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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불 못 지옥
계시록 20장 7절-10절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오늘 제목은 <불 못 지옥>입니다. 불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지옥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냉정하게 정말 천국에 갔느냐 지옥에 갔느냐, 또 우리가 듣기 싫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옥이라고 하는 곳이 어떤 곳인가 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바르게 깨달아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면서 이 말씀 속에서 깨달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중요하게 크게 세 가지를 설명합니다. 우선 지옥이 없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표적인 주장 세 가지를 제가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성경 둘째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이것을 우리가 다시 배워야 되겠고요. 그리고 크게 셋째로 이 지옥 형벌을 면하고 천국에 가는 일은 무엇인가 이것을 이 세 가지를 우리가 공부해야지 하겠습니다. 우선 지옥이 없다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주장 세 가지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크게 첫째는 그럽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을 만들어 놓고 자기의 형상대로 만들었고 그래서 아들이라고 불러주신 인간을 지옥에 던져 놓을 수가 있겠느냐 하고 반대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특별히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들을 지옥 불에다 던져놓고 하나님이 그걸 과연 좋아하실까? 또 우리가 천국에 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천국에 가서 저 지옥 불 속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좋다고 박수치고 춤을 추고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인가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뭐라고 대답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지옥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다. 지옥은 자동적으로 자연히 발생 된 것이다. 무슨 얘기예요? 원래 사람은 다 천국 보내기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는데 사람들이 죄를 지으니까 천국에 갈 수 없고 그러니까 어떻게 되느냐,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된다. 그런데 인간들만 가는 것이 아니고, 실상 그 많은 사람들을 죄 짓도록 하고 멸망받도록 하는 이 악한 마귀가 그 마귀를 벌주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곳이 지옥이다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인간들이 마귀 편에 붙어가지고 같이 죄 짓는 일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악한 짓을 많이 했으니 결국 마귀와 함께 마귀가 있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다시 우리가 생각해 본다면 사랑이라는 말이 과연 뜻이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그렇지만 내 자녀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게 하는 것을 우리가 다 도와주고 <이것이 사랑이다, 니가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나는 그냥 너를 도와주기만 한다> 이렇게 하는 거는 사랑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들부터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물론 엄마라고 하는 말이지만 아이들이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는 <안 돼> 라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느냐?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는 하나님이 막으십니다. 여러 가지로 깨닫게 하십니다. 채칙질하십니다. 형벌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재앙이 일어나고 여러 가지 질병이 돌고 심지어는 전쟁이 나고 이런 모든 것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런 데서 얼른 깨닫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면 좋은데 인간들은 고집스러워가지고요, 깨닫지도 못하고 그냥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애를 쓰고 이러다가 나중에 죽게 되면 지옥의 무서운 형벌을 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지옥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나는 천국에 갔는데 만약에 내 부모나 형제나 내 자식들이 지옥에 가게 된다면 내가 천국에서 살긴 살아도 어떻게 내 마음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지옥은 없어야만 합니다. 구원받은 천국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지옥이라고 하는 것은 아예 없어야 내가 천국에서 마음 편하게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을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죠. 성경은 뭐라고 가르칩니까? 사실은 천국에서는 지옥을 볼 수도 없고 지옥에서는 천국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이 이것을 막아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 지옥에 누구누구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천국에 누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막아놓으시고 이렇게 보지 못하게 하신 것을 우리가 억지로 이거를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째는 이제 볼 수 없다는 것,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가 되고요. 둘째는 뭐냐 둘째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부모요 자식이요 또는 형제요 남편이요 아내요 이런 관계를 가지고, 육신적인 관계를 가지고 살지만 죽은 다음에는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죽은 다음에는 저 땅에 가면 거기는 천사와 같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는 일이 없다. 이 세상에서 시집가고 장가가고 그래서 부부가 되고 부모가 자식을 낳았고 내가 내 자식을 낳았고 그런 관계는 이 세상에서의 관계로 끝나는 거지 저 세상에 가면 그런 관계가 다 없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똑같이 하나님의 피조물들이고 우리는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들 그리고 우리는 서로 형제, 자매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세상 가면은 이 세상에서 육신 적으로 맺어졌던 모든 인연은 다 끊어지는 거예요. 이거를 모르고 저 세상도 이 세상과 같을 줄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큰 착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 세상 가게 되면은 우리는 부모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자식들이 어떻게 되는지 이런 거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거예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행한 대로 그 땅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는 거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양할 것밖에 없는 것이지 거기에서 내 자식이 어떻게 되었다 내 부모가 어떻게 되었다 이런 거를 가지고서 서로 교통하면서 이런 것에 대해서 마음 상하고 어쩌고 그러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크게 둘째로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이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을 자주 언급하시면서 절대로 그것에 가면 안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만약에 내 오른손이나 오른 눈이 범죄케 하거든 너의 백체 중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에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너에게 유익하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또 이 지옥의 형벌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을 불 못이라고 말씀했죠. 얼마나 무서운 불 못입니까? <만일 네 손이나 또 네 팔이 네 눈이 너로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려라> 그러시죠.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 두 발 두 눈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마가복음에서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말하는 감옥과는 비교가 되지도 않습니다. 무서운 곳입니다. 불 못입니다. 불에 타는데 타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뜨겁고 태우기만 하는 거지 온몸이 막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옥이 지옥에 절대로 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 생지옥이라는 말을 쓰기도 해요. 인간 세상에서도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이 땅에서 당하는 많은 고통 그런 고통을 가르켜 인간의 생지옥이라고 하죠. 북한 땅 같은 데가 이렇게 북한의 감옥, 정치범 수용소 같은 데가 아주 극심한 고난의 장소들입니다.
