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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아프리카에 희망을, 빈곤 국가에 희망을
"아프리카 공단 프로젝트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
"아프리카 공단 프로젝트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야"
SDSN, 정부에 'UN2030어젠다' 건의문
국가경영 패러다임 전환 계기로 삼아야 외교부 “유엔총회 후 건의문 활용 검토” 국제기구와 제휴해 새마을운동 개도국서 실시
UN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네트워크(SDSN) 한국지부는 중앙SUNDAY의 ‘범 아프리카 한국형 산업단지 구축프로젝트’ 보도와 관련, 이 프로젝트를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SDSN 한국지부는 21일 청와대 · 외교부 등에 낸 ‘UN 포스트-2015 발전 어젠다 채택에 대한 한국의 대응방안’ 건의문에서 “대기업의 경영자원과 중소기업의 기술역량 및 청년인력을 활용해 가난한 나라에 산업공단을 설치하는 것은 빈곤 탈출에 도움을 주고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소프트파워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 이라며 이같이 건의했다.
'유엔 포스트 2015 발전 어젠다’ (2030지속가능발전어젠다)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지구촌이 힘을 합해 빈곤퇴치, 불평등 완화, 교육기획 확대 등을 이뤄내자는 국제협력 계획이다.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169개의 세부목표로 구성돼 있다. 어젠다는 25~27일(현지시간) 박근혜 대통령, 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한다.
SDSN한국지부 양수길 대표(전 OECD대사)는 25일 “청와대에서 건의문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며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마치고 돌아온 후 관련 부처에서 보고서 활용방안 검토에 나설 예정” 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UN총회 이후 활용방안을 검토할 것” 이라고 했다.
SDSN한국지부는 건의문에서 현재 한국이 지속가능발전 위기에 처해 있음을 냉철히 인식하고 UN2030 어젠다를 국가경영 패러다임의 변환을 위한 기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대통령 주재 ‘지속가능목표(SDGs) 위원회’ 설치 ▶국가지속가능발전전략·국가비전·예산 등에 SDGs 적극 반영 ▶기후변화 국제공동연구 ▶지속가능발전과 글로벌 시민정신에 관한 청소년 · 시민교육 추진을 요청했다.
또 공적개발원조(ODA) 집행체계가 외교부-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기획재정부로 이원화돼 있어 혼란과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제개발협력청(가칭)으로 단일화해 국무조정실 산하에 둘 것을 건의했다. 이와 함께 기획재정부 후원아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해 주는 지식공유사업(KSP)을 SDGs에 적합하게 조정하고 전담기관을 지정해 본격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재 KSP집행조직인 KDI 내 국제개발센터(IDC)를 캐나다의 국제개발연구센터(IDRC)처럼 독립, 확대운영하고 빈곤개도국 개발문제 연구의 중심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새마을 운동도 글로벌 개발협력 사업으로 확대하고 전문화하며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와 제휴해 모든 빈곤 개도국에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 중앙일보 | 염태정 중앙SUNDAY 경제부문 기자 | 2015.09.25 |
"세계는 하나… 지속가능 발전 위해 모든 국가가 협력해야" |
| 유엔 회원국 193개국이 25일부터 열리는 지속가능발전 정상회의에서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공식 채택할 예정인 가운데, 하루 전날인 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시민단체 '원(One) 캠페인' 회원들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대형 풍선을 띄워놓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메르켈 총리가 이번 유엔 정상회의에서 빈곤타파를 위해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 중앙일보 | 베를린=AP/뉴시스 | 2015.09.25 | |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아프리카에 희망을 … |
|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17개의 공동적 지향목표와 169개의 이행목표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UN2030 지속가능발전어젠다 와 한국’ 콘퍼런스. [사진 SDSN코리아] | |
“한국형 산업단지 30개 조성 … 청년 · 퇴직자 30만명 파견”
아프리카에 희망을
1400만 명이 본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는 독일에 광부로 나간다. 깊고 어두운 탄광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덕수가 벌어 온 돈은 가족의 생계수단이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광복 70년, 덕수를 독일에 보냈던 한국은 선진국 대접을 받는 나라가 됐다. 지구촌 최빈국에서 외국의 도움과 수많은 덕수의 힘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난 한국은 이제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됐다. 동시에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청장년 실업 문제를 해소 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덕수는 배운 것, 가진 것 없고 나라도 가난해 광부가 됐지만 지금 우리에겐 능력과 기술을 갖추고도 일자리가 없는 청장년이 상당하다.
