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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D 보충제 정말 먹어야 할까?
2006년 유럽, 남미, 중동, 아시아 및 호주 등
위도가 다양한 지역 18개국 약 2600명의 폐경 후 여성을 대상으로
측정한 비타민 D 연구에서 부족으로 진단된(30ng/ml 이하) 인구의 빈도가
한국이 92%로 단연 1위였다.
이후 지난 약 20년간 각종 언론매체에서
이런 사실을 일깨우면서 심각성을 반복해서 알려왔다.
2018년 국립암센터에서 발표한
‘한국인의 혈청 비타민 D 수치 추이:
2008∼2014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도
평균 비타민 D 수치가 16.1ng/ml로 정상수치(30-50ng/ml)에
한참 못 미치는 결핍 수준이었다.
여전히 거의 전 국민이 비타민 D 결핍이며,
거의 모든 국민이 골다공증 예비 환자라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정말 심각한 것일까?
비타민(Vitamin)은
3대 영양소인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과 같은 주영양소는 아니지만
우리 몸의 정상 기능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비타민은 극소량으로 신체의 주요 기능을 조절하기에
호르몬(Hormone)과 유사하지만
호르몬은 우리 몸 내부에서 합성되어 공급되는 반면
비타민은 우리 몸 외부, 즉 음식 섭취를 통해 공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비타민 D는 사실 비타민이 아니고 호르몬이다.
비타민 D가 처음 발견됐을 무렵만 해도
음식에서 섭취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그 뒤 우리 피부에서 햇볕을 받아 비타민 D를 스스로 합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선샤인 비타민(Sunshine vitamin)’이라고 불린다.
햇볕이 건강에 중요한 이유다.
비타민 D는 피부세포에 있는 콜레스테롤이 자외선 B(UVB)를 쬐어
비타민 D 전구물질로 변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신장에서 활성 비타민 D로 만들어진 후
신체 각 부위에 이동하여 작용한다.
비타민 D는 물에 녹지 않고
기름에 녹는 지용성 비타민(지방조직에 오랜 기간 보관)으로
소장에서 칼슘 흡수를 촉진하고, 신장에서 칼슘 재흡수를 증가시켜
혈중 칼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여 뼈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타민 D가 부족해지면 뼈가 약해져서 어린이에겐 구루병(ricket),
성인에게는 골다공증이나 골연화증(osteomalacia)이 생겨
골절 위험이 증가한다.
따라서 적정한 비타민 D 농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별 비타민D 결핍 인구 비율. (자료: 세브란스 병원)
비타민 D,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
과거 많은 전문가들이 비타민 D 혈중 농도는 최소 30ng/ml 이상을
칼슘 흡수와 뼈 건강을 위한 최적의 농도라고 주장했다.
미국 내분비학회에서도 정상 기준을 30ng/ml 이상으로 했고,
21~ 29ng/ml는 비타민 D 부족(insufficiency),
20ng/ml 이하는 결핍(deficiency)이라 했다.
하지만 30ng/ml 기준은 너무 많은 환자를 양산한다는 비판과 함께,
16~24ng/ml의 부족증으로 진단된 환자들을 대상으로
비타민 D 보충제를 투여하여 인위적으로 30ng/ml 이상으로 만들어도
칼슘 흡수율에 별 차이가 없었다.
통상적으로 일광욕 부족이 비타민 D 결핍 원인으로 알고 있었으나
과도한 햇볕에 노출되는 젊은 하와이 서퍼(surfer)의
절반이 비타민 D 부족으로 진단되는 어처구니없는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30ng/ml 기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2011년,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의 의학 자문을 맡고 있는
가장 권위 있는 단체인 미국국립의학원(National Academy of Medicine)의
전신인 미국의학원(IOM, Institute of Medicine)에서
비타민 D 농도가 20ng/ml 이상이면 건강한 사람에게 충분한 상태이고,
30ng/ml 이상이 건강에 더 좋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비타민 D의 농도 기준은 기관마다 조금씩 하향 조정되기에 이르렀다.
2013년 유럽 골다공증학회에서는
폐경 후 여성은 20ng/ml 이하,
낙상과 골절의 위험이 있는 고령자는 30ng/ml 이하를 부족으로 하향 조정했다.
하지만 20ng/ml 이하를 기준으로 비타민 D 부족을 진단해도
유럽 인구의 40%는 부족에 해당하여
팬데믹에 준하는 공중보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한국의 기준은?
한국에서도 비타민 D의 기준점을 30ng/ml에서 20ng/ml으로 낮추는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2016년 대한골다공증학회 가이드라인에는
정상치를 20~30ng/ml로 하향 조정했다.
2017년 대한내과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는 20ng/ml 이상,
골다공증 치료나 골절 예방을 위해서는 30ng/ml 이상을 권장했다.
