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장/ 김석이
덕신고개를 넘는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시간이지만 차들이 많다. 새벽에 출근하는 차들이다. 자욱한 안개를 뚫고 높이 솟은 두 개의 불기둥에 불꽃이 펄럭인다. 연중 쉬지 않고 불을 뿜는 중화학공업의 상징인 불기둥 굴뚝이다. 정유공장 굴뚝 불기둥은 바람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내리막길 끝 지점에서 화학공단으로 진입했다. 주요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있는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그곳을 지날 때 특유의 화학물질 냄새가 자동차 창문 틈으로 들어왔다. 자동차는 화학공단을 지나 중공업 단지로 접어들었다. 철강과 조선단지로 구성된 중공업단지는 철 구조물을 생산한다. 그해 조선단지 내 철 구조물을 생산하는 곳에서 근무했다. 이른 아침 작업장은 조용했다. 작업자들보다 30분 먼저 도착해 근무복과 안전화, 각반, 안전모, 장갑을 착용하고 작업장으로 향했다. 기온 차 때문인지 철판을 밟을 때마다 안전화 바닥에서 쩍쩍 소리가 났다. 지난밤 요란했던 작업 흔적들로 굵은 전기선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혹시나 있을 안전사고 예방 조치를 했다. 오전 7시 반이 지나자 통근버스와 자가 차량을 이용한 사람들도 거의 동시에 정문에 도착했다. 천 명이 넘는 일꾼들이 각자의 정해진 위치만 보고 걸어갔다. 작업자들은 복장을 갖추고 작업 준비를 하는 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20명 내외 단위로 둘러서서 구호를 외친다. ‘안전은 생명이다. 안전모 착용, 확인, 안전 보호구 착용, 확인, 추락 방지, 협착 방지, 전기안전, 가스 안전’ 전쟁터로 가는 전사가 된 그들의 외침이 넓디넓은 작업장으로 울려 퍼진다. 작업자들은 두꺼운 작업복 위에 가죽옷을 한 겹 더 입는다. 섭씨 2천 도가 넘는 불꽃에서 몸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진 마스크를 착용한다. 안전모를 착용한 위에 앞면 보호용 헬멧을 또 착용한다. 마지막 안전 보호구로 청력 보호용 귀마개로 귀를 막는다. 마치 우주인 같은 복장이 된다. 작업 시작 사이렌이 울리고 전기와 가스가 공급됐다. 요란한 스파크 소리와 철판 두드리는 소리가 천둥같이 울렸다. 한겨울 두꺼운 철판 위는 기온보다 더 차가워도 눈 앞 몇 센티미터에서 튀어 오르는 고열로 작업자의 몸은 금방 땀으로 젖었다. 제품을 만드는 것은 제조製造라고 하지만 배를 만드는 것은 건조建造라고 한다. 건축물처럼 차곡차곡 만들어 간다는 뜻이다. 대형 선박의 한 조각인 블록은 세 단계를 거치며 만들어진다. 먼저 하는 작업은 땅에서 이루어진다. 설계 도면에 맞추어 절단된 철판을 용접작업으로 이어 붙여 사람 키 높이 정도의 철 구조물을 만든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작업장이다. 만들어진 작은 구조물은 다음 단계에서 이어 붙여 아파트 2층 정도의 높이가 된다. 높이가 있는 곳에 먼저 투입되는 기술자는 족장足場 설치팀이다. 족장은 40센티미터 정도의 폭에 2미터 정도 길이의 미끄럼 방지 처리된 철로 만든 발판이다. 작업장 높이에 맞추어 족장이 층층이 설치된다. 족장이 작업자를 보호하고 추락사고 예방의 주요 시설이기에 족장 설치작업은 매우 소중하다. 마지막 단계는 조립된 철 구조물을 이어 붙여 하나의 블록을 완성하는 곳으로 아파트 5층은 되어 보였다. 10층 정도 되어 보이는 대형 블록도 있다. 작업장의 높이만큼 족장의 높이도 올라갔다. 관리자들은 족장의 중요성을 수시로 인지시키고 족장 설치나 제거 작업을 할 때는 반드시 안전관리자가 지켜보도록 했다. 좁고 높은 족장마다 자겁자들이 매달렸다. 최고의 기술자들이 최고의 안전이 필요한 곳에서 일한다. 튀는 불꽃과 용접작업의 찌꺼기들이 검은 빗물처럼 땅으로 떨어졌다. 족장 위에 서 있는 기술자의 위치는 정직하다. 최고의 기술로 단련된 작업자만이 백척간두百尺竿頭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능력이 부족해도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뛰어나다고 함부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나는 한때 기술을 배웠으나 기술자가 되지는 못했다. 족장은 살기 위해 설치하는 거미줄과 같다. 좁고 위태로워도 누군가는 설치하고 또 누군가는 족장에 올라가서 생존을 위한 일을 한다. 일을 하는 곳이 족장이 아닌 곳이 없다. 농부는 삽과 괭이를 메고 좁은 논둑을 걸어가 농사일을 한다. 운전사는 정해진 좁은 차선을 지켜야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된다. 오후 3시 휴식 사이렌이 울렸다. 요란하던 작업장 소리는 일시에 멈추고 잠시 조용해졌다. 작업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휴식한다. 일터의 요소요소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휴게실에는 소금단지와 정수기가 있다. 소금단지에는 굵은 소금이 담겨있다. 땀을 많이 흘려 염분이 떨어진 사람은 손으로 소금을 집어 입에 넣고 물을 마신다. 굵은 소금을 그냥 씹어 먹는 사람도 있다. 불꽃 튀는 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노동자의 표정이 비장해 보였다. 작업장 휴게실에 설탕포대를 두지는 않는다. 설탕이 달고 먹기 좋은 맛이지만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것은 쓰고 짠맛인 소금이라는 뜻이다. 달콤한 유혹의 말보다 쓴 충고를 하는 사람의 소중함을 쉽게 알기 어렵듯이 쓴 소금의 소중함은 땀 흘리고 일하는 사람만이 안다. 젊은 시절 대목大木이라 불릴 만큼 목수 일에 기술자였던 아버지는 아흔의 문턱에 왔다. 정강이에 남아 있는 검푸른 멍자국들이 한때 가족의 생계를 짊어졌던 투사였음을 증명한다. 목조건물의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가 올라가고 지붕의 서까래기 완성되었을 때 아버지는 망치와 못 주머니만 옆구리에 차고 서까래 꼭대기에 서 있었다. 밑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간혹 아버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때 목수 기술을 배워 평생 먹고살았다고 말을 한다. 한 단계 한 단계 완성되어 가는 손수 만든 작품을 보면서 최고의 기술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가족을 생각하며 늘 안전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질까? 그들은 일한 대가를 받는 근로자이자 국가 기간산업을 이끌어 가는 소중한 기술자다. 안전사고 고위험군에 속한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안전 문구를 늘 가슴에 달고 산다. 2011년 12월 30일, 오후에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인근 중공업에서 폭발 사고로 근로자 4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완성되고 있는 블록의 내부 작업장에서 사고가 났다. 전 작업 이후 잔류 가스가 다 빠지기 전에 불꽃이 튀는 작업을 시작하는 바람에 가스가 폭발한 것이라 했다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였다.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될까? 지금 내가 서 있는 족장 위의 삶은 안전할까?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가 때로는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된다.
-제41회 근로자문화예술제 문학분야 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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