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Z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러시아가 Z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승리로 이끌 '매직' 이미지로 내놓았으니, 러시아에서는 지지와 환호가, 우크라이나와 서방진영에서는 기피 현상이 뚜렷하다.
러시아 국방부는 일일 브리핑과 함께 Z를 매개로 한 사진과 영상을 몇 개씩 선보이고 있다. 진격 명령을 내린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발트해 연안, 동유럽 일대에서는 제 2차세계 대전 히틀러 시대의 나치 문양인 '하켄크로이츠'와 유사하게 '공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상품명과 브랜드에서 Z를 사용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자칫하면 유럽 전역에서 러시아 지지 기업으로 몰려 '불매 캠페인'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러시아 홈페이지에 표기된 '갤럭시Z플립3'(위)가 에스토니아에서는 Z가 빠졌다/사진출처: 삼성전자 홈페이지
외신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인기 폴더폰 시리즈인 ‘갤럭시Z폴드3’와 ‘갤럭시Z플립3’의 제품 이름에서 영문 'Z'가 빠진 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발트 3국은 폴란드와 함께 반러 분위기가 그 어느 지역보다 높은 곳이다. 삼성전자로서는 공연히 제품 이름에 Z를 붙여 우크라이나 전쟁과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 기업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150년 역사를 지닌 스위스의 '취리히 보험회사'가 그동안 사용해온 Z로고 사용을 포기했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Z를 로고로 사용해온 스위스 취리히 보험은 SNS를 통해 "Z로고를 사용할 경우 오해의 소지가 있어 당분간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취리히 보험회사의 150주년 기념 로고(위)와 본사 건물/홈페이지, 위키피디아 캡처
알파벳 Z의 문양은 러시아어로 ‘승리를 위해’를 뜻하는 ‘자 포베두(Za pobedu 러시아어로는 за победу)'의 첫 글자에서 나온 것이라는 해석과 우크라이나가 위치한 서쪽을 의미하는 ’자파드(Zapad 러시아어로는 запад)‘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3월 초 러시아 군사 장비에 Z와 V자를 쓴 이유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설명했다. Z는 '승리를 위해'라는 의미로, 또 다른 문자 V는 '진실의 힘' (Сила в правде)과 '과업 완수'(Задача будет выполнена)를 뜻한다는 것이다. Z는 러시아어로 '승리를 위해', V는 영어로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것인데, 같은 뜻의 알파벳 두개를 쓰면서도 달리 해석하는 건 러시아식이라고 할 만하다.
러시아 국방부가 소개한 Z영상과 V 이미지/출처:러시아 국방부
Z가 서쪽이라는 의미로 해석한 것은 다분히 피해 의식(?) 속에 빠진 '유럽식'이 아닐까 싶다. 한때는 Z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잡으로 간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군사 장비에만 사용돼온 Z가 일반인의 삶 속으로 튀어 나온 것은 지난 3월 초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22년 국제체조연맹(FIG) 기계체조 월드컵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러시아 기계체조 선수 이반 쿨리아크는 5일 시상식에서 가슴에 Z표시를 달고 나온 것. 그는 스포츠를 '정치'로 오염시켰다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러시아 국방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Z 문양
이후 Z문양은 금기시된 '나치' 문양과 유사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독일과 그 주변에서 예민하게 반응했다. 독일은 영화와 고증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나치즘을 선전하거나 광고하기 위해 나치 문양(하켄크로이츠)을 사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독일의 북부 니더작센주와 남부 바이에른주는 Z표시를 자동차나 건물에 사용할 경우 최고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발트해 에스토니아 정부도 Z표시 사용을 경범죄로 분류하고 있다. 체코도 Z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사용할 때 법적 처벌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