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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93 코넬리우스의 신앙(사도행전10장1-8절)
성경말씀은 사도행전 10장 1절에서 8절까지 봉독합니다.
[사도행전 10장]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영어세상에서 다이나믹(dynamic) 하다고 하죠.
역동적인 그런 역사가 지난번에 우리가 8장에서는 사마리아에서 아주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났다가 그런 은혜와 진리가 구스 내시에 의해서 구스로 이디오피아까지 퍼져나가는 장면이며,
여기 여기는 로마군대 백부장인 코넬리우스, 우리 할아버지들은 고넬료라고 했는데, 고넬료 집에 전파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비록 간단하게 작게 보면 한 가정에 전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로마백부장이었다 하는데에 큰 의미가 있는 거죠.
[사도행전 10장]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아마도 백부장은 그 가이사랴에 한두사람이 있었던게 아니고 아마 여럿이 있었을 겁니다.
가이사랴라는 곳은 헤롯이 로마 황제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충성하기 위해서 해변가에 도시를 하나 건설했는데 아주 도시계획을 깔끔하게 해가지고 배들이 와서 방파제까지 다 만들어가지고 아주 멋들어지게 그 로마 황제가 감격할만큼 그렇게 잘 만들었던 그런 도시인데,
물론 지금은 다 파괴되고 그 때 수로와 해자가 얼마 조금 보존되어 있고 해변가에 극장 정도만 남아 있고, 그 도시 자체는 아예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이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 헤롯이라는 사람이 에돔 지파 사람이니까, 에돔 지파의 헤롯이 로마 황제를 위해서 아첨도시를 하나 만들어서 바쳤던 그런 도시라서 실제로 지금 다 파괴되고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러 백부장들이 있겠습니다만 그 백부장 중에 아주 특이한 사람이 있었어요.
코넬리우스라고 하는 성씨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로마에서 아주 명문가에 속했는데, 그 코넬리우스라는 귀족이 얼마나 관대하고 인품이 훌륭했던지 자기 집에서 부리고 사오고 한 그런 노예들 이런 신분의 사람들을 자기 성으로 주어서 자녀로 삼아가지고 그래서 그 가문에서 덕망이 있어가지고,
아마 이 백부장도 그런 가문에서 태어났거나 아니면 그 가문에서 노예로 들어갔는데 그 가정에서 성을 받아가지고 심지어 백부장까지 되었다면 가치가 있는 거죠.
그런 가문의 사람이어서 그런지 아주 이 백부장의 인품이 참 특이한 거예요.
지금 로마군대가 와서 총독까지 와가지고 이스라엘 땅을 지배하고 있는 피식민지에 백성을 사랑하고 또 그 피식민지 국민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같이 신봉하고, 그렇게 했는데 이것이 겉으로 하는 척 한게 아니라는 거죠.
정치적 쇼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 인정받을만큼의 경건이 있었다는 거야.
사실은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우리가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보기는 하지만, 그 심성 자체가 뭔가를 찾고 있거나 아니면 참 경외하는 경건한 이런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거죠.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백부장은 백명 정도를 거느리는 초급장교입니다.
우리 같으면 아마 중대장 정도 되지 않겠나..
한 대위정도 되는 그 정도 비슷한 그런 위치입니다.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자기 혼자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리고 백성을 구제하는 것, 그리고 항상 기도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균형이예요.
우리가 히브리인들 유대인들이 3대 의가 있는데, 그것은 구제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 이 둘이 딱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통 세개합니다. 구제 기도 금식.
금식은 여기 빠져 있습니다만, 구제가 제일 의예요.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우리 믿는 사람이나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항상 우리 주변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강제로 공산주의처럼 빼앗아 가지고 나누어 주는 이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가진 사람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서 이웃 사람에게 힘을 다해서 구제하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것.
여러분 이 둘 중에 하나가 빠져버리면 뭐가 안 돼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구제하고 항상 기도하는 것 이 두가지가 잘 조화가 되어야 정상적인 신앙이지, 아무 구제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든지, 아니면 기도는 하지 않고 구제만 한다든지.. 둘 중에 하나가 없으면 잘못된 신앙이라는 거예요.
항상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간 후에 이웃과 바른 관계가 이루어지도록..
이 두가지 중에 기도와 구제는 항상 오른팔 왼팔처럼 항상 함께 가야 되는 거죠.
금식이라는 것은 그것이 꼭 의라기 보다도..
