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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복종의 의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가. 소크라테스의 죽음: “악법도 법이다”
《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재판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설사 법원이 철학을 포기할 것을 조건으로 석방하는 판결을 내린다고 할지라도 이를 거부할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릇된 또는 부정의한 일에 관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며 복종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주장했다.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가 죽으면 귀중한 친구가 죽는 것이며, 귀중한 친구를 구하지 못하면 자신은 양심의 가책에 빠질 것이고, 다른 이들도 자기를 비웃을 것이다. 게다가 소크라테스가 도망간다고 해서 친구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도 아니므로, 부당한 판결에 따라 죽기보다 망명을 해서 가정도 지키고 철학적 활동도 계속 할 수 있는 편이 낫다.’고 탈출을 권유할 때, 소크라테스는 “도주한다는 것이 자신의 이익, 편리, 자식의 교육, 철학적 사상의 전파 등의 실용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과연 그 자체로 옳은 일인가?”라고 묻는다. “우리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잘못된, 부정의한 행위를 했을 때 그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결코 잘못된 행위로 되갚거나 그에게 악행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데 있다고 하며 아래와 같은 법복종 근거를 든다.
① 피해논거(injury argument): 소크라테스가 도망감으로써 친구와 가족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국가와 법체계를 파괴하게 되는 나쁜 결과를 낳는다.
② 동의논거(agreement argument): 정당한 합의는 지켜야 하는 것이라면, 국가의 동의 없이 도망가는 것은 합의를 파기하는 부정의한 행위 아닌가? 아테네 시민이라면 아테네 국가의 법과 행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언제라도 가족을 데리고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마음에 드는 다른 나라로 이주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아테네의 통치방식과 재판집행을 경험하면서 오랫동안 아테네에 머물러 있었다면 아테네의 국가와 법의 명령에 복종하기로 동의한 셈이다.
③ 충성논거(piety argument): 국가가 소크라테스와 그의 조상들의 출생, 양육, 교육을 돌보아주었으며, 국가는 부모나 조상보다 훨씬 더 고귀하고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 전쟁에서건 법정에서건 ‘어디서나’ 시민은 국가의 명령이 정의에 반한다는 중요한 근거제시를 통해 국가를 설득할 수 없다면 국가의 명령과 법에 복종해야 한다.
④ 언행일치 논거(self-consistence argument): ‘불법적’으로 도망가서 다른 나라에서 소크라테스가 평생 가르쳐온 “덕과 정의와 법이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다”라는 사상을 양심의 가책 없이, 내면의 양심과 충돌 없이 계속 가르칠 수 있겠는가?
위에서 든 주장들을 다음과 같이 구성하면 소크라테스는 모순된 입장을 가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① ≪변론≫주장1 : 국가가 나에게 철학의 포기를 명령한다면 결코 복종할 수 없다 : 보다 높은 신의 명령, 또는 정의의 이름으로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자연법적 입장).
② ≪크리톤≫주장2 : 모든 시민은 국가의 명령과 법규, 판결에 복종해야 한다 : 법이 요구하는 바는, 설혹 그 내용이 부당할지라도, 반드시 복종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법실증주의적 입장).
나. 소크라테스: 정당한 법복종과 정당한 법불복종의 기준
1) 저차원의 불복종과 고차원의 불복종
크리톤의 법의식은 개인의 이익, 평판, 우정 등에 비추어볼 때 감옥에서 도망가도 무방하다는 내용으로 집약된다. 이는 “법을 자신의 편리와 정실관계에 따라 어길 수도 있다”는 법의식인데, 이를 우리는 ‘저차원의 법불복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국가의 법률과 명령을 보다 높은 신의 명령, 도덕원리, 정의 이념에 비추어 심사숙고하여 판단한 후 내면의 확신에 따라 복종을 거부할 때를 ‘고차원의 법불복종’이라고 부를 수 있다.
만일 누구나 다 ‘저차원의 법 불복종’ 의식을 가지고 법을 어긴다면 국가와 법체계는 혼란에 빠지고, 아테네의 민주제는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법 복종행위를 통해 크리톤(암묵적으로는 아테네 시민들)을 저차원의 법 불복종 의식 상태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법의 지배’ 원리의 소중함을 가르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법의 지배’ 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실천을 거쳐야만 비로소 ‘고차원의 법불복종 의식’의 단계에 들어설 수 있음을 깨우치려 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자.