이런 것에서 우리가 깨우침을 받고 우리는 이 인간 세상에서의 지옥도 이렇게 무서운데 하물며 장차 우리가 죽은 다음에 들어가게 될 지옥은 얼마나 무서운 것일까, 이거를 마음에 깊이 깨달으면서 우리가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조심하고 그래서 주님 잘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게 셋째로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이 무엇일까? 이거를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근데 석가모니도 그걸 가르치지 못했어요. 그래가지고 석가모니가 연구해내고 가르친 게 뭡니까? 이것이 소위 환생을 한다 윤회한다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고 덕을 많이 세우고 좋은 일 많이 한 사람은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그때는 좋은 곳으로 가서 태어나게 된다. 부잣집에 태어나게 된다든지 또는 권세자의 집에 태어나게 된다든지 이렇게 좋은 곳으로 태어나게 되고 이 세상에서 죄를 많이 짓고 그러다가 죽은 사람은 환생을 하는데 농촌에 태어나가지고 날마다 채찍에 맞으면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끌고 다니고 되는 그런 인간이 된다든지 그래서 짐승으로 태어나도 정말 하잘 것 없는 짐승으로 태어난다든지 이렇게 고생을 많이 하는 이제 그런 식으로 석가모니는 설명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집에 있는 생쥐 한 마리가 저게 내 할아버지가 저렇게 태어났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절대로 살생을 하지 마라. 생쥐가 문제가 아니죠. 내 몸에 붙어 있는 이 한 마리도 그게 내 할아버지였을지 어떻게 압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죽이면 안 된다. 이렇게 가르치는 게 불교예요.
그런데 또 공자는 어떻게 했느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공자는 솔직하게 대답해요. 내가 사람이 사는 것도 알지 못하는데 죽는 것을 어떻게 알겠느냐 이 세상에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지 못하는데 사람이 죽은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길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그러니까 공자가 가르친 거는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배우고 깨달은 것을 열심히 가르친 거예요. 자기가 체험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다 이렇게 살펴보면서 <의로운 일을 한 사람,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늙어서도 잘 되더라, 그리고 죽은 다음에도 자손들이 잘 되더라. 그런데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늙어 고생을 당하게 되고 그의 자손들도 다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이렇게 심은 대로 거두게 되더라> 그 이치 하나를 깨달아서 백성들에게 우리가 바르게 살라고 열심히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천국이 있다, 지옥이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몰랐잖아요. 그러니까는 지금도 크리스천이 아닌 이 넌 크리스천들의 세계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모르니까 그들이 인간의 생각으로 말을 합니다.
지옥 가지 않으려면 첫째로 회계를 많이 해야 되고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고 주님 앞에 자기의 생을 들여서 정말 주님 말씀을 따라서 바르게 살아가야 되는 것 이것이 지옥 가지 않는 비결이죠. 동시에 천국에서도 높은 그리고 아름다운 지위를 얻으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고 바르게 살아가고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이끌어주고, 복음을 전파해서 이 생명의 역사를 이 땅에 펼쳐 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지혜로운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다 지혜로운 백성들이 다 되어 마지막 때 주님이 찾으시는 일꾼으로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인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주님 말씀을 따라가는 복된 백성들이 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마음의 구주로 모셔드리고,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나가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주님과 동행하여 승리하고 형통하는 복된 백성들이 되도록 지켜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모세의 생수와 예수의 생수
[민20:10-13]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오늘은 모세의 생수와 예수님의 생수입니다. 모세가 광야생활 중에 생수를 두 번 낸 일이 있습니다. 광야 생활 초기 출애굽기 17장에 한 번, 그리고 광야 생활 다 끝나가는 민수기 20장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을 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생수라고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사야 55장 첫머리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하고 목마른 자들을 부르십니다. <너희는 내게 와서 생수를 달라고 해라. 내가 너희에게 생수를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서 은을 달아주느냐? 어째서 너희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없는 것을 위해서 돈을 쓰고 있느냐? 너희는 내게 와서 값도 없이 돈도 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내가 너희에게 생수를 주리라> 주님은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이 민수기 20장을 므리바 물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므리바 물이란 말은 양쪽에 다 쓰여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과 다투었다. 출애굽기 17장에서는 물을 낸 장소를 르비딤이라고 그랬고요. 민수기 20장에서는 가데스라고 했습니다. 우선 이름부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르비딤이라고 하는 말은 이제 안식을 말합니다. 가데스라고 하는 말은 이 카도쉬라고 하는 히브리 말에서 나온 말인데 거룩하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는 가데스라는 말도 거룩하다고 하는 뜻이에요. 이 가데스에서 거룩하다라는 이름을 가진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물을 내셔 가지고 백성들에게 다 먹이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 첫 번 므리바 물에서는 문제가 없었어요. 근데 마지막에 있었던 이 가데스 반석에서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기에서 모세가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모세는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안 돼! 너는 그만하면 됐다. 너는 이제 끝이다> 이렇게 하면서 못 들어가게 하시고 여호수아가 모세의 바톤을 이어받아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못 들어가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말씀하시는 게 뭐냐, 이 가데스 반석에서의 실수 이것을 가지고 <너는 이런 잘못을 했기 때문에 안 된다> 이렇게 말씀을 했어요.
자 그러면 모세의 잘못이 무엇이냐? 첫째, 잘못은 하나님께서 이 옛날 므리바 반석에서는 이 막대기를 가지고 지팡이를 가지고 치라고 해서 생수가 터져 나왔는데 이번에는 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명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모세가 화가 잔뜩 나고 그랬으니까는 명하지 않고 화를 내고 이 반속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애굽에서부터도 이스라엘 애굽 땅의 열 가지 재앙을 쏟아 내리는 일, 홍해를 가르고 건넌 일 그리고 마라에서 이 쓴 물을 달게 하신 일 그리고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시는 일 이런 체험들을 수도 없이 하면서 살아왔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무지 하나님을
첫째, 믿지 않아요. 입술로는 믿는 것 같고, 두려워서 벌벌 떠는 것 같기는 한데 이 백성들이 마음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런 진실한 믿음이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모세는 아무리 화가 났어도 이거를 참았어야 되는데 성경은 민수기 12장 3절의 말씀이에요. <모세의 온유함이 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승하더라> 영어 성경으로 보면 우리말로 온유하다고 번역한 거를 영어로는 험블이라고 그랬어요. 겸손하다 말이죠. 이렇게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백성들로 인해서 화를 내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칠 지경이 됐으면 이 백성들이 얼마나 악한 백성들이었나 하는 것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자 그런데 모세의 잘못이 무엇이냐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백성들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아니했다>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대관절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소리가 무슨 말씀일까? 모세가 한 말을 우리가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10절 말씀 보니까 모세가 말합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어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자 누가 물을 냅니까? 모세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이에요. 모세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지팡이 하나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안 보이니까 모세를 보고 모세는 크다 하고 모세를 높이고 모세를 두려워하고 이렇게 말하지만 실상 모세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붙잡혀 쓰임 받는 하나의 막대기에 불과하다 하는 것을 우리가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내가 물을 내는 것처럼 모세와 아론이 같이 힘을 합해서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처럼 이렇게 하는 게 큰 잘못이란 말이죠.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사라져야 되고 더 죽어야 되고 자신은 없어져야죠. 모세도 아론도 반석 앞에서는 나타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나타나도록 했어야 되는데 이것을 못 했다고 하는 거죠.
