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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시와 묵상의 집 (영월 생태수도원)
 
 
 
카페 게시글
목회 스크랩 계명산소식과 함께 이현필선생님말씀을 심중식소장님이 조명하다.
훈훈한님 추천 0 조회 19 15.07.14 09: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기독교동광원수도회 2012년 9월 1일

계명산(이현필기념관)소식 제6호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1-3)

<그림 설명> 이현필 기념관 공사 현장 사진입니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태풍이 오기 직전인 지난 8월 말에 기와공사를 완료하고 현재는 벽체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동광원 귀일 여름 수양회

윤공부 목사/말씀원

저는 이현필 선생님을 생각할 적마다, 십자가의 사랑에 조명이 되어집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선생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 폐결핵환자들과 사신 것, 그렇게 가난하게 사시면서도 전도하신 것, 철저한 청빈의 삶 등 여러 가지의 삶이 있지만, 저는 항상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오늘의 이현필 선생님을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실례를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뵈온 다음에 세상의 좋은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혀 사신 분이십니다.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강권이라는 말은 사로잡힌다는 뜻입니다.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사도 바울께서 직접하신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빌3:12)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이 사랑에 강권함을 받으셨습니다. 그 사랑에 잡힌 바 되신 분이십니다. 그것을 잡으려고 올인하는 삶을 사신 분이십니다. 1차 전도여행, 2차 전도여행, 3차 전도여행을 하시면서 얼마나 수고를 하셨습니까?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고린도에 보낸 편지 가운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 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1:24-30) 오북환 장로님께서는 위의 글을 읽으시고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일세." 오 장로님께서 복음이라고 하신 의미는 그러한 어려움을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그런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어려움을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그러한 삶을 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사도 바울의 동인(動因)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위대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뿐 아닙니다. 모든 성자들의 삶이 다 그렀습니다. 성 프란치시코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잡혀 사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너무 뜨거워서 아시스 거리를 다니시면서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외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 프란치시코의 <평화의 기도>라는 기도문의 끝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얻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를 받으며/ 스스로 죽음으로써/ 영생을 누리게 되리니" 이 기도는 사랑이 무엇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곧 스스로 죽음으로써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사신 분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이십니다.

유명한 소화 데레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값진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입니다." 그 성녀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사랑으로 죽는 것!/ 제 희망은 오직 이것뿐!/ 주님의 사랑의 불에/ 제 마음 타고 싶어요!/ 주님과 함께 보고파요!/ 영원히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고파요!/ 이 설레이는 제 큰 기쁨!/ 제 생명의 전부입니다./ 오! 사랑을 사는 것!"

다시 이현필 선생님으로 넘어가십시다. 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물 속에 잠기듯 사랑에 잠겨야 합니다. 그것이 믿는 일입니다. 금식하고 절제하는 것도 사랑에 감격되어 해야지요. 고생도 사랑에 못 이겨서이고, 고기를 안 먹는 것도 그 은혜가 더 좋아서 안 먹고요. 사치를 안 하는 것도 그렇고요. 정욕을 떠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 은혜에 감격되어지는 일이고 그 사랑에 끌리는 것이 아니면 모두가 억지 짓입니다."

"하나님 사랑 모르는 것이 죄요. 사랑 못 깨닫는 것이 큰 어리석음이로소이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알고서야 어찌 겸손되지 않을 수가 있사오리까.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나 교만하고 완고한 것 변화 받지 못하고 새로나지 않은 것은 참 사랑을 못 깨달은 소치에 불과한 것입니다. 천국은 신자들과 그의 임금 그리스도와 그들의 아버지와 성령과 천군천사들의 나라올시다. 가장 겸손하신 이들의 집단이요, 서로 섬기려는 이들만이 모이는 곳이요, 남을 유익케하고 자기는 희생하는 이들의 나라입니다. 겸손한 이들만이 선발되는 나라이고, 꾀 많고 자기 유익을 도모하고 남을 희생시키는 이들은 퇴장당하는 나라입니다."

"사랑은 주려는 것입니다. 받으려는 것은 미움입니다. 각자가 사랑 없다는 탓을 하나 자기가 주려는 사랑이 없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받을 사랑이 없다는 말들뿐입니다. 사랑은 줄 때는 만족하고 받을 때는 씁니다. 언제나 언짢은 일을 좋아하게 하소서. 궂은 곳을 즐겨하게하소서. 쓴 것을 달게 여기게 하소서. 대접받는 일을 중심으로 싫어하고 핍박과 수치와 천대를 꿀처럼 달게 여기고 악평과 훼방을 금싸라기 같이 여기도록 맘을 주시옵소서. 주여 비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아시고 믿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일이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꾸짖으시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가난하고 약한 이를 돕고, 죽은 이를 다시 살리시는 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버지를 간절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런 일이 되어진 것이지, 그런 일을 하시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그 일을 하시려던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교훈을 참말로 알아 하나님 아버지의 살아 계심과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심을 믿을 때에, 우리 마음과 생활이 깨끗해지는 변화가 올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려 함으로써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하심과 그의 깊으신 사랑은 모르면서 생활만 고쳐보려 애쓰는 것은 허사요, 헛꿈이요, 아버지가 항상 같이 계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눈동자처럼 아끼심을 믿고 깨달으면 마음에 힘이 생기고, 죄를 이길 힘이 오고, 기쁨과 소망이 새로워지고, 힘이 있고 자신이 있고 소망과 기쁨이 표현되는 생활을 이루어 도덕적으로도 완전해져 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현존하심과 그의 깊으신 사랑은 모르면서 생활만 고쳐보려 애쓰는 것은 허사요, 헛꿈이요, 헛세월만 보내는 결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죽는 일에까지 아버지의 살아 계심과 그의 사정만 알고 평안할 때, 즉 그 괴로움에 대항하거나 도피하거나 변명하지 않을 때 아버지의 참되신 능력과 보호와 사랑이 홍수처럼 흘러내려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지는 것만으로 대 사업인 줄 확신케하사, 저로 날마다 그 사랑만을 알기에 다하게 해주십시오. 다른 것을 알려고도 말고, 다른 일을 하지도 말게 해 주십시오. 사랑을 믿게 해주십시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지이다..."