‘범아프리카 한국형 산업단지 구축 프로젝트’(이하 아프리카 공단). 한국이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가난한 나라에 공단을 세워 ▶빈곤 퇴치 ▶시장 개척 ▶좋은 일자리 창출을 하자는 사업이다. 공단은 한국 정부 및 유엔 ·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아래 국내 30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손잡고 추진한다.
사업을 추진하는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공단을 단계적으로 조성한다는 목표다. 국내에 민관 합동기구를 만든 뒤 아프리카에 시범 공단을 세울 계획이다. 이어 국제사회의 참여를 유도해 ‘세계 기아퇴치 민간기구’(가칭)를 만들어 지구촌에 곳곳에 공단을 늘려 가겠다는 것이다.
| | 2011년 11월 남아공 중부지역 쿠누에 있는 만델라 자택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박광기 삼성전자 부사장. [사진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 | | |
연구소 박광기(프로젝트 리더 · 삼성전자 부사장) 전문위원은 “아프리카 공단 프로젝트가 앞으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의 구체적 시행사업의 하나로 채택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선정해 주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사하라 이남 빈곤지역에서 우선 추진
연구소는 아프리카 기아 밀집지역에 공단 30개를 조성한다는 목표다. 사업은 3단계로 추진한다. 1단계는 극빈국에 생필품 공단을 세운다. 2단계는 개발도상국으로 대상을 확대, 생필품뿐 아니라 중화학제품도 만든다. 3단계는 국제사회의 본격적인 동참을 통해 지구촌 곳곳으로 공단을 늘려 간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전력 공급, 용수 처리, 산업폐기물 처리, 주거시설 구축 같은 인프라 조성을 담당한다. 중소기업은 가공식품 · 생활도구 같은 생필품을 만든다. 공단은 수출형이 아닌 자급자족형으로 한다. 현지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다. 한국 농촌 발전의 원동력인 새마을운동도 접목한다.
공단이 성공적으로 조성되면 공단 한 개당 3만 명, 30개 공단에서 총 90만~10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다. 박 전문위원은 “전체 인력의 30%는 기술자 및 현장 관리 · 마케팅 인력으로 한국에서 파견한다. 30개 공단을 모두 합치면 총 30만 명 수준” 이라고 말했다. 시범 단지 후보로는 에티오피아 · 모잠비크 · 가나가 꼽힌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관심이 높다. 지난 4월 대구에서 열린 세계 물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물라투 테쇼메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박 대표에게 생필품 공단을 세워 줄 것을 요청했다. 물라투 테쇼메 대통령은 “2016년에 시작되는 에티오피아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연결시켜 유엔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면 직접 유엔에 필요한 사항을 요청하겠다” 고 했다.
아프리카 공단은 한국의 장점을 살린 효과적인 지원방식이다. 원조 대상국에서 공여국이 됐고 경공업부터 중화학공업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빈곤 퇴치운동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대표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의 경제 개발 경험을 전수해 기아 퇴치는 물론 경제 자립 토대를 조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 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 청장년에게 해외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000년대 7~8% 수준을 유지하던 청년 실업률은 올해 2월 11.1%로 뛰어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6월 청년 실업률은 10.2%로 전체 실업률(4.1%)의 두 배 이상이다.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곧 은퇴해야 하는데 2모작 인생계획 수립이 쉽지 않다. 2010년 경제활동 인구조사 기준으로 베이비부머는 732만6000명이나 된다.
범정부적 사업 추진기구 필요
한상백 경희대 취업진로지원처 팀장은 “근무 환경이나 연봉이 적절하면 아프리카 공단 프로젝트는 일자리 갈증을 해결하는 매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고 말했다. 김영봉 한반도발전연구원 원장도 “양질의 해외 일자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한국이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 라고 했다.
