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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지향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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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참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이때 잘못된 선택을 하면 아쉬움이 오래 남는다. 지식을 축적할 시기를 놓치면, 이를 회복할 기회는 여간해서 오지 않는다. 부지런히 일해서 재산을 축적할 시기를 놓치면, 노후에 후회하게 된다. 국가경제도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에 뒤지면, 잘나가던 국가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세기는 세계시장에 어떤 형태로 참여하느냐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던 시기였다. 그 당시 일본은 막부정치의 폐해로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조선도 세도정치로 잦은 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끝낼 기회를 먼저 잡은 것은 조선이었다. 고종이 등극한 시기는 일본의 명치유신보다 몇 년 앞섰다. 그러나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외면한 결과 세계시장에 참여하는 것이 일본에 비하여 20여 년 늦었다. 더욱이 조선의 국내 정치는 권력투쟁으로 미래를 준비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보낸 몇 십 년의 세월이 일본과 조선의 운명을 바꿔 버렸다.
한국은 식민지를 경험한 후에도 내전을 겪었다. 중국도 사정이 비슷하였다. 중국은 내전 후에도 사회주의 이념 때문에 세계시장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었다. 문화혁명 등 중국의 미래를 둘러싼 내부의 정치투쟁은 거대 중국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은 중국에 비하여 20여 년 먼저 세계시장에 진출하였다. 그래서 한국경제는 식민지의 고통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짧은 기간에 놀라운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 중국이 세계시장에 일찍 진출하였다면 한국경제의 성공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세계적인 선도기업인 삼성전자의 회장이 10년 후를 걱정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국제금융질서나 무역질서가 어떻게 전개될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증대가 한국경제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주변정세가 한국경제의 미래에 암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이 통일되어 힘이 커지면 그것은 주변국에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때에 따라서는 전쟁이 일어나거나 왕조의 교체가 일어났다. 오히려 중국이 내부적으로 분열되어 있을 때 주변국들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때가 많았다. 현재 급속하게 성장하는 중국경제가 한국경제에 위협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국경제와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정치가 경제를 제약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국과 북한, 북한과 한국과의 정치적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한국경제는 커다란 시련에 부딪칠지 모른다.
북한 권력의 불안정이 그 시발점이다. 우리가 북한 권력이 안정적으로 이양되기를 바라더라도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현재 북한 리더십이 갖는 한계다. 어떠한 방식으로 권력이 이동하더라도 새로운 권력은 군사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권력의 교체과정에서 군사력의 충돌을 야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중국이 어떠한 형태이든 개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에 따라 한반도의 주변정세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
세계시장과 동북아 정세의 흐름이 어떻게 되든 간에 이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으면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준비한다고 항상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피해는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정치는 다양한 의견을 통합하여 이에 대비하기보다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천안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하였음에도 이를 보는 여야의 시각은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있다. 1~2년 앞의 선거에 사로잡혀 미래를 대비한 리더십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회가 발전하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국가의 안전보장은 그 어떤 가치보다 소홀히 여겨질 수 없다. 미국의 우산 아래에서 무임승차한 평화에 익숙해지면서 대부분의 국민들은 평화가 그저 주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 나아가 경제적 번영도 국가의 안전보장 없이 달성될 수 없다. 여야를 떠나 무엇이 국가를 튼튼히 하는지, 이를 위해 시급하게 무엇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북한 권력의 변화는 국가안전보장뿐 아니라 한국경제에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기화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ckh8349@chonna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