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종주 5구간 -거마산ㆍ성주산ㆍ양지산
일자 : 2002년 4월 17일
구간 : 비루고개 ~ 거마산 ~ 성주산 ~ 양지산 ~ 방죽머리
도상거리 : 13.7km, 산행시간 : 5시간
승객과 승무원 등 166명의 사상자를 낸 중국 민항기 참사, 호우주의보 속에 장맛비를 능가하는 1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가운데 사고현장은 부상자들의 아우성과 기체에서 피어오르는 불길. 연기는 사라졌지만 처참하게 일그러진 기체와 낮게 깔린 안개가 어우러져 스산한 분위기를 보였다.
기억 속의 4월도 잔인한 달이었다. 훌쩍 흘러가 버린 40년의 세월, 4월 혁명은 깡패들의 데모대 습격에 경악과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총궐기하였으며, 시위의 성격도 부정선거 항의투쟁에서 이승만대통령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서울에서는 동국대를 중심으로 한 학생과 시민들이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경무대로 향하던 중 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지, 그 와중에 살아남아 고통 속에 자정을 넘기고, 가랑비 내리던 새벽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던 3학년 선배, 몇 밤을 공포 속에 보내야 했던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4월...
09시 10분 비루고개에서 5일째 종주를 시작한다. 고가로 지나고 있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장수나들목, 정맥길은 민간인 출입금지라고 쓰여 있는 굴다리를 빠져나오며 곧바로 왼쪽으로 산길로 접어들며 잠시 올라선 곳에는 붉은 상의와 모자를 쓴 악명 높은 유격훈련장의 조교와 무거운 철모를 깊숙이 쓴 교육생들을 볼 수가 있다. 김종범씨가 현역 때 붉은 모자의 주인공이 었다나...
능선에 울려 퍼지는 생동감 넘치는 젊은이들의 함성, 유격훈련장을 통과하며 만나는 능선 한가운데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 정맥길은 능선에 붙으면서 전투교육장으로 이어진다. 긴 오름길, 지난번 종주 시 힘들게 했던 용봉산을 뒤돌아보며 올라선 곳이 삼각점이 있는 205.6봉에 오른다.
시야가 트이는 205.6봉에서 200m 거리의 삼거리 지나 번 이 곳을 무심코 통과했었지, 210m의 거마산이라 쓰여있는 표지목이 서있는 능선분기점이다. 인천광역시와 경기도의 경계이기도 하다. 복사골의 고향 부천시를 상징하는 새는 용감한 보라매라고 한다. 보라매는 밝은 미래를 향한 약진과 하늘 높이 나르는 비상, 그리고 날렵함을 뜻한다고 한다. 훨훨 나르고 싶다.
군부대 정문이 고갯마루를 막아버린 아파트와 6번 소신여객 종점이 있는 와우고개를 내려선다. 정맥꾼들은 다시 산길로 마루금에 접근하면서 철조망을 끼고 성주산 정상까지 길게 이어나간다. 성주산은 부천시와 시흥시 경계를 이루고 있는 부천의 주산으로 와우산이라 부르다가 일제 때부터 성주산이라고 부른다는 했다. 소가 앉아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성주산(217m), 정상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다. 우측으로 소래산이 정맥꾼들의 시선을 끈다.
정맥은 고속도로와도 같은 넓고 뻔뻔하게 나있는 내리막길로 이어나간다. 조금 내려선 곳에 이정표(소래산, 심곡본동, 하우고개)가 서있다. 좌측으로 심곡본동으로 내려설 수가 있는데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깊은구지라고 불렀던 심곡본동은 이 일대가 할아버지나무와 할머니나무 그리고 손자나무가 있어 골이 깊고 나무가 울창하여 붙여진 것이라나...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다 만나는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 정자가 있는 하우고개 구름다리를 통과한다. 조선시대 시흥 뱀내장에서 김포 황어장으로 가던 유일한 길인 하우고개는 장꾼들의 추억이 어린 곳이란다. 다시 오르고 내려선 곳이 39번 국도가 지나는 여우고개다.