지구촌 70%를 차지하는 150여 개도국을 새로운 주력 시장으로 만들고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중소기업중앙회 추문갑 실장은 “아프리카는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 한국에서는 사양산업이지만 현지에선 뜨는 산업이 될 수 있는 업종과 기술이 많다” 며 “정부 · 대기업이 앞장서 준다면 중소기업은 환영하는 프로젝트” 라고 말했다.
야심 찬 계획이나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가능하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교 · 원조 · 경제정책의 조화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 이익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제품과도 싸워서 이겨야 한다.
개발원조 담당부서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사업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범정부적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외교부 개별협력과 관계자는 “사업 규모가 크고 기업 경영과 연결돼 있어 특정 부처의 힘만으로는 힘들다” 고 했다. 공단당 2000억~3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자금 조달도 과제다. 30개 공단이면 6조~9조원이 들어간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어야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다.
연구소 백현주 사무대표는 “공적개발원조(ODA) 자금, 대기업의 사회공헌 자금 등을 활용해 시범 공단을 시작하고 2~3년 내에 성공사례를 만들어 국제사회에 동참을 요구하면 이후 세계은행 개발자금을 사용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창조경제혁신센터처럼 삼성 · SK · CJ 등 어느 한 곳이 정부 지원 아래 시범 사업을 하면 경쟁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고 했다. 이진상 덕성여대 국제개발협력센터장은 “어느 때보다 일자리 창출, 시장 개척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프리카 공단에 대한 유엔과 한국 정부 · 대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 중앙일보 | 염태정 중앙SUNDAY 경제부문 기자 | 2015.09.23 |
[중앙일보 창간 50년 특집] 빈곤 국가에 희망을 … |
만델라가 꿈꾼 ‘아프리카 자립’ 한국의 힘으로 이루게 하자
빈곤 국가에 희망을
“한국이 아프리카인의 자립을 위해 공업단지를 조성해 주면 좋겠다.”
2011년 11월 넬슨 만델라(1918~ 2013)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고향 쿠누의 자택으로 찾아온 한국 기업인에게 한 말이다. 단순한 투자 권유가 아니었다.
“과거 50년간 구호활동 명분의 원조형 지원은 아프리카인의 영혼을 빼앗고 자립의지를 훼손시켰다. 아프리카에 필요한 건 단순 원조가 아니다. 자립정신을 키워 주고 스스로 필요로 하는 걸 생산토록 하는 거다.”
이 말을 들은 이는 박광기(현 부사장) 당시 삼성전자 아프리카 총괄. 그는 삼성의 쿠누 지역 교회 신축 · 기증으로 만델라와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4년, 만델라의 꿈이 한국에서 틀을 갖추고 있다. 그것도 한국과 유엔의 꿈까지 보태면서. 이른바 ‘범아프리카 한국형 산업단지 구축 프로젝트’(이하 아프리카 공단)다. 정부 · 유엔의 지원 아래 한국의 30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함께 2030년까지 아프리카 빈곤국에 공단 30개를 세우자는 것이다. 현지에선 기아 퇴치와 지역 개발을, 한국에선 기술인력 파견으로 일자리 창출 효과도 내겠다는 구상이다. 새마을운동의 원리도 접목된다.
현재 아프리카 주재 경험이 있는 국내 대기업의 전 · 현직 임원, 개발협력 · 도시계획 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2013년 8월 ‘아프리카 기아퇴치연구단’ 을 만든 데 이어 올 6월엔 프로젝트를 주도할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를 열었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도 지원하고 나섰다. SDSN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의 차별화된 경제 개발 경험을 개도국에 전수해 기아 퇴치는 물론 자립의 기초를 조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 라며 “국제사회가 지원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 고 밝혔다.
1차 목표는 25~27일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할 예정인 ‘2030 지속가능발전 어젠다’ 의 세부 시행사업으로 선정되는 것이다. 2030 어젠다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지구촌이 힘을 합해 빈곤 근절, 국가 간 불평등 완화, 지속가능 경제 발전 등을 이뤄 내자는 국제협력계획이다. 정상회의엔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이 대거 참석한다. 양수길(전 OECD 대사) 한국SDSN 대표는 이 사업에 대해 “2030어젠다에 대한 국가적 대응 차원에서 봐야 한다” 며 “정부와 유엔이 돕고 대 · 중소기업이 손잡으면 가능성이 커진다” 고 했다.
