 송곳 같은 쇠못(Spikes)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만일 이 신발에 차이거나 밟히면 날카로운 못에 찍히는 것 같은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안전용이자 방어용, 공격용으로 만들었다. 그 전투화는 병사들이 오래 싸워도 지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바울은 영적인 전투에서 복음의 신을 신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그냥 복음의 신이 아니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권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복음, “영원한 복음”(계 14:6)은 평안의 복음이다. 이 복음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고안하신 구원과 구속의 계획과 방법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복음으로서, 이 복음을 믿고 따르고 복음의 지시와 명령을 지키기만 하면 영원한 구원과 영생이 보장되는, 영혼에게 평안을 주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온전한 복음으로, 이 복음 속에는 용서의 교훈이 포함되어 있고, 칭의와 성화의 진리, 곧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이 들어 있으며, 복음이 주는 능력 곧 영혼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에 관한 좋은 소식과 이 능력을 믿을 때에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 곧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여자의 남은 무리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의 소식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완전한 평안의 소식이다.
바울은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라는 구약의 구절을 인용하여 발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5). 복음은 삶에서 나타난다. 복음의 능력은 그 사람의 발자취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복음이 그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지 않으며, 그 사람이 경험한 것이 되지 않으면 그 복음은 소용이 없다. 복음을 스스로 경험해야만 그 복음은 영혼에게 평안을 주는 복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발이 닿는 곳마다 평안의 복음이 전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평안한 복음의 신을 신어야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흔들림 없이 피곤함 없이 꾸준하게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다. 곧바른 진리를 아는 것과 의를 이루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합력하여 나에게 진정한 복음이 되는 경험, 곧 그 복음이 나를 구원한 평안한 복음이 되어야, 그리고 그 복음이 나를 후원해주어야 안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거짓 평안이 아닌 진정한 복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누리지 못하면 마귀의 공격에 넘어가기가 쉽다. 이 평안한 복음이야말로 영적 투쟁에 참여할 수 있는 굳건한 발판을 마련하는 병기가 된다.
제3부_ 그리스도 군사의 병기 (II)
1) 믿음의 방패 – 승리하는 예수님의 믿음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엡 6:15,16).
방패는 공격용 병기가 아니고 방어용 병기이다. 바울은 믿음의 방패로 악한 자의 불화살을 막으라고 권고한다. 다른 병기들은 입고 취하기만 하면 되지만, 검이나 칼이나 방패는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방패를 쓴다는 것은 방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바울 당시에는 역청을 발라 불을 붙인 화살을 쏘았기 때문에 불타는 화살을 막고 활촉을 무디게 하려는 목적으로 나무 방패에 가죽을 입혔다. 이것은 모든 방어 무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는 것은, 사탄의 공격이 불화살처럼 올 때,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활용해서 방어하고 이기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믿음인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승리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믿음은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고 승리를 가능케 하는 산 믿음이었다. 그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하심으로 인성의 몸을 쓰시고도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으며, 모든 면에서 승리하셨다. 예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고 의로운 생활을 살기에 가능하게 한 믿음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에 있어서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활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진리를 배우고, 우리의 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복음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승리하는 군사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그에 더하여 믿음이 있어야 한다. 무슨 믿음인가? 매일의 영적인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사탄과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예수님의 믿음이다. 하나님을 아는 충분한 체험 속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다. 믿음을 활용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은 영적 경험 가운데서 얻은 훈련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사탄이 날리는 “화전(불붙은 화살)”에는 유혹, 의심, 낙심, 낙담, 실망, 불신, 시기심 조장, 자존심 공격, 교만을 부추기는 것, 탐욕, 허영 등등 여러 가지가 들어있다. 사탄은 틈만 있으면 우리 영혼을 흔들리게 하고 그가 던지는 유혹에 쓰러져 죄를 짓도록 미혹한다. 이해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하여 우리의 영혼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군사는 그런 때에라도 믿음을 활용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지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최선을 위해 허락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을 가지며, 사별과 이별의 고통 속에서도, 인생의 고난과 실패와 시련과 가난 속에서도, 심한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사탄이 주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비록 감정이나 느낌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믿음대로 행하며 믿음을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믿음의 방패를 가지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보일만 한 상황들에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밀려올 때에, 흔들리지 않고 서서 그 유혹과 흔들림을 방어하는 것이 믿음의 방패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예수님을 쳐다보고 그분을 믿어야 하며, 우리의 믿음을 행사해야 한다.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포기하고 사탄의 유혹의 말을 들을 때에 우리는 패잔병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는 믿음은 높이 들린 방패처럼 사탄의 유혹들을 막고 그가 던지는 공격의 불화살을 진화시켜 아무 피해 없이 땅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2) 구원의 투구 – 의지와 정한 관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
