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시의 검단산을 다녀와서!
2017년1월25일엔 인터넷 카페 "5060아름다운세상" 산행동호회에서
물안개님이 대장(隊長)을 맡으신 수요산행지로 정한 경기도 하남시에
소재한 검단산행을 하기위해 오전 08:30에 집에서 출발 만남의 장소인
천호역 6번 출에 안에 도착한 시간이 09:35 하산 편주 두분을 비롯한
안내를 맡으신 물안개 유근 뫼너머 선배님들과 해진 사계 늘행복 등 아홉
분의 님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가다 중간에서 다른 버스로 환승 산행들머리가
있는 수도사업소인가 하는 곳에 도착하여 검단산 정상을 향해 오르는데
눈이 많이 쌓였고 시계(示界) 밝지 않으나 바람이 불지않고 하늘이 맑아서
햇살이 두터우니 산행하기가 참 좋았습니다. 정상에 오르니 하남시 전경
이 시야(視野)에 펼쳐진듯 했고 시인 묵객들이 운길산에 올라 시를 읊으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나 드리마 촬영지로 각광(刻光)받는 곳이여서 관계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 조선시대에는 사대(四大) 나루터였다던 두물머리인
양수리(兩水里) 강원도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북한강 남한강 수도서울을
관통(貫通)하는 한강을 이루고 경기도 용인시 호동 용해곡 상봉동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모현면 · 오포읍 · 경안동 일대를 지나 북쪽으로
흘러 남종면 분원리(分院里)에서 한강으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지명은
경안면에서 유래한 팔당호 경안천과 합류하여 흐르는 두물머리 일대의
강상(江上)엔 결빙으로 하얀 눈이 쌓여있어 코끝을 스치는 하얀 겨울의
찬 공기는 전율하는 예리(銳利)한 칼 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두물머리 옛 나루터엔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는데 신령한
기운 때문에 전국의 무속인들이 모여들어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고 주민
들은 말하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차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두물머리는
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큰 인깁니다. 물안개 낀 풍광을 담기 위해 새벽부터
카메라를 들고 찾습니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날도 사진 찍는 이들, 소풍 온
아이들, 그림을 그리는 노인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검단산 정상에서 하산하면서 빽빽히 들어찬 전나무 숲과 아름드리 우리의
소나무 숲이 울창한 숲 길을 경유하여 하산하니 해거름 때였습니다.
뒷풀이를 마치고 버스로 천호역으로 와서 5호선을 통해 군자역에서 환승
도봉산역에 두 번째 환승 양주역에 와서 버스로 집에 돌아오니 밤 9:45
피곤해서 만사를 제쳐놓고 숙면의 밤을 보내고는 정해진 일정의
날이여서 시내에 갔다와서 이제야 어제의 산행 게시물을 올립니다...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 [鈐丹山]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에 있는 산.
개설
검단산의 높이는 657m이고, 하남시 동쪽 한경변에
솟아 있으며, 한강을 사이에 두고 예봉산(禮峰山, 679m)과 마주하고 있다.
명칭 유래
검단산의 이름은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곳에 은거한데서 유래
하였다. 또한, 각처에서 한강을 이용하여 한양으로 들어오는 물산이
이곳에서 검사를 받고 단속을 하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자연환경
한남정맥의 한 지맥으로, 그 끄트머리에 솟아 있는 산이다. 산행은 보통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에서 출발하는데, 처음에는 가파른 경사를
지나다가 능선을 타면 능선 곳곳에 억새 풀밭이 보이고 사방의 전경이
시원하게 열린다. 정상은 넓은 공터로 사방이 확 트여 있고, 팔당호를
비롯하여,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류 지점인 양수리 일대, 예봉산, 운길산,
도봉산, 북한산 등의 수려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북한강 너머에는
예봉산과 운길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팔당댐,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용마산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가 지난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 광주목의 진산(鎭山)이었다. 본래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놓은 능터가 남아 있고,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묘도 있다.
