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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초에 달력을 받으면 먼저 빨간 날부터 찾아보는 게 순서다. 공휴일이 주말과 연이어 있으면 금상첨화다. 어른들도 이렇게 쉬는 날을 찾는데 애들이라고 다를까. 언제 방학을 하는 지 벌써부터 기다리는 눈치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을 해도 학교에 가지 않는달 뿐이지 평상시와 별 다를 건 없다.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의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맡아주는 탁아의 기능도 함께 하고 있다. 직업을 가지고 바깥일을 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어린이들을 맡아서 보호해줄 곳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학이 되면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다. 그래서 학원 순례를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들이 어릴 때는 방학이라면 그야말로 완전한 방목이었다. 글 한 줄 보지 않고 놀기 바빴다. 그러다가 방학이 끝날 무렵이 되면 밀린 숙제를 하느라 가마솥에 콩 볶듯이 이리 뛰고 저리 달렸다.
국민학교 6학년 때, 여름방학인데도 나는 매일 학교에 갔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렸는데, 아침밥을 먹고 어정거리다 보면 해가 머리 위에 솟아 있었다.
대지가 아직 열기에 달아오르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땡볕이 내리쬐는 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건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매일 학교에 갔으니 그것은 책이라는 놀잇감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교실 예닐곱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형태의 단층 목조의 본관이 있었고 그 뒤에 콘크리트로 만든 교실 두 칸짜리 별관이 있었다. 그리고 별관 옆에 또 건물이 하나 더 딸려 있었는데 그 곳이 바로 도서실이었다.
지붕이 삼각형으로 뾰족했던 도서실 건물은 그래서 천장도 높았다. 크기는 교실 한 칸 정도 쯤 되었는데 그 곳에 책이 두서없이 놓여 있었다. 몇 개 안 되는 서가에 책들을 꽂아놓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책들은 바닥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조각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책 사이에 머물렀고 시간은 정지된 듯 고요했다. 그 곳에서 종일 놀 수 있었으니 도서실은 내겐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나를 좋게 봤던 선생님이 나를 도서실 관리 책임자로 지목해 주셨다. 그래서 그 해 여름 내내 도서실에서 책을 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책들 중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괴도 루팡' 시리즈가 전부이지만 책 먼지를 맡으면서 도서실에서 놀았던 그 시절을 돌아보면 뭔가 모를 뿌듯함과 든든함이 가슴 속에서 일어나곤 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는 물자가 귀했던 시절이라서 책이라고는 교과서가 전부였는데도 우리 집에는 늘 읽을 책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셔서 항상 책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저녁을 드시고 나면 짚으로 새끼를 꼬거나 아니면 호롱불 심지를 돋우시고 책을 읽으셨다. 할아버지는 몸을 앞뒤로 가볍게 흔들면서 노래를 부르듯이 운율을 넣어 책을 읽었는데 그 소리는 사랑채에서 마당을 건너 안채까지 넘어오곤 했다. 그러면 우리도 국어책을 꺼내놓고 소리를 내어 읽었다. 바느질감을 무릎에 얹어두고 바느질을 하던 엄마는 책을 읽는 우리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셨다.
예전에 내가 살았던 도시에는 큰 도서관이 있었지만 시민들이 많이 찾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보면 학생들만 많을 뿐 어른들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도서관이 위치해 있는 곳 때문에 그런 듯 했다. 도시의 중심부에 도서관이 있었다면, 그래서 찾아가기에 쉬웠다면 좋았을 텐데 외곽에 있었으니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잘 가지지가 않았다.
그 도시는 구도심 옆에 신도시가 만들어져서 백화점이며 스포츠 센타 같은 생활 편의시설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신도시의 아파트 숲 가운데는 중앙공원도 있어서 가볍게 산책을 하며 쉴 수도 있었다.
모든 편의시설들이 근처에 있었지만 도서관만은 그렇지를 못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사람들은 먹고 입고 즐기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고 도시는 향락으로만 발전하는 듯 보였다.
