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사용된 말이라는 단어들
1446 Ἑβραΐς, ΐδος, ἡ 헤브라이스(Hebrais) {heb-rah-is'}1443(에베르)에서 유래;히브리의 (즉 히브리) 혹은 유대의(아람의)언어(言語-말) ; 여성명사. Hebrew <행21:40, 22:2, 26:14, 신약3회>
1447 Ἑβραϊστί 헤브라이스티(Hebraisti) {heb-rah-is-tee'}부사, 1446(헤브라이스)-말(언어)에서 유래; 히브리식으로, 혹은 유대(아람)말로; 부사. in Hebrew ; <요5:2, 19:13, 17, 20, 20:16; 계9:11, 16:16, 신약7회>
226 ἀληθεύω 알레듀오(aletheuo) {al-ayth-yoo'-o}227(알레데스)에서 유래; (교리와 고백에) ‘진실(眞實)되다’, ‘진리(眞理)를 말하다; 동사. to be truthful; <갈4:16, 엡4:15, 신약2회>
2036 e[pw 에포(epo) {ep'-o}기본동사(한정된 과거 시제로만 사용, 다른 변화형은 2046(에레오), 4483(레오), 5346(페미)에서 빌어옴);‘대화하다’,혹은 ‘말하다’(말이나 글로써), 대담하다, 명령하다, 말을 전하다, 부르다, 지시하다, 수여하다, 3004(레고)와 비교 ; 동사. to speak; <마5:11;눅 6:26;행11:12,외, 신약,- ?회 >
2046 ἐρεῶ 에레오(ereo) {er-eh'-o}아마도 4483(레오)의 보다 완전한 형태; 어떤 시제에서는 2036(에포)의 대체형; ‘언급하다’, 즉 ‘대화하다’, 또는 ‘말하다’, 부르다 ; 동사. to utter; <마1:12, 2:15, 17, 3:3, 5:21, 33, 7;4, 12:17, 21:3, 24, 요4:18, 6:65; 롬3:5, 4:1, 히10:15, 계17:7,외 신약98회>
2757 kenofwniva 케노포니아(kenophonia) {ken-of-o-nee'-ah}2756(케노스)과 5456(포네)의 추정된 합성어에서 유래; 허탄한 소리, 즉 ‘탁상공론’, 헛된 말; 여성명사. empty talk; <딤전6:20, 딤후2:16, 신약2회>
2980 λαλέω 랄레오(laleo) {lal-eh'-o}다른 폐어가된 단어의 연장형;‘ 말하다’, 즉 ‘발산하다’, 전파하다, (따라)이야기 하다, 발표하다, 3004(레고;말하다)와 비교 ; 동사. speak; <마9:18, 33, 10:19, 12:36, 23:1, 막16:17, 눅2:33; 요6:63, 7:46, 8:25, 30, 38, 40, 9:29, 37, 14:25, 15:3, 11, 롬15:18, 고후12:4, 엡5:19, 빌1:14, 히1:1, 2:3, 3:5,외 신약297회> *(대중적으로) 연설하다 뜻
2981 laliav 랄리아(lalia) {lal-ee-ah'}2980(랄레오)에서 유래; ‘말함, 말, 연설(演說); 여성명사. speech; <마26:73, 막14:70, 요4:42, 8:43, 신약4회>
3004 λέγω 레고(lego) {leg'-o}기본동사; 본래적 의미로는 ‘앞에 놓다’, 즉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다’(말로서 보통 조직적이거나 또 논리를 써서; 반면에 2036(에포)과 5366(페미)은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표현이나 말에 대해 언급한다; 한편 4483(레오)은 본래적 의미로 단순히 침묵을 ‘깨뜨리다’, 그리고 2980 lalevw 랄레오(laleo)는 연설(演說)을 의미한다);함축적으로 ‘의미하다’, 묻다, 명령하다, 자랑하다, 부르다, 묘사하다, 준다, ~라고 부르다, 발표하다, 말하다, 보이다, 이야기하다, 표현하다 ; 동사. to lay out(words), say, tell, ask, answer; 본래적 의미로는 앞에 놓다, 즉 (상징적으로)이야기하다 2036(ἔπω,에포)과 5346(φημί,풰미)은 일반적으로 개인(個人)적인 표현(表現)이나 말에 대해 언급(言及)하다; <마1:16, 2:23, 5:1, 2, 12:17, 요6:8, 8:54, 롬4:3; 엡5:14, 골4:11,살후2:5, 히11:18, 요이1:11,외 신약2,267회>