여러분 우리가 한번씩 이따금 금식을 해볼 필요가 있는게, 금식을 해보면 첫째 양식이 얼마나 고마운가 알게 돼요.
3일만 해봐. 평생에 밥 한번도 안 먹은 것 같아요.
그렇게 금식이라는게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그리고 또 금식한 것 자기가 다 먹어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금식할 때 아낀 것은 반드시 굶는 사람을 챙겨야 됩니다.
여러분 안 굶어본 사람은 굶는 사람의 사정을 잘 몰라요.
그러니까 금식할 때 아꼈던 것을 이웃에게 나누도록..
그래서 정말 결식아동이 있다든지 굶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배가 고픈가 내가 금식을 해봐야 알죠.
그 다음에 흉악의 결박을 끌러주며..
이사야 58장에 보면 금식의 참 정신이 나옵니다.
그래서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우리가 조금 아껴서 우리가 어렵지 않고는 남을 도울 수 없죠.
우리가 조금 욕심과 욕망을 절제하고 또 먹는 것도 덜 먹고 아끼고 해야 구제할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개인도 그렇게 해야 되고, 교회도 반드시 우리 주변에 하여튼 우리 샤론교회 근방에 또 우리 성도들이 믿는 이웃집에 밥 굶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책임이다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우리가 크게 대단한 것은 못해도 우리 주변에 사람이 굶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굶거나 헐벗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집에 있는 옷을 다 입어보지도 못하고 쌓아놓고 죽으면 그것도 수치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다 안 입을 바에는 헐벗는 사람에게.. 하기야 한국에 헐벗는 사람 거지도 다 잘 입는 것 같아. 하도 중국 사람들이 옷을 잘 만들어서 싸게 파니까..
그래도 기본 정신이 이웃사람이 헐벗거나 굶거나 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 주변에 밥 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니까, 우리 주변에 공부할 마음은 있고 머리도 괜찮고 사람이 착한데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못한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도와야 되겠죠.
그래서 구제하고 기도하는 것이 항상 했어요. 한두 번 하는 척 하는게 아니라 항상 그렇게 하니까, 그것이 하나님께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제 구시’는 오후 3시쯤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풍속처럼 되어있는 성경에서 하루 세번 기도하라는 말은 없지만, 오래전부터 다니엘 시대부터 하루에 세번씩 기도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을 계승해서 하루에 세번 기도합니다.
..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기도에 대해서는 대단한 열정이 있으면서 구제에 대해서 열정이 없어요.
한쪽이 부족한 거야.
초대교회는 가장 기본이 이 구제예요.
왜냐하면 자유를 무제한으로 공급하면 반드시 불평등이 일어납니다.
능력의 차이가 있으니까..
그래서 상대적으로 약한 자, 지적으로 딸리는 자, 경쟁사회에서 본의 아니게 남이 달아나니까 뒤쳐진 자가 있는데, 그럴 때 교회가 구제해야 되는데,
교회에서 구제가 너무 약해졌어요.
초대교회는 기도와 구제 이것이 아주 양대손처럼 아주 중시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앞으로 다른 부서도 해야 되지만 선교부 사회부가 아름다운 일을 많이 해야 돼요.
정말 미담의 꽃을 피우는 그런 일을 해야 됩니다.
..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이것은 주의 사자가 와서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서 했다니까 천사겠죠.
그러면 보세요.
천사가 할 일이 있고, 베드로가 할 일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베드로 아시는 대로 이런 저런 실수도 더러 하고 그런 분이지만, 천사는 훨씬 더 베드로 보다 거룩할 수 있겠는데, 천사가 할 일이 따로 있고 베드로가 부족하지만 베드로가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베드로가 하던 일을 우리가 해야 돼요.
천사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우리가 할 일이 따로 있는 거죠.
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언젠가 여러분 성지순례 가면 욥바라는 곳에 피장 시몬의 집이라는 집이 있습니다.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하인 둘과 종졸 하나이면 세 사람을 보낸 거죠
8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내니라
지금은 욥바가 커졌습니다만 그 때는 욥바가 크지 않으니까 해변가에 피장의 집이라 하면, 피장은 그 당시로는 천한 신분이야.
짐승의 가죽을 무두질 해가지고 쓸만한 가죽 제품을 만드니까 냄새가 지독합니다.
