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정인준 신부 복음 ;마태11,20-24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 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이스라엘은 사무엘 예언자가 왕제(王制)에 대해서 말리면서 우려 했지만 원로들은 왕을 갖기를 원합니다. (1사무 8,1-18)
그러나 원로들은 사무엘 예언자의 말에 대해서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왕을 갖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이 대목을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은 사무엘의 말을 듣기를 마다하며 말하였다. ‘상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1사무 8,19) 이스라엘은 사울을 최초의 왕으로 다난한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윗, 솔로몬 이후 나라는 둘러 갈라져 서로 갈등을 빚고 있는데오늘 이야기가 바로 그 문제의 현장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유다의 아하즈 시대에 이스라엘의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 왔고 아람이 에프라임까지 진주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백성 뿐 아니라 왕실도 불안에 떨고 있는데, 하느님께서 이사야를 시켜 위안의 말을 전하라고 시키십니다. 예언자는 지금은 위협적인 페카와 아람의 미래는 무너지게 되어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왕정은 하느님 보다는 인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랬다저랬다 예측할 수가 없어서 이스라엘 예언자들에게는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을 의인화해서 도시를 빗대어 나무라십니다. 당시에 내놓으라는 도시, 코라진, 벳사이다를 이방인의 도시 티로와 시돈과 또 카파르나움을 소돔과 비교해서 그 오만과 고집스러움을 강하게 탓하십니다. 물론 이 도시야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그 도시에 사는 이스라엘을 뻣뻣하고 회개를 모르는 오만함을 단죄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1,20)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과 관록을 참으로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 만큼은 오래되고 신앙에 정통이 되어 있을 법도 한데, 오히려 주님께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만함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는데 비해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을 비판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고향 사람들, 같은 동포가 예수님을 더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 같은데 정반대로 주님을 비판하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주님께서도 강하게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이라고 믿고 일할 때, 우리는 주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하겠지요. 왜냐하면 주님의 모습을 보아도 알 듯이 반대의 세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독일 속담에 ‘누가 흐르는 원천을 찾으려면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 가야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보람된 일을 하려면 적어도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도 풀어 볼 수 있습니다.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여 방심한다면 떠내려가기 싶상이지요. 우리의 본성에는 무슨 일이든 쉽게 하기를 원하지요. 자연 수고스러운 것을 피하려하는 것도 있고요. ‘물의 원천’이란 다르게는 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반대의 바람도 만만치 않지요. 그것을 헤쳐 나간다는 것은 주님께 대한 신앙, 주님께 대한 의리와 사랑이 진정한 버팀목이 되는 것입니다.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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