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창중 성추행 vs 황석영 간첩설 성추행당한 LA교포여성 1명 vs 성난자당한 광주 여성들 다수
지난주 한국일보, 세계일보, 문화일보 기자에 이어 전 청와대 대변인까지 역임 하였던 윤창중씨가 대통령을 수행한 방미기간중 LA에서 술에 잔뜩 취한가운데 교포여성의 엉덩이(?)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인해 마치 천지가 개벽한 것 같이 대한민국내 소위 말께나 하는 유명 지식인과 성직자연한 평론가들이 앞 다투어 비판성 발언들을 2주 내내 TV와 신문 등에 쏟아내는 통에 온 나라가 윤창중 얘기만으로 떠들썩하다.
또 다른 한편에선 5.18 광주사태(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즈음하여 ‘장길산’ 과 ‘손님’ 등 수많은 소설과 5.18관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기록물 까지를 저술한 우리 문화계의 거두(?)로서 2009년 5월에는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이명박대통령과 중앙아시아 순방에 까지 동행했던 황석영씨가 "김일성은 을지문덕 세종대왕보다 위대한 인물이다"라고 주장한바 있으며, 1989년~ 1991년 다섯 차례에 걸친 북한 밀입국 기간중 김일성을 일곱 차례나 친견하고 김일성으로부터 25만달러를 수령받았다" 면서 수많은 네티즌들이 트위터를 통해 배신감을 드러내는가 하면 "황석영, 간첩과 다를 게 무어냐" "정말 진실을 밝혀라" 라는 등 <황석영 간첩설>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시각으로 볼 때 윤씨와 황씨간에는 <모르쇠>라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나 그 <파급효과>의 면에서 볼 때는 엄청난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먼저 두 사람간의 공통점으로서 윤창중씨의 경우 본인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허리’ 툭침과 ‘속옷’차림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조사 받은 ‘엉덩이’와 ‘알몸’ 진술내용과는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해명을 않고 있다는 점이며, 황석영씨 또한 본인의 ‘김일성 인물’ 발언 여부와 김일성으로부터 ‘미화 25만불’을 실제로 받았는지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아직껏 일체 <모르쇠>로 함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윤-황씨 행실에 따른 <파급효과>면에서의 서로 다른 차이점은, 윤창중씨의 경우 외국여행이라는 들뜬 상태에서 술에 만취한 가운데 재미한국교포여성 한사람에 대하여 충동적으로 벌어진 우발적인 해프닝으로서 나중에 미국 경찰조사가 끝나는 대로 양자 개인간의 합당한 벌과 보상을 받음으로 끝나게 되는 ‘수류탄급 경미사항’인데 비해, 황석영씨의 경우에는 맑은 정신 하에서 6.25 남침전쟁을 일으켜 동족 30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대한민국 제1의 주적 북한의 수령을 찬양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찬양했던 바로 그 수령 김일성으로부터 간첩 공작금 성격의 엄청난 거금 25만불을 비밀리에 수령한 자칫 대한민국 파괴사건임으로 그 <파급효과> 또한 ‘핵탄두 메가톤급 대형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지 않아도 탈북자들의 증언과 북한자료에 따르면, 황석영씨는 북한 체류기간 중 북한의 대남공작용 5.18광주영화로 김일성을 ‘님’으로 상징하는 듯한 “님을 위한 교향시” 북한영화 제작을 위해 시나리오작가로서 온 몸과 정성을 바쳐 부역했으며, 윤이상은 동 북한 5.18영화의 주제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하여 깔아주는 부역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한다. 그러고 보면 오늘 광주에서 개최된 ‘제33주년 5.18기념식’행사와 관련 논란을 벌이고 있는 5.18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또한 황석영이 작사한바 있어 황석영이 작사한 <임을 위한 행진곡>과 황석영이 김일성을 ‘님’으로 상징하는 듯한 시나리오를 쓴 북한의 5.18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상의 똑 같은 ‘님’의 성격과 의미에 대해 비판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작금의 현상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또 한가지 의문되는 사항은 엄연히 대한민국 광주에서 “지적소유권(?)”을 갖고 있는 5.18사태(민주화운동) 영화를 굳이 북한의 김일성이 남한의 황석영을 불러 시나리오까지 쓰게 하고서 남한보다도 15년이나 먼저 북한에서 ‘광주 5.18영화’를 만들어 북한주민을 상대로 상영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불가사의’적인 의문이다. 