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여쭙고 싶은 것은 부진에의 실천과 관련해서입니다. 십선계와 육도계를 읽고 다짐하는 것과 실천할 수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느낍니다. 잘 참고, 마음을 다스려야지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이 때때로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맞으면, 그렇게 화내지 않기로 다짐했었는데 하며,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괴감이 들어 위축이 되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상대방을 원망했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려고 노력할수록 제 성격의 모난 부분 때문임을 돌아보는 건 그나마 다행인 듯 싶은데, 그렇게 반성하고도 몇 달에 한 번씩 그렇게 화를 한 번씩 내게 되는 경험을 겪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특히 제 경우에는 특정인(가족)에게 반복적으로 그런 경우가 많네요. 주기적으로 그렇게 될수록, 반성하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 반성하고 다짐했는데도 그렇게 반복될수록 더 실망이 큽니다. 자신감도 약해지고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못할 수록, 그만큼 자신에 대한 실망도 큽니다. 이래서 무슨 ... 싶기도 하는 심정입니다. 혹시 부진에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수행법이 있을지 여쭈어봅니다. 마음의 그릇된 상태로부터 벗어나서 더 나아지려면 어떠한 수행과 실천이 필요할지요. 차분하고 일이 잘 풀릴 적에는 마음도 여유롭고 상대방에게도 부드럽게 대하다가, 조금만 스트레스 강도가 세지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정이나 상황에 휘둘리고 마는 상태,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수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교수님의 최근 저술서의 책제목처럼, 체계적이고 기본부터 차근히 수행해나가려면 일상생활에서의 실천이 중요하게 느껴지는데, 일상생활에 닥치는 일들에 대처해나가면서 어떻게 체계적으로 신행을 닦아나가는 게 좋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답변입니다.
본 게시판의 2023년 3월 8일의 질문 "트라우마와 피해의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불교의 가르침이 있을까요?"에 대한 3월 11일의 답변에서 적었듯이 본 카페에서 심리적 문제에 대한 상담까지 하기는 힘에 벅찹니다.
그러나 불교 교학에 근거하여 '분노'의 정체와 '분노심을 완화하는 방법'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는 할 수 있겠습니다. 질문에서 '부진에의 실천'에 대해 물으셨는데, '부진에(不瞋恚)'는 불교의 윤리 덕목인 '10선계(十善戒)'의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조항 가운데 하나입니다.
① 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 ② 불투도(不偸盜):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③ 불사음(不邪淫): 삿된 음행을 해서는 안 된다. | 신업(몸으로 짓는 업) |
④ 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⑤ 불기어(不綺語): 꾸밈말을 해서는 안 된다. ⑥ 불악구(不惡口): 욕이나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⑦ 불양설(不兩舌): 이간질을 해서는 안 된다. | 구업(말로 짓는 업) |
⑧ 불탐욕(不貪欲): 탐욕을 내면 안 된다. ⑨ 부진에(不瞋恚): 화를 내서는 안 된다. ⑩ 불사견(不邪見): 종교적 어리석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 의업(마음으로 짓는 업) |
위에 열거한 10가지 조항에서 '불(또느 부, 不)'자를 제거하면 10악이 됩니다.
번뇌(혹, 惑)로 인해서 이런 10악의 업(고, 業)을 짓게 되고 10악으로 인해서 고통의 과보(고, 苦)를 받게 되며, 그런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다시 번뇌를 내고 업을 짓고 고통을 받는 순환이 무한히 일어납니다. 윤회하는 모든 생명체의 일반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나로 하여금 악업을 짓게 만드는 번뇌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인지적(認知的) 번뇌'인 견혹(見惑, 알아서 사라지는 번뇌)과 '감성적 번뇌'인 수혹(修惑, 닦아서 사라지는 번뇌)의 두 가지로 나눌 수도 있고 '탐, 진, 치'의 3독으로 나눌 수도 있고 '탐(貪), 진(瞋), 무명(無明), 만(慢), 의(疑), 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로 나눌 수도 있고, 악견을 다시 '유신견, 계금취견, 변집견, 견취견, 사견'의 다섯으로 나누면 10가지 근본 번뇌가 되며, 보다 세분하여 인지적 번뇌인 견혹을 다시 총 88가지로 나누고 감성적 번뇌인 수혹을 총 252가지로 나누기도 합니다.
또 불교에서 가르치는 윤회의 현장인 삼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오하분결(五下分結)과 오상분결(五上分結)의 번뇌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 가운데 하계인 욕계에서만 일어나는 번뇌를 오하분결이라고 부르고, 상계인 '색계나 무색계'에서 일러나는 번뇌를 오상분결이라고 부릅니다. 오하분결은 하계에(下) 해당하는(分) 다섯 가지(五) 번뇌(結), 오상 분결은 상계에(上) 해당하는 다섯 가지 번뇌라는 뜻입니다. ('결(結)'은 '결사(結使)'의 준말로 번뇌를 의미하는데, 번뇌의 산스끄리뜨 원어인 끌레샤(kleśa)를 음사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런 오하분결과 오상분결을 삼계와 연관시켜서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질문에서 거론하신 '진에(瞋恚)', 즉 분노심이, 윤회의 현장인 삼계(三界) 가운데 어디에서 작용하는 번뇌인지 알려드리기 위해서 설명이 길어졌습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분노심은 삼계 가운데 '욕계'에서만 작용하는 마음입니다.
