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잃어버린 양.
닷새 전보다 규모가 더 크다.
대충 봐도 만 명 가까이 되어 보인다.
이주자들의 진로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무리를 피하여, 해천의 병사들은 큰 길옆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쉴 겸, 이주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람이 귀한 시절,
산촌 山村에서는 몇 사람만 모여도 그 자체가 좋은 볼거리다.
그런데 만 명에 가까운 대단위 규모의 인원이 단체로 이동하니, 이보다 좋은 구경거리가 없다.
인원이 만 명가량 되니, 기르고 있던 양과 말 등, 몰고 가는 짐승의 개체 수도 이동하는 인원수에 비례하여 장사진 長蛇陣을 이루고 있으니, 볼 만한 구경거리다.
소 수레와 마차로 옮기는 게르의 자재와 집기 비품도 상당하다.
잠시 후,
말 탄 인솔자가 해천 무리 쪽으로 오더니, 먼저 인사를 하며 길을 묻는다.
“근처에 우물이나 마을이 있습니까?”
“오리 정도 가면 마을이 있는데, 닷새 전에 지나간 이주민들이 동네 짐승들을 훔쳐 가 마을에서 이주민들을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우리 이주민들을 단속시키죠, 그런데 댁들은 어디로 가는지요?”
“우린 조선하에서 한군과 싸우다가 부상 당하여 치료 후, 이제 금주에 주둔 駐屯한다는 본대로 귀대하려고 가는 중이요”
“부족을 위하여 싸우시고 부상까지 당했으니, 고생이 많으시네요”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인데, 하는 수 없죠”
“그런데, 금주에는 가지 마시오”
“어, 왜요?”
“현재 한군들이 서쪽에서 추격해오고 있고, 동쪽에선 고구려군들이 서쪽 만리장성 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라 모두 금주를 떠나고 있소”
“허... 그럼, 가족이나 아는 사람들이 모두 금주 근처에 있는데 이를 어쩌죠”
“사정이 다급하여 반은 우리처럼 사막으로 가고, 반은 배를 타고 남쪽으로 간다고 했소, 만약 댁들이 그쪽으로 간다면 도착하기 전에 모두 떠나고, 금주에는 아무도 없을 거요”
해천과 중부를 비롯한 병사들의 표정이 어리벙해진다.
목적지가 사라진 것이니, 다들 난감해 한다.
“닷새 전, 앞선 무리들은 이 소식을 상세히는 모를 것이요, 우리도 황급히 떠나온 지 벌써 두 달 가량 되었소”
“그럼 다른 이주자들은 없는가요?”
“며칠 후, 마지막 이주자들이 뒤따라올 거요”
“새로운 소식을 전해 주시니 고맙소, 우리도 의론해 보아야 하겠소”
목적지가 사라져 버린 해천과 중부는 황망 慌忙하다.
병사들 대부분이 흉노 출신이라 그들은 이참에 이주자들을 따라가길 희망하였다.
그래야 그들의 부모와 형제들을 만날 가능성이 더 크기에 당연하다.
병사들의 마음이 그러니, 군 조직 자체가 와해 瓦解 되는 분위기다.
이를 알아차린 해천은 신속하게 결정하였다.
“우리 군 軍 자체의 존망을 모르는 상태이니, 지금 부로 우리 조직을 해체한다. 그러니 각자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하라”
“넵, 알겠습니다. 백 부장님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흉노족 병사들은 이동하는 이주민들을 붙잡고 이리저리 자기 부족을 수소문하여 한 사람씩 떠나갔다.
정오가 되니 해천 주위에는 여섯 명만 남아있다.
해천, 중부, 고발후, 팽이, 예족 병사 두 명 그렇게 여섯 명만 앉아 있었다.
서누리도 곁에 있었지만, 누리는 곧 마을로 돌아갈 지역 토박이다.
고발후와 팽이는 자신의 부족들이 다음 마지막 이주민들과 어울려 온다는 정보를 들었고 또, 명색이 오백 부장인데 그 조직에서 얼른 떠나기가 미안해서이기도 하다.
해천과 예족 병사는 어찌 되었든 간에 금주로 가야 한다.
그곳 고향에 가야만 부모 형제를 만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일족들의 소식을 알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중부 역시 마찬가지다.
단편적 斷片的인 소식들을 이리저리 꿰맞추어 종합해보면, 부모님과 동생도 배편으로 고향인 사로국으로 떠났을 공산 公算이 크다.