만약 중앙공원 자리에 도서관을 만들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공원 속에 도서관이 있어서 놀며 쉬며 책을 보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그 도시는 서울 주변부의 베드타운에서 벗어나 문화적으로 한층 더 성숙한 도시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ㅁ
한 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청소년들을 보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들의 미래는 책 속에서 만들어지니 결국 한 나라의 미래는 도서관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외국에서 오래 살고 있는 시동생 내외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그 나라가 땅이 넓고 물자가 풍부한 것은 부럽지 않은데 도서관만은 부럽다고 했다. 사람들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도서관이 있어서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이용을 한다고 했다. 또 소장하고 있는 책의 규모도 대단하다면서 왜 그 나라가 그리도 부강한 나라가 되었는지 도서관을 보고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책을 읽는 것은 마치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일이다. 책을 읽는 게 취미라면 더더욱 좋은 현상이다. 일상이면서 또특별히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국민들의 독서량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일 년에 열권도 안 보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하니, 문화적으로 성숙한 나라로 가는 길이 요원해 보인다.
만약 도서관의 문턱이 낮아서 마치 시장에 가는 것처럼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다면 어찌 될까.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어서 그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유지가 된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집 근처에 도서관이 생겼다. 지난 가을의 일이다. 아는 이를 따라 구경을 갔다가 회원으로 등록도 하였다. 회원이라고 해봤자 별 거 아니다. 후원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자원봉사로 돕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 이익을 위해서, 즉 책을 빌려다 본다든지 그럴 경우에 좋겠다 싶어서 등록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도 도서관엔 잘 놀러가지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늘 그 도서관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노트북을 들고 놀러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는 늘 꿈을 꾼다. 노트북을 켜놓고 타닥타닥 글을 쓰는 나를 그린다. 분위기가 좋은 카페를 봐도 그 생각을 먼저 한다. 그런 곳에서 글을 쓰면 글이 잘 나올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곤 한다. 물론 겉멋이라는 생각이 들어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람도서관에서는 글을 써보고 싶다. 내 집인 양 편하게 커피 한 잔 옆에 놓고 타닥타닥 자판을 누르고 싶다.
자람도서관은 뜻을 가진 어떤 분이 만든 사설 도서관이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도서관을 만들었는데 수익이 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다달이 집세도 내야하고 또 전기요금이니 인터넷 요금 같은 관리비도 들어간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이 시대에는 맞지 않는 일을 자람도서관은 하고 있다.
어쩌다 한 번씩 놀러가 보면 고요하고 한적하다. 책과 차와 음악이 있는 좋은 놀이터인데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사람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도서관이 별 볼 일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람도서관은 강화군 양도면에 있다. 인근에는 사회복지시설인 계명원이 있는데 그 곳에는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시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있다. 자람도서관은 그 아이들에게 훌륭한 쉼터 역할을 해주고 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아이들은 도서관에 들러서 놀다가 간다. 책을 읽지 않고 놀다가 간다고 하더라도 책 속에서 노는 것이니 은연중에 책 향이 스며들 것이다. 그것이 언젠가 그 아이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는다면 자람도서관은 훌륭히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자람'은 곧 '자라다'라는 말이다. 책과 함께 꿈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는 자람도서관은 지역 사회와 함께 커나갈 꿈을 키우고 있다.
보통의 도서관들이 책이 주인이고 사람은 부수적인 것이라면 자람도서관은 다르다. 자람도서관에서는 사람이 주인이다. 앉고 싶으면 앉아도 되고 눕고 싶으면 누워도 된다. 책을 봐도 되고 아니면 그냥 가만히 쉬어도 괜찮다. 쉼 속에 나만의 책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람도서관은 방방마다 특색 있게 꾸며져 있다. 각각의 공간에는 빈 의자가 있다. 내가 앉으면 그 의자는 내 의자가 되는 것이다.
