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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 까페에 다 밝힌 일이긴 하지만,
제가 여기 멕시코에 온 이유는, 옛날 스페인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K씨가 20년 가까이 살고 있어서, 제 이번 중남미 여행의 '중간 기착지' 정도로 생각하고 왔다고 했잖습니까?
그랬습니다.
K씨 덕분에 말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저는 여기 멕시코에서 (중간 기착지로 여기며, 그 옆집을 통채로 이용하는 것도 모자라, K씨 집에서 영양보충도 넘치도록 하면서)잘 지내고 있는데요.
그런데 제가 멕시코에 와서 하는 일이라는 게,
이전 쿠바에서 작업했던 글을 다듬으면서 인터넷에 새롭게 연재하는 것 뿐이랍니다.
어쨌거나 그게 끝내야 한갓진 기분으로 다음 행로를 결정하고 감행할 수 있을 것이라서, 주말도 없이 매일(그것도 많은 분량을) 그 일을 하다 보니,
다른 일엔 정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는데요,
그렇다고 마냥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고, 또 저도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고민도 해야만 했습니다.
'중남미를 한 바퀴 돈다는 계획'으로 출발했던 이번 여행,
그게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중간에 많이 틀어지고도 있어서(특히, 미국에서의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게 경제적인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었는데요.),
고민이 클 수밖에 없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쿠바를 떠나오면서는, 뭔가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아니면, 어떻게라도 해서 중남미로 향하느냐......
그런데 쿠바에서의 일정 중에,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항공권은 효력을 잃었고(쿠바에서는 나올 수 없었는데도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 날짜는 지나서),
그럼에도 저는,
두 가지 선택을 놓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지요.
'한국 귀국행 편도 항공권'을 사서 귀국을 하느냐, 남미로 향하느냐......
그런데 저는요, 아무래도 후자에 마음이 가고 있었습니다.(제가 원래 그런 사람 아닙니까.),
제가 보통 마음으로 이 여정을 시작한 게 아니기도 했고, 이대로는 억울해서도 못 돌아갈 것 같았던 것입니다.
만약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또 다시 이쪽으로의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될까요?
그건 아닐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여기는 이게 마지막이다. 이번 아니면 이제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었고,
저는 또 하나의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정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여정이 저를 기다리고 있지만, 여기서 그냥 말 수는 없습니다.)
2
근데요, 제 이번 여정엔 계속 한 가지 문제점도 따라 다니고 있었답니다.
한국을 떠나오기 직전에 해외에서 써먹기 위해 '비자 카드' '체크 카드'를 만들어 왔는데,
정작 해외에 나와서는 '결재'가 안 돼, 써먹을 수가 없었던 문제였지요.
그것도 참 골칫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쿠바에선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아무튼 여기 멕시코에 와서도, 현금을 인출해야만 할 ATM 체크카드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것도 사람 환장하게 만들더라구요.
그런데, 미국에서부터 쿠바도 그랬고, 결재가 안 되던 '비자카드(마스터 카드)'라도 한 번 다시 시험해 보자며,
며칠 전, 어차피 여기는 인터넷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한 저가 여행 사이트(항공권)에 들락거리다가,
제가 가고 싶었던 남미의 후보지 중의 첫번 째일 수 있는 '칠레' 항공권을 시험삼아 검색을 하다가,
거기 수도인, ‘산티아고 데 칠레(Santiago de Chile)’ 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았는데,
제 생각은, 제 비자 카드가 결재가 안 될 것이기에(계속 안 됐기 때문에, 여기 와서 제 제자를 통해 그 은행에 가서 항의도 하게 했는데, 은행에서도 잘 모른다더군요.),
그냥 시험삼아 해보자! 며, 거기서 나오는 절차대로(날짜를 어림잡기는 했습니다만) 따라 적고 쓰고 하다가,
최종적으로 '결재'까지 해보았는데,
이건 무슨 일이랍니까?
'결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는 문구가 뜬,
정말, 결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이상 없이. 그러니,
이건 또 무슨 일이야? 사람 환장하겠네! 하면서도, 한 편으론 기뻤고(어쨌거나 카드를 사용해야만 하니),
그저 시험적으로 클릭했던 게, 엉겁결에(안 될 걸로 확신하고 있었는데) 다음 행선지 항공권을 사놓은 꼴이 된 겁니다. 그러니,
이걸 어떡한다지? 하면서도, 아이, 참! 결국은 가라는 거네...... 하지 않을 수 없었고(어차피 가려고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가게 될 줄은 몰랐던 겁니다.),
멍하고 있다가, 어느 한 순간부터, 저는 또 다른 행선지의 일정에 맞춰야 하는 당혹감도 생겼던 것입니다.
참내!
사실은요, 며칠 뒤 여기 K씨와 좀 더 협의를 거쳐, 보다 확실한 상황이 되어서야 항공권 예매를 하려고 했었는데,
그저 혼자서 손을 놀리다가,
덜컥! 일을 저질러놓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제 다음 행선지가 정해져버렸습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3
그리고 제가 지금 ‘남미’로 가려는 건,
물론, 제 오랜(25년도 넘은) 꿈이니, 여까지 와서 중간에 그만 둘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인데요,
그러고도 이 상황에서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생겼는데요,
제 솔직한 심정인데,
내가 쿠바에 4월에 도착해 두 달 남짓 여름을 보냈는데, 지금 한국에 돌아가면 또 다시 여름을 피할 수 없으니...... 하다 보니, 와락 겁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쿠바에서 온몸이 벌겋게 모기에 뜯기도록 혹독하게 여름을 보낸 것도 억울한데(?), 또 한국에 가서 ‘열대야’ 등을 겪으라고? 하면서는(이제 늙어서 여름 보내기가 너무 힘든데),
한 해에 너덧 달을 여름으로 보내야 한다니, 그건 못하겠다. 억울해서도 못하겠다! 게다가 기왕에 바깥에 나와있는 몸인데, 다른 해라면 또 모를까, 올해만큼은 여름과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다. 하는 생각에,
차라리 여름을 피해 멀리 도망가자! 하고 결정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러자면 남미도, 가장 아래 쪽으로 가야만 할 것이고, 한 여름인 북반구와 정 반대 계절인 '겨울'을 쫓아가는 것이기도 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