일주일 전 만해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여우고개를 가로질러 동물농장이라고 쓰여있는 출입문에 들어서고 넓게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암봉에 오른다. 암봉을 내려서면서 숨어있는 정맥길을 무심코 지나쳐 약 10분 가까이 과외공부를 치르고 만다. 다시 돌아와 술래잡기 끝에 잡목을 헤치다가 소사 제2배수지를 통과하며 내려선 곳이 소사고등학교가 자리 잡은 부천시와 시흥시의 시계인 6차선도로의 소사로다.
준법정신이 강한 정맥꾼들, 횡단보도를 건너서 시흥시 쪽으로 도로를 따르다가 왼쪽으로 개업을 앞둔 이조갈비 앞마당을 통과하며 능선에 다시 붙는다. 능선에는 찔레나무가 지천을 이루고 있다. 파헤쳐진 정맥능선을 통과하며 안타까운 마음만 남긴 채 올라선 밋밋한 능선에는 쑥이며 냉이가 지천이다. 봄은 이제 절정에 이루고 연록색에서 좀 더 진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정맥꾼들의 시야를 가로막는 잡목들, 우측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소래산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그리고 자동차의 홍수를 이루는 소래터널...
인천시와 시흥시 경계에 우뚝 솟은 소래산은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로는 신라 무열왕 7년(660)에 당나라 소정방이 나당연합군의 일원으로 군사를 친히 이끌고 백제를 공략하기 위하여 중국 산동성의 래주를 출발하여 덕적도를 거쳐 이 산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소정방의 소자와 래주의 래 자를 합쳐 소래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니 좀 언짢은 지명 같다. 아카시아 군락이다. 좌측으로 푸른색지붕의 조립식 건물들이 내려다보인다.
능선분기점인 102봉이다. 직선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들어서면서 만나는 녹색의 철조망을 따르다가 철조망을 통과하며 내려서는 길은 온통 나무들이 베어진 채 널려있다. 한창 작업자들이 매달려있는 송전탑을 지나며 내려선 진흙 밭의 농로길, 농로를 가로지르면서 오르는 길에는 수십 년 자란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밑동만 남아있다.
잠시 올라서며 송전탑이 서있는 봉을 통과한다. 이어 정맥길은 양탄자를 갈아놓은 것 같은 감촉이 좋은 소나무숲길이지만 메말라 버린 가지와 누런 솔잎들이 애처롭다. 능선분기점에서 왼쪽으로 철조망을 벗어나며 올려다보니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뭇가지에는 뒤늦게 어린잎들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우리 생활 정서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카시아는 아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아카시아 수종과는 구별된 아까시 나무라고 한다. 1891년 상해에서 일본인 사키끼가 인천에 공원수용으로 묘목을 도입한 것이 최초의 것으로 그 후 서해 월미도에 철도 침목재 용도를 위하여 심었으며, 대부분이 아까시 나무는 일제가 우리나라 산림을 황폐화시킬 목적으로 심었다고 하지만, 아까시 나무의 본격적인 조림은 6.25전쟁 이후 대규모의 황폐지 복구와 연료림 목적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아까시 나무는 파괴된 토양, 척박지나 황폐지에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개척자 역할을 하나 다른 수종인 잡관목이 생육하는 곳에는 잘 들어가지 못한다. 서울 쓰레기 매립지로 환경이 파괴된 난지도에 각종 폐기물로 인하여 다른 식물이 생육할 수 없는 곳에 유일하게 아까시 나무가 자생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생명력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니 효자나무가 아닌가...
정맥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며 다시 송전탑을 통과한다. 그리고 내려선 곳이 2차선 도로다. 우측으로 성바오로 피정의 집과 좌측으로 광명시와 과림동을 가리키는 283번 도로 교통표지판이 서있는 도로를 가로지르며 정맥능선은 또다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작은 규모지만 한창 배수 구조물을 설치하고 있는 공사현장을 통과하며 다시 능선에 붙는다. 이어지는 정맥 역시 수난의 연속, 온통 나무들이 베어진 채 버려져있다.
참나무숲의 평탄한 능선길은 콘크리트포장도로를 가로지르고 올라선 넓은 잔디밭의 묘지에는 예쁜 꽃들이 활짝 피어있다. 32번 송전탑이 있는 봉에서 허기를 채운다. 참나무와 아카시아 숲을 따라 십자로 안부에 내려섰다가 오름길로 11번 철탑을 통과하면서 좌측으로 제2경인고속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좁은 공간에 갇혀서 짖어대는 견공들, 굴다리로 제2경인고속도로를 통과한다.