3056 λόγος, ου, ὁ 로고스(logos) {log'-os}3004(레고)에서 유래;(생각을 포함하여) ‘말해진 어떤 것’, 함축적으로 ‘주제(主題)’ (논의의 제목), 또한 ‘논의’ (정신 집중)또는 동기, 연루된 의미로 ‘계산(計算)’, 특히 ‘신(神)의 현현(顯顯)’(즉, 그리스도; ὁ λόγος,호(정관사)+로고스), ‘계산(計算)’ , 이유, 교통, ‘말씀’, 관계하는 것, 교리, 명예, 해야 하는 것, 의도, 문제, 입, 설교, 문제, 도(道) ; 남성명사. something said <마5:32, 37, 7:24, 26, 28, 8:8, 16, 눅1:2, 요1:1; 2:22, 4:41, 요7:36, 8:51; 행6:5; 롬14:12, 갈5:14, 엡4:29, 5:6, 골4:6, 살전4:18, 살후3:14, 딤전4;5, 5:17, 딤후4:2, 15, 약1:18, 21, 22, 23, 3:2, 요일1:1; 계19:13,외 신약331회>
3151 mataiolovgo" 마타이올로고스(mataiologos) {mat-ah-yol-og'-os}3152(마타이오스)와 3004(레고)에서 유래;‘게으른’(즉 의미 없는, 또는 해로운)‘말장이’, 즉 ‘논쟁자’, 헛된 말 장이 ;남성명사. idle; <딛1:10, 신약1회>
4086 piqanologiva 피다놀로기아(pithanologia) {pith-an-ol-og-ee'-ah}3892(파라노미아)와 3056(로고스)의 파생어의 합성어에서 유래;‘설득력 있는 말’, 유혹하는 말 ; 여성명사. persuasive language; <골2:4, 신약1회>
4487 ῥῆμα, 레마(rhema) {hray'-mah}4483(레오)에서 유래; ‘말’, "말씀" (개인적으로, 집합적으로 혹은 특히), 함축적으로(특히 해설, 명령, 토론의) ‘논제 ‘또는 ‘주제’ ; 중성명사. a word,message; <마4:4, 12:36, 18:16, 26:75, 27:14, 막9:32, 눅1:65, 5:5, 18:34, 요3:34, 5:47, 6:63, 68, 8:20, 47,
10:21, 12:48, 14:10, 15:7, 17:8, 롬10:8, 고후12:4, 13:1, 엡5:26, 히1:3,외 신약70회> *로고스사전은 ‘ㅎ레마’로, 엘피스는 [뤠ㅎ-마]로 음역함.
4750 stovma 스토마(stoma) {stom'-a}아마도 5114(토모테로스)의 어간의 추정된 파생어에서 유래된 강세형; ‘입’(마치 얼굴의 갈라진 틈 같이), 함축적으로 ‘말, 언어’(와 그에 대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구멍’ (땅에 있는), 특히 (무기의) ‘전반부’ 또는 ‘날’, 얼굴 ; 중성명사. the mouth; <마4:4, 15:8, 11,2회, 18:16; 엡6:19, 요이1:12, 요삼1:14,2회,외 신약78회>
518 ajpaggevllw 아팡겔로(apaggello) {ap-ang-el'-lo}575(아포)와 32(앙겔로스)의 어간에서 유래; ‘통지하다’, (다시)소식을 전하다, 선언하다, 보고하다, (다시)나타내다, 말하다 ; 동사. to report; <마2:8, 11:4, 12:18, 14:12, 28:10, 히2:12,외 신약47회>
5346 φημί 풰미(phemi) {fay-mee'}5457(포스,포토스)의 어간과 5316(파이노)과 동일형인듯; 사람의 생각을 ‘보여주다’ 또는 ‘알게하다’, 즉 ‘말하다’, 혹은 ‘이야기하다’, 증언하다, 3004(레고)와 비교 ; 동사. to say; <마4:7, 8:8, 13:29, 14:8, 25:21, 요9:38, 행10:28, 고전10:15, 고후10:10,외 신약66회>
5456 fwnhv 포네(phone) {fo-nay'}‘폭로’의 개념으로 5316(파이노)과 유사; ‘어조(語調)’ (분명한. 짐승적이거나 인공적인), 함축적으로 ‘연설(演說)’ (어떤 의도를 위한) ‘말’, 또는 ‘언어’, 소음, 소리, 목소리; 여성명사. a sound, a voice, speech, language; <마2:18; 3:3, 막1:3, 요10:3,외 신약139회>
5542 crhstologiva 크레스톨로기아(chrestologia) {khrase-tol-og-ee'-ah}5543(크레스토스)과 3004(레고)의 합성어에서 유래; ‘유창한 연설’, 즉 ‘말재주’, 공교한 말; 여성명사. smooth speech; <롬16:18, 신약1회>
첫댓글 [홍석인] [오전 7:10] 마태복음 5:11절에 말이 무엇으로 쓰였는지 확인해 보시고.