질문에서 "부진에(不瞋恚)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수행법이 있을지" 물으셨는데, 내 마음이 '욕계'를 벗어나서 '색계' 이상의 상태를 유지하면 분노심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오하분결에서 보듯이 내 마음이 욕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 (4)욕탐의 '동물적 욕망'이나 (5)진에의 분노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상분결에서 보듯이 내 마음이 '색계'나 '무색계'의 차원으로 향상할 경우, '동물적 욕망'인 '(4)욕탐'도 사라지고, 분노심인 '(5)진에'도 사라집니다. 물론 '색탐, 무색탐, 도거, 만 무명'의 오상분결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색계는 '초선, 제2선, 제3선, 제4선'으로 이우러진 '선(禪)'의 세계입니다. 선을 다른 말로 '지관(止觀)쌍운'이라고 부르듯이 '곰곰이(止) 생각하는 것(觀)'이 선입니다. 항상 사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색계의 삶'입니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진정한 철학자의 삶'이 색계의 삶입니다. 인생과 우주,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항상 곰곰이 생각하여 그 답을 구하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그 마음이 색계의 차원으로 올라가기에 '욕계'의 번뇌인 '분노심'이나 '동물적 욕망'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세속적인 부(富)나 번영, 권력과 같은 동물적 이익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종교적 철학적 의문을 품고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서를 하고 사유하면서 살아갈 경우 그 마음이 색계의 차원으로 향상하기에 '재물욕, 식욕, 성욕'과 같은 동물적 욕망이나 '분노'와 같은 동물적 감성에서 벗어나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습니다.
서양철학자의 경우도 많은 분들이 결혼하지 않고서 독신으로 지냈는데, 철학적 사유에 깊이 침잠하게 되면 그 마음이 '선(禪)의 세계인 색계'로 올라가기에 욕계의 번뇌인 '음욕이나 분노'가 사라졌기 때문일 겁니다. 비트겐슈타인, 뉴턴, 쇼펜하우어, 칸트, 스피노자 .... 모두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사유의 세계에 깊이 침잠했기에 그 마음이 '색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철학적 사유에 침잠함으로써 저절로 지키게 되는 계율을 '도공계(道共戒)'라고 부릅니다. '도(道)와 함께하는 계'라는 의미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예술평론가 존 러스킨 역시 결혼은 했지만, 부부생활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불교수행론으로 판단하면 존 러스킨이 항상 철학적 사유에 깊이 침잠한 상태에서 생활했기에 음욕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일 겁니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에피 그레이'에서는 존 러스킨을 성격이상자로 묘사합니다.)
불교 수행론에서는 이렇게 삼계에서 위로 향상하려는 마음을 '흔상염하심(欣上厭下心)'이라고 부릅니다. 아래 단계(하)를 싫어하고(염), 위의 경지(상)를 좋아하여(흔) 수행을 통해서 위로 오르는 마음입니다. 아래의 단계가 '거칠고, 고통스럽고, 장애가 된다(麤, 苦, 障)'고 생각하고, 위의 경지가 '고요하고, 오묘하며, 벗어나 있다(靜, 妙, 離)'고 생각하면서 위로 오릅니다.
요컨대, 세속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욕계)에서 벗어나서, 철학적 사유의 삶(색계)을 살아갈 경우 분노심이 많이 완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 무색계의 삶을 추구할 경우에도 분노심이나 동물적 욕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색계는 '삼매'의 세계입니다. 수행을 통해 깊은 삼매에 들어갈 경우 분노나 동물적 욕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삼매의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저절로 지켜지는 계율을 '정공계(定共戒)'라고 부릅니다. '삼매(定)와 함께하는 계'라는 의미입니다.
삼계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색계 - 삼매의 세계
색계 - 철학자의 세계, 또는 성욕에 눈 뜨기 전인 사춘기 이전의 어린아이의 세계
욕계 - 동물적 욕망과 분노의 세계
따라서 분노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의 마음이 색계나 무색계의 차원으로 향상하는 겁니다.
이상으로 삼계설과 불교의 번뇌론, 수행론에 근거하여 '부진에(不瞋恚)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수행법'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단편적으로는 본 게시판의 2023년 6월 13일자 답변 "Re: 안녕하세요. 교수님 (사무량심의 대상과 자비송)"에서 설명한 '자비관'을 닦을 경우에도 분노심을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게시판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cafe.daum.net/buddhology/TjB9/485
이상 답변을 마칩니다.
첫댓글 읽으면서 스스로 실망한 부분이 무엇이고, 노력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생면부지한 인터넷 까페 회원일 뿐인데, 이렇게 시간을 내어 지혜를 베풀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내용, 참조 문답 자료 등을 찬찬히 거듭 잘 읽어보고 소화해나가고 싶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우선 댓글로 감사 말씀 드립니다. 누군가는 헤매고 원망과 분노에 자신을 스스로 소모해버리고 있는데 반해, 사회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일도 아닌데 이런 도움을 준다는 사실 자체에 분발하게 됩니다. 심리적인 상담의 성격이 강해 글쓰기를 망설이기도 했는데, 부진에의 실천만큼은 정말 필수적으로 느껴서 여쭈었는데, 이렇게 답변해주시니 여러 가지를 배우고 느낍니다. (심리적인 성격의 질문은 삼가고, 관련되더라도 가능한 걷어내고, 불교의 이론과 실천, 신행에 주안점을 두겠습니다. 부담드려 죄송했습니다. 베풀어주신 말씀이 헛되지 않게 소화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정성 있는 좋은 질문이 올라올 경우, 답글을 읽는 다른 여러 회원 분들께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질문이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질문과 관계된 불교 교리에 대해서도 소개하면서 상세하게 답글을 답니다. 불교 공부, 불교 수행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진정성'입니다. 익명의 게시판이긴 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진솔하게 질문을 올려주신 '진진'님께 오히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