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는 움직임이 없는 정적 표현을 했다. 그리스인은 움직이 없는 (정적 자세) 자세에서도 움직임을 암시하는 표현을 했다.
이것을 콘트라포스크(핝쪽 발을 앞으로 살짝 내민다.라고 한다.
조각상 표현에 변화가 나타나다
아케익기를 기원전600년에서 기원전 480년까지라고 말한다. 480년은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해이다. 그리스가 승리하고, 아테네가 최성기를 누릴 때임으로 예술 일반과 더불어 조각상에도 변화가 오리라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기원전 7세기 경에는 에게해의 여러 섬에서 대리석으로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곧 그리스 본토까지도 퍼졌다. 아케익기의 인체 조각은 미소를 띈 얼굴이었다. 이를 아케익 미소라고 하였다.(남성 청년 조각상은 쿠로스이고, 복수는 쿠로이이다. 젊은 여성상은 쿠레상이다. 쿠레상의 조각은 인간의 몸과 옷 사이를 표현해냈다. 옷의 밑에 있는 몸을 암시적으로 표현하였다.
남성 인체상인 쿠로스 상은 이집트 인체상을 닮았다. 쿠로스 상은 신전에 봉헌하는 것이거나 묘소에 세웠다.
인체 각 부분의 표현을 선으로 양식화하였다.
기원전 6세기 경에 쿠로스 상의 외관에 나타난 변화는 추상적 표현에서 자연주의 양식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인체의 사실적 표현의 보기로는 ‘뼈의 힘줄,’ ‘무릎, ’정강이 등에서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자연주의 표현은 눈에 보이는대로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때까지는 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조각상을 추상적인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BC480년에서 BC450년까지를 과도기라 하여, 이 시기에 변화가 제일 많이 나타난 시기라고 한다. 특히 조각에서 더 잘 나타난다고 하였다.
남자 인체상6의 크니투스 청년상을 보면, 인위적인 대칭에서 벗어나서 숨어 있는 동작, 부단한 움직임, 미묘한 내적 감정을 표현했디.(이집트는 부동의 자세로 아주 정적이다. 그리스는 부동아지만 동적인 표현을 하려 하였다. 콘트라포스트 자세이다. 이집트와 차이점이다.)
이 작품을 고대작품의 엄격함에서 최초로 벗어난 작품이라고 한다.
조각상을 본다면 아케익기는 생명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엄격한 모습에서(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 정적인 표현) 현실생활을 열광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자연주의적 표현에 해부학적인 정확성과 이상적은 모습을 섞어서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두 양식은 상이함으로 상이점을 표현하려다보니 갈등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