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 찬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또한 어린 우리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 배려해주신
많은 것들이 우리 가톨릭 안에 가득합니다. 성사는 물론이고 준성사, 전례력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당신의
선물 중에서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묵주 기도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매년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정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놓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특히 10월 7일은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정해 묵주기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묵주기도는 역사를 통해 입증된 묵상기도 방법이며, 여러 세기에 걸쳐 교황들이 추천한 기도이고, 성인들이
날마다 바친 기도입니다.
모든 이가 사랑하는 묵주기도의 기원은 초기 교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묵주기도를 의미하는 라틴어
로사라움(rosarium)은 '장미 밭'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로사리오(rosario)는 '장미 꽃다발' 또는
'장미 화관'을 뜻합니다. 당시 이교인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영향을 받은 초대 교회 신자들은 기도 대신 장미 꽃다발을 바치기도
하였으며, 특히 박해 당시 신자들은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에 끌려가 사자의 먹이가 될 때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썼습니다. 이때 박해를 피한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 관을 한데 모아 놓고,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 가지씩 바쳤다고 합니다.
한편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나 수도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시편을 매일 외웠는데, 작은 돌멩이나 곡식을
둥글게 엮어서 하나씩 굴리며 기도 회수를 세었다고 합니다. 이때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편 대신 주님의
기도를 그 수만큼 바쳤는데, 수를 셀 때 불편했기 때문에 열매나 구슬을 150개를 노끈이나 가는 줄에 꿰어
사용했습니다.
12세기 삼종기도의 보급과 함께 성모 신심이 널리 퍼지며 시편 대신 성모송을 외우기도 했는데 이를 성모
시편이라고 했고 그 후 열 번째 묵주 알을 좀 크게 만들어 후렴 삼아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기쁨을 같이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3세기부터는 영광송이 삽입됩니다.
그 당시 알비파 이단 세력이 교회를 위협하여 툴루즈 지방을 침략하자 성 도미니코는 묵주기도를 적극
권장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마리아 환희에 대한 묵상을 '묵주 기도'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대체로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묵주 기도가 등장한 것은 15세기 경 입니다. 150번의 성모송을 연속적으로
바치면서 예수나 마리아의 생애 가운데 중요한 순간들을 묵상하는 '도미니코 묵주 기도'입니다. 1464년
그 신비를 도미니코 수도회의 알랑 드 라 로슈(Alan de la Roche) 수사는 환희, 고통, 영광 등의 세 묶음으로
나누었는데, 그 후 급속도로 퍼져 나가 15세기 말 경에는 전통적인 신비 15단이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로사리오(묵주 기도) 성월을 10월로 설정한 것은 로사리오 축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6세기 루터와
추종자들에 의해 교회가 분열된 틈을 타서 터키의 이슬람교도들이 로마를 정복하기 위하여 침공해 왔는데,
이때 교황 비오 5세(1566~1572)는 모든 그리스도교 국가의 제왕들과 함께 공동 방어를 다짐하고 연합군을
편성하였습니다. 1571년 10월 7일 성모 마리아의 묵주 기도를 바치며 전쟁터로 나간 그리스도교
연합군들은 고린토만의 레판토(Lepanto)에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한 비오 5세는 해마다 10월 7일에 로사리오 축일을 거행하였습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전역과 전 세계에 퍼진 각종 사상적 오류와 이단,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에서의 질서의 혼란과 사상적 변혁은 교회에 커다란 위기와 위험을 초래하였습니다. 이에
레오 13세(1873~1903) 교황은 과거 12세기경 알비파 이단으로 인하여 교회가 큰 위기에 빠졌을 때
묵주 기도 운동이 발휘한 힘과 효과에 대해 설명하면서 로사리오 성월을 정하고 설정 동기를 밝혔습니다
바오로 6세(1963~1978) 교황은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 Marialis Cultus]에서 "묵주 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자 구원적인 강생에 집중하는 기도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끝없는 찬미"이고, "묵주 기도야 말로
순수한 기도요 그 내용은 오로지 성서적이며, 구원의 역사에서 성모님이 하시는 여러 가지 역할을 잘
드러내고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46항). 결국, 묵주 기도 신심은 사람이 되시고 만인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모 마리아와 함께 관상하는 것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 함께한 성모님과 성모님의 경험을 통하여 그분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염경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묵주 기도의 신심 전파는 1830년 이후 파리에서 묵주기도의 신비를 상징하는 15개의 보석으로
꾸며진 반지를 끼고 발현하시고, 라 살레트(La Salette)에서 머리와 가슴 그리고 발에 묵주 알을 상징하는
오색 찬란한 장미로 만든 화관을 두르고 발현하였으며, 1858년 루르드(Lourdes)에서 발현하였을 때는 묵주를
가지고 나타나 성녀 벨라뎃다에게 직접 기도를 가르쳐 주기도 하시면서 강한 믿음이 형성되었습니다. 이에
1883년 교항 레오 13세는 산업화로 인한 급격한 변화와 혼란에 빠진 세계 평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묵주 기도들 바칠 것을 호소하였고, 비오 10세(1903~1914) 교황도 묵주 기도만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도 없다면서, 묵주 기도를 사랑하고 매일 정성스럽게 바치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이를 뒤받침
하듯 1917년 파티마(Fatima)에서 6번이나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매일 묵주 기도 15단씩 바치면 전쟁이
끝나고 죄인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중 세 번째 발현 때는 '파티마 구원의 기도'를 하라고
하셨으며, 마지막 발현에서 자신을 "묵주 기도의 어머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2002년 10월 요한 바로로 2세 교황은 교서 [동정 마리아의 로사리오]를 발표하고 빛의 신비를 추가합니다.
이에 따라 묵주기도 20단을 바치면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온전하게 묵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묵주 기도는 우리의 말하기와 듣기를 필요로 합니다. 이 기도는 우리 마음 안에서 우리 감정을 자극하며,
우리의 가장 민감한 부분 중 하나인 손가락 끝을 통해 바쳐집니다. 그리고 묵주에 달린 십자가을 통해
예수님을 보면서 기도한다는 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루카 24,39)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어서만 만족하려고 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예수님의 숨결을 느끼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 연습하는데 묵주 기도만큼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주님!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묵주를 들고 소리내어 기도문을 외우고 또한 그 기도를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달리신 십자가와 성모 마리아를 보면서 우리가 항상 두 분과 함께 함을 굳게 믿으며,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에서 하느님과 아담의 손가락이 맞닿아 생명이 전달되듯, 묵주 알을 통해 주님과
저희의 손가락 끝이 맞닿아 당신을 느끼고 새생명에 들며 묵주 기도 안에서 만난 당신과 평생을 통해
묵주 기도 안 예수님의 신비와 함께 하신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에 흠뻑 취하게
이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