투구란 군인이 전투할 때에 적의 화살이나 칼날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쓰던 쇠로 만든 헬멧 같은 모자를 가리킨다. 머리는 사고하는 부분이며 모든 행동은 머리에 의해 조종된다. 머리는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노출이 잘 되어 적의 공격을 받기 쉽고 작은 충격에도 치명상을 입기 쉬우므로 전장에서 군인이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구를 쓰는 것은 필수적이다. 머리는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사탄의 주요 공격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투구를 쓰되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머리가 의미하는 것은 생각, 즉 마음인데,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머리와 마음을 지킨다는 의미는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구원이 보장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나 또는 아무것이나 자신의 머리를 지배하도록 내어주고 버려둔 사람에게는 구원이 보장될 수 없다. 사령관이신 주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마음과 생각을 바치고 헌신한 군인이 아니면 주님께서 그 사람을 마음대로 하실 수 없다. 주님께 완전히 자신을 맡기고 바치고, 그분의 지배를 받기로 결정하고, 주권을 인정해야 주님께서 그 사람을 주관하시고 구원을 보장해 주실 수 있다.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우리의 구원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고 우리의 사상과 생각과 의지가 그분의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성과 판단력과 의지를 책임지고 결정을 내리는 기능을 하는 뇌의 전두엽 부분이 주님의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은 성령께서 인간과 교통하시는 부분이다. 그곳은 성령께 바쳐지는 구별된 부분이 되어야 하며, 성령께서 거하시는 전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두뇌의 의지의 힘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지혜이고, 결정력이며, 선택력으로, 모든 것은 의지를 옳게 쓰는 여부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 있으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친다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성향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애정과 관심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게 될 것이며, 우리들의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와 조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나님의 성령께 바쳐진 의지와 마음과 생각을 가지는 것이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이다. 마음속에, 생각 속에 구원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좌정해 계시는 것이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이다.
또한, 구원의 투구를 쓴다는 것은, 머리와 생각과 의지를 예수님께서 완전히 지배하시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한다. 십사만 사천의 앞이마에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과 어린 양의 이름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생각과 마음과 성품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매 순간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고 옳은 편을 택하는 습관이 형성된 사람, 죄를 승리하고 자신과 죄악과 자신의 감정을 이긴 사람들이 앞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는가? 스가랴서 3장에 나오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정한 관”을 씌운 것처럼, 하나님의 인과 정한 관과 구원의 투구는 일련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생과 구원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진 사상을 가진 사람은 사탄이 건드릴 수 없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지배하에 모든 것을 맡긴 사람에게 구원과 영생의 소망의 투구를 씌워 주신다. 사탄은 그리스도께서 씌워 주신 구원의 투구를 다시는 벗길 수 없다.
3) 성령의 검 – 운동력있는 말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
그 당시 로마군이 사용하는 칼은 특별한 칼로서 좌우에 날이 선 칼이었다. 바울은 히브리서에도 검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바울이 히브리서 4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검에 대해서 언급하게 된 배경은, 4장 전반부에 강조된 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불순종을 예로 들면서, 그와 같은 죄악에 빠지지 않고 죄를 승리하며, 죄짓는 일을 그치고 주님 안에서 쉬는 하나님의 참 안식에 들어가려면, 마음의 할례를 받고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는데, 그렇게 되는 데 필요한 것이 좌우에 날선 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성령의 검도 같은 맥락에서 쓰인 것이다.
사탄의 궤계를 물리치고 승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 말씀은 살아서 움직이는 운동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의 마음속에서 활동하고 역사하여 변화를 일으킨다. 말씀에 들어있는 창조의 능력이 그 말씀을 받는 인간의 마음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왜 성령의 검인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렇지만, 말씀에 수반되는 성령의 역사 때문에 그렇다. 바울은 로마 군인들이 쓰던 예리한 칼이 무엇이든지 쪼개고 찌르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좌우에 날선 어떤 검, 즉 로마 군인들의 칼보다 더 예리하여 인간의 모든 것,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까지 쪼개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다 감찰하신다고 기록한 것이다. 검이 모든 것을 베고 잘라내는 것처럼, 검을 사용하기 전에 먼저 우리 마음의 가죽이 잘라내져야 한다. 굳은 살과 영적으로 무디어진 것들이 잘라내어짐을 받아야 한다. 말씀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새롭게 되고, 말씀으로 살고, 그리하여 내 속에서 소화된 그 말씀으로 사탄의 공격과 시험을 이겨야 한다. 예수님께서 사탄과의 투쟁에서 사용하신 수단도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분은 사탄의 공격과 시험을 받으실 때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대항하셨다. “기록되었으되” 가 그분의 병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는 부지런히 말씀을 공부했으며 말씀에 매우 친숙해 있었다. 바로 거기에 시험에 대처하는 비결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약속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시험의 맹공격을 받을 때, 상황이나 자신의 약점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바라보자. 그 말씀의 모든 능력은 우리의 것이다. 성경의 진리와 말씀을 알지 못하면 성령의 검을 취할 수 없으므로 예수님처럼 말씀과 진리로 무장하여야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 생명의 떡이 아닌 육신의 떡만을 위해 바쁘게 살 때에 우리는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씀은 우리의 분별력을 예리하게 하고 사탄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도록 영혼을 튼튼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성령의 검으로서, 대적을 물리치는 데 결코 실패함이 없을 것이다.
