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의 해석
임병식 rbs1144@daum.net
1.
주름하면 피부가 노쇠하여 생기는 금, 혹은 옷 가닥이나 종이가 접어져 생긴 것을 이르지만, 주로 피부가 노화하여 접힌 금을 떠올린다. 여기다 ‘살’자를 붙여 주름살이라고 하면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주름을 생각하면 이 말의 원형이 궁금해진다. 그것은 혹시 ‘줄어들다’라는 말이 '줄어듦'이란 명사형태를 거쳐 명사로 바뀐 말이 아닐까.
주름은 하나의 표정이며 이력에 다름 아니다. 크거나 작거나 그 속에는 세파에 찌든 내력과 희로애락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무로 말하면 나이테이며 야생말로 말하면 바람에 맞서는 성긴 갈기와도 같다.
2.
주름을 생각하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사람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아름답다. 아니 성자와 같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 가득 웃음을 담고 있는 표정은 세속의 삶을 초탈하는 것 같아 숭고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살아야 해’
하는 것처럼 보여주어 감동을 준다. 그러한 표정 앞에서는 ‘나만 고생하며 박복하게 산다’는 평소의 푸념을 부질없게 만든다. ‘나 정도는 살아보아야 참 인생의 진미를 알지’하는 것 같아서 머쓱해진다.
어느 날 우연히 길을 가다가 돌계단에 앉아 다리쉼을 하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얼굴이 주름살투성인데, 입 주변은 유독 주름이 깊게 패였다. 그렇게 함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얼굴을 보면서 ‘저것은 역사다’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현대사의 한 페이지가 고스란히 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나는 요즘 갯바위 하나를 안방에 두고 감상한다. 이것이 평상시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다가 누려고 하면 전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주름살로 가득하다. 세로로 그어진 주름살이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
이걸 보면서 입체감과 함께 ‘축소(縮小)’를 생각한다. 작은 것이지만 본래는 큰 것. 그것이 눈앞에서는 작은 형상으로 보이지만 거대한 모습을 느끼게 한다.
이것을 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 주름은 큰 것을 작게 하는 것이지만, 보여주는 모습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늙어가며 보이는 주름살은 단순한 노화현상 이전에,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나이 들면 모든 게 줄어들 듯이 그렇게 줄이고 살라는 것. 노욕을 줄이고, 허망한 자랑을 줄이고 뽐냄을 줄이라고.
그렇게 일러주는 것이 아닐까. (2023)
첫댓글 주름은 연륜 깊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빚어낸 한 장의 역사지도네요 100분의 1로 함축된 이야기에는 훈장 같은 긍지가 깃들어 있다 싶습니다 겨울 산맥의 골격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경석에 새겨진 유구한 숨결을 느껴보면서 인생들마다 독특하게 그려낸 주름의 사연에 귀 기울여 봅니다
주름잡힌 경석의 수석을 감상하다가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보기 흉한 상처나 흔적이 아니라 인생훈장이 아닐까.
그러면서 그것을 보며 나이들어가며 그것은 무엇이든지 내려놓고 줄이면서 살아가라는
뜻을 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주름은 상처와 빛남이 공존하는것 같아요
상처가 깊어지면 사이사이에 주름이 생기면서
연륜과 삶이 빛이나는것 같아요.
아픔없는 아름다움은 가짜 삶이지 않을까요.
모든주름을 위하여 위로를 보내는 밤입니다.
아픔없는 아름다움은 가짜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삶이란 자체가 고행이며 한생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또한
아름다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