① 저차원의 법의식 : 개인의 이익, 평판, 우정 등에 비추어서 볼 때 감옥에서 도망가도, 법을 어겨도 무방하다는 내용으로 집약할 수 있다.
② 고차원의 법의식 : 보다 높은 신의 명령, 도덕원리, 정의이념에 비추어 심사숙고해 판단한 후 내면의 확신에 따라 복종을 거부할 때를 ‘고차원의 무법의식'(a higher lawlessness)이라고 부를 수 있다.
③ 법의 지배/법복종의 의무 : 소크라테스는 시민이라면 자신이 속한 정치적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법을 지키는 의식(법치의 의식)의 함양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어쩌면 소크라테스는 ‘공공선을 침해하고 타인에게 큰 손해를 입히는 부정의를 저지를 것을 명령하는 법’에 대해서는 불복종해야 하지만, ‘자신 개인에게만 부정의한 법’에 대해서는 그 피해가 자신에게 올지라도 이를 기꺼이 감수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1) 시민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부정의한 행위를 할 것을 명령하는 법과 (2) 공공선을 침해하는 부정의한 행위를 할 것을 명령하는 법에 대해서는 불복종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다.
2) 소크라테스의 정당한 불복종의 기준
정당한 법 불복종, 즉 시민불복종 행위(civil disobedience)는 정부가 국가의 헌법을 이루는 중요한 원리들과 시민들의 자유를 체계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중대하게 침해할 경우 시민들이 그 부정의 항의하기 위하여 그 정부가 제정하는 부정의한 법률들을 공개적으로 위반하는 행동들을 일컫는다. 어떤 법률 불복종 행위가 시민 불복종의 행위에 해당하려면 그 불복종 행위의 의미가 명백하고, 공공선을 회복하려는 진지함이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이때 시민 불복종 행위는 국가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부정의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는다.
≪변명≫에서 철학포기 명령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거부는 그 거부행위가 공개적이며, 타당한 도덕적 최고원리에 비추어 진지하고 설득력이 있으며, 시민의 덕성을 함양함으로써 국가를 유지케 하고 번영케 한다는 공공선의 목적에 합당하므로 시민불복종에 해당될 것이다. 반면, ≪크리톤≫에서 크리톤이 권했던 도망행위라는 법불복종은 공개적이지 않고 은밀하며, 그 의미가 공공선의 회복에 비추어 볼 때 명백하지 않으며 설득력이 없으므로, 게다가 도망의 원리를 모든 사람이 취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국가 공동체의 붕괴로 나타나므로 시민불복종의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나타난 법불복종의 유형과 의미는 다음 표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법불복복종의 유형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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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차원의 법 불복종 |
고차원의 법 불복종 |
법위반/준수동기 |
개인적 이익, 가족상황, 야심, 정실관계 |
헌법의 기초와 그 해석의 지침이 되는 정의이념․공공선 |
행동의 양태 |
은밀한 위반, 타인의 법준수 행위를 이요하거나 편승하여 자기이이만 챙기는 ‘무임승차 행위’ |
타당한 근거에 선 공개적 비판, 민주사회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국가 및 법률들의 부정의에 항거하는 공개항의로서의 법위반 |
법률위반시 발생한 결과에 대한 반응 |
자신에게 돌아올 법불복종의 결과로 자신이 입을 손해를 회피하거나, 모면․최소화하려 함 |
공개적 법불복종의 결과로 인한 손해를 기꺼이 감수 |
다. 법불복종행위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1) 법복종의 의무를 낳는 근거
① 처벌회피나 자기이익보존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법복종이 가져다주는 편리함이나 유익함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② 약속(동의): 약속은 지켜야한다.
③ 공정성: 상호이익과 상호제한
내가 국가나 사회적 협동으로부터 남에게서 혜택을 받았으면 상호주의 원리에 의하여 나도 국가에게나 남에게 협력하여야 하고, 그 범위 안에서 내 마음대로 할 자유를 제한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
④ 공공복리
⑤ 법적안정성(질서․평화): 협동
⑥ 시민의 덕에서 비롯되는 의무
시민적 덕(civic virtue)이란 ‘사적 이익뿐만 아니라 공공적 이익도 고려하면서 양자 사이의 형량시 공공선을 우선하는 태도’(disposition to further public over private good in action and deliberation)를 말한다.