히브리 속담에 피장의 집에 갖다오면 가죽에 손도 안 댔는데 냄새가 흠뻑 젖는다. 교육의 영향력을 그렇게 말하는데, 그 피장의 집에 베드로가 꽤 여러 날 있었는가 봐요.
왜냐하면 지금 거기 유한다 하는 것을 보면, 몇일 전부터 유한 것 같고, 또 고넬료가 사람을 보내어서 이틀만에 도착한 것을 보면 피장 시몬의 집에 상당히 오래 있었던 것 같다는 거죠.
그러니까 베드로가 벌써 천하고 낮은 사람 가리지 않고 유하기도 하고 했다는 거죠.
하기는 자기도 어부 출신이니까 비린내 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다 겪어봤기 때문에 좀 냄새나고 하는 집도 가리지 않고 갔다는 거죠.
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제 육 시’ 이면 12시 경 되는 거죠.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 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여기 요즈음 이것을 오해해가지고 ‘베드로야 잡아 먹으라’ 했다해가지고 신약 시대에는 아무 고기나 다 먹어도 된다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이 있는게 아니고 거의 다죠.
이 환상을 보고 ‘신약 시대에는 아무 것이나 다 먹어도 된다, 허락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참 잘못된 해석이예요.
뒤에 조금 더 보세요.
베드로가 어떻게 환상을 이해했는지..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베드로가 어떤 환상을 보기는 봤는데, 아무 뜻을 설명 안 해 줬어요. 뜻을 깨닫기를 바라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다 깨닫게 만들어 버리지 않고, 어떤 부분은 본인이 이렇게 보고는 ‘음 이것은 무슨 뜻이겠다’ 이것 한 단계 정도는 깨달을 수 있어야 됩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 한 단계 그 자체도 깨닫지 못하고 문자대로 움직이면 이상한 거야.
무슨 뜻인지 알아야 돼요.
그래서 베드로가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
..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우리가 늘 그저 생각하면서 깨닫기 위해서 마음을 기울이고 그런 겸허한 자세, 그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때 성령께서 알게 해 주십니다.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23 베드로가 불러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그 날 밤에 해가 저물었던지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같이 잡니다.
..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아까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 세 사람이죠. 세 사람과 베드로까지 네 사람, 또 욥바 사람 두어사람이 가면 여섯 사람이 함께 고넬료의 집으로 가는 거죠.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이것을 잘 보세요.
구도자의 준비와 자세예요.
여러분 구도자가 참 진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일가와 자기 가족들 전부 다 하고, 또 가까운 친구 다 불러모아가지고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이것은 전도자의 자세예요.
전도자가 신인 것처럼 그러면 안 돼요. 나도 사람이죠. 똑같이..
그런데 아까 심부름 간 사람들은 베드로를 찾아가서 베드로 앞에 절하고 이런게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심부름을 보낸 더 높은 고넬료라는 사람이 베드로가 오니까 그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려 절하니..
로마 백부장이 일개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당시에 그저 베드로라든지 이런 사람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 같으면 이단 비슷하게 취급되는 나사렛파라 하는 그런 지도자밖에 안 되는 거야.
그런데 로마 백부장은 그 당시에 신분이 탄탄한 사람인데, 그 베드로 앞에 절을 했다는 거야.
그래서,
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위법인 것은 하나님의 법에 위법이 아니라, 유대인 관습에 위법이야.
구약 성경에라든지 유대인 관습법에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지 못한다. 사귀지 못한다 하는데, 이유가 뭘까요?
왜 구약성경 율법 속에 이방인과 교제 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든지 유대인 관습에 이방인과 유대인이 교제하는 것이 왜 금지된 거죠?
우리가 좀 생각을 해 봐야 되거든요.
무슨 뜻이었느냐?
그것은 이방인의 문화가 너무 힘이 강력해가지고 그 이방인 문화와 풍속에 물든다는 거죠. 영향을 받는다는 거죠.
만약에 우리가 절대 그런 사람들 문화에 물들거나 영향을 받는게 아니라, 거룩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얼마든지 교제를 해야죠.
여러분 우리가 그만 술먹는 자리에서 술먹고 담배 피는 자리에서 담배피우고 마약하는 데에 가서 마약하고 그런 정도로 약한 사람은 교제하면 안 돼. 아무와도..
세상 사람과 교제하면 안 되는데, 적어도 가서 누구든지 만나면 그 사람들 문화에 영향을 받는게 아니라, 영향을 줄 수 있고 아니면 전도할 수 있고 그러면 열심히 교제해야 돼요. 이방인과 함께..
