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22]
이재명(李在明, 1888?-1910)①
이재명 의사(義士)는 안중근 의사와 달리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안중근이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초대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는데, 사실 이재명은 그해 1월에 평양역에서 그를 처단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순종 황제와 이토 통감이 전국을 순회했는데 수많은 인파가 순종을 환영했고, 의병들도 잠시 총을 놓고 있었던 상황이라 의거가 발생한다면 순종의 안위가 걱정되어 안창호 선생이 만류해서 처단을 뒤로 미루었던 것입니다. 그가 1888년에 출생했다고 하면 그때가 바로 겨우 21세였습니다. 1월에 처단 대상으로 삼았던 이토 히로부미가 10월에 죽게 되면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이었던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1858-1926)을 그다음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완용은 1909년 12월 서울 종현성당(명동성당) 앞에서 이재명의 칼에 찔려 폐가 관통당했지만 죽지 않고 살았고, 이재명은 1910년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한국감리교회 인물사전』에 의하면 이재명은 1888년 4월 8일에 출생했고, 그해에 아버지가 사망했습니다. 본명은 수길(秀吉)인데 어머니가 재혼해서 계부 임옥녀가 새로 지어준 이름 재명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계부 임씨는 재명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으며 키우다가 갑오개혁과 청일전쟁이 일어나면서 함경남도로 피난해서 잠시 살다가 다시 평양으로 돌아왔습니다. 1898년 이재명이 11세가 되었을 때 동생이 태어났지만, 어머니 양씨는 산후조리를 하다가 몇 달 만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 시기에 재명으로 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양 일신학교를 졸업했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을 듣고 민족운동에 눈을 떴으며,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