물론 김일성이 황석영에게 25만불을 준 목적과 그 용도에 대한 의문과 함께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 5.18영화와 똑 같이 남한 5.18영화에서 또한 15년후에 황석영이 시나리오를 쓰고 2007년에 개봉한 “화려한 휴가” 남한 영화가 북한의 대남공작 5.18영화 “님을위한 교향시”와 그 내용이 흡사하다는 점, 그리고 남한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계엄군의 ‘광주시청 앞 무차별 발포’를 비롯한 영화 주요 장면 장면을 사실과 다르게 왜곡함으로써 정부와 군과 민을 이간질 시킨 것과 황석영씨가 받은 간첩공작금 성격의 25만불 과는 어떠한 연관이 있지 않았을가 하는 강한 의혹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 모든 의혹에 결정적인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이번주 초부터 3회에 걸쳐 종편 TV방송들에서 장시간씩 생방송한 “5.18 특집방송”이다. 5. 13(월)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와 5. 15(수) 및 5. 16(목) 채널A에서 50분씩 방영된 ‘김광현의 탕탕평평’에서는 5.18때 광주로 밀파되었던 600 여명의 북한특수군 총책임대장(후에 북한 국방부차관까지 역임)을 비서로서 호위하였던 특수부대원으로 5.18 이후 북한으로 돌아가 북한최고의 ‘공화국 영웅’ 훈장까지 받은 후 다시 탈북하여 현재 분당에서 살고 있는 김명국(가명)씨의 육성 인터뷰 장면을 포함하여 많은 출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5.18사태 때 북한 특수부대 1개대대 병력이 광주에 침투하여 계엄군과 시민군 복장으로 위장한 가운데 광주전남지역에 산재한 44개의 무기고를 4시간만에 털고 6차례에 걸쳐 광주교도소를 습격하였을 뿐 아니라 무고한 광주시민들 등 뒤에서 총을 쏘아 죽이고 각종 만행을 저지르고선 이 모두를 계엄군의 소행으로 돌린 유언비어를 광주시민들에 유포함으로서 계엄군에 대한 증오감을 증폭시키고 무장폭동으로 유도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쇼킹한 사항으로서 상기한 5.18 특집방송과 탈북자들의 수기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실로는, 1980년 5.18당시에 국내 방송에서는 취재도 방영도 하지 못했었는데 반해 북한 TV에서는 매일 같이 실시간으로 광주에서의 폭동 실황이 생중계되었으며, 이 가운데에는 “젊은 광주여성의 유방을 절단하는 장면, 음부를 찌르고 헤집는 장면,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는 장면” 등 수많은 광주여인들에 대한 <성유린 살해>장면들이 계속 생중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 성유린살해장면 사진들과 함께 이 모두를 계엄군이 저질렀다는 유언비어들을 만들어 5.18당시 광주시민들에게 널리 유포하였다는 증언들이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호남인이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었으며 우리국민들의 아들로서 구성되었던 당시 계엄군이 광주여인들에 대해 그같이 짐승보다도 못한 만행을 저지를 리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여 볼 때 우리는 그 답을 북한특수군의 짓으로 단정지어도 하등의 무리가 없을 것이며,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광주시민을 선두로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가 취해야할 일은 하루 빨리 <광주 여인들에 대한 성난자 살해사건>의 “실체적 진상”을 파헤치고 남북한을 막론하고 관련자들을 색출하고 이들에 대해 응분의 처벌과 대가를 치루도록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국민의 알 권리와 “실체적 진실” 을 바라는 국민의 요망이 날이 갈수록 비등해지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를 실망시키는 두 가지 작태가 최근에 발생하였는바, 그 하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하에서도 이번에 용기있게 “5.18 특집”을 생방송한 'TV조선'과 '채널A'에 대해 격려는 못 할 망정 자유대한민국의 공당으로 제1야당인 민주당 대변인이 5. 14 구체적으로 하등의 잘못된 내용을 지적함도 없이 해당 종편 프로그램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겠다는 등 언론의 자유를 억압 협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바 있으며, 다른 하나는 최근 민주당 59명, 통진당 6명, 진보정의당 1명, 진보당 등 66명의 국회의원들이 은밀하게 발의해 놓은 이른바 “차별금지법”으로서 5.18을 폭동, 내란, 대남공작 등으로 부르지 못하게 하고, 빨갱이를 빨갱이, 좌익, 좌빨 등의 용어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간첩출신도 차별 없이 공무원에 임용해야 하고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인간들을 학교교사로 채용하자는 것으로서, 이를 문제 삼아 차별을 할 때 중벌을 내리자는 전대미문의 해괴망칙한 꼼수성 법이다. 