4) 기도 – 하늘 창고를 여는 열쇠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 6:18).
사탄과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으로 바울은 한 가지를 더 권면하고 있는데, 그 한 가지는 기도이다. 그것도 가끔 하는 기도가 아닌 무시로 지속해서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이다. 아무리 최첨단 무기로 완전 무장을 했을지라도 하늘에서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이신 그리스도와의 교신이 단절되면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기도는 하늘과 나누는 교신이며, 하늘로부터 힘과 능력을 공급받게 하는 수단이다. 전장에 나가 있을 때 교신을 통해 대장으로부터 지시와 명령과 조언과 힘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매 순간 신령한 대리자와의 연결이 우리의 전진과 승리에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전신갑주로 항상 무장할 수 있는 비결은 하늘과의 통신수단으로 주신 기도를 쉬지 않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통할 때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으며, 기도로 무장될 때만 원수와 맞설 수 있다. 기도는 또 하나의 무기가 아니라, 전신갑주를 입고 싸움을 싸우는 정신, 즉 태도이다. 성경은 자주 기도를 멈추지 말라고 촉구한다.
사탄은 기도를 게을리하는 자들을 어둠으로 가두어 놓고 마음대로 공격한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원수의 속삭이는 시험과 유혹에 대항할 힘이 없어 연약하게 쓰러지고 만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쌓아 둔 하늘 창고를 여는 열쇠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루를 살 힘과 사탄의 유혹을 견딜 힘을 얻는다. 사탄은 우리가 열성 있는 기도와 간구를 드리므로 시험을 이길 은혜와 능력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은혜의 보좌로 가는 길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시로 영적 생명과 힘을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도 자주 기도하셨다. 우리 구주께서는 의무와 시련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늘 아버지께 새로운 능력의 공급을 구하는 탄원자와 간구자가 되셨다. 그분은 범사에 우리의 모본이시다. 예수님은 죄악 세상에서 우리와 같이 심령의 투쟁과 고민을 당하셨으므로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는 가운데서 위안과 기쁨을 얻으셨다. 인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도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다면, 연약하고 죄가 많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얼마나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는가!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우리를 둘러쌀 때에,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과 겸비하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간구를 드리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를 시험과 사탄의 공격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제4부_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 위해
“지피지기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우리 자신을 알고 또한 사탄의 술책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매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완전무장을 해야 할 것이다. 그 길만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다. 거의 6천 년간에 걸쳐 계속되어 온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대쟁투는 머지않아 끝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은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고 사람들을 그의 사슬에 굳게 매어 두기 위해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나고 은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사람들을 암흑과 완고한 상태에 붙들어 두려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다. 사탄은 사람들이 악의 권세를 저항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을 때, 그리고 세상과 교회가 냉담하고 나태한 상태에 빠져있을 때 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 손에서 잃어버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영원한 사물을 생각하며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부르짖을 때에는 사탄은 달려와서 그리스도의 권세와 다투고 성령의 감화를 소멸시키고자 노력한다. 사탄은 노련한 장군처럼 미리 계획을 세워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듣지 못할 환경을 만들려고 온갖 계책과 수단을 다 동원한다. 사탄은 말씀을 읽는 일과 성경 연구를 게을리하고 기도를 등한히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는 인간을 타락하게 한 장본인이자 사람들을 죄악에 빠뜨린 경험이 많아서 각 사람의 약점과 연약성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 유혹하고 공격할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사탄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가장 연약한 사람이 암흑의 군대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전신갑주를 입고 깨어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분의 모든 명령을 따르며 순종할 때만 안전할 수 있다. 어떤 사람도 기도 없이는 하루나 한 시간도 안전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유혹자의 간계와 그를 성공적으로 저항할 방법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함 없이 하루를 성공적으로 보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모든 병기를 갖추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전신갑주를 입고 주님을 따라 전진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
지금은 사방의 바람이 놓이려고 하는 때이다. 지성소에서 하시는 주님의 중보사업이 거의 끝나가는 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기 위해 준비할 시간은 너무 짧다. 우리에게는 이제는 실패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사탄의 공격을 대파하고, 죄를 승리하며, 완전한 성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대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고 필요로 하시는 하나님의 정예부대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싸울 군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정예부대인 십사만 사천이 준비되고 하나님의 인을 받을 사람들이 준비되면 예수님께서는 지성소에서 나오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소를 떠나실 때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로울 것이다. 그들의 모든 죄는 도말 되고 준비된 사람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은 매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법을 터득하고 경험해야 하며, 실패 없는 그리스도인 생활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선과 악의 대 쟁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앞서 모든 싸움을 싸우시고 승리하신 대명장 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장 되시기 때문에 그렇다.