그럼, 고향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포구가 대릉하 하구 河口다.
따라서 일단 대릉하 바닷가로 가보아야 한다.
해천 일행은 고발후와 팽이를 먼저 보내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러려면 다음 이주민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우하량 북쪽 언덕의 빈집에 자리를 잡고, 일 주야를 지나 보름을 기다렸다.
과연 많은 무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주민들이 나타난 방향이 이전 무리들과 달랐다.
* 지도 - 대릉하와 적봉.
보름 전,
이주민들은 대릉하 아래쪽 남쪽 건창 建昌에서 대릉하 서지류 大陵河 西支流를 건너서 적봉쪽으로 올라왔었는데, 이번 무리는 대릉하 북쪽 요하의 의무려산 醫巫閭山 방향에서 조양 朝陽을 거쳐오고 있었다.
이주민을 붙잡고 물어보니 1차, 2차 이주민들은 금주에서 출발한 무리고 자신들은 대릉하의 서쪽, 즉 요하쪽의 의무려산 아래 서벌 西伐에서 거처하다 출발하였다 한다.
그러니까 이주민들이 금주 한 곳에만 거주한 것이 아니라, 요하 방면에도 분산하여 머무르고 있었다는 얘기다.
실은,
고구려군이 요하까지 파죽지세 破竹之勢의 엄청난 기세로 진출하는 군세 軍勢를 보고, 이에 지레 겁을 먹고 금주의 무리보다 먼저 출발하였는데, 대릉하 북쪽을 둘려 우회하다 보니, 개울도 많고 길도 험하고 또, 무리수도 많아 석 달 이상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릉하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한다.
일행 모두들 갈등이 생긴다.
행선지를 어떡해야 하나?
고 발후와 팽이는 자기 가족을 찾는다며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여 명이나 되는 무리 속에서 가족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인원이 만 명가량 되니, 양과 말 등의 기르던 짐승 수도 인원 수에 비례하였고, 수레와 마차로 옮기는 게르의 각종 자재와 집기 비품도 상당하였다.
그렇게 하루해가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고발후와 팽이는 또 가족을 찾으려고 나갔다.
그런데,
양이 보이질 않았다.
고발후와 팽이가 가족을 찾으면 해후의 기쁨과 또, 동료 간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고자 조촐하지만, 회식 會食 자리를 만들기로 하였는데, 만찬상에 올릴 고기가 사라진 것이다.
분명 어제저녁까지도 풀을 뜯어주고, 물까지 배불리 먹여 마당의 안쪽 말뚝에 튼튼한 줄로 단단하게 묶어 놓은 양이 없어진 것이다.
이는 필시 이주민의 소행이다.
양을 담당하던 병사 두 명도 성이 났지만, 가장 화가 많이 난 사람은 양을 선물 한 서누리다.
본인이 크게 마음먹고 선물한 양을 도난 당하다니, 더구나 이곳은 자신의 고향 마을 아닌가?
분실물은 차제 次第고 자존심이 상한다.
누리와 병사 두 명은 잃어버린 양을 찾으려, 이주민들 틈을 이리저리 동분서주 東奔西走하며 헤집고 다녔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해천은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병사들을 큰 소리로 불러서 오라고 하였다.
“중구난방 衆口難防으로 다니지 말고 이주민의 앞쪽으로 가서 찾아보라”
“어, 왜요?”
“범인은 분명 우리가 있는 앞쪽에 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여길 지나갔으니 양을 보았을 것이며, 양을 훔쳤으면 앞쪽으로 가버려야지만 우리와 만날 일이 없어지니 그렇지, 지금쯤 거의 무리의 선두 부근에 있을걸”
“햐! 맞네요. 알았습니다”
역시 백 부장의 경륜과 관록이 엿보인다.
누리와 병사들은 급히 무리의 앞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양을 찾으려고 간 세 명은 저녁 무렵에야 숙박지로 돌아왔다.
그런데 세 사람의 모습이 가관 可觀이다.
찾으러 간 양은 보이질 않고, 누리는 왼쪽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부어있고, 두 병사는 입술이 터져있으며 이마와 볼이 울퉁불퉁하다.
한 병사는 다리까지 절고 있다.
호되게 맞은 모양이다.
누리가 자신들이 다친 경과 經過를 이야기한다.