따라서 향후로는 그 누구나 그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이라 할 지라고 “5.18의 실체적 진실” 규명과 국민의 알 권리를 방해하고 방송이나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억압하려는 반자유민주주의자들에 대하여는 국민의 이름으로 성토되고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구체적으로 응징 조치되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가 잠시 흥분을 가라 안치고 성숙한 애국민주시민으로서 LA교포여성과 윤창중간의 1:1 성추문사건은 미국경찰이나 사법당국에 맡겨두고서, 이보다 더 중대한 대한민국의 안보와 직결되는 김일성 공작자금 25만불 수령 등과 관련한 “황석영씨 간첩의혹사건” 진상조사처벌 유관조치와 33년전 북한특수부대원 의심괴한들로부터 이유 없이 성을 난자당해 살해된 수많은 젊은 광주여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600:10여명 “광주 여인들 성난자 살해사건” 진상규명과 관련자 색출 처단을 위해 광주시민을 비롯한 국민 모두와 군과 정부가 합심 협력하여 중점적으로 신속한 조치를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링컨 미대통령이 "여러분은 모든 사람들을 잠시 동안 속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항상 속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항상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라고 말 했듯이 이제 대한민국도 탈북자 수가 2만명을 훨씬 넘어선 현 단계에서 북한주민 모두가 알고 있는 ‘북한특수군의 5.18 침투공작사실’에 대해 더 이상 남쪽에 있는 우리 국민들 모두를 계속하여 속일 수 없게 되었다 할 것이다.
이와 관련 “5.18의 실체적 진실”을 하루속히 파 헤치기 위한 방안으로 필자는 KBS 나 MBC 나 SBS 공중파TV가 단독 특종 형태를 취하거나 3개 공중파방송 공동으로 시급히 <5.18 광주에 북한특수군 왔었나?> 관련 끝장토론을 주선실시 할 것을 제안코자 한다. 동 끝장토론에서 북한특수군이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TV토론 대상인사들로서 5.18 기념재단과 부상자회 등 5.18단체 대표들과 황석영씨,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5.18시 북한특수군 침투를 2회에 걸쳐 강력히 부정한 보수논객 조갑제 대기자, 조 국 교수 등을 추천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반대편 패널 토론자로서는 틀림없이 북한 특수군 600여명이 5.18때 광주에 와서 무장폭동을 주도하였다고 주장하는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회장 등 탈북군인 대표들과 5.18단체들로부터 5.18관련 명예회손 재판으로 4년여 23회에 걸친 공판 끝에 지난 2012. 12.27 대법원에서 무죄로 승소했으며 ‘솔로몬 앞에선 5.18’ 등 5.18 관련 책자들을 직접 저술한 지만원박사, 이주성 한반도평화국제연합대표, 이주천 원광대학교 교수 등이 추천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비전원 | |||
|
제 발등 단단히 찍는 5.18세력 및 유사세력 |
글쓴이 : 지만원 |
제 발등 단단히 찍는 5.18세력 및 유사세력 광주시장 강운태, 야당 정치권, 언론인, 5.18세력, 유사5.18세력들이 연대하여 협박전쟁에 나서고 있다. 진실을 탐구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자고 나선 반듯한 애국 네티즌들과 일부 종편방송을 상대로 협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강운태는 “5·18 왜곡 더는 안 된다, 광주시민 전체가 폭도로 몰릴 수는 없다” 이런 말로 광주시민을 선동했고, 5.18역사를 바로 잡자는 국민들을 향해서는 “누가 5.18을 폄훼-비하 하는지 조사해서 법정 대응(민-형사)을 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동아일보 전승호 차장의 왜곡 날조와 카더라 통신 동아일보 사회부차장인 전승호는 5.20. “5·18을 두 번 죽이지 말라”는 칼럼을 썼다. 그가 얼마나 편중돼 있고, 사실을 왜곡했는지 사례의 목적으로 잠시 살펴보자. “광주는 우울하고 슬프다. 국가보훈처는 5·18민주화운동 33주년을 앞두고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공식 식순에 포함시켜 달라는 광주시민사회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민심을 자극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5·18 기념식을 주관한 2003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제창됐다. 