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반 위의 돌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이상한 불편함을 품고 있습니다. 층층이 겹쳐진 결들은 마치 오랜 시간 눌리고 짓이겨진 살갗 같고, 검게 스민 틈들은 무엇인가가 끈질기게 들러붙어 지나간 흔적처럼 보입니다. 옆에서 바라보면 바닥에 바짝 몸을 붙인 채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두꺼비 같기도 하고, 정면에서 바라보면 무너져 내리다 끝내 굳어버린 검은 파도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실은 서로의 살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유지되는 구조들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겉으로는 고요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끝없는 압박과 생존의 무게가 층층이 포개져 있는 것들 말입니다.
돌의 결은 유난히 눌려 있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거대한 시간의 무게가 여러 겹 내려앉은 흔적 같습니다.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층층이 눌린 그 검은 결 사이로, 나는 이상하게도 인간의 허영과 슬픔 같은 것이 스며 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기대고, 또 서로를 조금씩 갉아먹으며 버텨내는 존재들의 냄새 같은 것 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돌의 형상이 아니라 내 마음의 지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보면 순수한 산맥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욕망과 생존과 허기가 겹겹이 침전되어 있는 검은 단층. 그리고 그 위에 끝내 자기 이름 하나 새겨보겠다고, 무너질지도 모르는 절벽을 더듬으며 기어오르는 늦은 등반자들. 나는 가끔 세상이 바로 그런 풍경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 묵직한 택배 상자 한 개가 서재 밖 복도에 놓였습니다. 상자를 가위로 가르고 꺼내든 것은 내 이름 석 자와 내 손끝에서 태어난 문장들이 활자가 되어 박힌 계간지 몇 권이었습니다. 불과 몇 달 전,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원고지 칸을 채워 나갈 때만 해도 이 책을 손에 쥐는 순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으리라 믿었었지요. 여러 파트에 동시에 등단 소식을 알리는 책들이었으니, 마땅히 환희와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차올라야 정상이겠지요.
그러나 책장을 펼치려던 손가락이 순간 허공에 멈추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빽빽하게 박힌 검은 글씨들이 순수한 문장의 결정체로 보이지 않았거드요. 언뜻 그것들은 축축한 피부를 꿈틀거리며 책장 위에 달라붙어 있는 검은 실거머리 떼 같았습니다. 책이라는 생명체의 몸뚱이에 단단히 주둥이를 박고, 그 점막에 붙어 무언가를 끊임없이 빨아먹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환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 두꺼운 책 한 권을 채우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밤마다 스탠드 불빛을 밝히며 영혼을 갈아 넣었을 것입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엄격하고도 지난한 등단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이 지면 위에 올랐을 터였겠지요. 그러나 그 신성해야 할 활자의 숲에서 왜 나는 생명력을 느끼기보다, 무언가를 갈구하며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실거머리의 서글픈 허기를 보았던 것일까요.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밀려오는 씁쓸함에 나는 차마 첫 쪽을 펼치지 못하고 책을 책상 위에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한때 그토록 열망했던 문장의 세계가 갑자기 낯설고 두려운 공간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그 지면 이면에 숨겨진 ‘돈의 세계’를 목격한 직후부터였습니다.
처음 낯선 번호로 전화를 받고, 수화기 너머로 계간지 편집장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만 해도 세상은 온통 장밋빛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남다른 깊이와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선입니다."
그 한마디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문학이라는 좁고 험한 문을 두드렸고, 요 몇 달간은 정말 미친 듯이 글에만 매달려 살았기에 그 보상을 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내 안의 열정이 마침내 세상과 주파수를 맞추었다는 안도감과 기쁨이 교차했습니다.
그러나 기쁨의 유효기간은 채 몇 분을 가지 못했습니다. 축하의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수화기 저머의 목소리는 매끄럽게 본론으로 넘어갔습니다. 등단을 정식으로 진행하고 지면에 작품을 싣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들이 요구한 조건은 명확하고 지극히 세속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발행하는 책을 최소한 몇 권 이상 의무적으로 구입해야 하고, 무슨 문학협회 같은 곳에 가입하기 위해 입회비를 내야 하며, 최종 심사를 진행하는 데 들어간 ‘심사료’ 혹은 ‘지면 대대료’ 명목으로 수십만 원의 돈을 송금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던 불꽃 위로 차가운 얼음물이 끼얹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엄청난 불쾌감과 모욕감이 밀려왔습니다. 문학이란 인간 영혼의 가장 순수한 고백이자, 자본주의의 때가 묻지 않은 마지막 성역이라고 믿었던 나의 환상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지요.
‘왜 내 글을 싣기 위해, 내 돈을 주고 구태여 등단이라는 타이틀을 사야 하는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문학적 성취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지면을 담보로 한 은밀한 거래에 불과해 보였습니다. 혹시 이 출판사만 그런 것일까 싶어 다른 부문에 투고했던 출판사들의 연락을 기다려보았지만, 결과는 하나같이 똑같았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당선의 기쁨 뒤에는 예외 없이 수십만 원이라는 금전적 요구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습니다.
첫 마음은 단호했습니다. 이런 식의 등단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도리에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이 들어간다면 등단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전화를 단호하게 끊어버렸지요. 예술을 돈으로 거래하는 관행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고, 내 글의 가치가 단돈 몇십만 원에 저울질당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거실을 서성이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집사람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 말씀 건넸습니다.
