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나무를 사랑한 작가 이문구
- 나무 이야기(스물아홉)
우리나라 소설가 중 이문구(李文求)만큼 향토색 짙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농촌을 배경으로 쓴 작품들을 통하여
시골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즐겨 그린다.
주로 구어체로 쓴 그의 소설은 고향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그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농촌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한국의 농촌과 농민이 마주한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훼손된 농촌 사회의 아픈 세태를 묘사하다가도
어느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얘기에 시선을 돌린다.
이문구는 1941년 충남 보령, 바다를 면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유학자였고, 아버지는 공산주의 활동에 연루되었다가
6.25 전쟁 때 아들들과 함께 죽었다. 졸지에 독자(獨子)가 된 이문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막노동으로 살아가다가, 검정고시를 본 후 1961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소설가 김동리 밑에서 문학을 배워 대학 재학 중이던 1965년
단편소설 「다갈라 불망비」로 문단에 데뷔하였다.
김동리는 이문구의 등단을 두고 "한국 문단에 가장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가 나타났다"라고
평했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서 그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970년대 유신 반대 시위를 앞두고 모인 문인들이 모두 앞장서 목청을 높일 때
그만 혼자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다들 구속되면 가족은 누가 돌보냐고.
하지만 다음날 날이 밝았을 때 현장에 피켓을 들고나온 건 그가 유일했다고 한다.
나무는 이문구의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그의 자전적 연작소설 『관촌수필(冠村隨筆)』의 「일락서산(日落西山)」에 등장하는
왕소나무와 감나무부터 범상치 않아 보인다. 왕소나무는 작가가 어릴 적 엄하기만 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작가를 사랑하던 할아버지의 상징이다.
어른이 되어 찾아간 고향에서 그는 정신적 지주였던 할아버지의 상징,
왕소나무가 잘리고 그 자리에 허름한 구멍가게가 생긴 것을 보고 어릴 적의 세계가
모두 사라졌음을 느낀다. 영물(靈物)이 사라진 농촌은 서산에 지는 해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보일 뿐이었다. 일곱 살 난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왕소나무의 유래다.
작가 이문구- 네이버
“이애야, 이 왕솔은 토정(토정:이지함) 할아버지께서 짚고 가시던 지팽이를
꽂아놓셨는디 이냥 자란 게란다. 그쩍에 그 할아버지 말씜은, 요 지팽이 앞으루
철마가 지나가거들랑 우리 한산 이씨 자손들은 이 고을에서 뜨야 허리라구 허셨다는 게여·······
그 말씜을 새겨들어 진작 타관살이를 했더라면 요로큼 모진 시상은
안 만났을지두 모르는 것을·····”
왕소나무가 할아버지의 상징이라면 감나무는 어머니의 상징이다.
6·25가 나던 해에 이문구는 남로당의 지하 조직책이었던 아버지와 형,
그리고 할아버지 모두를 잃는다. 마지막 남은 어른인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것은
그로부터 6년 후, 작가가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어머니의 삼일장을 치르고 난 후
사나흘 전까지 멀쩡하던 감나무가 갑자기 죽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시퍼렇던 잎은 모조리 오가리 들고 대추 알만하던 멀쩡한 열매가 쪼글쪼글해져
우줄우줄 떨어진 것이다. 일 년 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집을 팔아 서울로 올라올 때
이문구는 죽은 감나무를 베어내 태워버린다.
그때 일을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지금도 기억에 짙게 남아 있는 것은 그 벤 둥치와 가지를
장작개비로 패 쌓으면서 솟아나던 눈물을 걷잡지 못해 했던 일이다.”
『관촌수필』에는 왕소나무와 감나무 이외에도 수많은 나무가 등장한다.
그가 이처럼 자신의 작품에 나무를 등장시키는 것은 나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일 것이다.
그는 1990년대에 들어서 아예 제목에 나무 이름을 붙인 연작소설을 차례로 발표하였고
2000년에 이 작품들을 묶어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라는 소설집을
출간하였다. 그해 이 책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은 그가 3년 후인 2003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결국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소설집이 되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장평리 찔레나무」, 「장석리 화살나무」,
「장천리 소태나무」, 「장이리 개암나무」, 「장동리 싸리나무」,
「장척리 으름나무」, 「장곡리 고욤나무」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