그러나 2009∼2010년 기념식 공식 식순에서 빠졌고, 2011∼2012년에는 합창단만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퇴출 절차를 밟았다. 5월 단체는 이에 반발해 행사에 불참했고 결국 올해 기념식은 반쪽으로 치러졌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과 일부 극우단체의 5·18 비하는 시민들의 아픈 가슴을 또 한 번 후벼 파 놓았다. 일부 강경 보수 성향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글이 난무하고 있다. 북한군 개입설은 민주화 이후 정부 조사는 물론이고 대법원 판결로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결론이 났다. 5·18 당시 현장을 지켰던 동아일보의 선배 기자들도 한목소리로 광주 민주화운동이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시민들의 의로운 항거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부 탈북자가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같은 주장의 신뢰성이 엄밀하게 검증되기 전에는 공론의 장에 받아들여선 안 된다.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진 지 3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1980년 당시 신군부가 유포한 왜곡된 정보가 걸러지지 않은 채 유포되고 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5·18 유가족들은 공식 사망자 수도, 발포 명령자도 밝혀지지 않는 등 희생자의 원혼조차 말끔히 달래지 못하는 상황에서 5·18에 대한 폄훼와 비방, 왜곡에 비통함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이상이 동아일보 사회부차장인 전승호의 5.18 비호문이다. 그런데 이 전승호의 글이야 말로 ‘카더라’통신의 표본이고 허위날조의 표본이다. 무엇이 허위날조인가?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재판은 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는가에 대한 재판이 일체 없었다. 정부차원에서도 일체 논의된바 없다 그런데 전승호 차장은 그 당시 정부와 사법부가 나서서 북한특수군의 개입 문제를 다루었는데 북한군개입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고 거짓말을 한다, 전승호는 사망자 수와 발포자 명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허위다. 1995.7.18. 역사바로세우기 검찰이 낸 수사결과 보고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에 명시적으로 규명돼 있다. 또 전승호 차장은 대형 언론사의 차장까지 올라갔으면서도 ‘공론의 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주장의 신뢰성이 엄밀하게 검증되기 전에는 공론의 장에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는 ‘완제품’만 공론의 장에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론의 장은 완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장이다. 전승호는 거꾸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격이 없는 언론인인 것이다. 광주에서의 북한군 개입설은 5.18과 광주시의 명예 이전에 그보다 천만 배 더 중요한 국가안보에 대한 명제다. 전승호 기자도, 광주시장도 정치꾼들도 북한특수군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를 연구할 수 있는 연구자들이 아닐 것이다. 연구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놓는 소리야 말로 카더라 통신이다. 북한특수군 120% 확실히 왔다! 채널A에 출연했던 탈북자는 정말로 광주에 왔다가 돌아가 영웅대접을 받다가 탈북했다고 2006년부터 털어놓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안전이라고 또 어느 주제라고 감히 함부로 정보기관들에 털어놓고, 책을 펴냈겠는가? 또 이 사람을 소개한 언론인은 종편의 부장급 간부다. 5.18에 대한 여러 가지 책들을 섭렵한 후에 그 탈북자를 만나 장시간에 걸쳐 경험담을 일일이 확인한 후에 여러 가지 책들과 대조하여 방송을 했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다는 것은 광주사람들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능력 밖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광주사람들은 광주의 피해가 반드시 공수부대에 의해 발생했다고 해야 5.18의 명예가 존중되는 것이고, 북한특수군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면 이렇듯 쌍심지를 켜고 들고 일어나 북한을 옹호하는가? 