모세가 주는 생수와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거를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생수를 내기 위해서 반석을 쳤어요. 반석에서부터 생수가 터쳐 나와 얼마나 많은 물이 흘러내려 갔던지 많은 백성이 전부 그 생수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이 이것을 설명합니다. 뭐라고 설명했어요. 이 반석은 그리고 모세가 터쳐서 나와 흘러난 백성들을 마시게 했던 생수는 뭐라고 말씀하느냐. 이것을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신령한 물을 마셨다> 이렇게 말씀을 해요. 그러니까 저들이 마신 물은 신령한 물이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들을 저들이 모세가 쳐서 물이 솟아나오게 했던 반석은 신령한 반석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설명해요.
그들을 따르던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신령한 음료를 마시게 하였으니 이 반석이 바로 그리스도다. 그러니까 모세가 반석을 쳤다고 하는 말은 그리스도를 쳤다고 하는 얘기예요. 그리스도를 쳤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리스도로부터 생수가 터져 나왔다. 예수님으로부터 생수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 생수는 뭘까요? 이것이 바로 성령이시다 말이죠. 성령의 물을 마셨다. 근데 모세가 주는 물은 이 사마리아 여인이 주는 물과 마찬가지로 물은 마셔도 또다시 목마른 물이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다. 또 이 여인이 주는 물은 두레박을 가지고 저 우물 깊은 곳에 드레박을 내려서 거기서 퍼 올려가지고 사람들이 마시게 했던 그런 물이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는 두레박으로 우물물 퍼주는 것도 아니고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와서 먹게 하는 것도 아니고 뭐라 그랬어요? 내 속에서 예수님의 내 속에서부터 흘러나와서 모든 사람에게 마시게 하시는 생수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말씀이 요한복음 7장 명절 끝날에 그러는데 요한복음 7장은 어떤 명절이냐 이게 초막절이라고 하는 명절입니다. 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님께서 크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이는 내가 주는 말을 물을 마시면 그들의 배에서부터 생수가 강 같이 흘러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 엄청 중요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 초막절의 끝날에 예수님께서 이 생수를 마시라고 외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광야 생활 절기의 끝날이라는 말은 광야 생활의 끝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 이 가데스의 반석에서 생수를 터쳐서 백성들을 다 먹이셨어요. 이랬던 일을 예수님께서 지금 다시 재현해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생수를 마셔라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자 그런데 이 모세가 반석을 처음에는 쳤지만, 이번에는 치지 말고 명령하라고 하셨는데 반석을 쳤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쳐서 곧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을 상징하죠. 그랬더니 예수님의 몸에서부터 물과 피가 흘러나왔다고 그랬어요. 이것이 바로 생수 성령을 상징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예수님이 부어주시는 이 성령의 생수인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인생에서 목마름을 모르고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가는 삶으로 인도하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고 목마름 없는 삶 살아가기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생수를 받아서 성령 충만함을 가지고 이 세상을 목마름 없이 항상 평안하고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이루어 나가도록 인도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5. 행위책과 생명책
[계20:11-15]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20장 앞부분에 20장 앞부분에는 이제 마귀를 잡아서 무저갱에 가두고 이 땅의 천년왕국이 펼쳐지는 이야기 천년 끝에는 마귀가 다시금 마귀를 무저갱에서 놓아주시니까 이놈이 이제까지 살아온 잘못된 행실을 회개하고 변화돼서 새로워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백성들을 미혹하고 선동해서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이 천년왕국에서 행복하고 평안하게 잘 살았던 백성들이 마귀의 유혹을 받으니까. 또 전부 다 헤까닥 뒤집어져 가지고. 하나님 대적하는 악한 짓을 해서 이렇게 하나님과 싸우려고 서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번에는 백마를 타고 오시죠.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게 아니고 백마를 타고 오셔서 입술의 기운으로 이분이 가지신 검으로 다쳐서 마귀를 깨뜨리시고, 그리고 이 땅에 드디어 영광스러운 새 세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이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부활합니다. 죽었던 자들이 다 살아나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데 하나님 앞에는 두 개의 중요한 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책이라고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행위책이라고 하는 것인데 생명책은 단수입니다. 한 권입니다. 한 권 안에 이제까지 구원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다 기록이 되어 있다. 말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록됐을까요? 천만의 사람들의 이름이 전부 기록되어 있는데, 책 한 권으로 그거는 충분합니다. 그런데 행위책이라고 하는 것은 복수입니다. 한 권으로는 안 돼요. 왜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 때까지 그들이 살아온 일생을 전부 기록해 놨기 때문에 거 그거는 한 권으로 되지 않고 여러 책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백보좌 심판이다 하는 말을 하죠. 하나님의 보좌가 흰 보좌인데 이 흰 보좌 앞에 사람 사람들이 다 부활해 가지고 앞에 심판을 받기 위해서 서 있습니다.
이 광경이 계시록 20장에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의 심판을 보세요. 세상의 심판은 어떻습니까? 이 세상의 심판은 공정하기 위해서 공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재판은 절대로 공정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잘못된 심판이 많이 있습니다.
자 어떻게 해서 잘못된 심판이 생기느냐 권세 있는 자는 권세로 압력을 넣어가지고 심판을 굽게 하기도 하고, 돈 있는 자들은 뇌물을 줘 가지고 심판을 굽게 하기도 하고, 또 심판관과 가깝게 아는 사람 사람들은 정실관계로 해 가지고 이렇게 해서 심판을 잘못되게 만들고 이래서 이 세상은 아무리 공정한 것 같아도 사실은 절대로 공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의 제일 첫 머리에 1994년 6월 12일에 오제이 심슨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이 사람의 아내와 남자 한 사람이 죽었는데 살인을 당했는데 이 살인의 살인사건의 가장 큰 용의자로 오제의 심슨을 지목을 했습니다.
