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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금의 고향에서 겨울 산책을 즐기다
우리나라 국민치고 ‘대장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03년 9월 15일부터 2004년 3월 30일까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방영된 문화방송의 대하드라마 대장금(大長今) 덕분이다. 조선시대 중종의 신임을 받은 의녀였던 장금의 삶을 재구성한 이 드라마는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도 수출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대장금은 주인공 장금이 궁중 암투에 휘말려 부모를 잃고 수라간 궁녀로서 궁궐에 들어가 중종의 주치의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의 내용은 대부분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적 이야기일 뿐이다. 드라마에서는 서장금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서(徐)라는 성도 작가가 임의로 붙인 것이다. 실제로 장금이라는 이름은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중종실록에 열 번 가량 등장하지만 생몰연도, 성씨와 본관, 성장과정 등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장금은 의녀로서는 유일하게 중종의 어의녀(御醫女), 즉 주치의 소임을 수행했다. 여성인 의녀가 수많은 남자 의관(醫官)을 제치고 왕의 주치의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 남성 위주의 엄격한 관료주의 아래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장금은 중종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맡겼을 정도로 신뢰와 총애를 받았던 의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515년 인종이 태어날 때 큰 공을 세웠다'는 기록과 '중종의 병을 치유하여 쌀과 콩을 포상으로 받았다'는 기록 등이 전해진다. 이러한 공로에 따라 이름 앞에 '큰' 또는 '위대한'을 뜻하는 '대(大)'를 써서 대장금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장금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와 종성리 일원의 옥정호 주변에 ‘대장금 마실길’이 조성되었다. 철따라 색다른 정취를 선사하는 이 길은 겨울 설경도 퍽 아름답다. 본디 이 일대가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인 까닭이다. 모두 5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는 대장금 마실길의 총거리는 21.79km로 이를 모두 걷는 데는 10시간 30분쯤 걸린다.
제1코스는 황토마을-중곡-난국정-황토마을을 잇는 3.24km의 길로 소요시간 1시간 40분, 제2코스는 난국정-황토마을-중곡-바람골-장금산-난국정을 이어가는 5.23km의 길로 소요시간 2시간 40분, 제3코스는 구장금교-바람골-장금산-난국정-황토마을-신흥리-바람골-구장금교를 이어주는 길로 8.63km에 3시간 40분쯤 걸린다. 제4코스는 황토마을-산촌관광마을체험장-임병찬창의유적지를 잇는 4.68km의 길로 소요시간 2시간 30분, 제5코스는 임병찬창의유적지-장군봉-물넘어제-사실제-금곡-구장금교를 이어주는 길로 10.33km에 4시간 30분쯤 걸린다.
제1~제5코스의 거리와 소요시간을 각각 합하면 실제 총거리와 총소요시간보다 많은데 이는 코스끼리 서로 겹치는 구간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대장금 마실길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으로는 제1~제3코스에서 경유하게 되는 난국정이 꼽힌다. 옥정호를 굽어보는 정취가 그윽한 까닭이다.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어우러지는 만경대
종성리 황토마을 인근의 옥정호 호반에 있는 난국정(蘭菊亭)은 춘난추국(春蘭秋菊), 즉 봄철의 난과 가을철 국화의 뜻을 기리는 정자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사방으로 여러 봉우리가 둘러쳐 있고, 앞으로 드리운 호수는 바람결에 은빛 물결을 치니 신선이 노닐 만한 가경(佳景)이 아닐 수 없다. 1928년 가을에 정자를 짓고 1939년 봄에 비석을 세웠으며 섬진강다목적댐 준공으로 옥정호가 높아짐에 따라 1965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대장금 마실길 인근의 만경대와 운폭정, 운주암 등도 둘러볼 만한 경승지다. 옥정호 자락의 하천변에 자리한 만경대는 기암절벽과 맑은 물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며 흰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겨울철 정취도 일품이다. 만경대 아래로는 영화 남부군과 드라마 전우를 촬영한 다리인 능교(菱橋)가 놓여 있다. 길이 80미터의 이 다리는 1963년 건설되어 많은 차량들이 건너다니다가 새 다리인 산내교가 놓이면서 농로로 이용되고 있다.
운폭정과 운주암은 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운주산(雲住山) 기슭에 자리해 있다. 높이 20여 미터의 운주폭포 아래쪽에 있는 운폭정(雲瀑亭)은 1933년 세워진 정자로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창건 시기가 알려지지 않은 운주암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요사채의 일부만 남아 있다가 1952년 법당과 칠성각을 새로 짓고 요사채를 증축했다. 그 후 1999년 법당을 신축하고 요사채 2동과 산신각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호젓하고 아담한 암자로 눈 덮인 겨울 산사의 운치가 그럴싸하다.
첫댓글 드라마할때도 대장금 재미있게 봤는데 이런곳이 있었군요.
좋은 여행지 소개 감사합니다.
실제 이곳이 대장금의 실제고향이라고 하더군요..
좋은정보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