"여보, 너무 야박하게만 생각지 말아요. 돈을 요구하는 것도 그쪽에서 당신 글을 보고 최소한의 자격과 조건이 되니까 그러는 거지,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그러겠어요? 그깟 몇십만 원 때문에 당신이 밤새워 가며 공들인 그 귀한 등단 기회를 통째로 포기하는 건 내가 보기엔 너무 아까워요."
평생을 곁에서 지켜본 아내의 말은 현실적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내 고집스러운 자존심을 어루만지는 위로이기도 했습니다.
마침 타이밍을 맞춘 듯, 거절의 의사를 밝혔던 어떤 계간지의 편집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까와는 다른, 짙은 피로감과 절박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국내 출판 시장의 열악한 현실을 호소했습니다. 독자들은 더 이상 시집이나 수필집을 사 읽지 않고, 정부나 기업의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하여, 문학을 향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계간지 한 권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일인지를 털어놓았습니다. 활자 매체가 죽어가는 시대에, 문학의 터전을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해서는 필진과 작가들의 최소한의 십시일반이 지탱해 주지 않으면 잡지 자체가 폐간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의 절박한 호소를 들으며 내 마음의 빗장이 조금씩 헐거워졌습니다. 탐욕스러운 상술이라고만 생각했던 관행의 이면에, 붕괴해 가는 문학 생태계를 지키려는 이들의 눈물겨운 생존 투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 나는 자존심을 굽히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들이 요구한 돈을 송금했습니다. 그것이 문학에 대한 순수한 후원이자, 열악한 출판 시장에 보태는 작은 보시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사정을 이해하고 현실을 수용했다고 해서, 마음속에 응어리진 씁쓸함까지 완벽히 지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돈을 내고 책을 받아 든 순간, 오히려 구조적인 허무함이 더 크게 밀려왔습니다. 이 두꺼운 계간지 한 권에 이름을 올린 그 수많은 문인들이, 나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과정을 거쳐 이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의 사정이 눈물겹도록 어렵다는 것은 이제 압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그렇게 돈을 내서라도 어떻게든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지면을 확보해보겠다는 우리 문인들의 집착 섞인 심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요. 그것이 바로 책이라는 거대한 생명체에 달라붙어, 그 얄팍한 고결함을 빨아먹고 사는 거머리의 형상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문학이라는 이름의 숭고한 식탁은 사라지고, 오직 등단이라는 명예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빨아먹고 빨리는 기괴한 생태계만이 남은 듯했습니다.
그렇게 실거머리가 가득 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책은, 나에게 더 이상 설렘을 주지 못했습니다. 인쇄된 내 작품의 활자를 단 한 번 확인하여 그것이 오타 없이 박혀 있는지 보는 것 외에는, 다른 이들의 글을 차분히 훑어보고 감상할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글 한 편 한 편이 지닌 고유한 향기보다, 그 글이 지면에 실리기까지 오갔을 지저분한 금전의 계산서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온갖 풍파와 야박한 자본주의 논리에 신음하다가 마지막으로 찾아든 문학의 세계에서조차, 결국 돈의 논리가 지배하고 인간의 순수가 자본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은 못내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지나치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인간이거나, 혹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아서 이런 도덕적 결벽증을 앓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남들은 다 거쳐 가는 관행이고 통과 의례일 뿐이라며 가볍게 넘길 일을, 왜 나는 이토록 처연하게 가슴에 새기며 아파해야 하는지 스스로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이 거친 관행의 바다를 경험하고 나니, 내 안에서 작은 결심 하나가 싹텄습니다. 앞으로는 주최 측의 순수한 기금으로 운영되며 어떤 금전적 요구도 하지 않는 제도권의 신춘문예나 공신력 있는 큰 규모의 현상공모전에만 치중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그곳은 자본의 거래가 아닌, 오직 문장과 작품성만으로 정면 승부를 겨룰 수 있는 마지막 청정구역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단치 않은 내 실력과 일천한 필력으로는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실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게다가 문단의 공공연한 비밀처럼, 대부분의 신춘문예는 신선한 감각을 지닌 젊은 신인을 발굴한다는 명목 하에 나이제한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암암리에 세워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는 노경(老境)의 서투른 습작생에게 신춘문예의 문턱은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보다 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떨어지고 또 떨어져서 결국 아무런 지면도 얻지 못하는 무명(無名)의 존재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주고 지면을 사는 안락한 거머리의 길보다는 비록 낙방할지언정 홀로 벼랑 끝에서 거친 바람을 맞는 청정한 고독의 길이 내 영혼에는 더 울림을 줍니다.
두려운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요 몇 달 동안 서재의 불을 끄지 못하고 밤마다 온몸을 태워 가며 미친 듯이 글을 썼던 나의 그 뜨거웠던 열정이, 이 차가운 출판 관행의 진흙탕에 맞닥뜨려 서서히 불씨를 잃고 꺼져버리게 될까 봐, 그것이 가장 두렵고 무섭습니다. 영혼의 구원을 바라고 들어선 문학의 길에서, 자본의 무게에 눌려 붓을 꺾어버리는 나약한 인간이 될까 봐 가슴이 시려옵니다.
책상 위에 놓인 계간지를 다시 바라봅니다. 비록 시작은 실거머리 같은 얼룩으로 얼룩진 등단이었을지라도, 내 손으로 쓴 문장들만큼은 자본의 독소에 오염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돈의 세계가 아무리 견고할지라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문학을 향한 순수한 갈망과 푸른 불꽃만큼은 감히 그 어떤 자본도 마음대로 끄거나 지배할 수 없을 것이라 믿으며, 나는 다시 거친 연필을 쥐고 백지 앞에 마주 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