문제는 종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담겨 있는 입’을 봉쇄하려는 5.18세력과 유사세력에 있다. 5.18세력과 유사세력에 경고한다. 필자는 2002년 8월 16일, 동아-문화일보에 김대중이 북의 총독 행세를 하고 있다는 요지의 광고문을 냈고, 여기에 35자에 불과한 문장으로 “518광주에 북한 특수군 개입했다”는 취지의 표현을 했다. 이에 오마이뉴스, 손석희의 MBC, 민주당이 나서서 지금처럼 마녀사냥을 했다. 2002년의 광주 야만 그리고 광주지검 최성필 검사가 4명의 경찰및 조사관 1명을 보내 안양에 사는 필자에 수갑을 뒤로 채워 호송하면서 온갖 상스런 욕설과 손찌검을 했다. 그들은 이동 6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게 했고, 검찰청에 도착해서도 3시간 동안 조사를 하면서 뒤로 채인 수갑을 풀어주지 않았다. 판사가 아버지 벌 되는 변호사에게 “당신은 광주사람들로부터 무슨 욕을 먹으려고 서울 사람 변호를 맡았소” 탁자를 내려 치면서 법정에서 모욕했다. 광주 전체가 야만이었다. 그리고 101일 동안 적지와도 같은 광주교도소에서 설움을 당했다. 이것이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필자에게 가한 야만이었다. 2010년의 광주 야만 2010년 10월 29일은 필자를 고소한 5.18부상자회 회장 신경진이 세 번째 증인 호출에 응해 출정하는 날이었다. 60여명의 광주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와 벌인 야만은 사람이 벌이는 야만이 아니라 맹수들이 벌이는 야만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수십 명의 방청객들은 법정 대합실에서 그들에게 욕먹고 삿대질 당하고 매를 맞았다. “야, 늙어 빠진 느그들이 5.18에 대해 무얼 안다고 시방 나왔다냐, 이 쌍 것들아, 돈 얼마씩 받고 나왔당가. .” 노인들에게 상욕을 하고, 무심코 서있는 40대 여성을 향해 뒤에서 돌진하여 구타를 해 귀가 찢어지고 피가 났다. 5.18은 광주만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사는 철저히 공론의 장에서 걸러지고 검증돼야 한다. 그런데 광주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지금 5.18세력이 부리는 행패는 필자가 2002년에 당했던 행패 그대로요, 2010년 10월 29일 광주의 야만인들이 법정 대합실에서 벌인 짐승보다 더 사나운 폭동과 점점 더 닮아간다. 지금 우리는 5.18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다. 5.18세력에게 한 가지 교훈을 일깨워 준다. 그대들이 12년 전, 필자에게 가한 린치행위가 오늘의 부메랑 되어 그대들을 코너로 몰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오늘 그대들이 벌이는 '유사폭동‘ 행위 역시 곧 더 큰 부메랑으로 그대들을 옥죌 것이다. 유네스코 자료에도 북한 특수군 왔다는 김대령의 책 김대령의 저서 4권중 1권을 읽었다. 그 책은 그대들이 유네스코에 등재한 내용을 가지고 썼다. 그 책을 읽으면 광주폭동이 북의 조종에 의해 김대중이 조종해 야기됐고, 오랜 전부터 무기고를 탈취할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은 제3세력이 세웠으며, 이 계획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일치하였다고 결론지었다, 유네스코에 낸 자료들이 오히려 그대들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발광할수록 부메랑 커진다 다시 한 번 제안한다. 북한특수군이 절대 오지 않았다고 하는 그 누구와도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싶다. 자신 있는 사람은 꼭 필자와의 공개논쟁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 입을 봉하려고만 하지 말고 공명정대하게 공론의 장인 TV 토론회에서 토론을 하자. 지만원과 대결할 용기조차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들을 가치조차 없는 선동구호들일 것이다.
2013.5.20. 지만원 |
제 발등 단단히 찍는 5.18세력 및 유사세력
글쓴이 : 지만원
제 발등 단단히 찍는 5.18세력 및 유사세력
광주시장 강운태, 야당 정치권, 언론인, 5.18세력, 유사5.18세력들이 연대하여 협박전쟁에 나서고 있다. 진실을 탐구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자고 나선 반듯한 애국 네티즌들과 일부 종편방송을 상대로 협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강운태는 “5·18 왜곡 더는 안 된다, 광주시민 전체가 폭도로 몰릴 수는 없다” 이런 말로 광주시민을 선동했고, 5.18역사를 바로 잡자는 국민들을 향해서는 “누가 5.18을 폄훼-비하 하는지 조사해서 법정 대응(민-형사)을 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동아일보 전승호 차장의 왜곡 날조와 카더라 통신
동아일보 사회부차장인 전승호는 5.20. “5·18을 두 번 죽이지 말라”는 칼럼을 썼다. 그가 얼마나 편중돼 있고, 사실을 왜곡했는지 사례의 목적으로 잠시 살펴보자.