이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올 한 해는 우리 모두 승리에 승리를 더하며 전진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시대 이슈_ 짐승의 표 환난으로 이어질 임박한 세계 경제 붕괴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
천연재해, 경제 위기, 전쟁의 소문 등 지금이 말세임을 알려주는 징조들이 뉴스를 통해 계속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를 틈타 여러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간 인터넷과 뉴스를 통해 홍모 씨의 주장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2014년 12월 14일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는 전쟁이 발생하여 5~6개월간 지속하고 남한 인구의 반 이상이 죽게 될 거라는 자극적인 경고를 전합니다.
홍씨는 한국 전쟁이 2014년 12월 14일에 시작된다고 주장했으나 그 날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홍씨는 자신의 예언이 틀린 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으나 언론이 그 사실을 감추고 있다며 며칠간 거짓말을 계속했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예언이 아니며 자신이 하나님께 직접 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로 피신하는 한국판 노아의 방주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지원자 약 50명을 모집하여 3개월간 비자 없이 미국에 가 있다가 한국에 전쟁이 나면 난민 신청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상식적이며, 비성경적인 홍씨의 주장에 기독교계 안팎으로 꽤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홍 씨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홍씨 성을 가진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짐승의 표 환난이 2015년 4월에 시작되며 그 후로는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합니다. 그 전에 북한이 미국에 굴복하여 핵을 포기하며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재림 날짜도 2018년 12월 6일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그는 짐승의 표 환난과 예수님의 재림 날짜의 기산점을 자신이 책을 펴낸 날짜라고 말합니다. 성경의 예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홍씨의 말을 듣고 2015년 4월이 되기 전에 환난을 준비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두 홍씨와 같이 기독교가 비이성적인 단체라고 생각하며 점점 더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말세의 징조들과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점점 더 둔감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거짓 선지자들이 나오는 것도 말세의 징조로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이런 거짓 선지자들의 등장은 더욱더 지금이 말세라는 것을 보여주는 징조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짐승의 표 환난과 세계 경제 붕괴
그렇다면 예수님의 재림과 마지막 성경의 예언들은 언제 성취될까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시기가 2015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성경의 예언들 중 임박한 것이 요한계시록 13장에 기록된 짐승의 표 환난입니다. 그런데 이 짐승의 표 환난도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을 자세히 읽어보면 짐승의 표 환난의 때에 모든 사람에게 짐승의 표가 강요되며,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제재가 있을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6~17)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갑자기 짐승의 표 환난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짐승의 표 환난 전에 먼저 모든 사람을 통제하며 경제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로 온 세상이 통합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경제 질서가 짐승의 표 환난이 시작될 수 있는 새로운 경제 질서로 바뀌려면 단순한 경제 위기 정도가 아니라 현 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경제 붕괴가 있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성경말씀은 그런 경제 붕괴가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식물이 우리 목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떼도 피곤하도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및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인간의 희락이 말랐도다"(욜 1: 15~18, 12)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매우 짧은 시간, 신속하게)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고들(merchants)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계 18:10~11)
이런 성경 절들은 경제가 붕괴하여 사람들이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경 예언들이 성취된 후에야 새로운 경제질서로 온 세상이 통합되고 이어서 짐승의 표 환난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침몰해가는 세계 경제
그렇다면 이런 대대적인 세계 경제 붕괴가 언제 어떻게 시작될까요? 현재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대공황과 비교되는 디플레이션의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미국 연준(fed)은 2014년 10월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며 그동안 엄청난 액수의 달러를 찍어내던 양적완화를 공식적으로 종료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노동시장 참여 인구 비율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기가 급속히 침체하던 2008년보다 더 낮아졌으며, 미국에서 빈곤자들을 위한 식비지원 프로그램인 푸드스탬프(Food Stamp)를 받는 사람들은 2008년에 비해 약 두 배가량으로 늘어났습니다.
미국의 저소득층 식비 지원 제도인 푸드스탬프(food stamp)를 받는 사람들은 2008년 1월 약 2700만 명에 비해 2014년 1월 약 460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미국 인구 약 3억 명 중 1/6이 푸드스탬프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소매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간인 2014년 4일간의 추수감사절부터 블랙 프라이데이로 이어지는 주말 동안 소매 판매는 2013년보다 무려 11% 하락했습니다. 이렇게 매년 줄어드는 소매 판매로 미국에서는 매년 수백 개의 소매점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Fed) 의장은 2014년 10월 29일 미국 외교협회(CFR) 강연에서 연준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은 실물경제를 살리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향후 기준금리 인상 압력은 연준 자체로부터가 아니라 시장으로부터 올 것"이라며 "시장에서 실질 금리 상승 수요가 본격화될 때 연준이 진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경기침체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2014년 11월 6일 새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해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으며 같은 날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긴축반대 시위가 있었습니다.
