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팀에서 10팀. 그리고 10팀 중 8팀이 사라지고 이제 두 팀만이 남았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보스턴과 내셔널리그 챔피언 다저스가 역대 114번째 월드시리즈에서 맞붙는다. 보스턴은 통산 9번째, 다저스는 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한다.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여섯 번 이상 따낸 두 팀의 맞대결은 1964년 양키스(20회)와 세인트루이스(7회) 2013년 보스턴(8회)과 세인트루이스(11회)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두 팀은 유독 포스트시즌에서 인연이 없었다. 무려 한 세기를 되돌아가야 하는 1916년 월드시리즈에서 딱 한 번 만났다. 당시 브루클린 로빈스로 불렸던 다저스는 양대 리그 시대 첫 월드시리즈 진출이었다. 그러나 보스턴을 넘지 못하고 1승4패로 패했다. 5경기 중 3경기가 한 점차 승부일 정도로 분위기는 팽팽했다.
1916년 월드시리즈
다저스 5-6 보스턴
다저스 1-2 보스턴 (14회)
보스턴 3-4 다저스
보스턴 6-2 다저스
다저스 1-4 보스턴
1916년 월드시리즈가 좀더 주목받는 이유는 2차전 선발투수 때문이다. 아직 자신의 진짜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베이브 루스가 14이닝 1실점 완투승을 따냈다. 이후 루스가 양키스로 이적한 것은 잘 알려진 일. 그런데 루스는 다저스 하고도 연관이 있다. 감독에 관심이 있었던 루스를 회유한 팀이 바로 1938년 다저스였다. 이에 루스는 1루 코치직을 수락했지만, 이내 다저스의 속내를 알아차리고 물러났다(다저스는 루스를 이용해 흥행몰이를 하려는 이유가 더 컸다). 다저스를 떠난 루스가 더 이상 야구 관련 일을 하지 않았으니, 보스턴과 다저스는 루스 야구 인생의 첫 팀과 마지막 팀인 셈이다.
두 팀은 올해 상반된 시즌을 보냈다. 메이저리그 최다승을 올린 보스턴(108승)은 꽃길을 걸었다. 지구 1위에 머무른 시간이 무려 148일이나 됐다. 포스트시즌에서 연속으로 100승 팀을 만났지만 시리즈 최종전까지 가는 일은 없었다(단일 포스트시즌에서 100승 팀을 두 차례 물리친 것은 역대 6번째로, 올해 이전은 2004년 보스턴이다).
다저스(92승)는 고생을 많이 했다. 유격수 코리 시거가 토미존 수술로 아웃됐고, 선발투수가 돌아가면서 부상에 쓰러졌다. 1위에 오른 날보다 1위를 쫓는 날이 더 많았다. 타이 브레이크 경기를 치른 끝에 지구 우승을 차지했으며, 챔피언십시리즈도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이지만, 작년보다 훨씬 힘겨운 행군이었다.
보스턴의 창은 포스트시즌에서도 무뎌지지 않았다. 첫 9경기 56득점. 특히 휴스턴과의 챔피언십시리즈 2~4차전에서 연속 7점 이상을 뽑았다(7점-8점-8점). 올 시즌 휴스턴은 지명타자를 도입한 1973년 이래 아메리칸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한 팀이었다(534실점). 휴스턴 A J 힌치 감독은 보스턴 타선을 "무자비하다(ruthless)"고 표현했다.
포스트시즌 득점권 성적
보스턴 : .370 .495 .658 (1.152) 4홈런
휴스턴 : .294 .407 .426 (0.834) 2홈런
밀워키 : .205 .317 .307 (0.624) 1홈런
다저스 : .190 .330 .333 (0.663) 4홈런
보스턴이 홈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유리한 부분이다. 보스턴은 홈 최다득점 1위(468) ops 2위(.829) wRC+ 2위(115)로 홈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다. 또한 내셔널리그 팀을 상대한 인터리그에서도 컵스(114점) 피츠버그(108점) 다음으로 많은 106점을 올렸다. 참고로 보스턴은 올 시즌 인터리그 최다승 팀이기도 하다(16승4패 .800).
