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천강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서영 시인의 두번째 동시집 『너, 정체가 뭐니』. “마음에 보석처럼 새겨지게/ 한 글자씩 반짝이며 보내”(「문자 배달부에게」)주려는 순정한 마음으로 독자에게 다가갑니다. 한 발 한 발 꼼꼼하게 아니 무심한 듯 스쳐지나갔다 다시 돌아와 살펴보게 되는 이서영 시인의 집에는 따스한 기운이 가득합니다.
저자 소개
이서영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부산항이 한눈에 보이는 수정동 산만디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늘의 비밀을 엿보는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하며, 약하고 작고 여린 존재를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2013년 천강문학상 아동문학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동시집 『소문 잠재우기』가 있습니다.
책 속으로
벌은 노란 꽃 찾고 나비는 흰 꽃 찾으면
꿀을 두고 서로 다툴 필요 없지.
너는 그림 잘 그리고 나는 노래 잘하니까
누가 대단한지 서로 다툴 필요 없지.
-「참, 쉽지」 전문
산복도로 가는 빠른 길 찾다가 잘못 들어와 한숨 쉬는 사람들
표지판이 없는 탓이라고 투덜거리면 속상해요.
막힌 골목이지만 구경거리는 많아요.
골목 안 끝 집 석류나무 졸고 있는 삼색 고양이 올망졸망 다육이 화분 담벼락을 오르는 덩굴손
금방 되돌아나가지 말고 볼거리 하나씩 찾아보세요.
어쩌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왔다면 한숨 쉬지 말고 한숨 돌리고 가세요.
-「막다른 골목에서」 전문
엄마가 만들어 준 목도리 올해도 꺼냈다.
한 번만 돌려 감았더니 어느새 풀려있는 목도리
언제나 두 번 돌려 감고 꼭 묶어주던 엄마
엄마의 단단한 손이 없으니 나도 풀어진다.
-「엄마 없는 날」 전문
엄마에게 혼나고 방문 잠그고 있다가
통화하는 소리에 귀를 세웠어.
내 이름이 들려 방문에 바짝 귀를 댔지.
-영모가 옆에 없어서 하는 말인데 엄마 목소리가 작아지자 내 귀는 쑤욱 더 커졌어.
순간 귀에 쏙 들어온 말 -우리 영모가 있어서 든든해.
방문 열고 힘차게 말했어. -엄마,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칭찬의 힘」 전문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버스가 인사해요.
내릴 땐 하차입니다 헤어지기 서운하다고 다른 버스에서 만나자고 인사해요.
-「예의 바른 버스」 전문
부탁할 게 있어 현지에게 보낼 건데 깨똑깨똑 소리 내지 말고 전해줄래?
썼다 지웠다 고르고 골라 보내는 문자 현지 마음에 보석처럼 새겨지게 한 글자씩 반짝이며 보내줄래?
열두 살 인생 처음 보내는 고백 문자 뭔가 달라야 할 것 같거든.
-「문자 배달부에게」 전문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어야 도착하는 집
동시를 쓰면서 주문처럼 말했지요. 웃을 일이 많아진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분명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힘겨울 때 글쓰기가 희망이 된다는 것도 알았어요. 내일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오늘 절망하지 않기를, 사소한 행복이 자주 일어나기를, 모두가 동심으로 행복한 꿈꾸기를 소망합니다.
-「시인의 말」 부분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수정동 산만디 이서영 시인 집을 찾아가려면 좁다란 골목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발걸음을 내디뎌 봐야 합니다. 2013년 천강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은 꼬불꼬불 골목길을 오가며 자주 하늘도 올려다 보고 부산 바다도 바라보았습니다. 이 첫 동시집에 소박하지만 따스한 시들을 담기 위한 느린 발걸음들. “산복도로 가는 빠른 길 찾다가/ 잘못 들어와 한숨 쉬는 사람들” 사람들은 빠른 길을 좋아합니다. 그 조급한 마음을 “금방 되돌아 나가지 말고/ 볼거리를 하나씩 찾아보”라고 뾰족한 마음 조금 순하게 만들어 보라고 타이르는 가느다란 골목길. 그리고 그 골목길을 풋풋하게 채우고 있는 “석류나무, 삼색 고양이, 다육이 화분, 덩굴손” 같은 작은 생명들을 지긋이 바라보라고. 그 눈길이 순해져서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잊고 있을 때 마침내 도착하게 되는 시인의 집. 이 동시집은 그래서 한 발 한 발 느리게 더듬어 찾아간 시인의 집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