2014년 12월 9일에는 조기 대선 변수가 돌출하면서 그리스 주식시장이 12.8%나 급락하면서 유럽 주요국 주가를 일제히 끌어내렸습니다. 그리스 증권거래소의 아테네 종합지수는 1987년 이후 하루 하락 폭으로는 27년 만에 최대치입니다. 앞으로 그리스 대선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그리스의 위기가 더 큰 문제로 유로존을 압박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일본은 지난 약 2년간의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일본 GDP가 최근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며 경기가 침체하고 있습니다. 이에 아베 총리는 2014년 10월 31일 양적 완화를 확대하기로 했으며, 이어서 2015년 10월에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을 2017년 4월로 연기했습니다. 이에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2014년 12월 초에 일본 국가 신용등급을 떨어뜨렸고 또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도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피치는 일본의 국내총생산(GDP)대비 부채비율이 2008년 말 184%에서 2014년 말 241%로 급등할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이 소비세율 인상 시기를 1년 반 연기하면서 재정 건전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졌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의 경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침체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습니다. 현재 이런 경기침체는 특정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달러 붕괴의 위험성
유럽과 일본의 경제 위기가 부각되며 상대적으로 미국의 달러와 미국 국채가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 장기적으로 봤을 때 달러와 미국 국채의 전망은 어둡습니다. 지금까지 결제와 외화 비축용으로 달러와 미국 국채를 적극적으로 보유해 온 중국을 필두로 하는 신흥 시장 국가들이, 달러와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감소하는 흐름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미국 국채 보유국으로, 4조 달러의 외환 보유고의 대부분을 미국 국채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국 등의 신흥 시장이 미국 국채를 사주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그동안 재정적자를 늘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2014년 10월, 거액의 외환 보유고를 미국 국채 투자에 쓰지 않고, 중국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투자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개발 도상국의 인프라 투자로 돌리기로 전환하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의 브릭스(BRICs) 국가들 주도로 국가 간 무역거래에서 달러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화폐로 거래하는 움직임이 계속 확대되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2014년 5월 4천억 달러에 이르는 천연가스 계약을 체결하며 그들의 교역에서 달러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러시아의 가스프롬과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은 2014년 5월 21일 상하이에서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규모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국가 간 무역거래에서 달러가 사용되지 않으면, 필요 없게 된 달러는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며, 이런 흐름이 가속화되어 그동안 전 세계로 흩어졌던 달러가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될 때 달러의 가치는 하락하게 됩니다.
좀 더 단기적인 위험으로는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국제 유가 약세입니다. 국제 유가 하락이 금융계 위기로 발전할 요인이 세 가지나 있습니다. 첫 번째, 영국과 북미를 중심으로 글로벌 은행권이 석유나 가스 관련 업체에 제공한 여신이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데 관련업계가 파산할 경우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두 번째, 미국의 셰일 석유 가스 산업이 발행한 정크 본드가 파탄해 미국 금융계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세 번째 원자재 파생 시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6곳의 망해서는 안 되는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원자재 파생에서 약 3.9조 달러의 파생 계약들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금액의 상당액은 석유 파생 상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2008년 당시 월가 은행들은 폭락하는 주택 가격들이 모기지 담보 증권의 파열을 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고 그들 모델은 이번에도 6개월이 안 되어 석유 가격이 40달러 이상 폭락하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가격이 이 수준에 머물거나 더 내려가면 일부는 막대한 손실을 안아야 할 것입니다. 일부에서는 국제 유가 하락으로 인한 금융시스템 타격이 2008년 금융위기 당시보다 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석유, 가스 업계의 파산이 시작되어 금융 위기가 시작되면, 미 연준은 작년(2014년) 10월에 그만둔 양적완화(QE)를 재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연준은 반드시 양적완화(QE)를 재개한다고 말하는 미 분석가는 많이 있습니다.