그런데 1년 동안 가는 긴 재판 끝에 결국 증거 불충분이라고 그래가지고 이 사람은 무죄로 석방이 됐습니다. 나중에 그분의 가까운 친구가 폭로했습니다. 아내와 남자를 죽인 사람은 오제의 심슨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때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두려웠다 이렇게 고백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나라 일제 때 판사가 된 사람이 있었죠. 이 사람이 살인사건을 재판을 해 가지고 용의자를 주범으로 보고 이 사람을 사형선도를 내었고 이 사람이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사형받아서 이렇게 죽은 지 얼마 지나서 진범이 잡혔습니다. 그래서 이 판사가 판결한 것은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사람은 이 판사였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나중에 회의를 느끼고 자기는 그래도 판사가 우리 불쌍한 조선 백성들 자기가 어떻게 하든지 좀 도와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판사가 되었는데 결국 자기가 잘못된 판결을 내려가지고 억울한 사람을 죽게 했으니까. 거기에 책임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래가지고 내가 도저히 판사 더 못하겠다. 그래가지고 사표를 내고 결국 산속의 절간으로 들어가서 중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 이 사람이 아주 유명한 스님이죠. 죽을 때에 무 다 그렇게 외치고 죽었다고 하는 그런 유명한 분인데 공부를 많이 한 분이고 하니까 중들 중에서도 공부 많이 한 사람은 학생이라 그래 가지고 가장 높이 알아줍니다. 여하간 아무리 이 세상은 판결을 똑바로 할려고 해도 사실은 그릇된 게 너무 많습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그릇된 판결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좌파들이 정권을 잡게 되고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 죄 없는 사람을 탄핵을 시켜서 대통령직에서 파면시키지를 않나 밑에 있는 밑에서 장관 지내고 하던 많은 분들 억울한 죄를 다 뒤집어 씌워가지고 이렇게 감옥살이를 만들고 이 악한 짓들을 너무나 많이 했습니다.
이 빨갱이들 정권은 항상 이런 짓을 해 나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이것을 바르게 깨닫고 이 땅에 다시는 빨갱이들에게 정권을 내주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따라 바르게 해야 되는데 이 세상에는 이렇게 잘못된 재판이 많이 있고 억울한 일들이 수호도 없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인류의 마지막 무시무시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이 소위 백보좌 심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앞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시는데 앞에 이 세상 사람들이 참 전부 부활해서 모여 있습니다. 재판을 받기 위해서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재판 기록에는 잘못된 심판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증거 불충분이라고 하는 말은 거기에서는 통하지가 않습니다. 왜 그런가 행위책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고, 가지고요. 그들이 평생 살아온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살아온 모든 것을 참 전부 기록해 놓은 책이 있습니다. 기록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느냐 옛날에는 글자로 다 써서 일기를 썼습니다. 또는 이조 왕실 기록을 보면은 왕이 행하는 하루종일 무슨 일을 어떻게 했다. 하는 거를 밑에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전부 기록을 해가지고 그거를 써놨어요.
이조실록이라고 하는 것이 이제 그런 책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확하게 쓴다고 해도 사실은 빼놓지 않고 다 쓸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내가 내 일기를 쓴다고 해도 해도 남들이 내 일기를 보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내 일기를 써도 잘못된 거 나쁜 거는 할 수 있으면은 안 쓰고 내가 잘한 거를 자꾸 쓰게 되고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는 사실 우리가 쓰는 일기도 정확한 게 아닙니다. 공정한 것이 아닙니다. 또 위인들 위인전이라고 하는 게 많이 있지만, 그것도 사람들이 잘못한 거 나쁜 거는 다 다 빼고 자란 거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뽑아가지고 이렇게 붕 띄워주고 있는 거기 때문에 사실은 그것도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오직 성경만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잘못된 것을 솔직하게 전부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다윗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윗의 일생을 전부 다 기록해 놓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세상 인간들이 쓴 책은 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 앞에 있는 행위체계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있습니다. 옛날에는 글자로 썼습니다. 그런데 이제 녹음다음에 되는 녹음기가 나와 가지고. 전부 녹음을 했습니다. 조금 더 지나니까는 이번에는 녹화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전부 비디오 테이프로 이렇게 다 해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도 더 발달되어서 더 분량도 적게 만들고도 더 많은 양을 집어넣을 수가 있도록 이렇게 만들어 가서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 기록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선 어떻게 이것을 기록해 놨는가 우리 성경에 살짝 맛만 보여주고 있어요. 이것이 예레미야 17장 1절에 말씀하시는데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어 있는데, 제단 뿔과 단뿔과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이거 마음판에 이것이 기록되어졌다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단뿔이라고 하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성소에 가면은 제사드리는 바깥 뜰에는 번제단이라고 하는 단이 있고요.
성소 안에 들어가게 되면은 향단이라고 하는 단이 있습니다. 이 단 네 귀탱이에 뿔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죄가 이 뿔에 다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생기기는 조그맣게 생겼는데 이 조그마한 뿔에 어떻게 다 기록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오늘날 자꾸 과학이 발달해 가지고 뭐 20나노다 10나노 다음에 8나노 4나노 3나노 요즘에는 이제 2나노까지 이렇게 내려가죠. 이렇게 지극히 조그마한 칩 속에 어마어마한 분량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USB 이거 하나 속에 엄청난 분량이 다 들어가죠. 그래서 한국 드라마 같은 것도 수십 편이 요. 조그마한 거 속에 다 들어갑니다.