이 달의 작가를 선정해서 그 분의 책들을 전시해놓은 코너도 있었다. 6월의 작가로 선정이 된 분은 박완서 선생님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이 문단에 나오기 전의 이력을 보면 평범해 보인다. 자식을 낳고 기르며 살림을 살던 주부였으니 평범하다면 평범하다. 그러나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감춰져 있었으니 살림을 하던 주부가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했을 것이란 건 안 봐도 알 수가 있는 일이다. 밥상을 물리면 그 밥상이 책상이 되었을 것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가족사는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와도 닿아 있다. 선생님은 치욕스럽게 살았던 그때를 증언하기 위해서 붓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도 끔찍한 기억들이라 돌아보기도 싫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때를 증언한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년을 보냈던 아치울 마을에서의 나날들을 풀어낸 글들은 또 어떤가. 인간의 품격을 지닌 그 분의 글은 평범한 듯 비범하다. 경지에 오른 분들은 꾸미지 않는다. 쉽게 말하는 그 글들을 보면서 나이 드는 게 축복일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어렴풋이 들기도 한다.
흙을 만지며, 풀과 나무에게 말을 걸면서 조용히 자연으로 스며들었던 박완서 선생님, 자람도서관에서 만난 선생님을 나는 조용히 집으로 모시고 왔다.
전에 어디선가 봤던 글이 떠오른다. 1950년대 초반,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책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소녀는 도서관에 자주 갔다. 도서관 카운터 뒤에는 신간서적들을 눈에 잘 띄게 진열해 놓았는데 소녀는 진열되어 있는 그 책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글을 쓰서 책이 만들어져 나온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책이 이렇게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되어 있다면 난 정말 행복할거야.’
그날 소녀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설정했다. “난 작가가 될 거예요. 많은 책을 쓰겠어요.” 곁에 있는 도서관 사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책과 함께 성장해가는 소녀를 늘 지켜봤던 사서는 소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넌 꼭 작가가 될 수 있을 거야. 네 책이 나오면 여기 이 곳 카운터 뒤에 잘 보이게 진열해 줄께.”
소녀는 나이를 먹었고 그리고 소녀의 꿈도 같이 자랐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녀는 무엇인가 꼭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마침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 만에 열리는 동창회에 참석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책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찾아갔다. 도서관 팻말 옆 게시판에 큼지막하게 이런 글이 걸려 있었다. - 잔 미첼, 돌아온 걸 환영해요. -
책과 함께 꿈과 생각이 자라는 자람도서관, 오늘 그 곳에서 '잔 미첼'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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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책 읽는 것은 일상이면서 또 좋아서 하는 취미가 되면 더 좋겠지요.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독서가 취미라니 일상이어야지 하면서 비웃기도 하지만
저는 취미가 되면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취미란 그야말로 좋아서 즐겨하는 일이니까요.
백골님은 책읽기가 일상이면서 또 취미이기도 하니, 참 좋습니다~~~.
미감님 자라온 과정을 읽으면서 제 삶의 모습이 보입니다.
어릴 적에 형제들 많았던 우리 집은 동화책이란 것이 없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옆집 형손에 이끌려 교회를 갔더니 그곳에는
책이 많았습니다. 그후 거의 매일 내 머리맡에는 동화책이 놓여 있었죠.
중학교시절부터는 대학졸업때까지 거의 모든 시절을 도서관에서 보냈습니다.
공부를 잘한건 아닌데 도서관에선 책 빌려 읽는 재미.
중2학년에 셜록홈즈 시리즈를 독파했고, 한 때는 무협지도 맛들였죠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애정소설읽느라 여드름도 많았고요.
학기중에는 도서관 전망 좋은 곳에 내 자리에 하나 잡고 밤늦게 까지 지내고
방학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책을 즐겨 읽어서 그렇게 서술력이 좋았군요.
현역에서 은퇴를 하면, 전문적으로 글공부를 하시면 참 좋을 것 같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으로도 괜찮지만 일상에서 문학으로 나아가는 것도 참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서요.
제가 알고 있는 분들 중에는 정계, 학계, 언론계에서 쟁쟁하게 활동을 하시다가 은퇴 후에 본격적으로 글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더러 계세요.
그 분들의 특징이 문학에 뜻을 두었지만 다른 길로 갔다가 다시 그리운 문학을 찾아 온 경우였어요.
글 앞에 겸손함을 가르치는, 단어 하나에도 프로정신을 키워주시는 그런 좋은 선생님을 만나셔서 문학의 반열에 오르시길 기원드립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문학을 공부해 본 적이 없지요.