“광주는 우울하고 슬프다. 국가보훈처는 5·18민주화운동 33주년을 앞두고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공식 식순에 포함시켜 달라는 광주시민사회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민심을 자극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5·18 기념식을 주관한 2003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제창됐다. 그러나 2009∼2010년 기념식 공식 식순에서 빠졌고, 2011∼2012년에는 합창단만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퇴출 절차를 밟았다. 5월 단체는 이에 반발해 행사에 불참했고 결국 올해 기념식은 반쪽으로 치러졌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과 일부 극우단체의 5·18 비하는 시민들의 아픈 가슴을 또 한 번 후벼 파 놓았다. 일부 강경 보수 성향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글이 난무하고 있다. 북한군 개입설은 민주화 이후 정부 조사는 물론이고 대법원 판결로도 사실과 다른 것으로 결론이 났다. 5·18 당시 현장을 지켰던 동아일보의 선배 기자들도 한목소리로 광주 민주화운동이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시민들의 의로운 항거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부 탈북자가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 같은 주장의 신뢰성이 엄밀하게 검증되기 전에는 공론의 장에 받아들여선 안 된다. 5·18민주화운동이 벌어진 지 3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1980년 당시 신군부가 유포한 왜곡된 정보가 걸러지지 않은 채 유포되고 있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5·18 유가족들은 공식 사망자 수도, 발포 명령자도 밝혀지지 않는 등 희생자의 원혼조차 말끔히 달래지 못하는 상황에서 5·18에 대한 폄훼와 비방, 왜곡에 비통함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이상이 동아일보 사회부차장인 전승호의 5.18 비호문이다. 그런데 이 전승호의 글이야 말로 ‘카더라’통신의 표본이고 허위날조의 표본이다.
무엇이 허위날조인가? 1997년 4월 17일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재판은 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는가에 대한 재판이 일체 없었다. 정부차원에서도 일체 논의된바 없다 그런데 전승호 차장은 그 당시 정부와 사법부가 나서서 북한특수군의 개입 문제를 다루었는데 북한군개입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고 거짓말을 한다,
전승호는 사망자 수와 발포자 명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허위다. 1995.7.18. 역사바로세우기 검찰이 낸 수사결과 보고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에 명시적으로 규명돼 있다.
또 전승호 차장은 대형 언론사의 차장까지 올라갔으면서도 ‘공론의 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르는 것 같다, “주장의 신뢰성이 엄밀하게 검증되기 전에는 공론의 장에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는 ‘완제품’만 공론의 장에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론의 장은 완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장이다. 전승호는 거꾸로 알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격이 없는 언론인인 것이다.
광주에서의 북한군 개입설은 5.18과 광주시의 명예 이전에 그보다 천만 배 더 중요한 국가안보에 대한 명제다. 전승호 기자도, 광주시장도 정치꾼들도 북한특수군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를 연구할 수 있는 연구자들이 아닐 것이다. 연구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놓는 소리야 말로 카더라 통신이다.
북한특수군 120% 확실히 왔다!
채널A에 출연했던 탈북자는 정말로 광주에 왔다가 돌아가 영웅대접을 받다가 탈북했다고 2006년부터 털어놓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느 안전이라고 또 어느 주제라고 감히 함부로 정보기관들에 털어놓고, 책을 펴냈겠는가? 또 이 사람을 소개한 언론인은 종편의 부장급 간부다. 5.18에 대한 여러 가지 책들을 섭렵한 후에 그 탈북자를 만나 장시간에 걸쳐 경험담을 일일이 확인한 후에 여러 가지 책들과 대조하여 방송을 했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광주에 북한특수군이 왔다는 것은 광주사람들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능력 밖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 어째서 광주사람들은 광주의 피해가 반드시 공수부대에 의해 발생했다고 해야 5.18의 명예가 존중되는 것이고, 북한특수군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면 이렇듯 쌍심지를 켜고 들고 일어나 북한을 옹호하는가?