앞으로 이제 이게 더 발달돼 가지고 2나노죠 지금 1나노 내려가고 더 아래로 내려가게 되면 나노보다도 더 작은 단위로 내려가게 되면 아마 훨씬 더 엄청나게 많은 것이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근데 하나님께는 1나노 정도도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두뇌 속에다가 이렇게 만들어 놓으신 거는 이 우리의 두뇌는 그런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 전부 기억돼 있어서 우리는 내가 평생 살아온 모든 기억이 우리의 두뇌 속에 전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버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옛날 게 다시 기억으로 또 올라올 수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 우리의 행하 행위를 전부 기록해 놓은 책을 행위책이라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아는 거는 비디오 카메라로 우리를 다 찍어서 우리가 한 행동과 말한 거 이런 거까지는 아는데 하나님의 비디오 카메라는 그것보다 더 종합해서 우리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먹고 있었는가 하는 것까지도 전부 찍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는 마음아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 따로 내 입에서 말하는 거 따로 그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내가 사람 죽일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내가 당신을 도울 거라고 말하고 나를 믿으라고 말하고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남들을 죽이려고 음흉한 흉계로 꾸미고 있는 이런 것까지도 하나님의 이 행위책 안에는 전부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무서운 하나님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만약에 당신의 하루하루의 생활을 누군가가 몰래 카메라로 찍어 가지고 있다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할 수만 있으면 사람 죽여 없애버리고 싶겠죠. 아무리 큰 돈을 주고라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비디오 카메라 찍어 놓은 비디오 테이프를 내가 다 사려고 하겠죠. 이렇게 해서 나의 부끄러운 것을 지우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자 오늘날도 한국에서 이재명이나 이 민주당 이 빨갱이 사상을 가진 자들이 행한 모든 일들이 하나 폭로가 되니까. 자기들은 아니라 그러고 우겨대고 정치공세다 뭐다 해 가면서 이렇게 벗어나려고 애를 쓰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가면 그거 하나도 핑계 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한 특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행한대로 받는 공정한 재판이다.
둘째,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재판이다.
셋째, 우리가 자기 입으로 짓고 하는 심판이다.
하나님이 뭐 묻지 않으십니다. 내가 내 입으로 전부 자백하는 그런 심판이에요.
넷째, 핑계할 수 없는 심판입니다.
다섯째,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심판입니다. 이 세상은 심제도라는 게 있어요. 근데 세번 심사를 했어도 잘못된 심판 내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단 한 번만으로 하는데도 완벽한 심판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둘째로, 중요한 거는 행위책에 기록된 나의 죄들을 내가 행위 전부 기록해 놓은 것을 지우는 방법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을 수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울 수 없는 거는 세상에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지워지느냐 성경은 말합니다. 회개하면 다 지워주신다, 그런데 인간들은 죽어라 하고 회개는 안하고 어떡하든지 그것을 뺏어서 없앨려고만 합니다. 그런데 그거는 사람의 방법으로는 되지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 회개할 때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 기록을 전부 지워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눈물로 회개하면서 진심을 가지고 통일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지워주시고 나도 너희의 죄를 기억하지 아니한다. 너희의 죄는 이제 다 깨끗하게 지워졌다 다 씻겨졌다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 죄를 지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운 사람은 마음의 놀라운 평화가 있고 구원받은 기쁨과 감격이 있고 그래서 인생이 행복해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뜨거운 사랑이 복받쳐 올라와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쉬운 방법을 이렇게 만들어 주셨어요.
이게 돈을 많이 낸다고 하나님이 돈 받아먹고 지워주시는 거 아니구요. 무슨 권력을 권력이나 무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공갈 협박을 해 가지고 지워라 뭐 이런다 그래 가서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가서 그런 짓 할 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이 정반대로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그것이 바로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 앞에 진심으로 잘못을 빌게 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하늘의 놀라운 평화를 주시고 행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젠 둘째, 생명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생명책이라는 게 대관절 어떤 책이냐 쉽게 얘기하면 이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구원받는 것이고.
생명책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면 구원을 못 받는 것이고. 이렇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찬송가에도 어린 양 생명체계 내 이름을 기록하셨을까? 하고 찬송을 합니다. 자 우리 성경에 이 말씀들이 그대로 다 나옵니다.
계시록 13장 8절에 보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생명책의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겁니까? 그러니까 기록이 되어 있으면 짐승에게 경배하려고 해도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뭐 육육육 짐승의 표다 뭐다 해 가지고 겁을 내지 말고 내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는가 이것이 더 중요한 것이고요. 또 그 보증으로 우리가 성령을 받죠. 하나님의 인을 내가 맞았는가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이거는 생각하지 않고 뭐 짐승의 표 받아서 죽을까 봐 벌벌 떨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리에서 우리가 헤어나와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누구 누구의 이름이 생명체에 기록되겠는가 계시록 3장 5절의 말씀입니다.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오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책의 이름이 기록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격은 이기는 자입니다. 지는 자는 상급도 없고 지는 자는 천국도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이 세상의 많은 유혹에서부터 이겨야지 합니다. 이 세상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고 발버둥치고 여러 가지 간교한 수단을 다 쓸지라도 속아 넘어가지 말고 우리는 세상에 마음 뺏기지 말고 튼튼하게 서서 마귀를 이겨나가는 새로운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겠습니다. 요한 레슬리의 일기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한 레슬리가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꾸는데 천사에게 받들려 올라가서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의 생명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무슨 책입니까?
이 책은 하나님의 생명책입니다. 아니 생명책이라면 구원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다 거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요, 그렇고 말구요. 그러면 천사님 좀 알아봐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고서 물었어요. 혹시 생명책의 성공한 교인들 이름이 얼마나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실 수가 있습니까? 그랬더니, 천사가 책을 다 뒤적거려 보더니, 대답합니다. 한 사람도 없네요. 그래요. 그거 당연하지 뭘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혹시 그러면 천주교인들 이름은 있습니까? 그랬더니, 천사가 또 다 뒤져보고 나서 천주교인들도 없는데요. 웨슬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다음에 또 물어봤습니다.
혹시 장로교인들은 있습니까? 천사가 또 다 찾아보더니 장로교인들은 없습니다. 요한 애슬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한편, 그래도 장로교 사람들 가운데서는 구원받을 사람이 조금은 있을 텐데 하나도 없다고 하니까 의아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을 바꾸어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좀 알아봐 주십시오. 감리교인들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얼마나 있습니까? 천사가 또 다 책을 뒤져보더니, 감리교인도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해요. 그러니까 웨슬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대관절 그러면 천국에는 누가 간다는 말입니까? 우리 감리 교인들이 가는 거는 지극히 당연한 얘긴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대답합니다. 왜슬리 씨 당신이 크게 오해하셨군요. 그때는 교파가 교파를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요한 애슬리는 크게 깨달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교파를 가지고 따지지 말자 교리를 가지고도 따지지 말자 이 세상에 가난한 사람들 배우지 못하고 이렇게 많이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 성경을 알면 얼마나 알겠고, 이를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교리가 조금 틀렸다고 그래 가지고 우리가 존재하고 이 사람은 구원 못 받는다 이렇게 말하지 말고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이 예수님을 얼마나 뜨겁게 진실하게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이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 주님 앞에 받아들여지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놀라운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도 마찬가지 생명책에 한 번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을까? 우리 행위책에 기록된 모든 것은 우리가 회개하면 지워질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지는 수도 있을까?