챔피언십시리즈 MVP는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였다(.200 2홈런 9타점). '날씬한 오티스' 라는 별명을 얻은 브래들리 주니어가 하위타선을 무겁게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월드시리즈에서 눈길을 모으는 선수는 역시 제이디 마르티네스다. 디비전시리즈(14타수5안타 .357) 챔피언십시리즈(18타수5안타 .278) 동안 타격감이 좋았던 마르티네스는 지난해 애리조나 이적 후 다저스전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9경기 .294 .385 .824). 9월5일 다저스타디움에서는 4연타석 홈런을 터뜨려 다저스에게 잊을 수 없는 수모를 안겨줬다. 보스턴이 무키 베츠가 주춤한 상황(ps .205 .295 .282)에서도 득점력이 떨어지지 않은 것은 마르티네스가 중심을 잡아준 덕분이다.
다저스는 타선의 기복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최다홈런 팀(235개)답게 한 방으로 흐름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한 방에 치우친 타격은 때로는 독이 됐다. 정규시즌 볼넷률 1위(10.2%) 타석당 최다투구 수 1위(4.05개)에 오른 모습도 겸비되어야 한다. 크리스 테일러(ps .360 .467 .600)와 야시엘 푸이그(.333 .429 .533)의 타격감이 올라와 있는 가운데 보스턴을 잘 알고 있는 매니 마차도(.250 .313 .500)가 분발해줘야 한다(마차도는 볼티모어 시절 보스턴과 악연이 깊다).
마운드는 보스턴 타선의 빈틈을 노려야 한다. 보스턴 타선은 우투수와 좌투수를 상대했을 때 편차가 있었다(우투수 상대 ops 1위 .817, 좌투수 18위 .719). 4월22일 오클랜드 좌투수 숀 머나야에게는 노히트까지 당했다. 우완 선발보다 좌완 선발을 맞이했을 때 승률도 더 떨어졌다(우완 선발 87승38패 .696, 좌완 선발 21승16패 .568). 이는 좌투수 비중이 높은 다저스가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다저스는 1,2차전에서 좌완 선발이 나온다. 1차전은 클레이튼 커쇼(ps 4경기 2승1패 2.37) 2차전은 류현진(ps 3경기 1승1패 4.40)이다. 커쇼는 한 번도 보스턴과 대결한 적이 없고, 류현진은 2013년 8월25일이 유일한 맞대결이다(5이닝 4실점 패전). 보스턴 입장에서 들은 적은 있지만 겪은 적은 없는 투수들인 것. 다저스는 미지의 영역에 있는 이 좌투수 두 명이 보스턴 타선을 어색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보스턴은 숱하게 만났던 J A 햅과 CC 사바시아는 디비전시리즈에서 2이닝 5실점, 3이닝 3실점으로 무너뜨렸다).
커쇼가 중요하지 않은 시리즈는 없었다. 다저스의 포스트시즌을 좌우했던 커쇼는 점점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이다. 디비전시리즈 2차전(8이닝 무실점)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7이닝 1실점)은 달라진 커쇼를 확인할 수 있는 경기였다. 월드시리즈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1차전에서도 7이닝 11K 1실점의 뛰어난 피칭을 선보였다. 올 시즌 커쇼는 패스트볼 비중을 줄이고 슬라이더/커브에 의존하는 투수로 변신. 마침 보스턴 타선은 좌투수 슬라이더/커브에 매우 취약했다. 만약 1차전과 5차전, 필요시 7차전까지 나올 수 있는 커쇼가 제 역할을 해준다면 시리즈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다저스는 커쇼가 포스트시즌 선발로 나선 최근 13경기에서 10승3패). 다만 원정에서 흔들린 부분과 쌀쌀한 날씨 속의 펜웨이파크 등판은 우려스럽다. 이 우려는 2차전 선발인 류현진에게도 해당된다.