참 구원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보답할 마음이 간절한 데서만 이루어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우리 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되면 그 형상이 이뤄질 것입니다. 주님 닮게 해 주소서. 주님, 주님 닮게 해 주소서. 부족한 자식을 써서 주님 같이 거룩히 만들어 주소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 것은 가장 크신 행복이나이다. 예수님은 저를 섬기시나이다. 저도 주님 섬기는 몸 되게 해 주옵소서.

위의 글은 모두 <순결의 길. 초월의 길>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선생님께서 기도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갈보리 십자가의 찬송을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수염에 고드름이 맺혀있는데 그 얼굴에 빛이 났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심장이 얼굴의 빛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고 하는데 저는 그것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향기라고 믿습니다.

오늘 저는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내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살을 마시면 내 속에 영생을 지닌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입니다. 그 이외의 것은 부정 식품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 자가 체험되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것을 가지고 많이 기도하고 묵상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신 것은 당신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형식적인 교회 출석하는 이가 아닙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자들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오늘 56절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서로 하나가 되는 은혜를 누린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 이렇게 주님과 하나가 될 때에 우리는 거기서 기쁨과 평화와 무한한 새 힘을 얻어 사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주님과 하나 되는 교제 속에서 얻고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합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옳습니다. 내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주님으로 인하여, 행복할 때 그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한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57절을 보십시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 때에 세상의 권력이나 재물이나 쾌락을 좇지 않게 됩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예수로 말미암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살과 피가 곧 나의 살과 피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현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곧 예수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북환 장로님께서는 갈라디아서 2:20절을 읽으시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믿음일세" 바로 이런 믿음으로 오늘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사신 분이 이현필 선생님이십니다. 이 선생님은 오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 분이시며, 항상 주님과 하나가 되어서 교제하신 분이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신 분이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 형식적인 그리스도인, 외식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고, 주님과 교제하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바로 이런 원인 때문에 모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했다는 것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하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포도나무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셨습니다.

이현필기념관(가칭) 건립 추진현황

1. 취지 및 방향

이현필기념관(가칭)은 맨발의 성자로 알려진 이현필선생님을 비롯하여 동광원의 귀일 신앙운동에 동참하신 여러 어르신들의 믿음과 복음적이고 수도적인 생활모습 및 교육전통을 이어받아 전수하며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기도 및 수도와 경건훈련의 거룩한 도량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현필기념관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사는 진리와 생명에 대한 그리스도적 사랑의 가치를 추구하고 종교와 철학과 과학을 하나로 아우르는 통합된 비전을 향한 전문교육과 훈련을 도모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나라와 세계와 인류를 사랑과 공의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주체적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 복음을 증거하며 기도하는 믿음의 수도자요, 삶의 현장에서 명료한 인식과 영적 각성으로 늘 깨어서 그리스도적 사랑을 헌신적으로 실천하는 실존적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합니다.

동시에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토양에 그리스도 복음과 신앙을 보다 뿌리 깊게 발전시켜 동양적 그리스도 신앙인의 모습인 토착적 영성을 뚜렷이 드러냄으로써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과 공평 안에서 하나가 되어 만물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과 평화의 기쁨을 누리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아갈 것이며 이로써 언제나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시며 완성하시는 주님의 위대한 역사적 경륜을 향해 기도와 찬양으로 순종하고 헌신하려 합니다.

2. 추진 경과

? 2012년 3월 19일자로 건축허가. (1층 50평 2층 24평 전통한옥)

? 2012년 4월 18일 계명산에서 기공예배

? 2012년 6월 18일 토목공사 및 기단 쌓기 완료

? 2012년 7월 4일 입주立柱 상량上樑

? 2012년 8월 27일 기와공사 완료

3. 공사기간

? 착공 : 2012년 4월 18일

? 준공 : 2012년 10월 18일 예정

□ 후원안내

이현필 기념관 건립을 위해 총 공사비예상액 5억원 중 1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필요합니다. 십시일반으로 후원코자 하시는 분은 다음 계좌로 입금하여 주시고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후원금을 약정하고자 하시는 분은 첨부 양식을 작성 광주 귀일원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동광원수도회 입금계좌

농협 301-0068-0856-71 우체국 401570-01-001120,

광주은행 024-107-319803

연락처

광주 귀일원 (이덕심원장) 010-4604-9931

주소 : 광주 광역시 남구 봉선동 132-1 귀일원 (이현필기념관 추진사무소)

기독교동광원수도회 (방순녀총무) 010-9214-5681

건축추진위 총무 (고재호목사) 010-3166-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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