앞서 밝힌 대로 우리나라 인구의 90%가 비타민 D 부족증이라 하니
필자도 걱정이 되어 실제로 피검사를 한 번 해 보았다.
그 결과는 16.4ng/ml로 나왔다.
정상수치가 30 이상이라는데 고작 16.4…. 충격이었다.
지난 30년간 뼈를 전공했고, 환자들의 뼈 건강을 지도해야 할
정형외과 전문의가 정작 자신의 뼈 건강은 소홀했던 게 아닌가!
‘큰일 났네. 뭔가 수를 써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선 비타민 D 수치를 올릴 방법을 찾았다.
‘약을 먹을까? 주사를 맞을까?’
이리저리 궁리를 하며 논문 검색을 하였다.
그러다가 놀라운 문건을 하나 발견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의학저널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2016년 발표한 것으로 하버드의대 교수가 쓴 기고문인데
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Vitamin D deficiency, is there really a pandemic?
(비타민 D 결핍, 진짜 팬데믹인가?)”
‘한국인의 90%가 부족하다는데 팬데믹이 아니고 그럼 뭔가?’
하지만 결론은 팬데믹이 아니라는 거였다.
이 기고문의 내용은
“지난 약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처럼 보이게 한
비타민 D 결핍의 높은 유병률은
‘특정 영양소에 대한 영양권장량(RDA, recommended dietary allowance)을
결핍의 기준점(cut point)으로 삼고,
전체 인구가 뼈 건강을 위해 적어도 영양권장량(RDA) 만큼은 섭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개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RDA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식량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미국 국립학술원 식량공급위원회에서 처음 제정한 것으로
군인들이 필요한 영양소를 부족하지 않게 섭취할 수 있는 수준을 제시하여
단백질이나 미량 영양소의 부족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들 대부분의 필요량을 충족하는 수치로 설정하여
뭐든 충분히 섭취하는 게 좋을 거라는(More is better) 개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영양소 부족보다는
과다로 인한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의 증가로 다른 기준이 필요하게 되어
1993년 미국 국립학술원에서 좀 더 포괄적이고 효율적인
4가지 개념을 제정하여 DRI라고 하였는데,
영양권장량(RDA),평균필요량(EAR,) 적정섭취량(AI), 상한섭취량(UL)의
4가지로 구성되었다.
이 중 영양권장량(RDA)은 평균필요량(EAR)에 표준편차 2배를 더한 것으로,
건강한 집단 대부분(97.5%)의 필요량을 만족시키는 섭취량이기에
특정 개인에게는 과용량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을 상대로 영양소 섭취량을 권장할 때는
건강한 사람들의 하루 필요량 중앙값에서 산출한 평균필요량(EAR)이 적합하다.
일반인들은 의학논문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기에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독자들이 알기 쉽게 그래프를 재구성해 보았다.
일반인의 건강에 필요한 비타민 D의 적절한 권장량은
평균필요량(EAR)인 16ng/ml이다.
그래프에서 보듯이 건강한 성인 대부분(97.5%)의 필요량을 만족시키는
영양권장량(RDA)인 비타민 D 혈중농도 20ng/ml를
비타민 D 부족의 기준점(cut point)으로 잡는 오류로 인하여
팬데믹 사태가 생긴 것이다.
실제로는 최저 섭취 기준인 12ng/ml 이하를 부족의 기준점으로 잡아야 한다.
즉 기준점을 너무 높게 잡은 게 문제였다.
일반인의 건강에 필요한 적절한 권장량은 평균필요량(EAR)인 16ng/ml이고,
12~20ng/ml는 정상 수치다.
따라서 현재의 비타민 D 팬데믹 사태는
2011년 발표된 미국의학원(IOM)의 보고서를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놀랍게도 필자의 수치 16.4ng/ml는 약을 먹어야 하는 결핍 상황이 아니라
정상적인 수치였던 것이다.
2018년, 미국가정의학학회에서도 같은 맥락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비타민 D 혈중농도 12~20ng/ml는 정상이고,
비타민 D 보충제의 루틴 처방은 골절 예방 효과도 없고,
암이나 심장질환 빈도를 낮추지도 않고,
수명을 연장시키지도 않는다고 했다.
반면 혈중농도 50ng/ml 이상의 비타민 D 과잉 투여는
신장결석, 연부조직 석회화 등의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아무 증상이 없는 개인에게
비타민 D 검사나 보충제 투여는 별 의미가 없고,
고칼슘혈증이나 신장 기능 저하 환자의 경우에만
선별하여 검사하기를 권했다.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조지타운대학의 가정의학회지 편집자는
지난 10년간 미국에서 비타민 D 검사는 83배 증가했고,
처방량은 무려 100배나 증가했지만
골밀도가 증가하거나 골절 예방 효과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기에
현재와 같은 과도한 비타민 D 검사와 처방은 멈추어야 한다고 논평했다.