제임스 리카즈의 경고
금융 전문가이며 2011년 베스트셀러 커런시워의 저자로 유명한 제임스 리카즈는 수년 내에 달러의 붕괴와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있을 것을 경고해왔습니다. 그는 2013년 7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연준(Fed)이 올가을 양적완화 축소를 단행한다면 달러화 강세와 디플레이션으로 결국 내년 초 양적완화가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리카즈는 “Fed가 양적완화를 축소한다 하더라도 결국엔 현재처럼 돈을 푸는 방식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며 “양적완화를 섣불리 줄이기엔 향후 미국 경제 상황이 너무나 안 좋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리카즈는 2014년 4월 돈의 사망(The Death of Money)이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국제 통화 시스템의 붕괴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2014년 4월 USA Watchdog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책 저술이 끝난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책에 쓴 많은 일이 예상보다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2015년 혹은 2016년쯤 일어날 것으로 내가 보았던 일들이 여러 방식으로 지금 일어나고 있다. 예상보다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들 일부 이런 재앙적 결과들은 내가 책에서 썼던 것보다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벼랑 위에 있다. 우리가 벼랑 위에 있을 때 바로 떨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힘들이 작용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떨어지게 된다. 고객들과 투자자들에게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실수하여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 아니다. 실수는 이미 일어났다. 시스템에서 불안정은 이미 있다. ... 투자자들이 이해해야 하는 것은 촉매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불안정은 이미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오는 것이다."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스템은 무너질 것이다. 그것은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난다." 현 경제 시스템의 붕괴는 시기의 문제일 뿐 반드시 일어난다고 제임스 리카즈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짐승의 표 환난을 앞둔 우리의 준비
현 경제 시스템의 붕괴는 신세계질서의 도래와 함께 짐승의 표 환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짐승의 표의 환난을 통과하는 한 무리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2~3)
지금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환란을 지체하시며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치고 있는 때입니다. 죄를 버리고 마음속에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 4:8)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가까이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마음을 조용하고 진지하게 살핌으로, 자신의 모든 약점을 예수님께 알리면서 어린이처럼 진실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결국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인을 받고 다가오는 짐승의 표 환난에 준비된 자로 서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진리 탐구_ “야곱”과 “이스라엘”이 주는 이름의 교훈
“영적인 이스라엘”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보기 전에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서 이스라엘은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하는데,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 속에서 “이스라엘” 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특별한 사람들에게, 직접 이름을 바꾸어 주시는 장면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에는 저마다의 독특하고 하나님께서 교훈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원래 주인은 야곱임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아버지 이삭이 말했듯이 야곱의 이름의 원뜻은 “간교하며 속이는 자”였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에서의 축복까지 가로챈 자였습니다.
“이삭이 가로되 네 아우가 간교하게 와서 네 복을 빼앗았도다” (창 27:35).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가로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창 27:36).
그런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환도뼈가 다쳐서 어긋나는 고통까지 겪으며,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에서 이기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냅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창 32:28,29).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겨루어 이긴 자”의 뜻으로, 단지 하나님과의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을 해서 얻은 이름이 아니라, 그 내면에는 형 에서의 죽임의 위협과 외삼촌 라반의 불평등한 대우 등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이겨낸 자이며,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밤새도록 울며 하나님께 간구해서 얻은 이름입니다.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호 12:3,4).
이른바 “야곱의 환란”이라고 하는 그 시험을 이겨내었기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축복하여 주시기에 합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창 35:10,11).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형제마저 속이던 야곱의 이름이, 하나님의 시험을 이겨내면서 축복받은 영광의 이름 “이스라엘”로 하나님께서 바꿔주시며 야곱은 이제 이스라엘로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시험을 이겨낸 자”라는 의미가 있음을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뀌며 자기를 죽이러 온 두려웠던 형 에서와 화평을 맺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우리들은 세상에서 죄를 지으며 간교하게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야곱 같은 사람들이었으나, 세상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주님께서 평안으로 바꾸어 주셨으니 우리 이름 또한 이스라엘로 부른다 해도 옳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사 41:13,14).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시험을 이겨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사도 요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과거에는 세상에 속하여 비열하고 어리석고 악했던 그들이 예수님 안에서 세상을 이기며 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마지막 역사를 기록한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서 이기는 자들에 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시며, 또한 성도들이 말세의 고통받는 때에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 이겨라.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 여러분은 지금 세상에 대해 어떠한 마음으로 살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실 만큼 마음에 불편함이 없으십니까? 세상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 아래 끝나는 시점에 하나님께서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 이기는 자는 내가 진정 너의 하나님이 되고 내 아들이 되리라!”
“이스라엘”이라는 진정한 의미는 세상을 이기는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이름이며 최상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말씀의 증거를 통해, 세상을 이긴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로 이름을 부르셔도 합당하며,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야곱”의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살고 있습니까?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 (렘 30:7).
기독교회사_ 신성로마제국의 몰락과 왈덴스인들의 공헌
종교개혁이 서유럽에 있는 나라들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되돌려 주었다. 또한 프랑스의 혁명군은 유럽 대륙의 나라들을 옛 로마 카톨릭 제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했다. 인류에게는 완전한 자유와 함께 학문과 과학을 연구할 수 있는 전례 없이 좋은 환경이 주어졌다. 이제 그들은 성취된 예언의 빛 가운데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믿고 그 뜻대로 살고 있음을 온 우주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았다. 미국은 헌법에 완전한 종교자유를 명시한 첫 번째 국가였다. 대영제국과 다른 몇몇 국가들도 그들의 헌법에 종교에 대한 관용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국교회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그 국민에게 법적인 권리로서의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지는 않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으로 상당한 충격을 받은 프랑스에서 평민들이 봉기하여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전제적 통치를 붕괴시켰다. 그들은 또한 미국의 권리장전을 본떠서 프랑스뿐 아니라 혁명군이 가는 모든 지역에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다. 이 혁명은 프랑스군이 로마에 입성해서 교황을 감옥에 가두고, 추기경단을 해산시키고, 로마 시내에 있는 일곱 언덕 중에 가장 유명한 카피톨린 힐에서 종교 자유를 선포한 1789년 5월에 이르러서 그 절정에 달하였다. 바로 이때가 역사에서 1260년의 기간이 끝나는 때였다.
