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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는 아무리 흔들어도 몸을 까딱거리다가 점점 본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잡습니다. 그것은, 무게중심의 추가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오뚝이는 과학적 원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오뚝이를 보면서, 성도된 우리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이 흔들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견고한 사명이 우리 삶의 무게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이 중심 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흔들려도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바알 숭배로 이끈 아합 왕가는 버리셨으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은총은 거두시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본문에는, 남편은 죽고, 남은 두 아들은 빚쟁이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는 가련한 처지에 놓인 선지생도의 한 아내가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합니다. 이 때, 선지자 엘리사는 그 여인의 빈 그릇에 기름이 가득 채워지도록 하여, 그 기름을 팔아 어려움을 해결하게 한 기적이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기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어려움에 처했을지라도 사람을 찾아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살길을 열어 주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대로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는 과학적으로 논증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기적에는, 종교적인 기적, 영적인 기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확률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기적입니다. 의학적으로 회생할 수 없는 병에서 고침을 받거나,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기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적이라고 믿는 일은, 현상세계에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를 테면, 홍해가 갈라진 사건, 태양이 중천에 머문 사건,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 반석에서 샘이 솟은 사건, 모두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 죽은 사람을 살려낸 사건, 병자가 즉석에서 깨끗이 나은 사건, 모두 기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선거로 인해 주변이 시끄럽습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공천 후보자로 오른 사람들이 과연, 그들이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들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말처럼 진실일까?라는 의문이 듭니다. 무엇을 위한 선거인지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경제가 어렵고, 서민들의 삶이 어려운데, 이것을 해결하기 보다는 빌미로 삼아 자신들의 야욕을 이루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힘든 삶이 더욱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된 우리는 본문의 선지생도 아내가 받았던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회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주시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믿음의 분량대로 받는 다”는 겁니다. 여러분, 나라의 어려움, 국제간의 어려움, 그리고, 얼마남지 않은 선거를 위해 기도합시다. 나라가 평안하고, 국제가 안녕하며,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참된 일꾼들이 선출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이것이, 세상을 향하여 제사장된 성도들의 직무입니다. 그리고, 여러 면에서 힘들지만, 본문의 여인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역경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엘리사를 따르던 생도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러자, 채주들이 들이닥치더니 빚을 못 갚으면 두 아이를 종으로 삼겠다고 위협합니다. 이에, 다급해진 생도의 아내는 엘리사를 찾아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자초지종 말합니다. 이 여인의 상황을 보면, 남편을 원망하고, 주변을 원망하고, 한탄할만한 처지입니다. 다른 일도 아닌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소명 받은 남편이 헌신했는데, 그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죽은 남편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대해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인은 당대의 참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가 자신의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그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았다는 것은,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자는 것이 아니고, 모든 문제는 반드시 해답이 있다고 믿고 하나님 앞으로 그 문제를 가지고 나온 겁니다. 우리도 환란과 고난의 풍파가 몰려올 때에 두려워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환경을 비관하거나 처지를 원망만 하며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할 때 하나님께서도 절대적인 응답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들도 이 여인과 같은 극한 시련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배신당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였는데 돌아오는 것이 역경뿐이라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자연스런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선지 생도의 미망인은 전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에게 나아가 자신의 형편과 사정을 정직하게 아뢰는 길을 택합니다. 이같은 선지 생도의 미망인의 행동은 그녀의 신실한 믿음을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가진 믿음이 진실한 것이라면 우리 또한 이 여인이 당한 것과 같은 역경에 처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것이라면 우리 전존재와 우리가 처한 모든 삶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시든지 그것을 겸손히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니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시든지 거기에 순응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역경 가운데 처하였다 해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마시고 도리어 그분의 주권과 선하신 계획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성도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엘리사와 제자의 아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만나고 대화하고 기도한 것처럼 무엇을 하든지 어떠한 환경에 있어도 모든 상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만 신뢰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 - 3절을 보시면,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소유와 순종으로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엘리사는 이 여인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여러분, 엘리사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늘에서 금은보화를 내려 여인을 도울 수도 있었습니다. 