다시 마루금 가까이 되돌아온 정맥꾼들은 개 사육장 위로 송전탑이 우뚝 서있는 정맥능선을 확인하며 왼쪽으로 절개지를 오른다. 사면에는 진달래와 잡목들이 옷깃을 붙잡고, 이어 소나무숲길은 완만한 오름길이다. 아카시아나무 아래로 보리수나무가 자주 눈에 띄고 찔레나무도 질세라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정맥길, 밋밋한 봉우리 우측으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17봉을 통과한다. 군사보호구역이란 간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적이 드문 산길이라 호젓함을 느낄 수 있다. 완만한 오르막길은 시야가 트이는 깃대가 서있는 능선길을 지나 정상인 줄 알고 올라선 밋밋한 공터에는 교육장 입간판들이 서있다. 조금 더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올라선 제법 넓은 공터의 봉우리가 양지산(151m) 정상이다.
잠시 다리쉼을 하며 조망을 즐긴다. 특히 동쪽으로 관악산이 시선에 와 닿는다. 서쪽으로 시흥시가지의 빌딩 숲, 서울의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 서초구 등과 경기도의 안양시, 광명시, 안산시, 과천시, 군포시, 의왕시 등을 분가시킬 정도로 넓었던 시흥시...
발아래 보이는 곳은 신천동과 대야동 사이에 소시장으로 뱀내장터가 유명한데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수원장, 계양장(또는 황하장), 소시장과 함께 경기도에서는 손꼽히는 우시장이었으나 1970년대 말에 이르러 도시화 추세에 따라 폐지되었다고 한다. 가장 번화한 곳으로 부천, 인천, 수원을 잇는 3각 교차지점으로 현재 농협이 들어서 있는 자리 같다.
12시 50분 바위지대를 통과하며 산불초소와 커다란 송전탑을 겨냥하여 안부에 내려섰다가 올라선 봉이 산불초소(13:05) 있는 139봉이다. 이어 삼각점이 있는 146봉에 선다. 4구간 종주 시 19명 중 유일하게 제대로 정맥길을 밟았던 윤정길씨가 군부대 초소를 통과하지 못하고 기다린다는 전화를 받는다. 군부대 철조망, 철조망을 따라간다. 그리고 문제의 무장한 초병들이 지키고 있는 초소, 이 지역은 민간인 절대 통행불가지점이란다. 김종국대장이 사전통행 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라 전화연락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온 하사관의 안내로 초소를 통과하고 한동안 철조망을 따르다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 내려선다.
정맥에서 철학박사 경주 김씨와 언양 김씨의 묘지가 정맥꾼들의 입을 벌리게 한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떡본 김에 제사를 지내는 정맥꾼들,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아카시아 숲길을 따라 교통호를 지난다. 또 지긋지긋한 군부대 철조망, 철조망을 따라 내려선 곳이 397번 지방도가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다.
제2291부대 정문 앞에서 왼쪽으로 사격장으로 오르는 길에는 일체 민간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설치되어 있다. 다행이 사격장은 허허한 공간에 바람만 불어댈 뿐, 사격장을 통과하며 왼쪽으로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끼고 이어나가다가 86봉을 넘고 다시 봉우리를 오르기 직전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내려선 곳이 42번 국도가 지나는 방죽머리 버스 정유장이 있는 방죽재다.
마루금 긋기에 성공한 정맥꾼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읽을 수가 있다. 오늘의 기쁨과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수많은 생활 속의 작은 것들을 현미경으로 확대하듯 크게 보고 이런 것들을 통해 만족감과 활기참을 갖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모습들 일 것이다.
첫댓글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
아직 미답지라 상세히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
오래된 자료입니다. 예전에 gpx 자료가 없을 때는 많은 후답자들이 참고로 사용했는데 지금은 옛 추억거리로 두고두고 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수명산
그러시군요 ~~~
주말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지난 주 1박 2일 동안 경남 진주+경북 청도+경산등에서 멋진 산행하고 왔습니다
활기찬 한 주 시작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