해천 백 부장의 말대로 이주민의 선두 부분까지 뛰어갔더니 과연, 다섯 마리의 양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마리는 누리가 가져온 양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몰이 주인을 찾으니, 한 젊은 녀석이 나타나더니, 자신이 기르던 양이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리는 양 羊 엉덩이에 찍힌 삼각형 표시의 낙인 烙印을 지적하며,
“이 삼각형 낙인 표시는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집안이 사용하는 낙인이다”라며 양을 내어놓으라고 하니, 양 도둑놈은
“며칠 전에 다른 사람에게 곡물을 주고 바꾼 양이다”라며 조금 전과는 다르게 말을 슬그머니 바꾸어버린다.
“무슨 소릴 하느냐? 며칠 전이 아니라, 어젯밤에 도난당한 것이다”
그러자 다른 녀석이 옆에서 불쑥 나타나더니 큰소리친다.
“그럼, 이 양은 당신들 양이 아니네, 우리는 며칠 전부터 기르던 양이니”
이들은 차륜전법 車輪戰法을 사용하고 있었다.
바퀴가 돌아가며 움직이며 땅바닥과의 마찰을 줄이는 방법으로 자신의 손실을 최소화 시키듯이 여러 명이 번갈아 가며 주제를 조금씩 바꾸어 말을 하여 상대방을 지치게 만든다.
그러면 상대방은 다수 多數를 상대하기에 벅차다.
힘으로 싸울 때도 그 이론은 그대로 적용된다.
이를 보면 이들은 순간적인 실수나 잘못으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이 있는 자들임이 분명하였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시비가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주위에 덩치 좋은 청년들이 다가오더니 주먹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누리와 병사들도 젊고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며, 적군과 전투 경험도 있는 자들 임에도 불구하고, 그놈들에게는 상대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일단 물러났는데 마침, 그 부근이 누리의 동네라서 누리가 지나가던 동네 동무들, 네 명의 지원을 받아 머릿 수를 믿고 다시 패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인데,
상대방은 네 명이 나서서 서누리 패거리 일곱 명을 상대로 ‘싸움을 했다’라는 표현보다는 거의 일방적으로 구타 毆打하였다는 것이다.
놈들은 막대기나 무기는 소지하지 않고, 주먹과 발만 사용하였는데, 가격하는 손과 다리가 워낙 빨라서 어떻게 맞았는지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상대방들이 상당한 무술의 고수라는 얘기다.
누리가 억울하게 얻어맞은 이야기를 들은 해천과 이중부는 분노하였으나,
날이 어두워졌으니, 다음날 양을 찾기로 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누리가 어제 맞은 왼눈이 더욱 부어올라, 눈 두덩이가 시퍼렇게 퉁퉁 부어 눈동자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당사자의 아픔도 크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이 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제는 잃어버린 양이 문제가 아니다.
멀쩡한 사람을 다치게 만든 녀석들을 찾아 앙가픔 해야한다.
누리는 해천 백 부장의 지위와 경륜을 믿었고, 나이가 중년이라 나쁜 녀석들을 훈계하고 양을 되찾아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다음 날, 해천 일행이 폭력배 일당을 찾으려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주민들의 앞쪽으로 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 만에 가까운 무리 후미에서 수많은 짐승과 인파 人波들을 헤치며 선두 쪽으로 나아가기가 수월치 않았다.
* 낙인 烙印 (stigma / brand)
달궈진 쇠도장으로 인을 새기는 것.
뜨겁게 달굴 수 있는 금속으로 된 도장을 주로 사용하며 사람이나 동물 같은 생물의 피부에 고의적으로 화상을 입혀 지워지지 않는 표식을 남긴다. 낙(烙)이라는 글자의 불 화 (火)변에서도 알 수 있듯 불로 지진다는 뜻이다. 낙인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지울 수 없고 현대적인 성형수술로도 그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 힘들다.
따라서 노예나 가축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었고, 산업적으로는 표면이 잘 그슬리는 목재가구 등에 무늬나 문구 등을 새겨넣기 위해 사용했다.
브랜드 (Brand)라는 개념이 바로 낙인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목민들은 자신이 기르는 짐승은 수백 마리라도 멀리서 얼핏 보아도 바로 알아 본다.
자신의 자녀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낙인을 하는 주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구별하기 쉽도록 하기위하여 자신만의 표식을 문양으로 낙인하는 것이다.
즉, 이웃 간에 분쟁을 막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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