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빛으로 오신 예수
요한복음 1:1~18
성탄절은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다시금 주목하게 해주는 절기입니다. 예수님 이전의 세상과 예수님 이후의 세상은 매우 다릅니다. 그래서 역사가들도 인류 역사를 B.C.와 A.D.로 역사를 구분합니다. 그것은 Before Christ(주님 이전)과 Anno Domini(주님의 날에)라는 뜻입니다. 주전과 주후의 날로 세상의 역사를 구분할 만큼 주 예수의 탄생은 중요합니다. 우리 각 사람의 인생도 둘로 나눕니다. 주님 만나기 이전과 주님 만난 후의 날로 개인 역사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주님을 만난 인생은 전혀 달라진 내적 변화, 질적 변화, 본질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주님 만나기 이전은 캄캄한 어둠 속의 인생이라면, 주님 만난 후에는 빛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예수님을 빛으로 상징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하신 말씀이 곧 예수님을 가리킨 것입니다. 어둠만이 자욱하던 이 세상에 예수님이 참 빛으로 찾아와주셨기에, 비로소 세상은 달라지는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참 빛으로 묘사했는데, 어떤 빛을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에 비추었을까요?
첫째, 생명의 빛입니다.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빛은 생명입니다. 태양 빛이 없으면 온 세상은 결코 생명이 살 수 없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들은 다 태양의 빛을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식물이던지, 동물이던지 마찬가지로 다 태양 빛을 다 의지합니다. 식물들이 빛을 봐야 광합성 작용을 통하여 생명을 얻을 수 있고, 동물과 사람도 빛이 있어야 식물이 살고 그것을 먹고 사는 초식 동물이 살고 그것을 먹고 사는 육식 동물도 살고, 그리고 잡식 동물인 사람도 살 수 있습니다.
실험을 했더니, 쥐를 빛이 조금도 비추지 않게 완전히 막아버린 캄캄한 상자 속에 넣으면 아무 것도 먹을 것을 주지않는 상황에서 3시간 만에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늘구멍만한 구멍을 낸 상자 속에서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 36시간이나 버티더라고 합니다. 바늘 구멍 만한 빛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입니다. 빛은 자연 세계 속에서도 이처럼 생명의 능력을 줍니다.
이처럼 영혼의 참 빛이신 예수님 역시 그를 영접한 자의 진정한 생명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정녕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그 삶 속에 생명의 빛이 비춤으로써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기어코 지옥 같은 환경을 이기고 천국을 만들어 내는 힘을 갖습니다.
여러 철학, 종교, 지식, 체험, 신념 등은 단지 반사된 빛이요 제한된 조건적 빛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참 빛이요 영원한 생명 자체에서 우러나온 생명의 빛이기에, 예수님을 모신 인생은 모든 생명을 삼키는 악조건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자, 그는 이 세상도, 죽음도, 그 어떤 상황의 어둠도 결코 압도하지 못하는 참 생명의 빛을 모신 자인 것입니다. 이 생명의 빛을 받은 자는 모든 악조건을 이겨낼 질긴 생명력을 갖습니다. 아무리 힘든 여건 속에서도 극복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까지도 살려내고 세워주고 길러내는 충만한 생명을 그 속에 가집니다. 우리 자신 안에는 이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꼭 연합하여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진대,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진액을 공급받아 반드시 온갖 시련의 세찬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끝내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둘째, 사랑의 빛입니다.
빛은 단지 빛의 입자만 전달하지 않고 온기도 전달합니다. 태양은 빛과 더불어 그 따스한 열기도 전달하여 온 세상의 추운 냉기를 몰아내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꾸어 살 수 있게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전달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5,37~39)
누구든지 사랑하는 만큼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그에게 내어주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은 그 만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랑의 빛입니다.
다른 모든 사랑은 다들 조건적인 면이 있습니다. 꽃이 향기로와서, 아름다워서 사랑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유익을 끼치기에 사랑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굳이 이유를 댄다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가장 하나님의 사랑에 근접합니다. 자식이 사랑스러운 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자식이기 때문에 그냥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내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조건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없이, 제한없이 비추는 온전한 사랑의 빛입니다. 하늘의 뜬 별은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비추어줍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유, 배운 자나 배우지 못한 자, 부자나 가난한 자나 상관없이 다 비추어줍니다. 자식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나가든지 상관없이 부모는 그 자식들을 다 조건없이 사랑합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아무런 차별없이 누구나 다 같이 사랑의 빛을 비추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그 심령 속에 창조주요 만왕의 왕이요 온 세상의 주인 되신 분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신뢰와 애정을 받음을 깨닫고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힘을 힘입어 온갖 고난과 역경도 넉넉히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사랑받지 못함 때문에 절망하고 탄식하며 낙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더 이상 외로움과 슬픔과 절망의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너끈히 뛰어넘을 수 있는 원천인 신적인 사랑이 그 속에 충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셋째, 평화의 빛입니다.
온 세상은 다툼과 경쟁 속에 살아갑니다. 남을 제치지 않고는 뒤쳐진다는 강박 관념 속에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심령이 지치고 곤비합니다. 불안합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많은 것을 얻었다 해도, 그것을 진정으로 누리지 못합니다. 잃은 것을 또 다시 다 잃어버릴까 하루 하루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지치고 곤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식과 평안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환난과 역경과 시련도 빼앗아갈 수 없는 깊은 내적 평안과 안식입니다. 이러한 평안은 초자연적인 평안이요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평안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변전하고 쉽게 전복되는 흔들리는 평안이 아니라, 그 어떤 재난과 역경도, 그리고 죽음까지도 감히 흔들 수 없는 평안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평안을 주시려고 우리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천사들이 베들레헴 목자들 앞에서 찬양할 때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라고 하였는데, 이 천사들의 찬양 가사가 그 뜻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속받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평화의 보루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에도 자기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그 평안을 믿음 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이 이 평안을 우리 심령에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 어떤 형편에서도 근심과 두려움에게 정복되지 않는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우리 심령을 지켜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비추는 참 평화의 빛 곧 평안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비추는 참 빛입니다. 생명의 빛이요 사랑의 빛이요 평안의 빛입니다. 이 빛을 영접하는 자는 캄캄한 죽음과 비정함과 불안함을 다 떨쳐버리고 충만한 생명과 사랑과 평안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5절 말씀처럼,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였고, 11절에도,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옛 말에, “태양이 아무리 밝지마는 덮어놓은 항아리 속은 비출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빛을 비추어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하고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평생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날마다 매순간마다 우리 심령과 생활 속에 하늘의 참 빛을 받아들여 우리 속에 찬란히 비추도록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내 삶의 모든 부분을 예수님께서 환히 자유롭게 비추게 하사 내 안의 모든 어두움을 다 내어쫓아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사망과 냉혹함과 불안과 두려움과 근심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천국의 빛이 우리를 통하여 환하게 비추어가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참 빛으로 오신 성탄의 예수님, 지금도 세상은 어둠이 강한 힘을 가지고 버티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전히 주의 빛을 깨닫지 아니하는 어둠이 깊고 깊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을 택하셔서 이 참 빛을 영접하게 하셨으니 빛의 아들 딸답게 이제 완전한 빛 가운데 행하게 하사 빛의 열매를 많이 많이 맺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둠과의 싸움에서 조금도 밀려나지 않고 어둠을 점점 몰아내는 빛의 용사로 더욱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