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서 마음 창 열고 “이뭣고” 참선 / 봉은사 선방
▲ 봉은사 선방 강남 봉은사 보살·거사 틈틈이 ‘천년 고요’ 잠겨
“같은 삶이라도 내 마음 따라 이렇게 달라지네요.”
새해는 누구에게나 온다. 아침도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나 그 날들이 누구에게나 새 날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겐 그 날 그날이 지루한 반복이며 고통스런 일상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겐 ‘날마다 좋은 날’이다.
몇 년 전 까지만도 오직 선승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참선을 통해 도심에서 마음의 창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새해를 앞두고 자신의 마음을 통해 날마다 새날을 맞는
재가자들이 참선하는 선방을 찾았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경내로 들어가
추사 김정희가 쓴 편액이 내걸린 판전을 돌아서 호젓한 산길을 걷자
도심 속인데도 여느 산사와 다름없는 숲 속에 현대식 선원이 숨어 있다.
선원에 들어서니 ‘들어오고 나가는 법’이 큰 글씨로 쓰여 있다.
선원에 올 적에는 향이 짙은 화장품은 삼가고, 절대 묵언해야 하며,
복도를 걸을 때는 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걸어야 한다는 내용들이다.
선원 안 선방엔 먹물 들인 수행복을 갖춰 입은 30여명이
벽을 향해 앉아 있다.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맘대로 2~3시간씩 수행 “이뭣고!”(이것이 무엇인가)
천년 사찰에서 허리를 곧추 펴고 손을 모으고 정면 아래를
고요히 응시하는 재가자들이 내면을 향해 화두를 묻는 마음에
‘천년의 고요’가 함께 앉아 있다. 신참이라는 선도행(68)보살은
“하루 두 시간씩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 들썩이던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말했다.
무여(63)거사는 몇 년 전 평생 다니던 직장을 은퇴한 뒤
‘왜 사는지’, ‘사는 게 뭔지’에 대한 회의와 번뇌와 화 때문에
고뇌하다가 지난 7월부터 난생 처음 선방을 찾았다.
시간 날 때마다 하루에 두 시간 정도씩 참선을 했다는 그는
“겉모습은 그 전이나 후나 다름이 없지만 마음은 많이 달라졌다”면서
“예전처럼 화가 일어나지 않고 한결 여유롭다”고 했다.
참선한 지 1년이 됐다는 여현화(55)보살은 “얼마 전 피곤해 목감기에 걸렸었는데
고요히 앉아 참선을 하다보니 어느새 감기도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졌다”고 했다.
▲ 봉은사 선방 저마다 삶의 짐 부려 놓고 면벽 좌선
이런 참선 효과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봉은사 선방엔 재가 선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선방도 지난해 말 주지 명진 스님이 오기 전엔
폐쇄 위기에 봉착했다. 도심에서도 참선을 하려는
재가자들의 욕구는 늘고 있지만 상당수 사찰에선 선방이
많은 공간과 시간을 차지하는 대신 기도자들처럼
절 살림에 보탬이 별로 안 돼 선방 운영이 미온적인 게 현실이다.
그러나 봉은사에선 선승 출신인 명진 스님이 선방을 돌아다닐 때
눈여겨 보아두었던 선승 성묵 스님(47)을 초빙해 선방을 맡겼다.
성묵 스님이 지난 3월부터 선방을 떠나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선방을 지키자 재가자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10여명에 불과하던 재가 선객은 이번 동안거엔 100명이 넘어섰다.
이들은 매일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개인이 원하는 시간에 보통 2~3시간씩 수행하고 있다.
26살 처녀부터 86살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삶의 무게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와 마음의 짐을 부려놓고 있다.
고참에 속하는 법일화(62)보살은 “예전엔 나도 한 성질 했는데,
화두를 들고 씨름을 하면서 그 동안 겉모습에 현혹돼 많은 사람을
속이고 속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모양과 이름이 다를 뿐
결국은 하나여서 분별하고 차별하고 시비할 게 없더라”고 했다.
선방에서 서기를 맡고 있는 심우행(57)은 “완벽하지도 못하면서 완벽하려고만 했던
예전과 달리 바보가 되기로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같은 삶을 살아도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삶이 이렇게 달라지네요.”
조현 종교전문기자
2008. 1. 3.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