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요 15:7-16절
제 목 : 예수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으라5
일 시 : 2024. 5. 29.
요한복음 15:7-16/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잠27:10/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주시는 진짜 교훈은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잘 사귀라는 말씀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형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신속하게 영향을 주고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이웃은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매사에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먹을 것이 생겨도 멀리 떨어져 있는 형제는 나누어 줄 수가 없습니다. 마음 뿐입니다. 그러나 가까운 이웃끼리는 쉽게 나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까운 이웃을 잘 사귀고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이웃은 부부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같은 교회 성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10: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는 경우에 따라서는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가족이 원수가 될 수 있고, 같은 교회 성도가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까운 이웃이란 가까이에 사는 사람일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답은 예수님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친구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보다 더 가까운 이웃과 친구는 없습니다. 부부관계나 가족관계에서도 나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은밀한 대화를 예수님과는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가장 가까운 이웃과 친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의논하고 도움을 구할 대상이 없습니다. 앞뒤 좌우로 사방팔방으로 다 막혀 버립니다. 그래서 성도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예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거나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시73:27-28/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합니다. 그리고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멸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께 가까이 한다는 것은 주님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친구로 삼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주님과의 관계는 점점 더 깊어져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는 정지상태로 있어서는 안되며 퇴보하거나 후퇴해서도 안됩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계속해서 발전해야 하고 친밀하고 더욱더 깊어져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자신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서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더 깊어지기를 요구하십니다.
사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전진합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들을 더욱더 타락시키고 더욱더 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고 멸망의 때가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남은 기간 동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사람을 타락시키고 고통을 주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처음 범죄했을 때만해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정도 밖에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시대가 되었을 때에는 벌써 동성애가 온 세상에 펴졌습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악해졌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물로 심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은 계속해서 점점 더 악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처럼 그렇게 예수님과 성경말씀과 영적세계를 아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면 그런 사람은 마귀의 장난에 놀아나게 되고 마귀에게 이용당하다가 아까운 인생을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연륜이 더해지면서 영적인 깊이고 높이와 넓이와 길이가 더욱더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 다양한 성경지식과 경험들은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더욱더 풍성해지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떠난 상태에서 어떤 성경지식이나 체험들도 그것이 유익하지 않습니다. 모든 체험, 모든 지식, 모든 능력, 모든 은사들은 전부가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알아지고 얻어지고 발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에서 다루고 있는 예수님과의 더 친숙한 관계에 관한 마지막 말씀입니다.
1. 나의 종이 아니라 친구가 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가 주인과 종의 관계로 머물러 있지 않고 친구의 관계로 발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의 종이 아니라 친구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금까지는 너희들과 나와의 관계가 주인과 종의 관계였다면 이제부터는 친구의 관계가 되었고 또한 친구의 관계로 발전되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바라시는 소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 중에서 주종관계는 정말 서로에게 피곤합니다. 피동적이고 수동적입니다. 시켜야 순종하고 또한 시키는 것만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하고 시키는 것만을 하는 단계입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키는 것만을 하고 시켜야만 일을 하는 그런 기계적인 관계를 뛰어 넘어서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일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눈빛만 바도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신뢰하는 친구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알게 해 주시는 친밀한 관계가 된다는 뜻입니다. 친구관계가 되면 주님께서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려 주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함께 누리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종에게는 비밀을 알려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것만 누리게 합니다.
2. 어떻게 하면 주님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13-14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1) 먼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예수님께서 친구될 제자들과 우리들을 위해서 행하실 십자가의 죽음을 염두에 두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저와 여러분들을 친구라고 생각하시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겠다는 말씀이며, 그것이야 말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① 첫 번째는 예수님은 나같이 죄 많고 부족한 사람을 자신의 친구로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믿어 주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주셔서 사도라는 직분을 맡겨 주셨다(딤전1:12)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은 원수된 우리를 자신의 친구로 여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풍성한 은혜입니까? ② 두 번째는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라고 하심으로 예수님께서 원수된 우리를 친구처럼 생각하셔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의 행위였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으로 사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주님의 의도를 깨달을 때 주님의 친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나같은 사람을 주님의 친구로 삼아 주시고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그 놀라운 사랑에 감격해서 저절로 주님의 친구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주님의 놀라운 사랑이 나를 강권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원해서 주님의 친구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는 정상적인 부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부부를 제외하고 부부보다 더 친밀한 관계가 없고 더 친한 친구도 없습니다. 부부는 모든 것을 함께 누리고, 모든 것을 함께 경험하고, 모든 것을 함께 아는 특별한 관계입니다. 슬픔도 고통도 기쁨도 즐거움도 쉬운 일도 힘든 일도 다같이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부부보다 더 가까운 친구관계는 없습니다. 만약 부부보다 더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결혼한 부부 사이를 갈라 놓게 되고, 서로 갈라서게 만들 것입니다.
2)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주님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14절에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부같은 친구가 되는 비결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의 친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자신의 친구라고 불렸습니다. 구약시대에 이보다 더 하나님과 가깝고 친밀한 관계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님은 신부같은 친구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모든 비밀을 함께 나누는 친구를 의미합니다. 신부같은 친구, 즉 주님의 신부가 되는 길은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는 것은 어떤 핑계도 되지 않고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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