성공하면 공단당 3만 명, 30개 공단에서 90만~100만 명을 고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광기 부사장은 “전체의 30%를 국내에서 파견할 계획” 이라고 말했다. 최대 30만 개의 해외 취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베이비부머 명퇴자, 청년 실업자가 고용 대상이다. 한상백 경희대 취업진로지원처 팀장은 “근무환경 · 급여가 적절하면 일자리 갈증을 해결하는 매력적인 방안” 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양 대표는 “지속가능발전 추진체제를 정비하고 아프리카 공단사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 했다.
- 중앙일보 | 염태정 중앙SUNDAY 경제부문 기자 | 2015.09.23 |
[특별 기고] 유엔서 채택할 ‘2030 지속가능발전 어젠다’ |
한국, 빈곤국 탈출한 경험 전수해 세계적 ‘소프트파워’ 국가로 도약해야
[특별 기고] 유엔서 채택할 ‘2030 지속가능발전 어젠다’
| | | ▲ 양수길 유엔 SDSN 국제전략이사 겸 한국대표 | | 9월 25~2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정상회의가 채택할 예정인 ‘2030 지속가능발전 어젠다’ 는 ‘사람과 지구를 위한 21세기의 새로운 헌장’ 이라고 불리는 국제협력 의제다. 세계 경영 패러다임을 인간 중심적이고 환경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변환시켜 나가자는 시도다. 특히 선 · 후진국을 불문하고 모든 나라의 국가 패러다임을 변환시켜 나가기 위한 행동계획으로 우리의 경제와 국가 경영에 끼치는 의의도 크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다행이고 또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젠다를 어떠한 시각에서 보고 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한국이 지속가능발전 위기에 처해 있음을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동반자살은 한국의 절대 빈곤층과 빈약한 사회안전망의 현실을 보여 준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이 전개되고, 소득 분배는 나빠지고 있다.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중산층의 살림은 어려워지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노인 빈곤율이 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에 이른다. OECD 회원국 중 여성 취업률은 최하이고,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는 최고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의식은 아마 최하위권일 것이다.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의 증가 없이는 경제 성장도 이룰 수 없다. 공직사회와 정치권은 부패하고 무사안일하다. 시민사회는 분열돼 있고 무질서하다. 한마디로 한국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문제는 우리만이 아니다. 선 · 후진국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나라가 겪는 문제다.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령’, 이슬람국가(IS)의 대두, 난민사태, 각종 기상 재해 등으로 이들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모두 인구의 지속적 증가와 세계 경제의 끊임없는 성장, 자원 고갈 및 각종 폐기물 배출, 글로벌화에 따른 문제다.
이런 문제를 우리의 힘으로만 극복하기에는 벅차다.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국제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세계 및 국가 경영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유엔의 ‘2030 지속가능발전 어젠다’ 는 이를 위한 대책이다.
이 어젠다는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169개의 세부목표(targets)로 구성돼 있다. 2030 어젠다의 가장 큰 특징은 “아무도 낙오시키지 않겠다” 는 원칙이다. 송파구 세 모녀와 같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거시적 지표에 의해 국가를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과지표를 성 · 연령 · 소득 · 장애 · 인종 · 지역 등으로 세분화해 목표를 추구한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SDGs 체제를 최대한 활용해 한국의 여러 위협요인을 종합적 · 체계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의 지속가능발전 추진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필요하면 SDGs 체제를 한국의 여건에 맞게 조정하고 국가 비전과 계획 · 예산 · 법체계 등에 반영해야 한다. 특히 최고위 점검 · 평가기구로 대통령 직속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 · 운영하고 기존 동명의 위원회를 대체해야 한다. 위원회를 정점으로 하되 각급 지방정부 · 시민사회 · 국회 등이 참여하는 다핵적 구조를 갖춰 SDGs를 공유해야 한다.
둘째, 글로벌 차원의 지속가능발전 협력에서 적극적 리더십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통해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창의적이고 세련되고 효과적인 소프트파워를 구축하고 구사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동북아의 강대국들과 대등한 국제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는 길이다. 우리의 성공적 발전 경험이 자산이 된다. 몇 가지를 제시한다.
① SDGs 달성을 위한 제반 국제협력에 한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고 토론에 적극 참여한다.