이거는 답이 두 가지죠. 하나는 지워질 수 있다 하는 답이고 또 하나는 지워질 수 없다 하는 답이죠. 그러니까 장로교의 예정론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지워질 수가 없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감리교에는 이것은 지워질 수 있다라고 말을 합니다. 자 모세가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차라리 내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어주시고 이 백성들을 용서해 주시옵고서 백성들의 죄를 죗값을 내가 다 받고 차라리 지옥 가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이 백성들 불쌍히 여기시고 왜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죄를 지은 자는 내가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어버릴 것이다. 그러면서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너의 백성들을 한번 더 용서해 주겠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목숨 건 기도 나는 차라리 지옥에 갈지언정 내 백성들 살려 주세요. 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이것은 신약에 와서 사도 바울에게도 똑같이 이어집니다. 내가 차라리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게 될 망정 하나님 앞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내 백성들 구원시켜 주세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데 이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이 백성들 멸망시키지 마시고 다 살려주세요. 하고 애절하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자 그러니까 지워질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정말 우리를 우리에게 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셔서 새롭게 만들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첫째, 자기부터 먼저 살펴야 됩니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가 이거를 많은 사람들이 확인하지 않고요. 건성으로 넘어갑니다. 이건 굉장히 불행한 일입니다. 자기 이름이 생명체에 기록되어져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믿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기록되는 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정말 믿음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야 되는 거죠.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에서 내 행위책에서 나의 죄를 전부 지워내야 비로소 나는 죄가 없는 사람이 되고, 생명책에 내 이름이 올라갈 수가 있는데, 행위책에 있는 죄들을 지우고 내가 지은 죄들을 지우지 않고 있으면 내 이름이 생명책에 올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래서 먼저 자기를 깊이 살펴보는 이 생활을 먼저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 일단 이름이 올라갔다고 해도 다음에 또 우리는 자꾸 죄를 짓고 살지 않습니까? 그래서 깨달을 때마다 자꾸자꾸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지체하지 말고 빨리빨리 회개하고 우리가 죄로부터 멀리 떠나서 정말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들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명과 함께 태어났습니다. 이 땅에 사명 없이 그냥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세상에 보내셨는가 이 사명을 감당해야 심판날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 이렇게 칭찬을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은 생 얼마가 되어서 될지는 몰라도 우리가 죽도록 충성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름다운 백성들이 다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36.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말씀하시고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리라고 명령하십니다. 또 이루었도다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마지막 말씀 다 이루었도다~ 라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을 연상케 하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라 알파와 오메가 이 인류의 이 세상에 창조를 시작하신 하나님이 이 창조에서부터 인간의 타락이 있었지만 이 타락의 문제를 주님이 다 해결하시고, 그리고 마지막에 영광스러운 아름다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놓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새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죄로 인해 나쁜 사상에 영향을 받아서 생각이 잘 못 했을지라도 주님 앞에만 나오면 주님께서 우리를 다 새롭게 만들어주시고 온전하게 만들어 주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신다.
이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는 이 말씀을 볼 때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구약의 두 번 신약에 두 번 나타난다. 그런데 그 말씀도 또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의미하는 게 조금 다르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을 마귀를 잡아서 무정갱에 가두어 놓고 마귀가 발 붙이지 못하도록 드디어 천년 왕국이라는 것이 시작이 되어서 천년 동안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 그때에 제1차 부활로 휴거된 이분들이 분봉 왕들이 되어서 세계를 다스린다.
주님과 함께 통치하는 이런 놀라운 세상이 되는데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이고요, 둘째 천년이 지난 후에 무정갱이 열이고 마귀가 잠깐 노임을 받은 마귀가 또 다시 사람들을 미혹해서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켰다가 백마타고 오시는 에수님이 저들을 입술의 기운으로 또는 입에 검으로 다 쳐죽이시고 세상을 새롭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드디어 인류의 총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옛날 아담 이후로 이 땅에서 살았던 작은 사람들 그들이 다 부활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심판받기 위해서 서게 되는데 이것을 우리가 백 보좌 심판이라고 하죠. 이때 양과 염소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천국 갈 사람과 지옥 갈 사람이 완전하게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부활에 참여했던 14만 4천 명이 바로 온전히 거룩해진 이분들은 이미 1차로 부활을 했기 때문에 둘째 사망이 해를 받지 않은 분이고 이분들은 천년 왕국 때도 왕 노릇하지시만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도 이렇게 왕 노릇하시는 높은 대접을 받게 되시는 분들이고 나머지 인류는 전부 부활하는데 그 가운데 천국 갈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나머지는 지옥 갈 사람들로 다 갈라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을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는 것이 두 번입니다. 하나는 천년 왕국에서 새 하늘과 새 땅 또 하나는 천년 왕국 끝나고 나서 인류가 총 부활해서 새 하늘과 새 땅, 그래서 이 땅에서는 모든 죄악이 없어지고 어둠이 없어지고 밝은 새로운 세계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하늘과 이 땅과는 완전히 다른 거죠.
이것을 변화시켜가지고 새롭게 만드시는데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얼마나 잘 못된 땅인가 하는 것을 자꾸 보여줍니다. 이 땅이 저주를 받는 땅이 아니라 복 받는 땅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이 어떻게 하면 저주를 받은 땅이 되느냐?
가인이 아벨을 쳐죽었어요. 또는 더 올라가면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어서 그 땅은 저주받은 땅입니다. 의인을 쳐 죽인 그 땅은 저주받은 땅입니다. 성경에서 거듭 거듭 밝히 말씀하고 있는 것은 의인의 피를 흘린 이 땅은 저주받은 땅 그 저주받은 땅에서는 첫째 소산이 생산되지 못하고 농사를 지어도 소산을 내지 못하는 이런 땅이 되고 땅에서 불이 나온다 화산이 터지고 지진이 일어나는 거죠. 이렇게 해서 이 땅에 여러 가지 재앙들이 자꾸 일어납니다.