옛 제도를 무너뜨리는 일이 계속되었다. 전쟁의 천재인 나폴레옹은 스스로 프랑스 혁명군의 우두머리가 되어 샤를마뉴와 교황 사이에 맺어진 불법적 연합에 의해 세워진 모든 것을 유럽 대륙 전반에 걸쳐서 다 제거하였다. 일반적으로 역사학자들은 1804년에 나폴레옹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숨이 끊어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1801년에 프랑스를 위해서 교황과 화친조약을 맺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전승 장군은 교황권에게 이전 왕들에 의해 부여되었던 것과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거절했다. 그는 천주교회를 단지 프랑스 사람의 다수가 믿는 종교로만 인정했다. 비록 나폴레옹이 교황권을 여러 다른 면으로도 인정하긴 했어도 이 모든 것은 외교를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시도였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카톨릭의 무시무시한 폭정에 시달리던 서방 세계를 그 폭정에서 해방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누구에게 그 찬양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그 찬양은 그 어떤 정복자의 칼이 아닌 여러 세기에 걸쳐서 자유와 진리와 성경을 위하여 고난과 피 흘림과 죽임을 당한 광야교회에게 돌려져야만 한다. 이 순교자들의 모본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땅의 법률에 의해 자유가 보장될 때까지 폭정에 맞서서 항거할 수 있는 정신을 심어주었다.
이처럼 콜룸바누스와 그의 후계자들의 정신과 힘이 자유의 정신과 함께 섞여서 켈트족과 고트족과 롬바르드족의 후손들 속에 그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 정신과 힘은 또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한 왕들의 마음속에서 점차로 강해져 갔다. 하지만 암흑시대의 어두운 그늘들을 모두 걷어내고 성서적 기독교를 회복하는 일에 왈덴스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는 유럽의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또한, 근동과 인도와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광야교회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Healing Story_무와 배추
추운 겨울철, 콩콩 얼어있는 딱딱한 강엿에 무채를 넣어두면 다음 날에 신기하게도 엿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콜록거리는 손녀에게 감기약 대신 엿물을 한 수저 가득 떠먹여 주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계절마다 날씨에 적합한 옷을 입듯이 음식도 제철에 먹기 알맞은 것이 있습니다. 마트에서 사시사철 모든 과일을 맛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맛과 영양을 생각해 볼 때에 창조주께서 마련해 주신 제철 음식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번 호에는 겨울철 감기에 좋다는 무와 그 단짝인 배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
* 성분 : 일반적으로 길이 20cm, 무게 800~900g인 무에는 수분 약 94%, 단백질 1.1%, 지방 0.1%, 탄수화물 4.2%, 섬유질 0.7%가 들어 있습니다.
* 암 예방 : 무의 활성 물질은 세포를 자극하면서 인터페론을 만들어내 식도암, 위암, 자궁경부암 등을 억제하며 발암물질을 해독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 소화 촉진 : 무의 뿌리에는 각종 소화효소가 많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디아스타아제(아밀라아제)인데. 탄수화물 분해 효소로 소화에 도움을 주고 복통을 완화하기도 합니다.
단백질 분해 효소인 에스테라아제, 체내에서 생기는 해로운 과산화수소를 물과 산소로 분해하는 카탈라아제 등 생리적으로 중요한 작용을 하는 효소가 매우 많이 있습니다.
* 칼슘 풍부 : 무말랭이는 말리는 과정에서 햇빛을 받으면서 칼슘이 더 많아집니다. 폐경기 여성과 골다공증, 퇴행성 관절염에 매우 좋습니다.
* 정장 작용 : 리그닌이라는 식물성 섬유소는 변비를 개선하며, 장내의 노폐물을 청소하는 역할을 합니다.
* 대장염 완화 : 한국식품연구원 성미정 박사팀은 무, 배추, 브로콜리 등 배추과 채소에 함유된 '알릴이소티오시아네이트' 물질이 대장염증을 완화하는데 효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 항균, 살충 작용 : 시니그린이라는 특유의 향과 매운맛을 내는 성분으로 물에 쉽게 녹고 항균, 살충작용 및 항암효과가 높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소싸이오사이아네이트라는 성분은 내성을 가진
균주를 죽이는 항균효과가 있어서 기관지염 자체가 세균성일 경우에는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 비타민 공급원 : 비타민C 함량이 20~25mg(성인 남녀 하루 권장 섭취량 100mg)이나 차지하고 있어서 추운 겨울 비타민 공급원이 되며 감기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 해열과 감기 : 몸의 열을 낮추고 기침을 줄여주는 등 기관지와 호흡기 이상에 좋은 효과가 있기에 무즙을 내어 꿀이나 물엿에 섞어 마시도록 하면 도움이 됩니다.
무는 생즙으로 먹을 때 가래를 삭이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 고혈압과 동맥경화 예방 : 사포닌 성분이 있어서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여줍니다. 생무즙은 혈압을 점차 낮추는 작용을 하기에 고혈압과 동맥경화 환자들에게 꿀을 탄 생무즙은 훌륭한 건강 식품이 됩니다.
