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의사 가뭄’에 시달리는 일본 의료계가 한국 의사에 손을 내밀고 있다.
1000명당 의사가 1.98명 꼴로 OECD 가맹국 중 최저 수준인 일본이 의사 부족난을 해결하기 위해 출신국의 의사면허를 보유한 의료인에 합법적 수련 기회를 부여하는 임상수련제도가 그 것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이 제도를 실시한 이래 매년 50~60명의 중국인을 의료현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근래 실력이 검증된 한국 의사를 눈독 들이고 있다는 현지 분위기가 전해지고 있다.
일본에서 의료계 전문 리쿠르트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S 사장은 “현 의사 부족 문제 때문에 중국 의사들을 일본 병원과 매칭시키고 있지만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본 병원에서는 의료수준이 일본과 비슷한 한국에서 의사가 오길 바란다는 문의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통상 5년 과정으로 이뤄지는 중국 의대의 커리큘럼과 선진국에 다소 뒤쳐지는 의학 수준을 비춰볼 때 일본으로서는 교육기간이 같고 상대적으로 전문성을 담보한 한국 의사 쪽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 쇄국이라는 평판이 있는 일본에 한국 의사를 투입하면 의료국제화 실현에 도움이 될 수 있을뿐 아니라 한국 입장에서도 일본 의료시스템 및 의료기술 등을 배워갈 수 있어 서로 '윈-윈' 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제시되고 있다.
쿠슈의대 의료시스템학교실 S 교수는 “부산의대 의료경영관리학 전공과정에서 한국 의대생들이 후쿠오카에 있는 병원에 매년 2회씩 견학을 하러 온다”며 “한국 학생들은 일본에 와서 좋은 의료시스템을 배우고, 일본 학생들도 그들과 교류하며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 일본의료의 국제화 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대 3년까지 수련 가능…급여 수준 책정이 관건임상수련제도는 일본의 의사면허 획득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 의사가 행하는 임상수련에 관한 의사법 제17조’에 의거, 최대 3년까지 현지 수련을 받으면서 진료를 수반한 임상을 수행한다.
이 때 수련의는 처방전 작성을 제외한 진료, 수술 등 지도의 감독 하에 모든 의료행위를 행할 수 있다.
수련기간 중 수련의는 매년 2월께 열리는 일본 의사국가시험에 응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시험 전년 10~11월경에 실시하는 일본어진료능력시험을 치러야 한다. 국시 출제수준은 한국의 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전언이다. 정식면허 취득 후에는 일본에서의 독립적인 진료, 개원 등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돈’이다. 경력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수련의가 첫 근무를 시작하고 3개월까지 받는 급여는 월 30만엔 수준(현재 기준가로 한화 약 415만원). 썩 만족스러운 금액이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처음 급여를 책정할 때 중국 의사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 의사를 대거 영입할 경우 급여는 조정될 여지가 크다는 게 업계 측 설명이 다. 현재는 최소 30만엔부터 최대 100만엔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병원이 운영하는 기숙사가 주거공간으로 제공되며, 거주공간을 임대할 경우 일정비용을 보조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가족과 함께 갈 경우에는 동반 비자 준비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 일본 의료계 취업 알선사인 링크스텝 코리아는 오는 5월 10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4층 그랜드 컨퍼런스홀 402호에서 열리는 ‘일본임상수련제도 설명회’를 통해 수련의 모집을 본격화한다.
링크스텝 코리아 박지은 대리는 “일본에서는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수를 늘려도 해결까지는 15~20년이 걸린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상황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경영 악화로 폐업이 속출하는 국내 의료계 실정을 감안할 때 일본에서 수련의로 근무하면서 일본 의사면허에 도전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인증 문제 등 위험성 산재…유사 사례 지적도한편 일각에서는 과거 이 같은 제도가 남용된 경우를 들어 우려를 표시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정식 수련의 과정을 밟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임상수련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다 해도 아무런 공식 인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순천향대병원 가정의학과 유병욱 교수는 수년전 일반의들이 이와 비슷한 제도를 통해 일본에 가서 6개월~2년 과정으로 분과 수련을 받고 온 사례를 들어 “수련을 마친 후 마치 일본에서 정식 전문의 과정을 밟고 온 것처럼 광고하며 대구, 부산 등지에 피부과, 성형외과를 개원해 문제시된 바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한 한일 양국간 의료협정이 맺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의료분쟁 등이 발생했을 때 원만한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잘 알아보고 가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임상수련의 인증절차 및 제도적 문제가 미비점으로 꼽히는 가운데, 금년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일본임상수련제도가 향후 국내 의사의 외국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