② 공적개발원조(ODA)를 ‘현대화’한다. 현재 한국의 ODA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0.13%에 불과하다. 2030년까지 이를 0.7%로 높이기 위한 로드맵을 수립 · 발표한다. 아울러 외교부와 기획재정부로 이원화된 ODA 집행체제를 일원화한다.
③ 새마을운동 등 한국의 성공적 개발 경험을 개도국의 역량 개발을 위해 공유하는 ‘지식공유사업(KSP)’ 을 SDGs에 적응시켜 업그레이드한다. 현재 KSP 집행조직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내 국제개발센터(IDC)를 캐나다의 국제개발연구센터(IDRC)처럼 독립, 확대 운영하고 빈곤개도국 개발 문제 연구의 중심으로 발전시킨다.
④ 대학의 연구개발 역량을 활용해 현지에서 기술을 공동개발한다. 대기업의 경영자원을 활용해 빈곤개도국에 산업단지를 구축하고 운영을 지원한다.
⑤ SDGs 중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기후변화와의 투쟁이다. 이를 위해 녹색성장의 관점에서 적정한 장단기 자발적 저탄소화 방안을 도출해 토론하는 국제 공동연구를 추진한다.
⑥ 북한도 유엔 회원임을 감안해 북한과 함께 한반도에 대한 혹은 한반도를 포함하는 지역 점검 · 평가체제를 운용한다. 이것은 통일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⑦ 국민이 지속가능발전의 능동적 추진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속가능발전의 의미와 주요 과제 및 추진방안에 관해 교육한다.
◆ 양수길 유엔 SDSN 국제전략이사 겸 한국대표 = 경기고 · 서울대 공대 졸업. 미 존스홉킨스대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주 OECD 대사,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국제전략이사 겸 한국 대표다.
- 중앙Sunday 제445호 | 양수길 유엔 SDSN 국제전략이사 겸 한국대표 | 2015.09.20 |
성장 · 통합 · 환경 ‘세 토끼’ 잡기 위한 유엔의 15년 계획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란
‘로마클럽’은 1968년 이탈리아의 사업가 아우렐리오 페체이가 과학자 · 경제학자 등과 함께 결성한 비영리 연구기관이다. 환경 오염, 자원 고갈에 관심이 많았던 로마클럽 회원들은 72년 ‘성장의 한계’ 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출간 직후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개발로 인한 환경 오염과 사회적 불균형, 성장에 대한 근본적 고찰의 필요성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 로마클럽이 추구했던 가치는 지구촌의 공동목표가 됐다.
지난달 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 모인 193개 회원국은 내년부터 2030년까지 이뤄 낼 15년간 계획으로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 SDGs) 를 도출했다. 17개 의제와 169개 세부 항목으로 구성된 SDGs는 25일 열리는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공식 채택될 예정이다. 2001년 시작해 올해까지 진행되는 ‘새천년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 · MDGs)’ 의 경우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을 통해 기본적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새로운 목표인 SDGs는 MDGs 의제 중 빈곤 근절, 초등 교육 제공, 성평등 촉진 등에 관한 목표는 계승하고 국가 간 불평등 완화, 지속가능 경제 발전 등 사회통합과 환경보호에 관한 의제를 새롭게 추가했다.
‘포스트 2015년 개발의제’ ‘유엔 2030 어젠다’ 로도 불리는 17개 SDGs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경제 성장과 관련된 분야다. 빈곤 문제 해결, 건강과 교육, 지속가능한 에너지, 사회기반 시설 충족 등 8개 목표가 해당된다. 둘째는 사회통합 분야다. 양성평등 달성, 국가 간 불평등 감소 등 3개 목표가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분야는 지속가능성, 즉 환경보호에 관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등 6개 목표가 있다.
