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 말씀 주제 : 용서(容恕)
ㆍ 말씀 설교 : 이성철 목사님
ㆍ 성경 말씀 :용서(容恕) ─ (요한복음 8장 1절∼11절)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
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라
ㆍ 말씀주제 : 용서(容恕)
ㆍ 성경말씀 : 요한복음 8장 1절∼11절
대학에서 용서를 가르치는 교수 에버렛 워딩턴(Everett L. Worthington Jr.)은 새해를 하루 앞두고 강도에게 어머니
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일흔이 넘은 노인에 무방비(無防備) 상태였습니다.
괴한은 두 명이나 침입해서 연약한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이토록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훔쳐 간 돈은 단
돈 60만 원이었습니다.
범인범인(犯人)이 잡힌 후 에버렛 교수는 큰 고뇌(苦惱)에 빠졌습니다.
“왜 용서(容恕)해야 하는지, 어떻게 용서(容恕)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정작 용서(容恕)를 실행하기는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에버렛 교수는 몇 년 동안 고민을 거듭한 후에야 용기를 내어 강도들을 용서(容恕)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죽인 강도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냐?”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에버렛 교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용서(容恕)란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분노(忿怒)에서 해방(解放)되고 나 스스로를 축복(祝福)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容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容恕)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종속적인 관계를 끊어버리는, 능동적으로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는 행위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면,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지속적(持續的)으로 지배(支配)당하며 그의 통제(統制)를 받게 된다.
- 안셀름 그륀의《지금과 다르게 살고 싶다》중에서 -
▶ 왜 용서(容恕)해야 하는가?
1. 나도 죄인이니까.
7절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9절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 예수님이 용서해 주시니까
11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마태복음18장
베드로가 말합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할까요?
일곱 번까지 할까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 까지 할지니라.
▶ 이웃의 범죄시 교훈(敎訓)
나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7절 너희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9절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느껴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합니다. 그 여인이 죄가 없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간과하
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律法)이 틀렸다고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율법을 통하여 남을 정죄(定罪)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보아야 합니다.”
나도 그 중의 한사람 입니다.
나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아프리카 “르완다”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 두 종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벨기에가 이 나라를 지배할 때 한 종족은 노예로 한 종족은 지배자로 만들었
습니다.
그러다가 1962년에 독립을 합니다. 이 때 노예로 있었던 종족(種族)이 일어나서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을 노예로 부렸던 종족에게 보복(報復)을 하였습니다.
1994년까지 무려 100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학살과 보복을 당한 종족은 총으로 무장한 반군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차별 게릴라전을 펼쳐서 새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새 정부를 수립한 이들은 반대 종족을 무려 300만 명이나 죽였습니다. 르완다는 지금 이와 같은 분노로 인해 굶주림
과 죽음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부모들이 어린 자식을 잃어 버렸습니다. 반면 수많은 아이들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용서(容恕)를 모르고 보복(報復)하려고 하는 자들의 비참(悲慘)함을 현실 가운데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나라가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입니다.
이 나라는 영국의 식민지(植民地)였습니다. 영국은 전 세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를 독립시켰습니다.
그러나,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자연환경이 좋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독립을 시킨 후에도 백인들이 계속 정권을 잡
고 휘둘렀습니다. 흑인과 백인의 차별(差別)이 있었습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을 억압(抑壓)했고 흑인들은 자기들의 땅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흑인들은 데모를 했고 자신들의 인권(人權)을 외쳤습니다.
백인들은 권력과 총과 힘으로 흑인들을 계속 억압했습니다.
수많은 흑인들이 감옥에 가고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게 되어 그들의 힘으로 흑인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그 사람이 “넬슨 만델라”입니다. 넬슨 만델라도 흑인의 인권을 위해서 투쟁을 하다가 수십 년 동안 감옥에 갇히기
도 하고 수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자 전 세계가 걱정했습니다.
분노가 폭발하여 피의 보복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넬슨 만델라는 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 화해(和諧)와 용서(容恕)를 외쳤습니다.
만델라 대통령의 화해(和諧)와 용서(容恕)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계속적인 번영(繁榮)과 안정(安定)을 누리고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의 마음속에 분노(忿怒)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고문하고 평생 감옥에서 살게 했는데 왜 분노(忿怒)가 없었겠습니까?
그에게도 분노(忿怒)가 있었지만 그는 용서(容恕)했습니다.
분노한 르완다는 죽음의 땅이 되고, 용서(容恕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평화(平和)의 땅이 되었습니다.
분노(忿怒)와 용서(容恕)는 이렇게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간음(姦淫)중에 잡힌 여인을 정죄(定罪)하지 아니한 예수님처럼..
죄를 인정(認定)하는 사람들에게 용서(容恕)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平安)과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