사도행전 6:13절에도 말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시면 됩니다.
[라도관] [오전 7:16] 다음 카페에 홍형제와 나눈 대화 제목으로
신약성경에 사용된 말이라는 단어들을 대충 올려놓았어요.
말이라는 용어는 홍형제의 주장처럼 레마로만 표기되지 않고 문장에 따라서
다양한 단어들이 사용됩니다. 둘러보세요.
[홍석인] [오전 7:20] 레마라는 뜻을 어떻게 알고 있었나가 문제이지,
다른 수 많은 말에 어떤 헬라아가 쓰였는지가 왜 문제가 됩니까?
제가 말에는 레마 밖에 없다고 했습니까?
[라도관] [오전 7:20] 악한 말-랍비들이 자신들만의 율법 조문으로 정죄하는 말.
그러므로 나는 유대교 랍비들이 하는 말은 성경에 근거한 설교라고 정의했고
예수님은 성경을 재해석하여 영을 살리는 말로 새 교훈을 말씀하셨다고 정의했어요.
[라도관] [오전 7:25] 레마의 뜻을 내가 배운 대로 해석하니 뜻의 문제가 아니라
단어 문제라기에 단어들을 찾아서 올린 겁니다.
홍형제의 일관된 주장은 레마-말이라는 용어는 심지어 사기치는 말도 포함
된다기에 그런 말이 유대교
설교를 의미하는가? 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모든 말(구음)이 레마라고 우기길래
할 수 없이 내가 배운 대로 다양한 단어들이 있음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ai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성구사전에서 대충 찾아 올린 많은 말이라는 단어들도 참조하세요.
괜히 혼자만 아는체 하면 스스로 오류에 빠집니다.
[홍석인] [오전 7:27] 형제님 교회의 증거 중에서 로고스가 아닌 레마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는 그런 말을 수없이 하는 말을 들을 때 레마를 무슨 뜻으로 이해를
했기에 그런 표현을 틀렸다고 해주지 않으셨어요?
형제님은 예수님이 하신 “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이 구절의 말(레마) 이것만 알고 그렇게 알고 사용한 것 아닙니까,
미주 유형제도 그러하고 교회 대부분의 지체가 이렇게 아는 것으로 레마는 영이고
생명의 말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라도관] [오전 7:33] 랍비들의 말과 의도적으로 대조하신 선언이잖아요?
지금까지 홍형제가 주장하던 바를 돌아보고 레마, 는 모든 말이라는 주장이었기에
@성령과 신부 나는 래마의 뜻을 내가 배운 대로 가르침이라고 정의했고 (성경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유대교 랍비들이 유대교인들에게 가르친 말과 예수님이 재해석하신
말이 달라서 랍비들의 가르침은 죽이는 독이 숨겨있는 말이므로 주님이 바로잡아
가르치신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홍형제는 내 견해를 반박하려고 레마의 뜻이 문재가 아니고 단어의 문제라고
하기에 내가 여지껏 홍형제가 말하려는 의도를 오해하고 자꾸 레마, 라는 용어의
의미만 설명하려고 애썼구나! 깨닫고 희미한 기억에 말이라는 단어는 많다는
가르침이 생각나서 ai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더 확실하게 하려고 성구사전을 검색하게 되었어요.
[홍석인] [오전 7:35] 형제님 레마는 구음으로 귀에 들려주는 말에 쓰이는 일반적인
용어로 알고 있었나요? 아니면 레마는 영적인 생명적인 말로 알고 계셨나요?
라도관[오전 7:39] 랍비들이나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로고쓰 말씀에 근거하여
가르치지 속세의 인간들이 사용하는 말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형제가 마5:11절을 자꾸 인용하는 의도가 랍비들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말로
나도 이해함으로 랍비들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대조한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 나는 처음부터 랍비들이 유대인들을 가르친 말도 로고쓰를 근거로 하는 레마지만
예수님과 동일한 성경 말씀의 해석이 달랐기 때문에 요6:63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과 생명이라고 하셨다고 계속 증거했어요.
