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풍경을 줍다
허 영미
어둠, 시침이 새벽 3시에 가까워지며 잠시 틈새에 걸터앉는다.
성황당 느티나무도 깊은 잠에 빠져 코를 드렁드렁 골고 있다.
세상도 가로등 불빛 가시거리만큼만 열려있다. 카스테레오에서 제목모를 영화음악이 흘러나온다.
단절斷絶이다. 창 밖의 너는 너대로 거기 있을 뿐, 이순간은 서로를 갈망하지 않는다.
개 짓는 소리도 멀고, 아기 울음소리 같은 발정發情난 고양이의 숨 넘는 소리도 어둠 너머에 있다.
적막을 뚫으며 좁게 열린 불빛을 비집고 들어오는 불청객 따위는 없다.
음악은 끊이지 않고 계속 흐른다. 미동도 없는 풍경 뒤로 길은 지워져 있다.
휘적휘적-
지팡이를 앞세우고 지워진 풍경을 다시 그리며
누군가 오고 있다
겨울과 맞서며 얇은 마스크를 착용한
반신 불구의 사내, 곡진한 저 생명이 흔들리는 길을 바로 잡으며 걸어오고 있다
극구 버티는 어둠을 안간힘으로 밀치며
새벽을 심호흡으로 당겨내는
東山 약수터로 가기위해 아주 더딘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목적지에 닿을 즈음 먼동이 틀 것이다
날마다 지워진 풍경을 그렸을 저 사내의 몸 붓, 많아 닳아 있다
지금, 꼼짝없이 나는
눈으로 주운 풍경을 있던 자리에 끼워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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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살구꽃
허 영미
불 지피고 싶네
화르륵, 불 질러 버리고 싶네
내 안의 붉고 푸른 카오스의 넋, 온통 살아나 불나비로 훨훨 날 때
덩실덩실 불춤을 추는 저 목신木神,
니가 내안에 집을 짓고 난 이후부터
나 더 이상 참지 않으려네.
봄물 찰랑찰랑 무논의 수위, 나 오늘은 그것마저 넘어 버리려네.
어쩌지 못할 저 불그락, 불그락
담을 넘는 봄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