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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2023년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신년예배를 드린지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정말 빠르게 흘러갑니다. 한 해를 지나면서 우리는 감사, 아쉬움 혹은 후회의 감정이 밀려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고도, 사건도 끊임없는 한 해였습니다. 물론 소망했던 일들이 이루어지고 삶의 열매를 거두기도 하였지만, 힘들고 괴로운 날들도 있었습니다. 뜻을 세우고 열심히 노력도 했지만, 목표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원치 않는 질병이 찾아오기도 하고, 경영하고 도모했던 일들이 실패하기도 하고,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거나 배신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삶이 불안하고 다른 사람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의 경주를 다 달리고 마지막 주일을 맞아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지난 일 년을 돌아볼 때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주어졌는데, 그 때, 때로는 지혜롭지 못했습니다. 결단해야 할 순간에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좀 더 성실했어야 하는데, 좀 더 겸손했어야 했는데, 좀 더 너그럽고 참았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조금은 후회와 아쉬움을 덜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지난날을 돌아보며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아쉬워하고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저마다의 삶을 든든하게 세워갈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지으실 때 참으로 아름다운 질서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지구는 정확하게 24시간에 한 바퀴씩 자전을 하고, 365일에 한 번, 태양 주위를 공전하도록 창조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 질서 속에서 우리는 일할 수 있는 시간과,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고 계획하며 안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절의 변화와 함께 우리는 또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지나온 한 해를 정리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소중한 은혜입니다. 새로운 한 해를 바라보는 가운데 아쉬움이나 아픔을 뒤로하고 새로운 삶을 출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신명기 31장을 읽었습니다. 신명기는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선포한 네 번의 설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눈 앞의 요단강만 건너면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애굽에서 탈출하여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40년이 걸렸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 정착하여 살아가기 전에, 모세는 마지막으로 네 번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 네 번의 설교에서 모세는 애굽에서 떠나서 광야에서 보낸 40년의 역사를 회고하였습니다. 그들의 역사는 불신과 불순종의 역사였습니다. 여리고성에 정탐군을 보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가나안의 그 든든한 성과 그 성의 백성들을 보고 절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시내산에 불러 십계명을 수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지만, 백성들은 금을 녹여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자신들을 구원할 신이라고 믿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놀았습니다.
모세는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순종하며 하나님만 섬길 때 하나님은 구원을 베풀고 축복을 주시지만, 우상을 숭배하고 계명을 따라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말했습니다. 이제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놓여 있으니, 과연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생명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단하였고, 거기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분문은 모세가 선포한 마지막 설교의 처음 부분입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바로 그 약속의 땅입니다. 출애굽부터 이 백성들을 이끌고 40년을 광야에서 떠돌다가 이제야 겨우 요단강 강변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안타깝게도 이 강을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31장 2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단순히 나이가 많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민수기 2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그곳에 진을 쳤는데, 마실 물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물은 생명수입니다. 그런데 물이 다 말라버려서 물을 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회중들은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모세를 원망하고 항의를 하는데, 그 분위기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세는 그들의 항의가 단순한 원망이 아니라 반역이라고 느꼈을 정도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회중을 반석 앞에 모으고 말했습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는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그러자 많은 물이 솟아 나와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넉넉히 마실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물을 내라”고 반석에게 명령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회중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반역자들아. 우리가 이 반석에서 너희가 마실 물을 나오게 하랴?” 하고는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마치도 반석에서 물을 내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과시하려는듯,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치는 퍼포먼스를 한 것입니다. 지팡이 자체가 어떤 신통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반석에서 물을 내는 능력이 모세 자신에게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바로에게 보내시던 때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지팡이로 모세는 이적을 행했습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서 그 지팡이를 던졌을 때 그 지팡이는 뱀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지팡이를 들어 나일강을 쳤을 때 그 물이 다 피로 변하였습니다. 그 지팡이를 강들과 운하와 못 위에 폈을 때는 개구리떼가 올라와 애굽에 들끓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홍해바다가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의 앞길을 막았을 때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큰 동풍이 불어 바닷물은 물러가고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과 같이 길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였습니다. 그 지팡이 자체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지팡이를 들고있는 모세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능력은 다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만 드러나도록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침으로써, 놀라운 능력을 발하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는 듯,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교만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원망에 위기감을 느끼고, 자신을 배반하려는 백성들에게 실망하고 분노한 나머지 흥분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였고, 이 일로 인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결국 출애굽의 지도자로 모세를 택하신 하나님은, 가나안 정복의 사명은 여호수아에게 맡기셨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한다면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킨 위대한 영웅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고, 그들의 탄식과 신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하고 살아가게 하는 사명은 여호수아에게 맡기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는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
그는 이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의 역사에 있어서, 그 주인공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인도자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고, 이제부터 펼쳐질 가나안 정복의 역사 역시 하나님이 앞장서 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 40년을 지나고 모압 땅에 도착하도록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이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싸우시고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앞장 서 요단강을 건너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6절에서 이렇게 당부합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새롭게 출발하는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백성들에게 당부하는 모세의 마지막 권면이 이것입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해 나가다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너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욥기 23장에서 욥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이와 같은 똑같은 상황을 이스라엘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답답한 일입니다. 앞장서서 내 앞에서 가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현실에서 도대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오른 쪽으로 가도, 왼쪽으로 가도, 도무지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함께 가신다고 약속하셨고, 앞서 가신다고 약속하셨는데, 도대체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 겁니까?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믿음에 회의가 찾아오고, 실망감과 좌절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욥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것이 욥의 확신입니다.
그리고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이렇게 그는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고통의 시간 속에 내가 던져진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그는 결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고난의 길 위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나는 더욱 정금과도 같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서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갈까? 나의 믿음이 연약해지고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의심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얼마 전 고등학교 기독동문들이 드리는 성탄축하예배에 참석했는데, 오랜만에 존경하는 어느 선배님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암으로 수술을 받고 여러 차례 항암치료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힘든 과정 속에 너무나 힘들어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다가와서 손을 잡아 주시면서 “한 발짝만 더 가자. 한 발짝만 더 가자” 안타까운 마음으로 격려하시고 위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만 더 가자”고 하는 그 말 속에 그분이 처했던 그 상황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그 고통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다가오셔서 그를 격려하시고 위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걸어온 그 힘든 투병의 과정은 주님이 함께 걸어주신 놀라운 은혜의 기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발짝만 더 가자, 한 발짝만 더 가자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격려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고, 3년이 지난 지금은 병세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압 평지에서 지난 날을 회고하는 모세처럼, 우리도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봅니다. 불신앙과 불평, 그리고 원망으로 채운 시간도 많았습니다. 나 자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그 사랑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 자신의 불신앙을 반성도 하고 후회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그 시간 속에서 나를 연단도 하시고, 나를 격려도 하시며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 지나온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작정하신 그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새롭게 출발합니다. 여러분, 올 한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어떤 목표를 정하셨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그 목표를 향하여 나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는 그 길에 동행하시고 우리의 앞에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올 한해 동안 어떻게 역사하실는지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멋진 한 해를 준비하고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