엘리사에게 그런 믿음의 능력이 없어서 여인의 집에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도우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굳이 여인의 집에 남아 있는 것을 통해 여인을 돕고자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도우시는지 그 사역의 방법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이미 사람에게 주신 것으로 자기 백성을 도우시기를 즐겨하시는 분임을 보이고자 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진 것이 없어서 자식마저 종으로 끌려가야 할 처지에 놓인 여인의 집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남아 있다면 그녀는 엘리사를 찾아오기 전에 그것이라도 팔아 빚을 갚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녀가 가진 것은 기름 한 병뿐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가진 것 전부였지만 사실은 가진 것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으로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다고 여겨질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여인이 기름 한 병이 있다고 하였을 때 그것으로 행할 바를 지시하였고 결국 빌려온 그릇에 기름이 다 차기까지 기름병에서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이 여인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적을 일으키셔도 하늘에서 뚝딱하고 떨어지는 방법으로 이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적을 일으키실 때는, 우리가 가진 것을 활용하여 일으키십니다. 마치 주님께서 어린아이가 가진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이적을 일으키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약 4: 2을 보시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합니다. 본문의 여인은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요소는 “기대감과 믿음”입니다. 눅 17: 6을 보시면,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으론 불가능해 보일 때 그때야말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때입니다. 기적을 기대하지 않고 꿈도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본문의 여인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기름병에서 끝없이 나오는 기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릇마다 채워지는 기름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기적을 주신 겁니다. 이와같이,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향해 기대와 믿음을 가진 자에게 똑같은 은혜와 축복을 주십니다. 하버드 심리학 공개강의의 핵심내용을 정리한 “하버드 심리학 강의”를 보면, 바다를 항해하는 배는 파도를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큰 파도를 만나 조난할 수도 있고 난파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파도를 무서워하면 배를 띄울 수 없고 조난을 두려워하면 고기잡이를 나설 수 없습니다. 역경과 고난은 삶의 일부이고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경을 당할 때 부정의 노예가 되어 과거와 작별하지 못하면 희망은 질식되고 맙니다. 좌절과 실패 앞에서 일어서는 자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실패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할 것은 과거의 실패로 도전하지 못하는 절망하는 마음입니다. 담금질을 반복하면 할수록 쇠의 강도가 더 높아집니다. 이 여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빈 그릇을 빌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였고 조금 빌리지 않고 많이 빌렸습니다. 순종과 믿음은 정비례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합리적인 사고를 초월합니다. 합리적인 사고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배척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선지 생도의 미망인과 같이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축복으로 채워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5 - 6절을 보시면,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준비된 믿음의 분량만큼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은밀한 교제 속에서 풍성히 내려지는 은혜입니다. 여인과 두 아들이 준비한 모든 그릇에 기름을 다 채우기까지 기름은 계속해서 흘러 나왔으며 모든 그릇이 다 찬 후에야 비로소 기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여인이 그릇을 하나만 준비했다면 하나만 채워졌을 것이고 백 개를 준비했다면 백 개에 가득 채워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순종과 믿음의 분량대로 채우십니다. 그릇을 빌려온 사람은 여인이라도 기름의 소유자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 여인의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순종은, 믿음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기적과 이적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축복입니다. 성경에서의 “순종”은, “듣다, 청종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말씀을 단순히 수동적으로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듣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순종이라고 할 때, 죄들을 범치 않으려고 기를 쓰고 애를 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의미의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듣는 겁니다. 여러분, 선지 생도의 미망인은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부르짖고 하나님의 사람의 지시에 순종함으로써 놀라운 이적을 체험하고 가정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간구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이것이 성도된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위기와 어려움으로부터 건짐을 받고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간구하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아무리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이웃에게 빌려 온 그릇이 방안에 가득합니다. 이제 방문을 닫고 들어가 그 빌려온 그릇에 기름을 따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엘리사 선지자가 왜 문을 닫고 준비한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적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는 것이 여야지 자기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을 닫으면 밖으로부터 단절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밖에는 많은 동네 사람들이 따라와서 여인과 아들에게 “무슨 일로 이렇게 많은 그릇을 빌려왔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이 남은 기름을 이 빌려온 빈 그릇에 쏟으려고 합니다”라고 한다면, 그들은 이 모자를 비웃을 겁니다. 마치, 노아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산 꼭대기에서 배를 지을 때, 주변 사람들이 노아를 조롱했듯이 말입니다. 이런 갈등을 사전에 제거하고자 문을 닫으라고 한 겁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때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의 힘들고 어려움으로 인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간구할 때, “네게 무엇이 있느냐? 무엇으로 네게 채워줄지 내게 말하라”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