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소백산 근처를 지나던 한 술사가 갑자기 말에서 내려 넙죽 절을 하며 “이 산이 사람을 살리는 십승지다.”라며 감탄했다. 그는 “대소백산에 모인 정기는 천 년을 병란에 물들이지 않을 땅”이라고 했다. 그는 또 말하기를 “몸을 숨기는 데는 여러 산 가운데 소백산이 제일이고 그다음이 지리산이다藏身 諸山之中 小白爲上 智異次之.”라고 극찬했다.
그가 바로 조선시대 최고의 예언가인 격암 남사고(1509~1571년)다. 소백산과 풍기 십승지에 관해서는 남사고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남사고에 관해 특별히 관심을 끄는 또 한 가지는 위서 논란이 있지만 그의 호를 딴 책인 『격암유록』에서는 38선이 생기고 6・25 전쟁으로 백성이 살상된 후 미래에 남북이 통일된다는 것과 우리나라가 동양에서 최강국이 된다는 예언을 했다는 점이다. 38선과 6・25 전쟁은 이미 겪었으니 통일과 최강국이 될 날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볼 일이다.
조선 최고의 술사 남사고는 명종 때 주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서양에 노스트라다무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남사고가 있다고 할 만큼 예언가로 유명한데, 이 둘은 공통점이 무척이나 많다.
우선 둘 다 동시대 사람이고 같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503년생, 남사고는 1509년생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1566년에 사망했고, 남사고는 1571년에 사망해 둘 다 63세에 사망했다.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삶을 보여주었다.
또한 점성술의 대가로서 예언 내용도 똑같다. 홍수와 역병, 기근, 전쟁 등이 예언의 주된 소재였는데 남사고를 비롯한 우리나라 정감록 또한 질병과 기근, 전쟁을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정감록이 금단의 책이었듯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서 『제세기』 역시 로마 가톨릭교회에 의해 금서가 되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제세기』를 통해 예언을 남겼고, 남사고는 『격암유록』을 남겼다. 호는 격암이며 본관이 영양인 남사고는 경북 울진이 고향이다. 평생 소학을 즐겨 읽었고 역학·풍수·천문·관상의 비결에 도통했다. 그의 예언은 꼭 들어맞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려고 몰려들었다.
1575년(선조 8년)의 동서분당을 예언했고, 명종 말기에 이미 “임진년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침범하리라.”라고 예언했는데, 실제로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백마를 타고 쳐들어왔다. 그에 앞서 1564년(명종 19년)에 “내년에는 태산을 봉하게 되리라.”라고 예언했는데, 끔찍하게도 이듬해 문정왕후가 별세해 태릉에 장사를 지냈다.
남사고는 다른 정감록보다 상대적으로 더 구체적인 표현을 썼기 때문에 신뢰감이 컸다. 그가 말에서 내려 배알까지 한 풍기를 비롯해서 소백산 일대를 제1승지로 꼽은 것은 예사롭지 않다. 다른 비결서에서도 풍기는 줄곧 제1승지로 부각되었는데 감히 ‘십승지 1번지’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