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함께하는 서각반 커뮤니티에서 작품전시를 하게 되어 첫 작품이라 모두 기대감에 신경 쓰고 작업했다. 며칠 전 모 기관에 모월 모일까지 제출하라고 해서 대부분 회원들이 쉬지도 못하고 밤새 작업해서 16작품을 지정날짜에 제출했다. 그 관계자가 모든 작품 전시 할 수 있다고 해놓고, 몇 시간 뒤에 “4작품만 전시가 가능하다”라고 해서 몹시 곤혹스럽고 화가 난적이 있다.
몇몇 회원들이 “전시 하지말자”, “협의하자” 등의 의견도 있어서 다시 모 기관으로 찾아가서 전후 사정을 듣고 협의 한 적이 있다. 이렇듯 사회생활을 하다가 보면 뜻대로 안되고 곤란을 겪을 때가 참 많다. 그런데 이때 ‘곤욕스럽다’해야 맞는 지 ‘곤혹스럽다’라고 해야 맞는지 정말 헷갈린다. ‘곤욕’과 ‘곤혹’은 발음도 비슷하고 의미도 어느 정도 겹치는 듯도 해 헷갈리기 쉬운 말이다.
‘곤욕(困辱)’은 困은 괴로울 곤, 辱은 욕되게 할 욕자이다. 말 그대로 ‘괴로울 정도로 심한 모욕’으로 그로 인한 참기 힘든 일을 나타낸다. 비슷한 말로는 고욕(苦辱 : 견디기 힘든 불명예스러움), 모욕(侮辱 : 깔보고 욕되게 함)이란 말이 있다. ‘곤욕을 치르다’가 대표적으로 쓰이고 ‘곤욕을 겪다,곤욕을 당하다’ 식으로도 많이 쓰인다.
하지만 ‘-하다/-스럽다’ 등을 붙여 동사나 형용사로 쓰지는 않는다. ‘곤욕하다, 곤욕스럽다’ 같은 말은 없다는 뜻이다. 가끔 일상에서 ‘욕봤다’란 말도 자주 쓰이는데, 이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다. 몹시 고생스러운 일을 겪다’란 뜻이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어릴 때나 지금이나 방언으로 많이 듣고 쓰는 ‘욕봤데이’라고 하면 결론적으로 ‘수고했다, 애썼다’라고 하는 말이다.
‘곤혹(困惑)’은 困은 괴로울 곤, 惑은 미혹할 혹자이다. ‘괴롭고 곤란한 일을 당해 어찌할 바를 모름’을 나타낸다. 당혹(當惑 : 어떤 일을 당해 정신이 쏙 빠진 것)과 비슷한 말이다. ‘곤혹을 느끼다’처럼 쓰이거나, ‘예기치 못한 질문을 받아 곤혹스러웠다’처럼 쓰인다. 하지만 대개는 ‘곤혹했다’보다는 ‘곤혹스럽다’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반대로 이 말은 ‘곤혹을 치르다/겪다/당하다’ 식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직장인들은 주위 사람들이 언제 승진하느냐고 물어 올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한다.
혹(惑)이라는 한자는 재미있는 의미가 있다. 미혹할 惑자로 ‘정신이 쏙 빠져 버린 것’을 말하는데, 흔히 얼이 빠졌다고 표현한다. 惑자는 或(혹시 혹) 자와 心(마음 심)이 결합한 글자이다. 或자는 창을 들고 성을 지키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혹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혹시라도 적이 쳐들어올까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心자가 더해져서 惑 자는 성을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며 수상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이것이 뒤에 ‘의심하다, 미혹하다’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곤욕’과 ‘곤혹’이라는 말은 발음도 비슷한 데다 뜻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아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어찌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곤혹스러운 상태가 심해지면 그것이 곧 곤욕을 치르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곤욕과 곤혹을 구별해 쓰는 능력이다.
우선 의미 기준으로 보면 곤욕은 ‘심한 모욕’이고, 곤혹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이다. 두 말의 쓰임새 차이는 ‘곤욕을 치르다’와 ‘곤혹스럽다’로 각각 구별해 알아두면 편하다. 우리 중년들이 살아가면서 각자의 일상적 삶에서 ‘곤욕을 치르거나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첫댓글 그날, 곤혹스러웠던 1인 ㅠㅜ
욕봤심더~~
그날 전화 통화후 얼굴 색깔이 영~~ 침울,,ㅎㅎ
'곤욕을 치르거나 곤혹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특히 곤욕!!은 겪지 않기를!
살다보면 '곤욕을 치르거나 곤혹스러운 일'이 없을수야 있으랴 만..
슬기롭게 대처하시길 원합니다.
억수로 욕봤심미더ᆢ
네 욕 봤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