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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의 한국 나들이]
서울 강남이라하면 부자동네로 소문난 마을이다. 사모님을 따라 안해가 간 곳은 침실 세개에 거실 하나, 서재 하나, 주방 하나, 화장실 둘로 된 160m2쯤 되는 집이였다. 안해가 자는 방은 서재였는데 한사람 누울만큼한 공간이 있었다. 사모님은 안해에게 가정부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상세히 알려 주었다.
아침 여섯시 정각, 안해가 아침 준비에 나서는데 주인집 할머니는 벌써 아침단련을 끝내고 들어오는 것이였다. 안해는 할머니가 정정하시니 가무일을 가르쳐 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고 할머니한테서 반찬같은 것들을 차근차근 배우리라 마음 가졌다.
“편히 주무셨어요? 할머니, 제가 한국 음식에 대해 잘 모르니 하나하나 잘 가르쳐 주십시요. 그리고 집집마다 식습관이 다르니 잘 부탁드립니다!”
“아줌마, 말버릇부터 고치게, 할머니라 부르지 말고 어르신님이라 부르게!”
첫마디 말투부터 곱지가 않았다. 까다로운 할망구임이 틀림이 없었다. 잘해 보리라 들떳던 안해의 기분이 삽시에 가라앉았다.
반찬은 대개로 콩나물을 데쳐 메우고 고구마 줄거리 겁질을 훑어버린 후 데쳐서 무치고 생선을 굽고 두부를 굽고 국물이나 찌개를 하는 것이다. 밥쌀은 안해까지 여섯사람인데 한근좌우 씻어 안치고 생선은 두토막 굽고 두부도 반모는 남겨두고 반모를 두토막 내서 굽게했다. 눈에도 차지 않았지만 안해는 로인이 시키는대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외 밑반찬으로 소고기졸임, 멸치볶음, 김치 두 세가지 등이였다. 밥상을 차리는데 할머니 앞으로 따로, 사장님 앞으로 따로, 아이들 앞으로 따로, 제마끔씩 차려놔야 했으니 반찬은 몇가지 아니였어도 각가지 그릇들로 밥상에 빈틈이 없었다. 밥도 사장님 그릇에 다소곳이 담고는 그외 그릇에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담아야 했다. 안해의 앞에는 밥 한공기에 김치 한두토막이 차려졌다. 배가 차지 않았지만 안해는 숟가락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아침밥을 먹고나니 정심밥이 작았다. 다음날 아침 안해가 쌀을 더 떠서 씻으려 하니 할머니가 사설하였다.
“무슨놈 쌀을 그리 많이 해? 내가 떠주는 대로 씻어! 중국사람들은 돼지혼을 탔는지 멍청히도 밥만 많이 먹는다니깐!”
그말에 안해는 정신이 윙ㅡ할 정도로 발칵 성이 났지만 방금 왔는지라 대꾸도 못하고 쌀을 덜어내였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안해는 애들을 통학뻐스 역전까지 데려다주고 바삐 달려와서는 설걷이며 집 청소며 빨래를 하는데 무더운8월이라 안해는 땀벌창이 되여 돌아쳤다. 배속에서 “꼬룩,꼬르룩ㅡ” 항의를 제출하자 시계를 올려다 보니 정오가 넘었다. 한공기도 되나마나한 밥을 물에 말아 게는감추듯 먹어 버리고 허리펼 사이도 없이 다림질을 한다.
오후 두시면 학교에서 오는 작은애 마중을 가는데 그시간이 안해의 유일한 자유 시간이였다. 안해는 아이를 통학뻐스에서 맞은 후 곧게 집으로 가지 않고 책가방과 아이 손을 잡고 먹거리 시장으로 가서 “떡볶이” 한접시 사서 애와 함께 먹고는 아이 놀이테에 가서 좁다란 걸상에 드러누어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였다. 그날도 아이의 손을 잡고 먹거리 시장으로 가는데 아이가ㅡ
“이모, 이모는 어째 날마다 떡볶이만 사 먹어요?”라고 의아해 했다.
“야,임마! 너네 집에서 밥 쪼끔 줘 배 고파 그런다, 맛 있어 먹는줄 아니?”
“응? 그래요?”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똥말똥 쳐다보더니ㅡ
“내일부터 내밥까지 이모가 다 드세요. 나는 밥 먹기 싫어 죽겠어요!”
“그건 안돼. 니 밥 이모 주면 너 엄마한테 혼난다. 알겠니?”