이런 땅이 변해서 정말 장미꽃 사막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이 세상에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런 새 세상이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는 사람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때가 되니까 세상이 자꾸 죄가 관영해지고 이 세상 땅들이 다 저주를 받습니다. 옛날에 예수님 잘 믿었던 땅, 그런 나라들도 자꾸 신앙이 타락하고 죄 지으니까 첫째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둘째 육신적으로 큰 고통이 와서 병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전쟁이 일어나서 죽고 질병이 창궐해서 죽고 이런 불행한 일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이런 일들이 전부 이 땅이 저주받았다는 말은 우리 육신이 저주 받았다는 말하고 같이 통화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 육신도 저주 받아서 질병이 생겨요.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저주받은 땅 이 땅이 저주 받은 가장 큰 죄가 뭐냐? 그 원인이 뭐냐? 첫째는 죄를 지으면 그렇게 된다. 둘째는 음란죄입니다. 음란이 성하면 땅은 저주를 받는다. 셋째로 의인의 피를 흘리면 이 땅은 저주 받게 된다. 이런 말씀으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살면서 절대로 죄 짓지 말고 의로운 사람들 억울하게 하지 말고 정말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저주받은 땅이다. 그러면 옛날에는 아프리카 땅이 저주받은 땅이었고 그래서 농사가 안 되는 땅이었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이 아프리카 땅에 많이 들어가서 농사짓는 법도 가르치고, 저 중동지방 사막지대에 가서 물을 끌어다가 농사 짓는 방법을 가르치니까 사막 땅들이 장미꽃과 같이 막 피어나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하고 똑 같은 북한 땅은 나라의 땅인데 남한에서는 해마다 풍년이 들고 북한에는 해마다 흉년이 들고 왜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기고 말았습니까? 이것은 북한 땅은 저주 받은 땅이 되고 남한 땅은 복 받은 땅임으로 엄청난 차이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거를 잘 기억해야 합니다. 또 북한 땅만 그런 것이 아니라 최근 몇 년 동안 보니까 일본의 지진과 홍수 피해가 엄청 늘어났습니다. 또 중국에도 해마다 홍수가 엄청나게 일어나고요. 막 폭우가 쏟아지고, 여러 가지 재앙들이 쏟아지죠,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을 그냥 자연계의 현상이다. 라고 말합니다. 깊이 생각할 줄은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이 사람들은 일부러 외면하기 때문에 죄로 말미암아 이런 것이 생긴다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에 일본에서 큰 원자로가 터지고 방사능 이것이 노출되고 불행한 일이 생겼었는데 조용기 목사님이 일본이 우상숭배를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라고 말함으로 된 통을 맞았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반발을 하지만 한국에 있는 목사들부터 막 들고 일어나 조용기 목사님을 성토하고 야단을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렇게 타락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면 혹시 이거 내 죄가 아닌가 내가 무슨 잘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하나님께 벌 받은 것이 아닌가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가서 주님 이게 왜 이렇게 됐습니까? 내가 잘못했습니까? 그러면서 또 자기가 마음에 생각나는 잘 못된 것은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이렇게 변화를 받아야 할텐데 오늘날 목사들부터 이런 것을 인정을 하지 않고 그런 말을 하지도 못하게 하고 누가 그런 말을 하지도 못하게 하고 대들기도 한다. 하나님 말씀을 대적하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망대에 치어죽은 12 사람들이 더 죄가 많아서 그런 줄 아느냐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되리라 헤롯이 제사를 드리는데 그 사람들 피를 섞은 이야기를 하니까 예수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죠. 그 사람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그런 줄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처음부터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재앙이 왔고 저주가 왔고 불행한 일이 왔다. 이것을 우리 인간들은 그 말씀을 자꾸 부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자기 혼자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결국 마지막 때에 재앙은 점점 더 커져가고 우리 인류는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수많은 무지한 백성들은 이 잘못된 지도자들도 말미암아서 멸망의 길고 이렇게 막 휩쓸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성경 말씀을 깊이 읽고 깨달아서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지금 미국도, 브라파도 많은 재앙들이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와 회개하고 새로워져야지 하겠습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려면 만물을 새롭게 하시려면 먼저 어떤 일을 이루어야 하겠느냐? 먼저 파괴가 있어야 됩니다. 새 아파트를 지으려면 옛날 아파트를 허물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아파트를 높이 잘 지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옛날 묵은 집들은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집을 지어나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옛 것은 무너뜨려버리고 새로운 창조를 해야지 하겠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저 동대문시장, 남대문 시장 이런 데에 화재가 참 많이 났습니다.
그뿐만 아니죠. 대구시장도 그렇고 부산시장도, 옛날은 불 관리를 잘 못하고 또 이렇게 겨울에 날씨가 추우니까 집 안에다가 소유 난로 같은 것도 있고 또 이렇게 연탄난로 같은 거 넣고 위에다가 실수하면은 이것이 불이 붙어 큰 화재가 납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다 불타버린 다음 더 멋진 건물들을 세우고 더 훌륭하게 시장을 세워나갈 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만약에 그렇지 않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걸 억지로 강제로 철거해내고 거기다가 새로운 건축을 하려고 하면 얼마나 어럽겠어요. 사람들이 막 반발을 하고 못하게 하고 막 대모하고 그냥 나는 죽이라고 그리고 거기에 들어 부어 있고 막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다 불태워버리시고 새로운 건설을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지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새로운 건설을 하시기 위해서 6.25 전쟁이 나가지고 완전히 다 전국 토지가 불타버리고 다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속에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했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세워주셨습니다. 새로운 약사가 한국 땅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고 또는 이런 지진이 난다 화산이 터진다 화재가 난다 태풍이 불어서 어려움이 생겼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이루신다. 하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다 되어야지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게 둘째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에 해아래 새것이 없다 말씀했어요. 새것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전부 새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다 보면서 보면 이 새로운 것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이 있어요. 옛날에는 이제 지금은 아주 보편화돼 있지만 옛날에 이 gps라고 하는 것이 처음 나왔을 때 내비게이션이라고 해서 그때 미국에는 그런 게 별로 발달돼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한국에 나갔다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는데요. 차마다 내비게이션을 달고 그리고 이렇게 운행을 30m 전방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그러죠 고속도로 들어갈 때는 톨게이트가 전방에 있습니다.