SDGs는 MDGs에 비해 대상의 범위가 넓어졌다. MDGs는 최빈국의 빈곤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SDGs는 에너지 · 식량 · 금융 · 기후변화 등 지구촌 공통 문제를 다루고 있다. 빈곤 문제에 대한 해법도 확대됐다. 과거엔 경제 성장에서 해결책을 찾았다면 이제는 경제 · 사회 · 환경의 균형 있는 발전을 통해 해법을 추구한다. 목표에 대한 각국의 책임도 강화됐다. MDGs의 경우 실천 과정을 자발적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각국이 의무적으로 SDGs의 이행 과정과 성과를 보고해야 하고 이에 대한 평가도 진행된다. 유엔은 향후 표준화된 보고체계와 평가 ·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전홍택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은 “선진국의 재원으로 빈곤국을 지원하는 개발원조가 아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 의제가 SDGs” 라고 말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SDGs의 원칙과 철학이 정해졌을 뿐 실행도구와 측정지표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 이라며 “국내총생산(GDP)이 국가의 경제 성장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되는 것처럼 앞으로는 SDGs의 평가지표가 국가 발전의 척도로 활용될 것” 이라고 했다.
- 중앙Sunday 제445호 | 김경미 기자 | 2015.09.20 |
지속가능발전목표는 각국이 스스로 만든 어젠다
유엔 식량농업기구 사무차장 조모 콰메 순다람
조모 콰메 순다람(사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사무차장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새천년개발목표 (MDGs)와 달리 모든 나라가 참여해 스스로 만든 어젠다” 라며 “다소 방대한 느낌이 있지만 각국이 주도적으로 목표를 이행하면 큰 성과가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경제학자로 개발경제 분야의 유엔 고위직을 수년간 맡아 온 그를 최근 서울에서 만났다.
- SDGs에 대해 말하기 전에 MDGs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세계은행에 따르면 MDGs의 빈곤율 감소목표는 2010년 이전에 이미 달성됐다. 아주 인상적인 성과다. 다만 FAO에선 기아 인구가 절반으로 줄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빈곤을 반 이상으로 줄였는데 기아는 그만큼 줄지 않았다면 뭔가 잘못됐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서로 다른 현상을 측정하고 있거나 통계 수치가 잘못됐을 수도 있다. MDGs는 지속가능 여부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었다. SDGs는 다르다.”
- MDGs 달성의 큰 부분이 중국에서 나왔다. 유엔이 잘한 건가, 중국이 경제정책을 잘 쓴 건가. “빈곤과 기아 퇴치의 상당 부분이 중국의 업적이다. 유엔은 각국 정부에 더 잘하라는 압박을 할 뿐이다.”
- SDGs가 너무 방대하다는 지적이다. “SDGs와 상관이 없는 나라가 없다. 그들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MDGs에 대해선 그렇게들 생각하지 않았다. MDGs는 위에서 내려온 어젠다였다. 중요한 것은 어젠다가 많고 적고가 아니라 각 국가가 주도적으로 책임감 있게 목표를 이행하는 것이다.”
- SDGs 가운데 특히 한국이 신경 써야 할 것이 있나. “지난 40년간 한국은 노동환경 측면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다른 나라에 이런 발전 노하우를 전파할 필요가 있다. 이번 서울 방문에선 박물관에 가서 한국의 역사를 배웠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뒤 식량안보에 대한 칙령을 발표했더라. 무려 600년 전의 일이다. 식량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키워야 한다.”
- 무역 자유화가 개발도상국에 반드시 좋은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효율적인 생산자가 생산해야 한다는 게 자유무역인데 그러면 후발주자는 돈을 벌기 힘들다. 한국의 경제 성장과 같은 방식을 나는 ‘EP con EP(effective protection conditional on export promotion)’ 라고 부른다. 기업에 특정 제품 생산을 주문하고 지원해 수출을 장려했다. 이런 방식으로 후발주자인 한국이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극소수의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리카르도는 1820년대에 자유무역 이론을 내놨지만 그것이 영국의 정책이 된 것은 영국 상품이 경쟁력을 갖춘 1840~5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미국도 19세기까지 폐쇄적 이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지위가 공고해지자 비로소 자유무역을 강조했다.”
- 민간의 빈곤 퇴치 이니셔티브는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민간 개발 지원단체가 많이 있다. 일본의 한 자원봉사단체는 인도 동북부에서 1년만 봉사한다더니 벌써 15년을 하고 있다. 기부가 아니라 빈곤 퇴치 방법을 가르쳐 주는 건 정말 큰 도움이 된다.”
- 중앙Sunday 제445호 | 박성우 기자 | 2015.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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