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을 찾은 108 산사 기도회
본국에서 새로운 신행운동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도선사 주지 선묵 혜자스님이 이끄는 ‘108산사 순례 기도회’의 스님과 회원 300여명이 지난 2월 23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전세기를 이용하여 네팔을 다녀왔다. 이번 순례에는 혜자스님을 비롯하여 김용사 회주 자광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 부의장 동광 스님, 안동 봉황사 주지 보인 스님, 경국사 주지 정산 스님 뉴욕 도선사 주지였던 도갑스님등이 참가했다. 20여년을 뉴욕에서 활동한 뉴욕 도선사 도갑스님은 작년부터 삼각산 도선사 대중스님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순례팀의 주요 멤버로 활동중이다.
이번 행사는 2개의 목적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에서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시고 법회를 봉행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에서 개교를 앞둔 선혜학교 현판식 참석이었다. 지난 2006년 9월 첫 순례 이래 ‘108산사 순례회’가 해외에서 행사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미주순례법회를 혜자스님에게 문의하였지만 미주는 너무 멀고 비용이 많이 들어 할 수 없다고 한다.
네팔 정부의 공식초청으로 이루어진 이 행사의 첫 공식행사로는 23일 수도 카투만두에서 ‘선혜 초등학교와 어린이 집’ 개원식을 하고 현판식을 가졌다. 혜자스님은 개원식에서 “108명의 어린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게 돼 기쁘다”고 말하고 이 학교의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현판식에서 람하리 조쉬 선혜학교 초대교장(前 네팔 교육부장관·72)은 “네팔의 미래가 바로 이어린이들의 질높은 교육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학교 개원은 네팔로서는 국가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이번 학교 개원은 한국과 네팔, 두 나라 사이의 친교에 굳건한 다리가 되리라 믿는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내달부터 108순례 기도회는 매월 300여 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선묵스님은 현재 네팔에는 40여개의 한국선교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 불교계 활동은 이에 비해 아주 미약하다고 말했다.
개원식에 이어 크라운 플라자 솔티 호텔 만찬장에서는 네팔 정부의 환영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그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네팔 수상(87)은 축사를 통해 “현재 네팔은 과거 갈등의 시기를 지나 결연히 앞으로 나아가려는 평화의 시점에 와 있다”며 “이번 108산사 순례기도회원들의 방문은 네팔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자비의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인사말에 이어 코이랄라 수상은 이번 행사를 이끌고 있는 혜자 스님에게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평화훈장을 수여했다. 이날 공식 만찬 행사에는 네팔 국회의장을 비롯해 촉기 님마 링포체, 외무부장관 등 20여 주요인사가 참석했다. 또한 이날 행사 장면은 네팔 국영TV 뉴스와 신문에 보도되는 등 다수 현지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다음날(24일) 새벽 카투만두에서 버스로 12 시간을 달려 룸비니로 이동한 순례단은 한국절인 대성석가사에 여장을 푼 뒤 밤 9시부터 ‘세계평화염원 촛불법회’를 룸비니동산에서 봉행했다. 룸비니 성지는 넓은 구역을 공원화해 정리해 놓았는데 주변에는 세계 불교국가에서 세운 30여 사원들이 있다. 이중 대성석가사가 가장 큰 규모다.법회 장소는 마야부인이 룸비니동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산기를 느껴 출산을 하고 몸을 씻었다는 연못이었다. 순례 회원들은 깨끗이 정리해 놓은 사각형 연못에 1m 간격으로 촛불을 세워놓고 <반야심경> 등을 독경하며 세계평화를 간절히 발원했다. 이 자리에서 김용사 회주 자광 스님은 법문을 통해 “오늘 우리 앞에 켜져 있는 수많은 촛불들이 뿜어내는 이 빛들은 자비광명의 화신”이라며 “온 우주의 시방세계로 퍼져 평화의 기운이 곳곳에 정착돼 이 사바세계가 불국토로 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셋째날(25일) 부처님 진신사리 이운 법회였다. 인도 쿠시나가르(열반지)에서 이운된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셔 놓고 혜자 스님의 집전으로 법회를 봉행했다. 룸비니에서 출생하시어 인도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이 해동사문 선묵 혜자스님에 의해 법체인 사리로 255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혜자 스님은 “이번 진신 사리는 지난 1월 쿠시나가르 열반당 주지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라며 “생전에 고향인 이곳 룸비니를 항상 그리워하셨던 부처님 진신을 탄생지로 모신 것은 부처님 열반 이후 세계불교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는 말을 현지인들에게 들었다”고 사리의 내력을 설명했다. 이운 법회 후에는 룸비니동산 근처 특설무대에서 사하나 프라단 외무부장관을 비롯한 네팔불교도연합회와 지역 주민 등 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네팔 합동 법회를 봉행했다.
반야심경 독경, 석가모니불 정근, 108산사 발원문 그리고 혜자스님은 “부처님의 고향 방문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부처님의 귀향을 계기로 세계평화와 네팔의 안정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108산사 순례기도회는 네팔 제2의 도시 포가라에서 설산 및 방생법회를, 네팔 최고의 사원인 카투만두 스와얌부사원에서는 합동법회를 진행하는 등 다수의 법회를 봉행했다. 모두가 한국과 네팔을 비롯해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자는 것이 이 법회들의 주제였다.
이번 순례에서는 참석자들의 눈물을 자아낸 가슴 뭉클한 행사도 있었다. 2월 15일 충남 마곡사에서 열린 ‘108산사 순례 기도회 농촌여성 결혼 이민자 108인연 맺기 행사’서 인연을 맺은 네팔의 두완사리따(35·여)씨가 양어머니인 순례기도회원 이연수 보살(70)과 함께 네팔 친정 부모를 상봉하는 장면이었다.
2004년 공주로 시집온 이후 고향 방문은 처음이라는 두완사리따씨는 친정어머니를 만나자마자 “한국에서 인연 맺은 양어머니의 보살핌으로 편안하게 잘 지낸다. 울지 말라”고 말해 행사장 분위기를 잠시 숙연하게 했다. 이 광경을 지켜 본 선묵 혜자 스님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늘 참 보람을 느낀다”며 “사회적으로 소외되거나 어려운 이들에게 인연을 통해 삶의 희망을 주는 108인연 맺기는 불교의 실천행을 가장 잘 행하는 일로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님은 “내달부터는 쿠시나가라에서 이운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108산사 순례기도회를 여법하게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계획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