다음날 아침. 아이는 밥을 보니 전날 먹거리 시장에서 한말이 생각났던지 밥 둬술 뜨네 하다가 “이모” 앞으로 밀어놓으며ㅡ
“이모, 이밥도 다 드세요.” 했다. 안해는 가슴이 뜨끔 했다.
“얘가 왜 이래 안돼…” 사모님이 밥그릇을 도루 가져다 아이 앞에 놓고는
“우리 아들 참 착하지, 밥 잘 먹어야 이쁘지…”하며 달래는 것이였다. 안해는 아이가 “떡볶이 비밀”이나 루설하면 어쩌랴 싶었는데 다행이도 말 없이 넘어갔다. 안해는 그러는 애가 고마웠고 귀여웠다.
할머니는 하루종일 객방 한가운데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며 “어르신님”의 틀을 차렸고 안해가 하는 일을 감시하고 잔소리를 했다. 커피를 끓여오라, 과일 깎아오라, 영양시 풀어오라 몸종 부리듯 잔심부름을 한없이 시키면서 손이 놀새 없게 만들었다.
한번은 과일을 가져 오라기에 오랜지 하나 까고 사과 하나를 깎아서 쪼개 올리고 속괭이를 버리려는데ㅡ
“아줌마, 사과 잘 못 쪼갰어. 그 속괭이 던지지말고 먹어치워.”
“이걸요? 먹을것 없는데요?”하면서 안해는 쓰러기 통에 홱 던져 버렸다. 치밀어 오르는 분을 가까스로 삭이면서ㅡ
“우리 중국선 사과도 배도 빡쓰드리로 사두고 먹습니다. 생생한 것도 먹기 싫어 하는데 한국사람들은 속괭이도 다 먹습니까?!”
안해는 반발심에 한마디 했다. 잘사는 집이라서 랭장고에는 과일따위의 먹을 것이 차고넘쳤다. 그러나 깍쟁이 할망구가 먹는 것을 하도 아끼기에 안해는 역겨워서 전혀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먹고싶은 것이 있으면 아예 슈퍼에 나가 사서 먹었다.
“흠흠, 없는 놈이 더 우쭐 하는 법이야, 그렇게 잘 먹고 잘 사는디 왜 한국 와서 남의 집살이 하는거여?”
“우리가 못 입고 못 먹고 살아서 한국에 와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권비가 중국보다 높으니 여기에서 좀 벌어 가지고 중국 가서 더 잘 살자고 그러는 것입니다. 북한은 못먹고 못 살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사람 대하듯 중국사람을 대하지 마십시요!”.안해는 애국심이 불끈 솟아 올랐고 속으로 중국에서 사는것이 편안하고 행복함을 심심히 느끼였다.
“건너집 아줌마는 때마다 묵은밥이나 사발 까신 밥알 밭어 먹고 일 한다던데 아줌마는 주인을 잘 만날줄로 아시오!”
“녜? 그런 집도 다 있답디까? 그집 주소와 주인 이름을 알려 주십시요. 신문과 텔레비에 낼 일입니다! 한심하고 기가 막힙니다.”
할머니는 안해가 얼굴이 지지벌개 나면서 흥분하자 더 말을 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 가 버리는 것이였다. 어이 없는 일이였다. 중국사람을 짐승 대하듯 하는 사람들도 다 있다니! 발전한 한국에, 문명한 한국의 한 구석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이 안해로서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깍쟁이 할머니는 안해가 세탁기로 빨래 하는것도 못 마땅해 했다.
“남의집 돈을 버는게 어디 그리 헐한줄 아는가? 세탁기는 전기도 많이 들고 물도 많이 드는데 힘 아낄라 말고 손빨래 하게!”
“어르신님, 사모님이 사장님 흰샤쯔만 손빨래 하고 다른건 모두다 세탁기로 하라고 했는데 그러십니까?”
“그래도 그렇지! 손빨래 하라면 손빨래 해!”
“정 그러시다면 할 수는 있는데요, 시간이 안됩니다.”
이집에서는 나들이 옷이나 고급 옷은 죄다 세탁소에 맡긴다. 집에서 세탁기에 돌리는 것은 아이들 옷과 어른들 속벌 뿐이였다. 손빨래를 하려고 해도 시간이 안되였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려놓은 후 할망구의 심부름을 들어주며 방안 청소 하노라면 오전시간이 다 간다. 오후엔 아이를 데려오고 다림질을 하고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고 저녁밥을 한다. 저녁 설거지를 끝낸 후에는 아이들을 목욕 시키고 숙제 공부를 지도 해야한다.