현황
주로 많이 이용되는 산행코스는 산곡휴게소·밤골 입구·장군약수·용마봉·
큰고개·검단산 정상·호국사·창우동 코스와, 창우동·호국사·85봉·검단산
정상·554봉·샘터·산곡초등학교 코스가 있다. 교통편은 대중교통으로는
서울에서 하남시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고, 하남시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창우동행 시내버스를 이용하면(15분 소요)되고, 승용차로는 서울 88올
림픽도로를 이용하여 하남시 강변로를 지나 43번 국도를 타고 산곡초등학교
방면으로 진행하면 된다. 검단산은 대도시인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
교통편도 편리해 부담없이 찾아갈 수 있는 가족산행지로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대도시의 과밀화와 도시 팽창 및 인공적인 환경의 증가로, 도시 내
녹지공간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검단산과 같은 도시 근교의 산은 자연
공원으로서 풍경이 좋고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장소로, 도시민들의 휴식 및
여가 공간으로 활용되어 도시환경의 삶의 질을
높여 줄 수 있다는 데서 그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한국(韓國)의 산지(山誌)』(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07)
『한국의 산 여행』(유정열, 관동산악연구회, 2007)
한국의 산하(http://www.koreasanha.net/)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 강(漢 江)
손로원 작사
최병호 작곡
심연옥 노래
한 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
어제밤 이슬비에 목메여 우는구나
떠나간 그옛님은 언제나 오나
기나긴 한강줄기 끊임없이 흐른다
나루의 뱃사공 흥겨운 그 옛노래는
지금은 어데갔소 물새만 우는구나
외로운 나그네는 어데로 갔나
못잊을 한강수야 옛꿈실고 흐른다
가수이자 티이피스터였던 심연옥 이야기
1927년 서울에서 태어난 심연옥은
일제강점기 어린 시절부터 무용연구소에서
무용공부를 했지만 딸 가진 부모들이 공연무대에 서는
것을 말리던 시절이라 그 일을 접고 중앙 공업연구소 타이피스토로
활동했다. 아버지가 일찍이 세상을 뜨심에 어린 동생들을 기르며 생활
하기에 타이피스트로는 가정 생활이 어려웠고 또 완고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라 연예활동을 생각하고 있던 중 친구들과 극장공연을
관람하러 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가극의 주인공이 되고 가수로 활동
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 우리가 아는 심연옥이 탄생이다. 아래
사진은 2015년 11월 16일 가요무대 30년 특집프로그램
미국에서 온 편지에 보내온 동영상에서
올렸고 동영상은 아래 올렸다.
국도극장의 그 공연은 그 시대 대표적인
연예스타 김해송이 이끄는 KPK악단의 공연이고
그 공연무대에서 옛 가무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 주리를
보았다. 그는 주리와 함께 그 악단의 지휘자 김해송을 만나 어렵지
않게 KPK악단 단원이 되었다. 김해송은 1930년대부터 이름을 날린
가수 이난영의 남편이고 최초의 보컬그룹 김스터즈 아버지다.
뒷날 가요계의 거성 손석우는 김해송의 애 제자였고
신카나리아, 백설희, 김백희 등 당대 이름있던
연예인들이, 이 KPK악단의 단원이었다.
KPK악단의 단원이 된 심연옥은
김해송의 신임을 받았고 또 무용뿐만 아니라
노래도 불러줄 것을 권유받아 무용과 노래 겸비한
배우로 등단 중요한 가극의 주인공을 맡았다. 로미오와 주리엣,
카르멘 등 중요한 무대의 주연을 맡으면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
이 프로그램의 대담에서 김영우 아나운서는 그 시대에 심연옥을 아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6.25전쟁이 일어나 김해송은 납북
되고 KPK안단은 해체되었으며 심연옥은 피난길에 올라 대구
문화극장을 주 무대로 활동했다. 이때 만난이가
한강을 작사 작곡한 최병호였다.
그때 한강 노래를 방송국 전속가수 등
여러 가수들이 불러 빙송전파를 탔지만 최병호는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그때 최병호는 대구방송국 500W
출력을 10Kw로 올리는 출력증강의 책임을 맡았던 기사였다.
연예계에도 관심이 깊었던 최병호가 대구문화극장에서 실연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심연옥의 공연을 보았다. 그때 심연옥의 인기가 대단했고
이 한강을 부를 수 있는 가장 적격 가수라고 생각해서 서로의 얘기를
나누며 한강을 심연옥의 노래로 문화극장 무대에 올렸을 때 큰
호응을 받았다. 그로부터 한강은 심연옥의 노래로 굳어
졌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연결 해 놓았다.
심연옥이 한강을 부르던 무렵 또 한곡의
대 히트곡이 있었다. “아내의 노래”다. 이 노래는 원래
해방공간에서 "안해의 노래" 라는 이름으로 조명암이 작사하고
KBS전속지휘자 손목인이 작곡해서 KBS전속가수 김백희가 부른
노래지만 조명암이 월북함에 따라 금지곡이 되어 KBS전속 작가
출신 유호가 시대상황에 맡도록 노래가사를 바꾸어 쓰고
심연옥이 그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역시 대 히트곡이
되어 “한강”과 “아내의 노래”는 심연옥
일생일대의 대표곡이 되었다.
2017-01-26 작성자 청해명파(靑海鳴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