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3부 일통 천하 (180)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20장 호부(虎符)를 훔친 신릉군 (4)
이문 앞에 이르렀을 때 신릉군(信陵君)은 주춤했다.
후영(侯嬴)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
"역시 돌아오셨군요."
"선생은 내가 돌아올 줄 아셨습니까?“
"당연하지요. 제가 그렇듯 변변치 못한 전송을 해드렸는데, 공자께서 그냥 떠나실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릉군(信陵君)은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선생에 대해 섭섭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자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가 선생께 무슨 잘못을 범했는지요?"
후영(侯嬴)은 다시 한 번 누런 이를 드러내며 신릉군을 이문 옆 한편 구석으로 데리고 가 말했다.
"공자께서는 지금의 1천 결사대로 한단성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공자는 그렇게 죽기를 원하십니까?"
"저인들 어찌 죽기를 바라겠습니까만, 평원군(平原君)과의 의리를 생각하면 이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제게 좋은 계책을 일러주십시오.“
"좋습니다. 제가 공자를 위해 군사 10만을 드리겠습니다."
10만 대군이라는 말에 신릉군(信陵君)은 자신도 모르게 후영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그런데 선생께서 무슨 수로 그 많은 병력을 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지금 업(鄴) 땅에는 진비(晉鄙) 장군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머물러 있습니다. 공자는 그 10만 대군을 취하여 한단성으로 달려가십시오.“
".........................?“
신릉군(信陵君)은 후영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한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후영(侯嬴)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병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호부(虎符)가 필요하지요.“
호부란 나라의 군사를 출동시킬 때 쓰는 일종의 부절(符節)이다.
길이는 여섯 치로 두 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왕이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가 지닌다.
부절(符節)의 모양새가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어 호부라고 불린다.
두 개의 부절을 합쳐 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병력을 움직일 권한을 갖게 된다.
병부(兵符)라고도 한다.
"그 호부(虎符)만 있다면 진비의 10만 대군을 공자의 병력으로 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영은 쉽게 말하고 있지만 신릉군(信陵君)은 아직도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호부(虎符)는 왕의 침소 깊숙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왕께서 조(趙)나라를 도울 마음이 없는데, 그것을 내게 내줄 리 없지 않습니까?"
신릉군의 반문에 후영(侯嬴)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거야 훔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옛?"
"제가 알기로 지금 왕께서는 여희(如姬)를 가장 총애하고 계십니다. 그런 여희라면 얼마든지 왕의 침소를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여희를 시켜 진비가 지니고 있는 호부와 짝이 맞는 호부(虎符)를 훔쳐내십시오.“
그제야 신릉군(信陵君)은 어렴풋이 후영이 말하는 바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일이었다.
여희의 아버지가 어떤 사내에게 살해를 당했다.
여희(如姬)는 원수를 갚고자 3년 동안 백방으로 살해범을 수소문했으나 끝내 범인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다.
위안리왕에게 부탁하여 수사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여희(如姬)는 신릉군을 찾아와 울며 매달렸다.
- 부디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신릉군(信陵君)은 그 날로 문객들을 풀어 거리로 내보냈다.
원래 신릉군은 위(魏)나라 제일의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방면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 찾아냈습니다.
여희의 부탁을 받은 지 보름만이었다.
신릉군(信陵君)은 그 자의 목을 베어 여희에게 건네주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여희(如姬)는 감격하여 말했다.
- 목숨을 바쳐서라도 공자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후영의 얘기를 듣는 동안 신릉군(信陵君)은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렇다. 여희라면 나를 위해 호부(虎符)를 훔쳐내줄 것이다.‘
그 호부를 훔쳐내기만 하면 업(鄴) 땅의 10만 대군은 고스란히 신릉군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신릉군(信陵君)은 안개 속을 헤매다가 밝은 햇살을 본 듯했다.
"과연 선생은 현자(賢者)이십니다."
그 길로 궁으로 들어간 신릉군(信陵君)은 비밀리 심복 내관을 통해 여희에게 부탁했다.
- 왕의 침소에 보관되어 있는 호부(虎符)가 필요합니다.
여희(如姬)는 전국시대의 여인답게 의리가 있었다.
- 신릉군(信陵君)은 나의 은인이다.
어찌 보은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여희(如姬)는 위안리왕이 술에 취해 잠자는 사이 호부를 훔쳐 내관에게 건넸고, 내관은 다시 그것을 신릉군에게 전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