지금 믿는 사람들이 그냥 믿는 사람끼리만 똘똘 뭉쳐가지고 그러면 전도가 안 돼요.
그래서 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는 구역예배라는 것을 할 때 반드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라도 옆집에 믿지 않는 분을 꼭 초청을 하라. 음식을 장만하되 목사를 대접하지 말고 옆집 사람을 꼭 초대해서 같이 그 예배에 참여하게..
우리 고향 동네에서는 아예 마당에 멍석을 펴고 옥수수 고구마를 삶아놓고 음식을 만들어가지고 옆집에 꼭 참여해가지고 마당에 일부러 전기불을 꺼내어가지고 줄을 달아서 이렇게 하면서 저녁에 구역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대부분 가서 보니까 꼭 믿는 사람들 그것도 다 안모여가지고 쩔쩔매고 또 서로 자기 집에 안 모일려고 하고 이러더라고..
자기집에 오는 것 부담스러워 하고..
그런 구역예배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고넬료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 일가와 친구들 다 모아가지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28절 중간에 잘 보세요.
..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물어봅시다. 베드로가 바로 깨달은 거예요? 못 깨달은 거예요?
베드로가 바로 깨달은 거죠.
그 환상 본게 ‘아무 것이나 잡아먹으라’ 한게 아니라,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다 부정한 짐승으로 보고 있는 비뚤어진 시각을 딱 교정해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여기까지 읽어보고 성경을 해석해야 돼요.
아까 베드로에게 잡아먹으라 그것만 보고 마니까 그냥 개고기 먹으러 가고 아무 것이나 다 먹는데,
베드로가 깨달은게,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셨다 이렇게 깨달은 거예요.
정확히 깨달은 거죠.
여기에 무슨 주석을 하고 해석할 것도 없어요.
읽어보면 다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이렇게 물었더니,
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지금 사람앞에 서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이게 구도자의 자세예요.
베드로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죠.
그런데 베드로 앞에 있으면서 그 베드로의 말을 듣겠다는게 아니라, 베드로를 통해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려고 하나님 앞에 있다.
코람데오라고.. 하나님 면전에 우리가 있나이다.
구도자로서 너무 바람직한 자세이기 때문에 한 사람 가정이 전도된 것을 한 장을 할애해서 쓰고 있습니다.
거기 줄을 그으세요.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참 예배하는 자세요, 또 구도자의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물어봅시다. 베드로가 다 깨닫고 일하는 거요? 일하면서 깨닫는 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일을 해봐야 깨닫게 돼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스님들처럼 앉아가지고 깨닫기만 하고 앉아 있으면 깨달아봤자 아무 일도 못해요.
일하면서 깨닫고, 깨달아 가면서 일하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은 가르치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깨닫고, 깨달으면서 일하고 하는데,
베드로도 비록 사도중에 대표라고 하는데, 모든 것을 완전히 다 깨닫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하면서 점점 깨달아 가는 거예요.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이고 누구든지..
저도 처음에 갓 믿을 때 믿고 나서 아무 것도 모르다가 전도자가 되어가지고 교회 개척하러 갔을 때, 그 때 내가 횡설수설한 것 보면, 사람들은 그 때 은혜 받았다고 하고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는데, 지금 내가 생각하면 얼굴이 뜨뜻한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많이 한 거야. 아무리 봐도..
그래서 뭘 다 깨달아서 일하는 게 아니라는 거야.
베드로도 지금 한참 일하다가 또 깨달았도다..
하나님께서 일 하는 사람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거야.
꼭 그저 신학교에서 뭘 다 깨닫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 하면서 깨닫는 거예요.
그리고 늘 하는 얘기지만 좀 깨달을려면 결혼을 해봐야 돼요.
결혼을 해가지고 또 애를 낳아봐야 돼요.
하나 낳고는 몰라. 둘을 낳고 셋을 낳고 여럿을 낳고 길러보면서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처녀나 총각은 깨닫는 것이 한계가 있어요.
처녀 총각으로 깨달을 것이 있고,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부모가 되어서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면서 깨닫는 게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지금 베드로가 일 하면서 깨닫는데, 다 깨닫고 일하는 게 아니고, 일하면서 이렇게 깨닫는 거예요.
깨달은 게 뭐냐?
예수님께서는 외적으로 유대인이다 한국인이다 이런 민족의 외적 조건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각 나라 중 어떤 나라 사람이든지간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진실한 사람을 받으시는 줄 알았도다.