* 겨울 반찬 : 무 줄기인 무청은 잘 말려두어 한겨울에 나물이나 국으로 먹을 수 있어 좋습니다. 무는 될수록 다른 음식과 함께 먹지 말아야 무에 들어 있는 유효성분이 희석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과일 대신 생무를 먹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 약용으로 먹는 무 요리
(1) 무채 끓인 물 : 양념 없이 무채 끓인 물만 마셔도 기침이 멈추고 쓰린 속도 편해진다고 합니다. 무를 채썰어 냄비에 넣고 무채가 살짝 잠길 정도로 물을 넣어 푹 끓입니다. 끓으면 5분 정도 식혀서 무의 향이 스민 물을 복용합니다.
(2) 무말랭이 차 : 무말랭이 차를 만들어 놓고 수시로 끓여 마시면 칼슘이 부족하기 쉬운 폐경기 여성들의 골다공증 예방과 노화방지에도 좋습니다. 햇빛에 잘 말린 무말랭이를 기름을 바르지 않은 팬에 볶습니다. 볶은 무말랭이를 처음에는 세척하는 의미로 뜨거운 물을 부어 버리고, 두 번째는 뜨거운 물을 붓고 5분 정도 우려내어 마시면 됩니다. 편도가 붓고 열이 나는 경우에는 생강을 첨가하여 드실 것을 추천합니다.
(3) 무꿀절임 : 무에 함유된 소화효소가 활발히 반응하는 가장 좋은 온도는 25~40도이므로 소화제로 사용하려면 끓이는 방법보다는 따뜻하게 숙성시킨 무꿀절임이 좋습니다. 강판에 갈아낸 무즙과 꿀을 1:1로 섞어서 하루 정도 숙성시킨 후 먹습니다.
2. 배추
각종 질병으로부터 인체를 지켜주는 천연 방어 물질이 풍부하여 면역력을 높여주는 음식을 슈퍼푸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슈퍼푸드 목록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케일 같은 배추과 채소라고 합니다.
* 풍부한 영양 : 수분 90~96%, 탄수화물 3%, 단백질 0.9%, 지질 0.1% 가 있으며 섬유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진대사에 도움이 되는 B1, B가 풍부하며 비타민 A, 비타민 C와 무기질이 많은데, 특히 항산화 성분인 비타민 C는 사과의 7배, 칼슘은 멜론의 5배를 넘습니다.
* 면역력 증강 : 배추에 농축된 비타민 C는 열을 가하거나 소금에 절여도 잘 파괴되지 않아서 감기 예방과 면역력 증강에 좋습니다. 또한 비타민 A는 줄기 부분보다 잎 부분에 많이 있는데, 특히 비타민 A 전구체인 베타카로틴이 많아서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배추는 시스틴이라는 아미노산을 함유해 국물 요리에 넣으면 구수할 뿐 아니라 수용성 피토케미컬 성분이 풍부해 국물에 영양소가 듬뿍 녹아들어 있는 셈이니 올겨울 배춧국을 자주 해 드시기를 권합니다.
* 항암 작용 : 배추과 채소를 많이 먹고 나서 방귀를 뀌면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인돌이라는 황화합물 때문입니다. 인돌은 강력한 항산화, 항암 물질이며 특히 배추의 겉잎보다 노란 속 잎에 항암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니그린은 배추의 향과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데, 시니그린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글루코시놀레이트가 방광암, 유방암, 대장암 등을 예방합니다.
* 정장 작용 : 수분이 95%라 열량이 낮으면서 소화흡수를 돕는 부드러운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소화가 잘되고 대변을 부드럽게 보게 하여 변비 예방 및 장을 깨끗하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 기타 : 배추에는 혈액의 나쁜 콜레스테롤을 저하시키는 사이트스테롤이라는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일반적인 운동으로 연소시킬 수 없는 체내의 나쁜 지방을 없애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배추의 칼슘은 산성을 중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칼륨은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너무도 흔한 것이라 귀한 줄 모르고 만만히 대한 음식이 배추와 무요리였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 주변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내일 아침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춧국에 무조림을 가족들을 위해 준비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신앙 칼럼_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선행을 보게 하고 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 16).
크리스천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때나 혹은 스포츠 스타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는 말로 감격을 표현하는 것을 봅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빛나는 영예를 안을 때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는 자리에 이르렀거나 큰일을 성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영광을 받는다면 그런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인가?” 일리 있는 지적 같습니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그분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적인 높아짐을 버리고 극도의 겸비와 겸손의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뜻이 이루어질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은 하나님께 영광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서 변화된 삶을 살며 선행을 하는 것을 보고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식이 잘하면 부모에게 영광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자신의 목표와 뜻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의 인도 하심에 감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것을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면 사람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실수를 하게 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때와 영광드려야 할 때를 구별하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