나중에 내가 써온 허접한 글에 대해서 회의를 갖고 더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으면
그 때 문학공부의 문을 두들겨 보지요.
대학때는 주로 책읽기 보다는 학교에 있기 위해 도서관 자리잡고 밖에 나가 노는 날이 많았지요.
직장다니면서 주로 전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흔들리지 않는 전철에서 늘 책이 손에 있었고요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소년이 나이들어 어설프게나마 책을 하나 써 내고
내 책을 교보문고같은 대형 서점의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해 집니다.
솔직히 여행기 소재로 많은 책을 쓸만한 원고를 가지고 있지요.
전세계를 다니고 여행에세이를 써 놓았으니까요.
언젠가는 모두 책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내가 죽으면 내 영정사진 옆에 내 책 몇 권 놓는게 작은 바램입니다.
저도 강화에 들어오고 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썼는데, 그러나 그 때 쓴 글은 지금 보면 부족한 감이 많이 들어서 자료로써 소장하고 있고
최근 몇 년 사이에 쓴 글이 십여 편 있어요.
보통 수필 한 편이 원고지 13매에서 15매 정도 분량인데, 그러면 약 50편 가량의 작품이 필요하지요.
그러나 책을 섣불리 낼 수 없는 게, 책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 정말 부끄럽지 않은, 그런 수준의 글이 되었을 때 책을 내더군요.
제가 속해 있는 문학회의 선배님들은 등단 후 약 7~8년 사이에 책을 내는 경향이 있던데, 책 한 권 내는 산고의 고통이 크기 때문에 책을 내고나면 한동안은 글을 못 쓰더군요.
바로 지적하신 그 문제때문에 이제까지 책이라는 것을 쓸 엄두를 못내고 있었답니다.
책이라는 영원히 남는 것.
그러다가 지난 해 암수술을 받고 난 뒤
내가 정말 하고픈 것을 못하고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때문에
저지른 것이죠. 내 삶의 기록들을 엮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요즘도 휴일의 한가한 날에는 시내 대형 문고에 가서 죽치고 책을 뒤적거립니다.
미주, 중남미로 해외 출장 많이 다닐 때는 요즘같이 노트북이 없다 보니
외국 공항에서 시드니 셀던의 소설과 존 그리샴의 법정소설 원서(포켓북)를 사서
출장기간 내내 읽으며 다녔죠. 셀던 것은 한권도 빼 놓지 않고 다 읽었지요.
비행기안에서 공항에서 시차때문에 잠 안오는 호텔에서..
늘 출장다녀 올 때마다 한권씩 읽었더니 너무 많아 이젠 내용이 헷갈립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전철에서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외국다니면 외국 젊은이들은 안그러는데...우린 해도 해도 너무하죠..
책과 멀어진 젊은 세대. 감성부족시대
저는 요즘은 수필은 쓰지 않고 이렇게 가벼운 글만 씁니다.
수필쓰기가 너무 무거워서 힘을 좀 빼고 있습니다.
강화나들길에 올리는 글들은 대부분 가벼운 마음으로 쓴 글들인데, 그러나 나중에 필요하면 또 퇴고를 통해서 작품으로도 완성할 수 있으리란 생각에 그냥 씁니다.
본 것, 들은 것을 스케치 하듯이 묘사하는 것은 서술력을 기르는데는 참 좋은 방법이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요.
주제를 잡아서 의미화를 시키는 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까르미나님은 남다른 경험이 많으셔서 소재도 참 다양할 것 같아요.
진짜로 나중에 시간 여유가 되시면 문학으로 나아가 보세요.
정말 좋은 글을 남기는, 좋은 수필가가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공대를 국어시험 거의 만점 받아서 들어갈 정도로 특별했지만
언젠가는 더 깊고 전문적인 것을 원할 때가 있겠지요.
참멋진생각을 몸으로 실천하신
자람도서관 세우신분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가진것을 자랑만할줄아는 시대속에
보석같은분이 나오셨네요
이제알았으니
강화나들길 갈때 잠시라도
들려봐야겠어요
미감님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에요.
아주 편안하게 말이에요.
좀 전에도 일이 있어 갔더니 어떤 분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고 있더군요.
불은면에서 오셨다고 하는데,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