문제는 종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 담겨 있는 입’을 봉쇄하려는 5.18세력과 유사세력에 있다. 5.18세력과 유사세력에 경고한다. 필자는 2002년 8월 16일, 동아-문화일보에 김대중이 북의 총독 행세를 하고 있다는 요지의 광고문을 냈고, 여기에 35자에 불과한 문장으로 “518광주에 북한 특수군 개입했다”는 취지의 표현을 했다. 이에 오마이뉴스, 손석희의 MBC, 민주당이 나서서 지금처럼 마녀사냥을 했다.
2002년의 광주 야만
그리고 광주지검 최성필 검사가 4명의 경찰및 조사관 1명을 보내 안양에 사는 필자에 수갑을 뒤로 채워 호송하면서 온갖 상스런 욕설과 손찌검을 했다. 그들은 이동 6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게 했고, 검찰청에 도착해서도 3시간 동안 조사를 하면서 뒤로 채인 수갑을 풀어주지 않았다.
판사가 아버지 벌 되는 변호사에게 “당신은 광주사람들로부터 무슨 욕을 먹으려고 서울 사람 변호를 맡았소” 탁자를 내려 치면서 법정에서 모욕했다. 광주 전체가 야만이었다. 그리고 101일 동안 적지와도 같은 광주교도소에서 설움을 당했다. 이것이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필자에게 가한 야만이었다.
2010년의 광주 야만
2010년 10월 29일은 필자를 고소한 5.18부상자회 회장 신경진이 세 번째 증인 호출에 응해 출정하는 날이었다. 60여명의 광주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와 벌인 야만은 사람이 벌이는 야만이 아니라 맹수들이 벌이는 야만이었다. 그 모습을 본 수십 명의 방청객들은 법정 대합실에서 그들에게 욕먹고 삿대질 당하고 매를 맞았다. “야, 늙어 빠진 느그들이 5.18에 대해 무얼 안다고 시방 나왔다냐, 이 쌍 것들아, 돈 얼마씩 받고 나왔당가. .” 노인들에게 상욕을 하고, 무심코 서있는 40대 여성을 향해 뒤에서 돌진하여 구타를 해 귀가 찢어지고 피가 났다.
5.18은 광주만의 역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다. 그렇다면 국가의 역사는 철저히 공론의 장에서 걸러지고 검증돼야 한다. 그런데 광주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지금 5.18세력이 부리는 행패는 필자가 2002년에 당했던 행패 그대로요, 2010년 10월 29일 광주의 야만인들이 법정 대합실에서 벌인 짐승보다 더 사나운 폭동과 점점 더 닮아간다.
지금 우리는 5.18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탐구하는 것이다. 5.18세력에게 한 가지 교훈을 일깨워 준다. 그대들이 12년 전, 필자에게 가한 린치행위가 오늘의 부메랑 되어 그대들을 코너로 몰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오늘 그대들이 벌이는 '유사폭동‘ 행위 역시 곧 더 큰 부메랑으로 그대들을 옥죌 것이다.
유네스코 자료에도 북한 특수군 왔다는 김대령의 책
김대령의 저서 4권중 1권을 읽었다. 그 책은 그대들이 유네스코에 등재한 내용을 가지고 썼다. 그 책을 읽으면 광주폭동이 북의 조종에 의해 김대중이 조종해 야기됐고, 오랜 전부터 무기고를 탈취할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은 제3세력이 세웠으며, 이 계획은 탈북자들의 증언과 일치하였다고 결론지었다, 유네스코에 낸 자료들이 오히려 그대들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발광할수록 부메랑 커진다
다시 한 번 제안한다. 북한특수군이 절대 오지 않았다고 하는 그 누구와도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싶다. 자신 있는 사람은 꼭 필자와의 공개논쟁에 나서 주기를 바란다. 입을 봉하려고만 하지 말고 공명정대하게 공론의 장인 TV 토론회에서 토론을 하자. 지만원과 대결할 용기조차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들을 가치조차 없는 선동구호들일 것이다.
2013.5.20. 지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