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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포도원의 노래 말씀/ 이사야 5:1-30 요절/ 이사야 5:4 | 2023. 5. 28 | |
이사야 제 4 강 |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사야 1-5장은 이사야서 전체의 서론입니다. 특히 5장은 1-4장을 요약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어떤 자에게 화가 있으며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지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내 인생의 포도원의 노래, 우리 모임의 포도원의 노래는 어떤 노래일지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좋은 열매 맺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는 자라고 3번이나 말합니다. 그의 포도원을 노래하겠다고 합니다. 이 포도원은 심히 기름진 산에 있었습니다. 2절부터는 실제 노래의 화자가 하나님이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포도농사는 여름철에 고온 건조한 이스라엘의 기후에 아주 잘 맞았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올 때 에스골 골짜기의 포도송이를 따서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왔다고 했습니다(민13:23). 넓고 평탄한 밭에는 밀을 심어야 했기에 포도원은 산에 만드는 것이 경제성이 있었습니다. 산지에 포도원을 만들려면 농부는 수많은 돌을 제거하고, 딱딱한 땅을 파서 포도나무를 심고, 흙을 돋우어 주어야 했습니다. 들짐승의 침범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촘촘하게 만들고 망대를 지어 수시로 감시해야 했습니다. 술틀을 만드는 것은 큰 돌을 파서 만들기에 매우 힘든 작업입니다. 이렇게 포도원 주인은 좋은 포도를 수확하고자 모든 수고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슬픈 노래로 바뀝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여기 ‘들포도’는 원어적으로 보면 ‘썩은 포도, 악취 나는 포도’를 의미합니다. 극상품의 좋은 포도를 기대했는데 썩고 악취 나는 포도를 맺었을 때 주인의 허탈함과 실망이 어떠하겠습니까? 포도원 주인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을 불러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 맺음은 어찌 됨인고” 탄식하였습니다.
이 노래는 이제 격정적 심판의 노래로 바뀝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울타리가 걷어지고 비가 내리지 않는 포도원은 잡풀만 있는 산처럼 되어 버립니다. 7절을 보십시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 답게 정의와 공의의 극상품의 포도를 맺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포학의 들포도, 부르짖음의 들포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런 노래는 잘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이사야가 이런 포도원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수고와 기대, 실망과 분노의 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노래는 머리보다 감정과 마음에 호소하기 위해서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별 볼일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으로 바로를 치셔서 출애굽 시키셨습니다. 광야 40년 훈련 기간에도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그 옷 낡아지지 아니하고 신발이 헤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성막을 주시고 제사장을 세우시고 십계명과 율법을 주심으로 더 이상 노예 백성이 아니라 품위 있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때가 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고 아말렉, 블레셋과 같은 이방의 침범에서 지켜 주셨습니다. 빨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안 된다고 버리지 않으시고 10년, 20년 아니 몇백 년을 인내하며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그들은 악한 열매만 맺고 있었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 넘쳐야 할 이스라엘에 포학과 원성이 가득하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허탈하고 분노하셨겠습니까?
우리가 많은 기대 속에 노심초사 준비했던 시험이나 사업에서 결과가 좋지 못할 때 얼마나 허탈합니까? 많은 수고와 사랑과 희생으로 양육한 자녀가 기대에 어긋날 때 그 아픔과 슬픔이 얼마나 큽니까? 저의 아버지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는 아버지의 수고와 희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을 원망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정이 없고 인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버지는 서울 평화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셨는데 새벽에 잠자는 저를 깨워 옷을 택시로 나르는 짐꾼으로 쓰셨습니다. 저는 입이 나와 ‘잘 다녀오세요’라고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참 서운하셨을 겁니다. 이제 제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양육해보니 제가 얼마나 죄인인가 회개하게 됩니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기쁨으로 짐을 잘 옮겨드리고 꼭 이렇게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 때 마다 공급 받는 말씀, 좋은 영적 환경, 함께 믿음의 길을 가는 동역자들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많은 수고와 희생이 있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한 하나님 아버지의 엄청난 희생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심령으로부터 깨닫고 죄의 길에서 돌이켜 좋은 열매 맺고자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정의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6화를 선포하십니다. 첫째, 탐욕에 빠진 자들은 화가 있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가나안 정복 후 이스라엘은 지파와 가문별로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땅을 저당 잡고 곡식을 빌려 주면서 이를 갚지 못하는 자들은 땅을 넘기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은 희년 법을 주심으로 이런 악순환을 끊게 하셨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부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부자들은 더욱 탐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갭투자, 전세사기, 부동산 경매가 성행하는 우리나라처럼 부동산 투기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허다한 가옥을 황폐케 하시고 크고 아름답게 꾸며 놓은 집에 거주할 자가 없게 하실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갈 때 그들의 크고 화려한 집과 넓은 밭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또 땅이 힘을 잃어 생산성이 극도로 낮아지게 하실 것입니다. 열흘 갈이 포도원은 소 한 마리가 열흘 동안 갈수 있는 밭으로 축구장 6개 정도의 큰 포도원입니다. 그런데 이 큰 포도원에서 포도주 한 바트 22L 포도주 정도만 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한 호멜 즉 230L의 종자를 심었는데 그 1/10인 한 에바 23L의 포도만 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둘째, 쾌락에 빠진 자들은 화가 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도를 한 것이 아니라 독주를 마셨습니다. 또 밤이 깊도록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티를 열어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습니다. 예루살렘 대학 앞 클럽들은 요란한 음악과 떠들고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런 그들은 사로잡히게 되고 귀한 자는 굶주리고 무리는 목마르게 될 것입니다. 스올 곧 지옥이 그 입을 벌릴 때 향락과 방탕에 빠진 그들을 삼킬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이 술 취하고 파티를 해서가 아니라 영적 무관심과 무지 때문에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12b-13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쾌락에 빠진 것도 문제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고 영적으로 무지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들도 절제할 줄 알아 영적인 소원과 감각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거짓을 일삼는 자들은 화 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계시록 12:9을 보면 사탄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종이 되어 거짓으로 많은 사람들을 죄악으로 이끌었습니다. “인생 뭐 있어. 죽으면 다 끝인데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놀아” 그들은 “하나님은 자기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거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거야”(19)하며 하나님의 이름까지 이용하여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넷째,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은 화가 있습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고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흑암은 흑암이고 단 것은 그냥 단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궤변으로 당연한 진리를 왜곡하였습니다.