“서울 깍쟁이”란 말을 들어보긴 했어도 이정도로 아끼는 한국인은 리해가 안간다. 중국에서는 무엇이나 랑비해서가 문제이고 한국에서는 너무 아껴서가 문제이다. 자기가 먹고 쓰는 것도 아까운데 남이 자기걸 점한다고 생각하면 안 아까울리 어데 있겠는가?
두주일이 지난 후 안해는 할망구의 스트레스를 끝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사모님한테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였다. 애들을 돌보거나 가무일 같은건 아무 문제가 아닌데 할머니의 잔소리를 받아내기 힘들다고 사실대로 말하였다.
“이모, 우리어머님 성격은 저도 알고 있는데 이모가 좀 참아줘요. 처음이라 그렇지 시간 지나 적응되면 괜찮아질겁니다. 그리고 애들도 이모를 퍼그나 좋아 하는데 좀만 참으세요, 고생 하는만큼 제가 다 알아봐드릴께요. 부탁해요.”
사모님이 하도 만류하니 안해는 다시 눌러앉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여전했다.
할머니는 중국사람을 거지 발싸개보다도 못하게 여겼다. 더우기 먹는 것을 가지고 제한이 심했다. 아침 식사 때 젊은이들이 새 반찬을 안해의 앞으로 밀어 놓으면 할머니가 다시 밀어가고 저녘이면 묵은반찬만 먹으라고 안해의 앞에 밀어 놓는다. 안해가 먹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고 사설하면서 이틀사흘 던지지도 못 하게 한다. 안해는 만성장염이 있기에 여름철엔 각별히 음식을 주의해 먹어야 한다. 맨 김치에 밥을 먹을 지언정 묵은 반찬들은 할머니 눈을 피해 가면서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군 하였다. 일이 바쁜것보담 스트레스가 심하여 안해는 얼굴이 새까매지고 몸이 부어나면서 좋지 못하였다. 더 뻗치다간 병이라도 도질 것만 같았다. 겨우 한달을 지탱했다. 한달 월급을 받자 일을 그만두고말았다.
돌아오는 날 안해는 깍쟁이 할망구가 평시 제일 반가워하던 떡을 사들고 들어가 마음속에 쌓이고 쌓였던 말들을 털어놓았다.
“어르신님, 이 한달 동안 어르신님의 많은 미움을 받고 질책을 받았습니다. 미운정도 정이라고 어르신님이 싫어서 떠나게 되지만 마음은 서운합니다. 앞으로 이집에 다른 중국 아줌마가 들어오면 잘 해주십시요. 고국이라 찾아와 피땀으로 돈 좀 벌고 가려는 동포인데 왜 그리 기시합니까? 우리 중국 사람들이 빌어 먹을 정도로 가난해서 여기에 와 일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 중국이 얼마나 발전이 빠른지 어르신은 매일 신문을 보시면서 왜 모르십니까? 중국 샹하이랑은 서울만 못지지 않습니다. 우리 조선족이 모여 사는 연길도 한국과 전혀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도 연길에서 이만 못하지 않는 집을 갖고 입을 근심 먹을 근심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전에 말씀 드렸지만 저도 그곳에서 높은 공무원 직에 있었구요. 어르신님은 옛날에 악패지주가 머슴을 대하듯이 나를 대했는데 그러지 마십시요. 앞으로 일은 모릅니다. 당신 손자 손녀가 우리집에 와서, 우리중국에 와서 머슴살이 할지도! 중국은 이만하고 한국은 요맨하거든요…”
안해는 두 팔을 크게 벌려 중국의 땅덩어리를 묘사했고 새끼손까락 끝을 내들어 한국땅을 묘사 했다. 그 늙은이가 알아들었는지는 몰라도 하고싶던 말을 다 뱉어버린 안해의 마음은 한결 개운했다. 정이 든 애들은 전철역까지 따라나와 안해를 바래며 손을 저어주었다. 아홉살 여자애에겐 도금 목걸이를 사주었고 남자애에겐 커풀반지를 사주고 차에 올랐다. 일학년에 금방 다니는 일곱살짜리 놈이 여자친구가 있다면서 커풀반지를 사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에서 20세기 60년대 어린시절에 배고픈 고생을 엄청 했었는데 21세기에, 그도 엄청 발전했다는 한국에 와 엄청 잘 산다는 부자집에서 나는 배고픈 고생을 했어요! 재미진 소설 소재가 아닌가요? 누가 들으면 거짓말이라 할겁니다. 