지금 우리는 당연하지 이렇게 할지 모르나 그 때 유대인 베드로로서는 이것은 기상천외 같은 사실이예요.
어떻게 여태까지 자기는 이방인들을 개라고 하고 짐승이라고 그렇게 취급했는데, 똑같이 하나님이 차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은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예요.
그러면서,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되어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신 후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
그러니까 산 자도 심판하고 죽은 자도 심판한다는 것은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이 아니고, 최후의 심판 죽음 이후의 심판을 하실 재판장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증거케 하셨다.
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예수님 이름으로 사람이 죄사함을 받는 것이다.
여러분 44절 보세요.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것은 참 바람직한 그런 자세인데, 지금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복음의 진수 복음의 핵심이 전하고 있는데 바로 성령이 임하시는 거예요.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그런데 그것을 천사가 와서 하는게 아니라, 베드로가 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만약에 베드로가 안 가고 말씀을 안 전하고, 천사가 할 수 있다든지 성령이 혼자 할 수 있다면 간단하죠.
베드로 없어도 얼마나 잘 할 것 아녜요?
반드시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은 베드로가 가든지 바울이 가든지 누가 가든지 거기 말씀을 제대로 증거할 때 성령이 내려오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도행전에 네번 그런 말이 나오는데, 사도행전 2장에는 하나님 말씀을 생각하면서 요엘서를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셨다 하고,
그 다음에 사마리아에 가서는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신 것이고,
여기에는 설교할 때 성령이 임하셨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나중에 사도행전 19장에 가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안수할 때 또 성령이 임하셨다.
기도할 때, 안수할 때, 설교할 때..
세 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받은 성령 다르고, 로마 사람이 받은 성령 다른게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여기 보니까 성령세례가 먼저였고 물세례를 뒤에 주었어요.
그래서 잘 준비된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또 그러한 가정에 영향을 받아가지고 고넬료라는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고 기도하고 구제하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일가와 친구들 친척들 불렀을 때 사람들이 모여 왔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선한 일 착한 일 의로운 일 구제하는 일 기도하는 일, 이런 아름다운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웃을 초청해도 사람들이 안 오는 거예요.
적어도 우리가 사람앞에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만큼의 선한 일 할려면 제법 해야 돼요.
어느 양이 차야 질의 변화가 오는 거예요.
조금 해 보다가 내가 조금 구제했으니까 사람들 안 오겠나..
그렇게 안 온다고..
소문 날만큼 하늘에 상달될만큼 이런 의가 있어야 돼요.
그래서 이것이 겉치레로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의가 하나님께 상달하심을 얻는 거예요.
그렇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가 가서 전해야 되고, 또 성령을 받아야 되고 그런 원리가 이 사도행전 10장에 나오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사도행전 10장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돼요.
만약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지 않고도 된다면 그 베드로가 이틀 길 심부름 갔다가 이틀 길 와서 이렇게 할 필요 없잖아요.
성령이 그냥 해버리면 될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반드시 이 진리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판장 심판장 되시고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는다.
물론 베드로가 여기 짧은 몇마디만 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많은 설교를 했을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설교하고 있는데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니까 성령세례가 먼저 있었으니까, 누가 물로 세례줌을 금하리오 하면서 물세례를 줬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데 몇마디로 되는게 아니야.
내가 옛날에 CCC에서 거지 순례전도 할 때 사영리 가지고 전도하면서 다니면서 5분 10분만에 영접해서 항복받으라고 하는데, 수일 동안 유할 정도로 기본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과, 인간의 타락과, 그 속죄의 원리와 이것을 설명할려면 5분 10분 길에서 되는게 아닙니다.
미국 땅에서는 혹 이런게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같으면 날 때부터 대충 해서 유아세례받고 교회는 1년에 몇번 가고 이러면서 그 사람들이 하는 말 한 가지 ‘오 마이 갓(Oh my God!)’. 이것만 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그냥..
교회도 안 나아오고 이러면서 종교란에 기독교를 쓰고 이런 신자, 그러니까 명목으로는 신자이지만 전혀 신자로서 삶을 살지 않는 이런 사람들에게..
그래도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어렵풋이나마 믿고 있는데, 단 자기 개인의 구주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라든지 이런 것을 잘 모르고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잘 모르는..