[라도관] [오전 7:42] 나를 가르치신 스승님은 형제회에서 언어를 익힌 분이므로
나는 이론상으로 어떤 단어에 대하여 그분의 가르침을 틀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어떤 부분의 경륜적인 하나님의 새 일에 대하여 해석하실 때 나는 다른 견해를
갖고 제의했다가 출회당한 것이지요.
세상 교계가 사용하는 성경사전, 성구사전, 성경단어사전, 히.헬 성경이 모두
형제회에서 나온 것입니다.
[홍석인] [오전 7:45]이런 간단한 논쟁을 다른 것으로 확대를 하시는데, 논점을 다른 것으로
옮겨갈 주제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해석의 문제로 출발한 주제가 전혀 아닌 것을 해석의
문제에 있었던 것처럼 하시면 안됩니다.
유대교 랍비들의 말과 예수님의 말의 차이를 몰라서 이런 논쟁을 한 것이 아니었잖아요,
그 차이도 모르면서 20년 이상을 금 기름 붓는 집에 발붙이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 드릴께요,
@성령과 신부 레마의 논쟁은 형제님께서 레마는 영과 생명의 말을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레마라는 헬라어 자체에는 영이다 육이다 어떤 기준을 함의하는 낱말은 아니였다,
라고 하셨으면 긴 논쟁도 없었을 일이었습니다.
[라도관] [오전 8:02] 처음부터 랍비들의 가르침은 육체의 율법 관점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은 영적인 생명의 관점이므로 성경의 해석상의 문제라고
계속 말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영을 살리는 말로 가르쳤고 랍비들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을
통해서 누리던 기득권을 지키려고 예수님을 죽인 것은 성경 해석상의 문제지요.
그러니 오늘날 자칭 유대인들 역시 전통과 조직신학 교리를 통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진리의 말씀들을 대적하는데도 홍형제는 자꾸 저들과 다른 것을 말하면 진리냐고 의심을
하는 말로 대척하므로 나는 자꾸 기독교의 교리를 답습하는 관점을 주장하는 홍형제에게
왜 자꾸 기독교의 교리를 사용하느냐고 지적한 것이고요.
레마라는 용어를 가지고 길고 긴 논쟁을 하면서 제시하는 말들이 모두 인터넷에서
떠도는 말들이기에 왜 세상 교계의 교리를 나의 가르침보다 앞에 세우려 하는가? 라는 뜻으로
반복해서 지적한 것입니다.
@성령과 신부 홍형제 메시지:
제가 당분간 조용히 지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에는 요한일서 강해
4장의 2,3번의 글은 문제를 제기하는 형제들을 염두에 둔 글이라고 유념해서 보고
반론이 있으면 제기하라는 메세지를 남기면서 톡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형제님깨도 문제가 있으면 지적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어쩌면 형제님과 더 사이에도 어떤 간격과 차이에 대한 내용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끝내 어떤 의견도 교회 지체들 사이에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산 모임에서 형제님을 맹신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형제님께 물어보자, 확인해보자 이러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 지체들에게 어떤 은혜도 끼치기 어렵겠구나,
그렇다면 굳이 시간 낭비할 필요가 뭐있나??
어차피 집회도 참석 못하고 집사람에게 좀 더 집중하자,
그리고 20여년 동안 모임에 빠지지 않고 했던 것이 내 스스로 틀에 갇힌
상태는 아닌가? 혹여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가??
민들레 홀씨 뿌리듯 그런 일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이전보다 더 바쁜 일상으로 하자,
아니면 나태해진다 스스로 독려하며 글을 쓰는 일과
@성령과 신부 유투브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보람이라면 유투브 구독자가 40명 정도 늘어서 이들에게 전하는
일도 보람이 있구나!!
연어가 제 길을 찾듯이 언젠가 다시 찾을 때가 있겠지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라도관 형제 메시지
그 당시 나는 홍형제의 글을 읽지 않았었고 나중에 홍형제의 카톡을 보고 나서
읽었어요.
그리고 성령의 열매와 육의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면 좋겠다고 조언했고요.
무슨 문제인가 싶어서 형제들의 연락을 기다렸는데 요한서신을 다루면서
홍형제가 교회의 형제들에게 영지주의자라는 말을 했다고 하길래 나는 너무도
어이없었어요.
