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 포크레인(이후 이렇게 칭함)이 워낙 강골의 마라토너이기 때문에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감지되었다. 그래서 맞짱시간 2시간 전부터
승부에 대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라톤 신발도 가장 달리기 편한 걸로 골라놓고
마라톤 복 역시 땀 배출이 잘 되는 쾌적한 것으로 골라 놓고 워터로딩에 들어갔다.
역시 몸에 있는 노폐물들을 깨끗하게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고 양말과 모자도
편한 것으로 골라서 착용을 했다. 결전의 시간은 다가오고.....
나는 나에게 유리하게 레이스를 이끌기 위해 맞짱을 뜰 장소와 거리를
염두에 두고 그와의 약속장소로 나갔다.
포크레인의 생김새가 궁금할 것이다. 생김새 역시 그의 마라톤 취향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독특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있는데,
바로 도올 김용옥 선생이다. 얼굴은 거의 똑같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키나 체구는 훨씬 크다. 머리는 빡빡 밀어 까까머리이고
눈을 쳐다보면 흰자위가 유난히 빛나 보인다. 이마의 주름과
광대뼈 역시 도올 선생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한눈에도 운동을 많이 한 것처럼 보이며 강한 모습이 인상적
이고 날렵한 몸매 역시 그가 젊은 시절, 여러 가지 무술을 했다는 말에도
그렇겠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체격의 소유자이다.
나이는 62년 호랑이 띠이며 나보다는 2살 아래이다.
내가 도착하고 나서 곧바로 그가 왔다. 엠피쓰리를 허리춤에 차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신발은 무거운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하의는 반바지를 입고 상의는 면티를 입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의아해하며 맨 날 이런 복장으로 달리냐고 했더니 혼자서
달리니 심심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고 복장은 이 복장이 편하다고 말했다.
면티를 입고 달리면 땀에 젖어서 불편하니 쿨맥스 러닝셔츠를 입고 달리는
것이 좋다고 했더니 그런 셔츠가 따로 있느냐고 하면서 새로운 정보에 고마워했다.
신발도 달리기 하기에 적합한 마라톤화를 신는 게 좋다고 했더니 신발은 집에
비싼 마라톤화를 하나 사놓았는데, 그것은 시합 때만 신으려고 고이 보관해
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달릴 장소와 거리에 대해서 쉽사리 합의를 보지 못했다. 그는 마석에서
출발하여 북부간선도로 입구까지 왕복 32킬로 미터를 달리자고 했다.
그리고 내가 제의한 마석 외곽 신설 비포장 도로는 신발에 흙이 들어가니 싫다고 했다.
신발에 흙이 들어가는 것은 주법이 잘못된 것이며 흙 길을 달려야 부상을 입지 않는다고
겨우겨우 설득하여 근처 신설도로에서 달리기로 했다.
거리는 일단 8킬로 미터를 달리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다. 그는 비포장 도로에서 달리면
자기 실력이 안 나올 거라고 하면서 투덜투덜 댔지만 차로에서 달리면 너무 위험하니
비포장 도로에서 달리는 게 좋다는 나의 말에 더 이상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4시 30분. 그렇게 그와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출발장소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었다. 공사하는 사람들도 오가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그와 나 둘 뿐이다.
차에서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고 준비 운동에 들어갔다. 간단한 스트레칭과 짧은 거리를
왕복하면서, 출발부터 빨리 달릴 것을 대비해 강약을 조절하며 다리의 관절과 발목,
그리고 몸의 여러 부분들이 원활하게 움직이는지를 점검하고 호흡 역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복식호흡을 리듬에 맞춰 시험해 보았다.
그는 이러한 나의 행동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제자리
뛰기만 반복하였다. 그러더니 한마디를 걸쭉하게 내뱉는다. "쓰발, 오늘 날씨 존나게 덥네!...
그리고선 나를 향해 "어이, 아저씨! 빨리 뜁시다"라고 달릴 것을 재촉했다.
준비운동도 하지 않고 달리는 그가 이상하여 "스트레칭 안 하세요?" 했더니만 달리면서
몸을 푸는 것이지 아저씨처럼 처음부터 힘을 빼버리면 달리기에 지장이 있는 것 아니냐고
도리어 나에게 반문을 했다.
날도 더운데 포크레인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준비운동이 아직 덜 됐지만
출발을 하기로 했다.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한 다음 나의 "출발합시다"라는 말에 그와의
운명(?)의 달리기 시합이 시작되었다.
나의 작전은 일단 1킬로 미터까지는 탐색전으로 상대의 달리기 상태와 주법을 면밀히
관찰한 뒤, 4킬로 미터까지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상대와 보조를 맞추고, 6킬로 미터에 가서 일단 승부수를 띄운 다음, 여의치 않으면
막판 1킬로 미터를 남기고 최후의 승부를 거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출발하자마자 그의 달리는 모습과 호흡소리를 듣고 너무 웃겨서 뒤로 자빠질 뻔했다.
주법이 하도 이상야릇하여 어떻게 글로 표현이 안 되는데, 무슨 축지법도 아니고 발목이
지그재그로 왔다 갔다 하는 동작이 마치 도마뱀이 기어가는 동작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러한 주법으로 달리는데도 그렇게 빨리 달리 수 있다는데 대하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