두번 다시 이같은 생활체험 할까봐 겁납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더랬으면 한달만에 만난 남편 앞에서 한다는 첫 연설이 굶주림 타령이겠는가? 한국에는 물가가 비싸기에 배를 곯게되고 짐승고기 얻어먹기가 힘들다고 들어왔다. 헌데 그런것도 아니였다. 여러 일잘리를 돌아 다니며 본바에는 배불리 먹을 수 있었고 소고기는 없지만 돼지고기나 닭고기 같은건 가끔씩 차려지군 했다. 배불리 먹고 고기도 먹고 하는데도 한국에 다녀온 90% 이상 사람들은 다이어트가 절로 된다. 나와 안해도 일년반 사이 살이 딱 10kg씩 빠졌더랬다. 이는 식생활 문제가 아니라 정신생활ㅡ스트레스 속에서 살다보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 돌아와 별로 갖추어 먹은 것도 없는데 두달이 지나니 딱 10kg씩 올라 원상태인 130근과 140근으로 되여버렸다. 나들이 껍대기를 가춘답시고 고급 양복 두벌을 큰 맘먹고 서울 큰 상가에서 큰 돈 들여 사갖고 왔는데 배가 커져 맞지않으니 버리게 되였다. 그냥 크는 어린애도 아니고 옷을 살 때 몸에 맞게 골라 사기가 마련인데 배가 그렇게도 재빨리 내밀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강남에서 돌아온 며칠 후 오정동 집 근처, 집에서 도보로 3분 거리밖에 안되는 “감자옹심이”식당 유리문에 “주방보조 모집”이란 글자가 나붙자 안해는 남한테 자리를 빼앗길세라 즉각 쳐들어갔다. 또 “생활 체험”에 “인생 수업”이라 하면서 “삶의 현장”으로 나간 것이다.
오정동 “감자옹심이”는 분점이였는데 주요 메뉴로는 감자옹심이, 칼국수와 수제비였다. 감자옹심이는 감자를 갈아 참새알만큼한 알맹이를 만들어 이미 끓여놓은 멸치육수에 삶는 것이고 칼국수는 서울 본점에서 반죽 해 온 밀가루를 자그마한 기계에 넣어 저가락만큼 굵기의 오리를 뽑은 후 여전히 이미 끓여놓은 멸치육수에 삶는 것이다. 수제비란 우리 말하는 밀가루 뜨덕국인데 끊는 멸치물에 서울에서 가져온 밀가루반죽을 손으로 뜯어 넣으면 끝난다. 멸치육수는 백근 좌우의 물에 멸치 다섯근 무우 열개 양파 스무개에 다시마 한봉다리(두근) 쏟아넣고 세시간 정도로 푹 고는다.
손님의 주문에따라 즉석에서 한그릇씩 삶아서 내보내는데 감자옹심이는 한그릇에 4천원이고 칼국수와 수제비는 3천원이다. 식당에는 주방장 하나, 홀에 하나, 거기에 안해가 보조로 들어갔으니 도합 셋이다. 홀에서 음식도 나르고 상도 거두고 돈도 받고하는 50대 여인은 살짝 곰보인데 서울 본점 사장의 이모라던지 고모라던지 이 분점의 사장이시다. 안해의 월급은 손님이 적으니 90만원이라고 했다. 다른 식당에 도우미들은 적어서 120만원씩 받는 때였지만 안해는 월급이 적어도 일만 너무 힘들지 않고 무맥한 신체에 맞으면 된다면서 “감자옹심이”와 인연을 맺게되였다.
안해는 아침 9시에 출근하여 밤 12시에 들어온다. 손님은 점심 한 때 많고는 말 그대로 적었다. 보조로 들어간 안해는 손님이 많으나 적으나 일이 끝이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하루간 팔 음식을 준비하는데 채소를 다듬고 김치 걷절이를 하고 기계로 칼국수를 뽑고 밥쌀을 앉히고나면 점심 먹을 손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주문에따라 옹심이, 칼국수, 수제비를 삶는데 주문이 많을 때면 일 솜씨가 서투른 안해는 주방장의 핀잔을 면치 못했다.
“아줌마! 아줌마 땜에 내가 미치겠어!” 한국에서는 미치겠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주방장이 미칠법도 했다. 미처 씻지 못한 크고 작은 그릇들이 쟁방 위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옹심이나 칼국수를 삶는다는 것이 쿨쿨 넘쳐버리고… 식당일이라고는 처음인 안해는 퍼붓는 욕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내보내는 수 밖에 없었다. 듣다 못해 성이 나면 수돗물을 콱 열어놓고 “미쳐라, 미쳐! 미칠라면 콱 미쳐!”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일했다.