톨게이트의 요금은 얼마입니다 어느 쪽 손으로 들어가세요 이런 소리까지 다 나와요. 또 과속을 하게 되면 막 땡땡땡땡 치며 막 소리를 지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얼마나 신기했는지, 내차가 지금 어디에 가는지 기계가 다 알고 있어 속도가 얼마인지 다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모르는데 인간들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고 똑똑한 척은 다해도 실상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 대게랑 다 밟고 있어가지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 오른쪽 길로 들어가라 왼쪽 길로 가라 해서 우리를 인도합니다.
기계도 이렇게 아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자세하게 하시겠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걸어가는 우리의 외관상으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까지도 다 들여다보고 알고 계시고 정말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것이 하나도 없구나 운전하는 사람이 교통순경한테 잡혀서 과속을 했다 그러면 운전자가 아닙니다. 나는 과속 안 했습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으러 왔다. 그럴지라도 전부 다 기록이 있기 때문에 판사도 과속했느냐 안 했느냐 입씨름을 할 필요가 하나도 없잖아요, 이 기계를 턱 틀어놓기만 하면은 어디에서 어떤 얼마의 속도로 갔는지를 다 알수가 있다. 그러니까 속일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 가는데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은 이 주제도 다 이렇게 알고 있는데 하나님은 모르실 줄로 알고 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 잘 섬기는 백성들이 돼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때에 이렇게 하나님이 안 보시는 줄로 알고 하나님 없이 생활하면 죄를 반드시 짓게 되면 세상에는 재앙이 많이 쏟아지고 있죠, 인간들이 복을 받지 못하고 어려움 속에서 살게 되죠. 인생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죠. 그래서 이 세상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상은 멸망입니다. 우리가 이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하나라도 깨닫고 빨리 돌이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래 성경에는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는 말씀이 이렇게 여러 번 나옵니다. 특별히 이사야 43장 19절 내가 광야의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이사야 48장 6절에도 새 일을 행하신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밀한 일을 내게 보이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네가 알지 못하는 은비한 일,
영어로는 히든 pin스 감추어진 일들을 너에게 보여주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특별히 어떤 이거 감 하나님이 뭔가를 감춰 놓으셨는데 이것을 우리가 찾아내서 내 것을 만들어야지 이 새 일을 행하시는 데에 참여하는 새로워지는 데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뭔가를 감춰놓으시고,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찾아내는 것은 왕의 영화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거를 감춰놓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자꾸 찾아내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겠습니다.
요즘에 이렇게 과학이 자꾸 발달되니까 땅속에 묻혀 있던 이런 놀라운 이 보물 자원들이 하나씩 하나씩 자꾸 발견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런 가치 없는 것, 그러고 그냥 무관심하고 넘어갔던 것들인데 요즘에는 그것이 참으로 귀한 것이고 값비싼 것에 깨달아져가지고 이것이 큰 자원이 되고 무기가 되는 것이 돈이다. 그래서 세상이 새로워져요. 옛날에 석유라는 것을 누가 알기나 했겠습니까? 중동지방에서 많은 석유가 나는 것을 중동 지역 사람들은 이 석유를 캐내서 팔아 어마 어마한 부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북한에는 광산이 많고 광물이 많이 있지만 북한 사람들은 기술이 없으니까 이것을 캐내지 못하고 중국한테 팔아 먹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막 분통이 터지는 일이죠, 그런데 전에 탈북민 두 명이 우리 집에 와서 한 달 정도가 여름 방학에 와서 있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남한에는 어떤 보물을 땅 속에 숨겨두셨는지 그 누가 알겠느냐 지금은 북한에만 광물이 많이 있는데 그것을 캐면 어마 어마한 돈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남북 통일되면 우리는 큰 부자가 된다
지금 우리 남한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어떤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누가 알겠느냐 그랬더니 이 녀석들이 비웃더라고요, 그런데 요즘 이 석탄에서 석탄을 가지고 석유 만들어 내는 법을 우리 한국 사람들이 연구해냈어요.
.그런데 강원도에 삼척에 이 석탄이 어마어마하게 묻혀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강원도가 기름 위에 둥둥 떠있는 그런 곳이라고 하는 거예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발명해내지 못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석탄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기술을 지금 만들어 내서 앞으로 강원도에서 석탄을 가지고 석유를 뽑아내기 시작하면 한국은 세게적으로 유명한 1등가는 석유의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깨닫지를 못해요, 하나님은 얼마나 엄청난 곳을 숨겨두셨는지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만 잘 의지하고 살면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 속에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데 이 땅속에 이런 보물을 숨겨두셨다는 말은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우리 육체 속에도 하나님이 엄청난 보물을 숨겨두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보물 덩어리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가서 내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에서부터 보화가 너에게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이 보화가 우리 속에 다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뿐이죠.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깨닫게 해주시는 영을 부어주시고 이것을 알게 하시면 우리 속에 있는 놀라운 보화를 캐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가 가난하게 살고 문명이 발달되지 못할 때에는 우리 사람들 속에 감춰져 있는 놀라운 재능을 캐내지 못해서 이거를 발전시키지 못했어요.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까 미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이 각자에게 들어있는 재능을 찾아내고 그 재능을 발전시키고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한국에도 유명한 축구선수가 나왔다 탁구 선수가 나온다 이렇게 스케이팅 선수가 나온다 이거 다 가능한 나라에서는 이런 거를, 이런 것을 찾아낼 수 있는 기회도 없고, 그것을 찾아주는 사람도 없고 이러니까 그냥 묻혀 있는 거예요. 옛날 분들은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써먹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살다가 가난하게 살고 어렵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오늘날 세상은 이런 것을 발견해내고 찾아내서 발달시킬 수 있는 이런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고, 옛날보다 훨씬 발달된 세상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별거 아닌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다 보물들입니다. 학교에서 공부 1등하는 사람만 보물이 아니고 꼴등하는 사람 속에도 엄청난 보물이 들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서로 존중해주고 그 사람들이 가진 재능을 살려주며서 하나님 앞에 갑지게 쓰임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신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새 일에 동참되어 새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아름다운 일꾼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면 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전부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들이 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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