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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듯 주먹에 모래를 쥐고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어도 어느새 모래는 허망하게 흘러내린다. 빈손이었을 때 허탈함과 상실감은 차곡차곡 쌓여 상처가 되거나 굳은 살처럼 마음속에 박힌다. 50대 싱글녀에게 새로운 사랑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손을 놔버리기도 어렵다. 그게 인생이니까.
‘돌싱’인 글로리아(줄리안 무어)는 50대의 아름답고 당당한 캐리어우먼이다. 슬하에 장성한 두 자녀를 두었다.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그래서 퇴근 후엔 종종 LA의 한 클럽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 날 글로리아는 클럽에서 역시 이혼남인 아놀드(존 터투로)를 우연히 만나 함께 진한 밤을 보낸다. 아놀드 역시 이혼했지만 여전히 그를 의지하는 전처와 두 딸에 대한 책임감을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놀드를 놓치기 싫었던 글로리아는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점차 사랑 비슷한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글로리아 벨'은 5년 만에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첫 작품은 칠레의 산티아고를 배경이었지만 이번엔 LA로 무대배경을 옮겼다. 하지만 산티아고이든, LA이든 아니면 서울이라도 50대 여성의 보편적인 정서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글로리아' 역시 마음은 20대다. 얼굴엔 자글자글한 주름을 완전히 감추지 못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중년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친구 같은 딸이 "그 나이에 아직도 연애를 생각해?"라고 눈총을 주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랑에 대한 열망을 감추지 않는다. 그녀에게 잃어버린 자신의 존재이유는 사랑이라고 굳게 믿는 듯하다.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은 "자신의 삶과 주위의 환경에서 점차 투명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는 그녀들의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고, 세상에서 이 나이의 여성들이 겪는 일이 정말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것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원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세상은 온통 해피엔딩으로 가득차 있을 것이다. 글로리아에겐 실망스럽고 뒤틀린 인생일지라도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목숨을 걸고 험한 파도를 타는 서퍼를 사랑하게 된 딸이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스웨덴으로 떠나는 것처럼. 줄리안 무어는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짙은 외로움과 사랑과 기쁨, 절망과 희망을 마치 자기인생처럼 절절하게 녹여냈다.
뮤지컬 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귀에 익숙한 팝송도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글로리아 게이너의 '네버 캔 세이 굿바이'부터 미국의 R&B 재즈 밴드 어스 & 파이어의 '셉템버', '레츠 그루브', 폴 매카트니의 '노 모어 론리 나이츠', 보니 타일러의 '토털 이클립스 오브 더 하트'등 글로리아가 출근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차 안에서 흘러나오거나 클럽에 등장한다. 글로리아의 마음을 시시각각 담고 있는 곡들이다.
물론 피날레는 로라 브래니건의 ‘글로리아’가 장식한다. 글로리아가 클럽에서 함께 춤을 추자는 낮선 남자의 손길을 거부하며 홀로 스테이지에서 춤을 출 때 흘러나오는 곡이다. “아침에 태양은 떠오르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만 다시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스크린에 엔딩 크레딧이 떠도 그 노래는 자석처럼 관객을 붙잡는다.
출처/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영화리뷰.
첫댓글 시시각각 변덕이 심한 세상살이
곧 다가오는 50대를 위해
마음에 힐링 바람을 넣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