좌완 슬라이더/커브 상대 팀 타율
0.254 - 휴스턴 (1위)
0.247 - 워싱턴
0.237 - 피츠버그
0.233 - 애틀랜타
0.227 - 밀워키 (5위)
0.169 - 보스턴 (28위)
0.165 - 마이애미
0.158 - 오클랜드
1차전이 중요한 것은 보스턴도 마찬가지. 보스턴은 크리스 세일(ps 3경기 1승 3.48)의 몸상태가 물음표다. 복통으로 챔피언십시리즈는 한 번밖에 나오지 못한 세일은 평균구속이 다시 떨어졌다(디비전 95마일, 챔피언십 92마일). 포스트시즌을 위해 이닝관리를 했지만, 현재까지는 준비한 것에 비하면 아쉬운 결과다. 보스턴은 데이빗 프라이스(ps 3경기 1승 5.11)가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포스트시즌 연패를 탈출한 것이 안심이다. 프라이스가 승리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다면 세일에게 집중된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뒷문이 더 강한 팀은 다저스다. 포스트시즌 두 번째로 많은 불펜 이닝(41.2)을 소화하고도 평균자책점 1.30, 피안타율 .180에 그쳤다(밀워키 60.2이닝). 마무리 켄리 잰슨(6.2이닝)을 비롯해 페드로 바에스(6.2이닝) 딜란 플로로(4.2이닝) 케일럽 퍼거슨(3이닝)은 무실점 행진. 여기에 라이언 매드슨이 위기마다 선방했으며(6.1이닝 1실점) 훌리오 유리아스도 월드시리즈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3.1이닝 1실점). 당초 밀워키에 밀릴 것으로 예상됐던 불펜 싸움에서 다저스가 승리한 것은 결코 행운이 아니다.
보스턴 불펜도 9월 난조를 딛고 선전했다(37.1이닝 era 3.62, avg .194). 라이언 브레이저(7이닝 0실점) 맷 반스(6.1이닝 1실점) 조 켈리(5.1이닝 1실점)가 제 역할을 해줬다. 그러나 마무리 크렉 킴브럴(6.1이닝 5실점)이 잰슨과 정반대의 포스트시즌을 보내고 있다. 킴브럴은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 이전까지 포스트시즌 5경기 연속 실점을 허용했다(6.1이닝 6실점 9안타 9사사구). 5차전도 볼넷 하나를 내주고 경기를 끝낸 킴브럴은 포스트시즌 3자범퇴 세이브가 한 차례도 없다. 투구 시 티핑(tipping)이 노출된 것으로 알려진 킴브럴은 에릭 가니에의 조언으로 보완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가니에는 다저스 마무리 출신이다). 보스턴은 이 원포인트 레슨이 효과가 있길 바라야 한다.
양 리그 특성에 따른 변수는 지명타자다. 선수층이 두터운 다저스는 지명타자가 타선에 보탬이 됐다(10경기 .378 .489 .541). ops 1.029는 메이저리그 최고 성적. 올해 지명타자 5경기에서 .389 .500 .556(1홈런)로 뛰어났던 맷 켐프가 1차전 지명타자로 나올 전망이다. 보스턴은 다저스타디움에서 치르는 3,4,5차전 라인업이 관심사다. 공격의 핵심인 제이디 마르티네스가 외야수로 기용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앤드류 베닌텐디(좌익수)와 무키 베츠(우익수)를 뺄 수 없는 노릇. 이에 알렉스 코라 감독은 2루수 베츠를 검토하고 있다. 드래프트 당시 유격수였던 베츠는 4년만에 나선 올해 2루수로 한 경기만을 뛰었다.
베츠의 2루 수비만큼 지켜봐야 될 곳은 다저스의 외야 수비다. 기괴한 형상의 펜웨이파크는 외야수들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기는 곳이다. 펜웨이파크에 섰던 마지막 다저스 외야진은 2010년 6월21일 개럿 앤더슨(좌익수) 맷 켐프(중견수) 안드레 이디어(우익수)였다. 펜웨이파크 경험이 없는 외야진이 깔끔한 수비를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인데, 중견수 코디 벨린저는 잘못된 타구 판단으로 위기를 확대시키는 모습이 몇 차례 있었다.
올 시즌 마지막을 장식할 두 팀의 월드시리즈는 전력 외 볼거리도 풍성하다. 2002-04년 다저스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두 감독의 지략 대결도 그 중 하나다. 로버츠는 '더 스틸'로 기억되는 2004년 챔피언십시리즈에서 결정적인 도루로 보스턴의 우승에 기여했다.
한편 ESPN 전문가 25인은 보스턴 우승에 더 많은 표를 던졌다(보스턴 20명, 다저스 5명). 25명 중 가장 많은 12명이 보스턴의 6차전 승리를 예측했다(보스턴 5차전 승리 5명, 7차전 승리 3명). 다저스의 손을 들어준 5명은 6차전 세 명, 7차전 두 명 뿐이었다.
내일(24일)의 PS 중계(MBC스포츠플러스)
9시 : LAD(커쇼)-BOS(세일)
*캐스터 정병문 / 해설 송재우
종료 후 포스트시즌 투데이(정새미나&김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