2) 법불복종의 일반원칙: 시민불복종은 어떤 경우에 정당한가.
법불복종의 정당성은 구체적법에 대한 저항이 낳을 공공적 이익과 그 저항이 지불해야 할 비용(손해: 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이기심에 근거한 법불복종의 만연 등) 사이의 비교형량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법의 부정함이 너무도 ‘커서 감내할 수 없는 경우’에, ‘진지한 양심에 비추어서’, ‘비폭력적으로’, ‘공공적으로’ 법에 불보종하는 경우에 법불복종이 정당하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다음 사상가들의 견해를 들어 살펴보자.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①사람은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② 부정의한 것을 지지한다면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③ 부정의한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는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국가의 불법을 지지하는 것이다. ④ 국가가 부정의한 정책이나 법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시민은 저항을 하여야 한다. ⑤ 저항의 방식은 ‘정중하고’, ‘비폭력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 마틴 루터 킹 목사≫
① 법에 부정의가 존재하는 가를 결정 : 인간의 인격을 심하게 훼손하는 경우, 한 집단에는 적용하면서 다른 집단에는 적용하지 않는 경우, 진정한 대표기관에 의해 제정되지 않은 경우, 법 자체는 정당하나 그적용이 자의적이어서 공평하지 않은 경우가 법이 부정의한 기준이다.
② 협상: 다각도로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③ 자기성찰: 자기양심에 비추어 문제의 법이 부정의한가를 판단해야 한다.
④ 비폭력적인 직접적 행동: 비폭력적으로 불복종하면서도 투옥될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 존 롤즈 ≫
시민불복종을 ‘상당한 정도로 부정의한 법이나 정책을 개선할 것을 목적으로 공공적으로, 비폭력적으로 법을 위반하는 양심적인 정치적 행위’로 풀이한 후 정당성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① 시민의 자연적 의무: 사회제도의 정의로움과 능률성을 진작해야 할 의무
② 법의 부정의함이 일정한 정도를 넘어야 할 것: 그 정도를 넘기 전까지는 복종해야 한다.
(ㄱ) 법이나 정책이 ‘중대하게 부정의하며’, ‘상당한 기간동안 지속’돼 온 경우: 구조적 ․ 지속적으로 부정의한 법에 대한 저항이므로 정당하다.
(ㄴ) ‘실질적이고 분명한 정의이념을 위반한 경우’에 한정: 사소하고 불분명한 우반은 시민불복종에 대당되지 않음.
(ㄷ) 만일 이런 비슷한 종류의 부정의함에 대하여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시민들 역시 불복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③ ‘합리적으로 행사’돼야 하고, 불복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이성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3) 악법의 부정의 정도와 법불복종의 정당성
①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
아퀴나스에 따르면, 정치적 공동체의 지배자(주권자)가 제정한 규범이라고 해서 모두 법으로서의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며, 입법자가 제정한 규범이 법으로 인정되려면 다음의 요건들을 갖추어야만 한다.
(ㄱ) 이성의 명령일 것
(ㄴ) 공공복리를 지향할 것
(ㄷ) 통치자에 의해서 제정 ․ 공포될 것
(ㄹ) 정치적 공동체 전체에 책임을 지며 관할권을 가지는 통치자일 것
(ㅁ) 어떤 행위를 하게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할 것
(ㅂ) 강제력을 가질 것
(ㅅ) 준수될 것을 의도할 것
② 라드브루흐의 공식
독일에서 나치체제를 겪은 후 라드브루흐라는 법 철학자가 제시했던 ‘극도로 부정의한 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공식을 적용해 본다면 법복종과 법불복종 사이의 관계에 대해 좀 더 나은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정법과 정의가 충돌하는 경우 보통의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 이념이 정의 이념보다 우위에 선다. 그러나 실정법이 정의의 이념을 극도로 훼손하는 경우에는 법적 안정성의 이념보다는 정의의 이념이 우선하여 그 실정법은 법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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