홍형제는 언사를 너무 함부로 하지 마세요.
괜히 서로의 관계를 멀어지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불분명한 홍형제의 말을 무턱대고 맹신해주기를 바라나요?
형제들이 서로 교제를 통해서 자신에게 계시된 바를 상통하면 더욱 좋지요.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하나님인 호 로고쓰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다.
로고쓰로만 읽지 말고 예수님이 해석해주신 레마로 들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지침이다.
문제는 유대교 랍비들이 가르친 말들이 영을 살려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이 재 해석해 주신 말씀으로 듣고 영에 감동을 받아 마음에 믿어져야만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로고쓰 말씀을 읽는다고 영생을 얻는가?
나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백독했다는 사람도 만났다, 부럽기는 했으나 그분은 사실 성경 기록들을 암기는 했어도 그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로고쓰 말씀을 육체에 상관된 조문의 말씀으로만 붙잡고 있으면 유대교인이다.
예수께서 해석해 주시는 영과 생명의 말씀을 듣고 영에 빛을 받아 마음에 믿어져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홍형제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레마"-일반적인 말이라고 계속 주장하는데 인터넷에 떠도는 세속교계의 말쟁이들이 떠드는 헛소리에 너무 깊이 빠졌어요.
성경에 사용된 레마, 즉 랍비들이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말이나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신 말은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기록한 성경에 근거하는 말이지 일반적인 속세의 말이 아닙니다.
속세의 말을 레마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AI,에게 질문하여 올린 자료와 같습니다.
헬라어성경에서 사용한 말이라는 많은 단어들까지 제시했는데도 여전히 레마-일반적인 말이라는 관념으로 댓글을 쓰는 모습을 보며 사람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합니다.
4487 ῥῆμα, 레마(rhema) {hray'-mah}4483(레오)에서 유래; ‘말’, "말씀" (개인적으로, 집합적), 함축적으로(특히 해설, 명령, 토론의) 논제, 설교.
세속적인 말:베베로스 케노포니아-망령된 말, 잡담, 헛된 말. 성령을 훼방하는 말.
블라스페미아-비방-신성모독이나 세속적인 말.
거짓말-프슈도마이, 등과 성경을 가르치는 말(레마)은 단어가 다르다.
복음서의 인자 예수는 독생자 예수의 행적 기록이나 행전 이후의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맏아들이신 그 영이 되어 모든 믿는 이들의 육체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세속의 말이라는 단어를 다시 올립니다.
레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에 근거하여 가르치는 말입니다.
사전 그대로 레마는 말씀의 해석, 명령, 토론의 주재, 설교라고 되어 있잖아요?
왜 자꾸 교계의 말쟁이들이 떠드는 대로 일반적인 말, 모든 말이라고 아직도 댓글을 쓰나요?
성경을 가르치는 말-레마와 일반적인 말들은 단어 자체가 다릅니다.
랍비들이나 예수님이 청중에게 왜 세속의 일반적인 말을 합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설명하는 말-구원의 도를 이르는 강론, 설교를 하지요.
홍형제님은 우리가 이전부터 로고스와 레마를 대비하여 배워 온 영적 의미를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그 가르침이 성경적으로 옳은지를 검증하기보다,
레마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용례를 가지고 라도관 형제님이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계신 것처럼 논쟁하셨습니까?
또한 지체들중 홍형제님을 이해하는 이가 거의 없는듯 한데
지체들이 나형제님을 분별없이 추종한다 보인다면
형제님은 누구에게서 분별을 받으시려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길
또한 누가 형제의 말을 분별하여 형제의 발을 씻어줄 이가 있을까
또 누가 형제와 함께 피차 가르침의 교회 생활을 할것인가
어떻게 이 말씀을 순종할수 있는가
나와 다르면 화를 내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성경 어디를 근거로 그러는지
말씀을 가지고 서로 분별을 하면 오해 할수도 있고 완전해질때까지는 부족할 수도 있는 것인데
누가 부족하든 관계를 단절하고 나가면 화를 내고 나갔다고 볼수밖에 없지 않은지 깊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후에는 둘중 하나
기대 없이 관계 하거나
떠날까 두려워 분별을 못하거나
둘중 하나 아닌지
이것은 정상적인 교회생활은 아니며 말씀을 순종함도 아니며
질서있는 교회생활도 아니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