다섯째, 교만한 자들은 화가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오직 하나님만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겸손히 누구에게나 배우는 자가 참으로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말씀과 어른들의 가르침을 무조건 ‘꼰대질’이라고 치부하며 내 생각만 옳다고 여겼습니다.
여섯째, 공의롭게 재판하지 않는 자들은 화가 있습니다. 당시 재판관들은 공의를 따라 재판한 것이 아니라 접대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았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것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재판관들은 정의를 지키기에 용감한 것이 아니라 와인 마시기에 용감했습니다. 포도주는 너무 약하다며 보드카나 위스키 같이 독한 술을 빚어 먹었습니다.
이들에게 임할 심판이 어떠합니까? 24a절을 보십시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하나님께서 심판의 불을 내리셔서 다 태워 버리실 것입니다. 마른 풀을 불 속에 떨어뜨리면 순식간에 타 버립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죄인들을 사정없이 태워버립니다. 시체가 거리에 분토 같이 쌓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십니까? 2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먼 나라들을 땅 끝에서부터 불러 오게 하실 것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북쪽의 먼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이 쳐들어오게 됩니다. 이스라엘 병거의 속도가 경전철이라면 이들의 병거의 속도는 회오리바람 곧 KTX 급입니다. 그렇게 빠르면서도 졸지도 않고 허리띠가 풀리지도 않고 날카로운 화살을 쏩니다. 그들은 암사자와 어린 사자들이 부르짖으며 먹잇감을 움켜 가져가 버리듯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도륙하고 포로로 사로잡아 가 버릴 것입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암사자 떼의 사냥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가만히 풀숲에 몸을 움크리고 평화롭게 노는 영양이나 얼룩말을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순식간에 달려들어 사냥감에 등에 올라타 목을 강한 이빨로 물어 숨통을 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끌고 가서 어린사자들과 함께 그 사지를 나누어 먹습니다. 이는 끔찍해서 보고 있기가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토록 무섭습니다. 그 백성을 향한 사랑과 정성이 컸던 만큼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24b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멸시하고 버렸다는 것은 하나님 자체를 멸시하고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신세대들인데 모세 때 주신 말씀은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멸시했습니다. 은금이 풍부하고 병거와 말이 가득한 이방 나라를 보니 신기술과 문화를 배우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Back to the Bible’하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특별히 가진 자들, 지도층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떠났습니다. 집과 전토를 더하고 연회를 베풀고 뇌물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서민이 아닙니다. 부자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축복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말씀을 멸시하고 버렸을 때 이스라엘은 죄의 열매만 맺고 심판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을 축복하신 것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생명처럼 붙들고 순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 고이사무엘선교사님의 전기가 2권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전기에는 선교사님이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기에 힘썼는지 레전드 같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매 맺는 비결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고 믿음의 길을 가게 했던 그 말씀, 신앙의 선배들이 순종하여 열매 맺은 그 말씀, 우리에게 희락의 열매, 소망의 열매를 맺도록 하신 그 복음의 말씀을 다시 듣고 붙들고 순종해야 합니다. 스스로는 좋은 나무가 되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는 ‘복음, 기쁨, 희망’입니다. 복음의 말씀은 우리가 수양회 때마다 많이 들었던 말씀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의 말씀을 다시 듣고 붙들 때 우리 심령은 기쁨과 희망으로 충만케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의 말씀이 MZ 청년들을 살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7월 7일에서 9일까지 가평 오션비전빌리지에서 열리는 여름수양회를 사모하고 많은 기도와 초청과 헌신으로 준비함으로 큰 은혜를 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사무엘선교사님 전기를 읽으며 저도 성경의 사람이 되고 싶은 소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와 퇴근 후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그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섬기기 쉽지 않는 양들과 문제들로 마음을 분산 되었습니다. 제가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는 길임을 확신하고 다시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데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우리 각자의 포도원의 노래를 부르면 어떤 노래일까요? 혹시나 슬픈 애가나 심판의 노래는 아닙니까? 우리의 포도원의 노래가 끝까지 하나님의 기쁨의 노래가 되도록 말씀을 붙들고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