안해는 차츰 일의 질서를 알게되였고 일이 손에 조금씩 잡히게 되였다. 따라서 그들의 욕설도 뜸해 졌다. 그러나 쉴틈은 여전히 주지 않았다. 오후 세시에 점심을 먹은 후 조금 앉아있게 하고는 이일 저일 끝이없이 시켰다. 저녁 후 손님이 없다 싶으면 자기들은 앉아 텔레비를 보면서도 안해더러는 쟁반을 반짝반짝 광택나게 닦으라고 했다. 수술중 신경이 손상 받아 오른팔에 힘이 부족한 안해는 힘든 일은 주로 왼팔로 하다가 때론 오른팔이 나서기도 하는데 절반 힘도 못 쓴다.
“아줌마, 팔뚝이 말뚝 같구만 왜 맥 안 쓰는거야!”하고 홀에서 일하는 곰보 녀편네가 잔소리를 한다. 안해는 땀을 뚝뚝 떨구며 닦고 또 닦는다. 며칠 후 안해는 일이 얼마간 익숙해지고 자기 앞의 일을 감당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였다.
“주방장, 오늘 저녁에 내가 한턱 쏘겠습니다.”라고 안해가 말했다.
술을 좋아하는 주방장은 기뻐서 입이 대뜸 귀에 가 걸렸다.
“들어온지 얼마 됐다고 무슨 돈으로 낸다는 거여?”홀에 곰보사장의 말이다.
“저 돈 많아요, 무얼로 할까요?”
안해는 시장에 나가 광어 생선회를 주문해 왔다. 시장에서 사면 식당에 가서 먹는것보담 싸고도 생신하다. 광어 한마리에 3만원 좌우니 식당의 절반값이다. 술상에 마주앉은 두 여인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안해가 볶은 중식 “마라두부”와 시장에서 가져온 광어 생회는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당겼다.
“아줌마야, 이 비싼 생회를 사다니, 간단히 한잔 하면 될걸가지구.”
“아저씨한테 들키면 야단 맞겠네요, 벌기도 전에 돈만 쓴다구.”
“우리 실랑 내가 먹는다고 절대 아까워하는 법이 없답니다.” 안해는 남편 자랑을 슬쩍 하고는 득이 양양한체 했다.
“부부 금슬 좋은가부다!” 두 여인은 감탄이나 하는듯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혀를 끌끌찼다. 여자들이란 원래 이런 법이다.
술잔이 몇순배 돌아가자 안해는 중국에서의 신분을 밝히면서 한바탕 제자랑 연설을 퍼부었는데 당신네같은 일반 여인들의 무시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려주었다. 한턱쏘는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생회가 효과를 냈는지 술이 효과를 냈는지 연설이 효과를 냈는지 이튿날부터 그녀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일도 적게 시키고 잔소리도 적게 했으며 텔레비도 같이 보자고 불렀다.
“아줌마, 이거 시원하게 한잔 들구 해요.”
주방장은 감추어 두었던 막걸리를 한그릇 부어 안해에게 넘겨주며 홀쪽을 향해 턱질하고 눈을 끔벅인다. 홀아줌마 보기전에 데꺽 마셔버리라는 뜻이다. 주방장이 늘 사장 눈을 피해가며 막걸리를 훔쳐 마시는 것을 안해는 보아왔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난 막걸리만 입에 대면 속탈 나서 못 마셔요.”
“그래요? 아쉽네, 죽이게 시원한데. 속 차가운 체질인갑네요.”
“예, 그래서 맥주도 못 마신답니다.”
주방장은 안해에게 주려던 막걸리를 꿀꺽꿀꺽 단모금에 마셔버리고는 “그럼 약을 써야지, ‘록태고’랑 먹으믄 좋다던데…”한다. 나의 안해가 막걸리 못 마시는 체질이라서 사양한 것이 아니다. 먹고싶으면 돈 내고 정정당당하게 먹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 해서였다. 음식점에서는 오후 세시에 점심을 먹고 밤 아홉시에 저녁을 먹는데 언제나 밑반찬 둬가지에 수제비 한그릇이다. 소주, 맥주, 쥬스, 막걸리같은 랭장고 안의 물건은 공짜로 먹을 수 없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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