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탕에 들어가면 무슨 죄일까? 방화죄. 이유는 남자의 가슴에 불을 질렀기 때문에. 물론 오래되고 썰렁한 농담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진담이다. 만일 남자가 여자의 몸을 훔쳐볼 목적으로 가정집에 들어갔다면 무슨 죄일까. 정답은 주거침입죄다.
주거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이런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 조항 중 하나가 주거침입죄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주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조금 더 알아보자. 먼저 객관식 문제, 다음 중에서 주거침입죄에 해당하는 것을 모두 고르라.
① A씨는 친구 대신 대입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감독관의 허락을 받고 시험장에 들어가서 대리 시험을 봤다.
② B씨는 내연 관계에 있는 유부녀의 부름을 받고 남편이 출근하고 없는 그녀의 집에 가서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③ C씨는 야간에 다른 사람의 집 창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어 쳐다봤다.
④ D씨는 여자 화장실에 노크해 여성이 남편인 줄 알고 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계단도 범죄자에게는 '주거' 침입
정답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우선 주거침입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형법〉 319조
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 조항을 보니 주거침입죄에서 말하는 주거란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 항공기, 점유하는 방실까지 포함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주거는 집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별장이나 천막, 임시 거주지도 해당한다. 관리하는 건조물은 공장, 청사 등 건물을 일컬으며, 점유하는 방실이란 건물 중 지배·관리하는 부분, 즉 가게, 사무실, 호텔 방, 연구실 따위를 말한다.
또한 주거의 범위에는 정원, 주차장과 같은 부속물까지 포함한다. 최근 판례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공용 계단과 복도도 주거에 해당하기 때문에 성폭행, 절도 등 범죄를 위해 들어왔다면 주거침입이 성립한다.
그 다음에 주목할 단어는 '침입'이다. 침입은 주거권자의 의사에 반해 주거에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신체의 어디까지가 들어가야 인정되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판례는 신체의 일부가 들어갔더라도 주거의 평온을 해쳤다면 침입에 해당한다고 했다.
이러한 기본 지식을 토대로 지문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①번. 주거침입죄는 주인이나 관리자 승낙 없이 또는 추정된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경우에 성립한다. A씨는 감독관의 허락을 받고 들어갔다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법원은 "부정행위를 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승낙이나 허락을 얻어 들어갔다 해도 불법행위를 목적으로 들어간 때에는 관리인의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이라고 판시했다. A씨는 주거침입죄 말고도 대리 응시한 행위 때문에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도 처벌을 받았다.
②번의 B씨처럼 내연녀의 동의를 얻어 집에 들어간 경우도 주거침입일까. 여기서는 2명 이상이 사는 집에서 한 사람에게만 동의를 얻어도 되는지가 문제다. 법원은 거주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여러 명이 살 때는 다른 주거권자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사회 통념상 간통의 목적으로 주거에 들어오는 것은 남편의 의사에 반한다고 보이므로 처의 승낙이 있었다 하더라도 남편의 주거의 사실상의 평온은 깨어졌다"며 주거침입죄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친구의 집에 놀러 가더라도 친구 가족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법하다. 동의는 꼭 명시적일 필요는 없고 묵시적 동의나 추정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친구의 방문은 다른 가족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외도를 하기 위해 집에 들어왔을 경우에는 당연히 반대를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③번. 몸의 일부가 주거 공간으로 들어가는 경우에도 주거침입이 된다는 점은 앞서 얘기했다. 주거침입은 주거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 만든 죄라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판례는 "신체의 일부만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거주자가 누리는 사실상의 주거의 평온을 해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면 죄가 된다"고 했다. 야간에 타인의 집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행위를 한 C씨도 주거를 침입한 셈이다. 비슷한 사례로 피해자를 성폭행했던 남자가 대문을 몰래 열고 들어와 담장과 피해 여성의 방 사이의 좁은 통로에서 창문을 통해 방 안을 엿본 경우도 유죄가 인정됐다.
마지막 ④번. 여자 화장실 침입 사건이다. D씨는 흑심(?)을 품고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 있던 여성은 남편인 줄 알고 문을 열어 줬다. 이것을 승낙이나 동의로 볼 수 있을까. D씨가 성폭행할 의도로 들어간 것이라면 피해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낙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법원은 강도, 절도, 성폭행 등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주거에 들어가는 것은 일단 주거권자의 동의가 없는 것으로 해석해 왔다. 이 경우 역시 주거침입이다.
결국 법원은 4가지 사건 모두 주거침입죄로 인정했다. 주거침입죄에서 중요한 개념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주거는 집만이 아니고 사람이 관리하는 대부분의 공간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다. 또한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주거에 들어간 때에는 제지를 받지 않았더라도 주거권자의 동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주거침입죄가 된다.
〈사례 1〉
새벽 2시경 동네를 지나가던 호기심(남, 40대)씨. 주택가에서 샤워하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소리가 들려온 곳은 인근 빌라 열린 창문에서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빌라 1층 주차장 쪽으로 들어갔다. 주위 눈치를 살피던 그는 야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통해 여성이 샤워하는 장면을 훔쳐봤다. 깜짝 놀란 여성의 비명소리에 주위는 시끄러워졌고, 호씨는 붙잡히고 말았다.
호씨의 행동은 무슨 죄에 해당할까.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동안 판례에 비추어 보면 주차장도 주거의 부속물로 주거에 포함되고 창문을 통해 훔쳐본 것은 주거의 평온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런데도 왜 1심(2010년 12월 서울남부지법)은 무죄라고 했을까.
"주차장이 주거가 되려면 외부와의 경계에 담이 설치되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런데 이 주차장은 출입 통제 장치나 경계가 없었다. 또한 열려 있는 화장실 창문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본 점만으로는 주택에 침입하였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2011년 3월 항소심 법원은 유죄로 판단했다.
주차장 입구에 표지판과 주차금지 팻말이 놓여 있고, 옆 건물 담장과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정도면 경계로 볼 수 있다. 주차장 부지도 피해자의 주택 이용에 제공되는 위요지(주위토지)이므로 주차장에 들어와서 화장실을 훔쳐본 행위는 주거침입이다.
법원은 호씨에게 벌금 50만 원의 선고유예1) 형을 내렸다.
〈사례 2〉
원룸 주인인 방세만(가명)씨는 1층 원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입자는 월세도 안 내고 있어서 한 번 얘기를 나누려 했으나 가끔 새벽에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는 세입자를 만나기도 힘들었다. 방씨는 어느 날 작정을 하고 1층 원룸에 몰래 들어갔다. 비상용 보조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악취가 진동을 했다. 그는 곰팡이가 핀 침대, 텔레비전, 옷을 내다 버렸다.
몇 달 후 방씨는 세입자의 고소로 법정에 서게 됐다. 판사는 벌금 70만 원의 유죄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집주인이라고 해도 세입자 방에 마음대로 들어갔다간 주거침입죄를 면할 수 없다. 인도 소송을 통해 법원의 판결을 받거나 세입자의 동의를 얻어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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