그런데 신자는 신자인데 우리말로 나이롱 신자 함량미달 신자 이런 사람들 같으면 사영리가 통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도 인정하지 않고 기초가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사영리 가지고 항복을 받아보겠다..
그래서 성공해서 열매 맺히는 것은 거의 희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맨 먼저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하게, 하나님이 계시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돼요.
이렇게 전도를 해야 돼요.
여기 지금 고넬료가 어떻게 피식민지 지배국이 지배당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는 자기들이 볼 때, 로마 나라에 비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거지같은 나라예요. 꾀죄죄하고 지질이 못난 그리고 아주 말썽꾸러기이고.
그런데 고넬료 자신이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는 거야.
여러분 잘 모르겠어요.
옛날에 일본 관료들 중에 한국에 와서 우리 한국사람의 존경과 칭찬을 받은 사람이 혹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잘 못 들었어요.
쉽지 않잖아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라고 하면 좀 그렇기는 하지만, 한국신을 섬기는 것 이런 것은 없거든요.
이 고넬료라는 사람은 그야말로 인류 역사에 길이남을 성경에 그의 회심과 그의 의로움과 그의 경건과, 그 가정이 복음을 듣고 성령이 임하신 사건이 기록된 것은 복있는 가정이죠.
이것이 조금 구제하는 척 형식적으로 한 것이 아녜요.
정말 유대민족은 좀처럼 로마사람을 사랑하지 않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자기 땅을 지배하고 있고 세금을 받아가는 그 나라 군대 백부장을 여간해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굉장하게 그 백성을 섬긴 거야.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로마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별로 잘 한게 아니죠.
아닌데 반면에 그 백부장들 중에는..
아시죠? 예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
고넬료라는 백부장과 그 가버나움 백부장 둘 다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게 아주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이고, 또 사도바울을 로마로 호송했던 율리우스라는 백부장도 있어요.
이 사람도 아주 사도 바울을 보더니 너무 경건하고 너무 성실하니까 여러 가지를 배려해가지고 바울이 미결수 감옥으로 가지 않고 자기 셋집에서 가택 연금되어 가지고 재판 받기까지 자유롭게 복음 전할 수 있도록 이렇게 배려한 것을 볼 수 있어요.
하여튼 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백부장 치고 하나도 나쁜 사람이 안 보인다는 거야.
그리고 이 사람들이 천부장이라든지 총독부 이런 사람들보다 백부장들이 대민관계에서 가장 주민과 밀착 되어서 유대인을 잘 아는 사람들이예요.
그리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세밀히 직접 살피는 사람들이 백부장들인데, 백부장들이 유대교와는 어떤 관계였는지 별로 기록이 없지만, 그 당시 기독교는 신흥종교처럼 되었는데 새로 일어난 예수 믿는 사람들과 전부 친밀하게 그리고 아주 기독교에 호혜적으로 다가왔다는 거죠.
그리고 이런 것을 보고 누가복음이나 혹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기독교를 로마판도 세계에다가 기독교적 변증서 형식으로 쓴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기독교는 절대 로마관료들이나 군인들에게 충돌되는 일이 없고, 오히려 그 백부장들이 가장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장 잘 아는 백부장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같이 공경하고 했다. 하는 것이 로마판도에서 전체에 알리고 싶은 그런 뜻이 변증서적인 그런 의미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있지 않느냐? 학자들 간에 이런 견해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 가정에 복음이 전파된 것이고, 이게 베드로가 여기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하고 수일 더 유하면서 고넬료 집에서 음식을 먹었다는 거야.
그럴 때 이 예루살렘에서는 장로들이 앉아가지고 오기만 해봐라.
베드로가 이방인과 집에서 음식을 먹었대..
그래서 오면 혼을 내 주겠다고 장로들이 벼르고 있어요.
벼르고 있다가 나중에 어떻게 해명되어서 어떻게 수습되었는지 11장에 나오는데 집에 가서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한 가지 고넬료에게 배울게 있는데, 구제와 기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서 믿는 사람에게 칭송을 받았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민족정신으로 하면 원수와 같은 침략자와 같은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칭송을 받았다 하는데, 우리 샤론교회 성도들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받고 전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그 기도와 구제를 기억하신 바 되었던 고넬료 가정에 어떻게 생수의 말씀이 증거되고 어떻게 성령이 임하셨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도 잘 배워서 고넬료 가정처럼 우리 일가와 우리 친척들과 이웃들을 초청하여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아름다운 일들이 계속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