현안이 된 뉴스를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로 유명한
미국 ‘Vox media’에서는
건강한 사람이 비타민 D 수치를 검사하고,
보충제를 먹는 것은 돈 낭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비타민 D 결핍 논란… 왜?
독자분들 중에 혹시
‘Disease mongering(질병장사)’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는가?
미국의 저명한 신문사인 <뉴욕타임스> 의료담당 편집장
린 페이어(Lynn Payer)가 1992년 출간한 책 제목이<Disease-Mongers:
How doctors, drug companies and insurers are making you feel sick>이었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질병장사란 정상인을 환자로 만들어
약을 팔아 제약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통상적으로 가벼운 병이거나, 노화의 한 과정으로 여겨온 증상들을
‘의학적인 질병’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질병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왜 그럴까?
환자만을 대상으로 약을 파는 것은 수요가 한정되어 있으나,
정상인에게도 약을 팔 수 있다면 더 많은 매출량과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그 이득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의료의 산업화가 지속되면서 공익보다는 회사의 이익이 더 앞서게 되었고,
질병장사는 아주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됐다.
제약회사의 CEO는 이익을 남겨 주주들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이 사회병리 현상을 이해할 수가 있다.
2005년 호주 본드대학 교수인 레이 모이니한(Ray Moynihan)이
질병장사의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며 저술한 책<Selling Sickness:
how the world’s biggest pharmaceutical companies are turning us all into patients>를
출간하여 전 세계에 그 위험성을 알렸다.
하지불안증후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여성 폐경, 골다공증 등이
질병장사의 한 부류이다.
오늘날 이러한 현상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다행히 ‘질병장사’로 인한 위협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저항하는 의사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의료란 무엇인가?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의사다.
사람의 병을 치료하지 않는 의료행위는 장사에 불과하다.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한 치료는 좋은 것이다.
아픈 사람은 치료를 통해 호전되지만,
건강한 사람들에게 ‘환자’라는 딱지를 붙이면
사람들은 불안해지고 의미 없는 약물에 의지하게 되고,
결국 약물의 부작용에 노출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일이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분들은 깨닫게 되어
질병장사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필자는 진심으로 바란다.
한 번 설정된 기준을 바꾸기는 매우 힘들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현재 서양에서는 비타민 D 부족의 기준점을 낮추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대부분 의료기관에서는
옛날 기준인 30ng/ml을 결핍의 기준점으로 잡고,
30ng/ml 이하인 경우 보충제를 권하고 있다.
피검사에서 10명 중 8~9명이 당연히 결핍으로 진단되고,
사람들은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보충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매일 약을 먹거나
3개월에 한 번씩 비싼 주사를 맞아 수치를 올리는 데 몰두한다.
비타민 D 수치는 높을수록 좋은 것일까?
비타민 D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다.
비타민 D 보충제를 장기간 복용 시 신장결석이 증가한다.
비타민 D 복용은 고관절 골절 빈도를 줄이지 못한다.
약 2만 5천 명을 대상으로 5년간 비타민 D의 낙상 예방 효과를 연구한
가장 최근의 대규모 연구에서도 비타민 D 복용은
낙상을 줄이지도 못하고 골절 예방 효과도 없었다.
2021년, 미국 질병예방서비스 특별위원회에서도
무증상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비타민 D 선별검사는 근거가 불충분하며,
비타민 D 보충제도 골절 등 여러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
드디어 2022년, 지금까지 나온 모든 자료를 취합하여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
편집자 사설을 통해 비타민 D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최종 판결(verdict)을 내렸다.
비타민 D 보충제는
나이, 성별, 인종, 체질량지수에 상관없이 골절 예방 효과는 없다.
그 외 암이나 심장질환을 예방한다는 근거도 부족하다.
햇볕을 거의 볼 수 없는 특수한 환경이거나
흡수장애 또는 골다공증 약물로 인한 저칼슘혈증 치료 목적 외
비타민 D 보충제는 불필요하다.
따라서 특별한 이유 없이 무증상 성인에게
비타민 D 검사나 보충제를 권하지 말라.
비타민 D 결핍으로 진단된 후 ‘약을 먹을까?
주사를 맞을까?’ 고민하던 필자는 어떻게 했을까?
물론 아무것도 안 하고도 잘 뛰어다니고
때때로 햇볕을 쬐면서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결론적으로…
[첫째]. 무증상 건강인이라면 특별한 이유 없이
비타민 D 혈중농도를 검사하거나,
보충제를 먹거나, 주사를 맞을 필요가 없다.
[둘째], 현재 의료기관에서 기준으로 제시하는
비타민 D 결핍 수치는 과장되어 있다.
[셋째], 질병장사(Disease mongering)에 주의하라.
[넷째], 소비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다.
구매자 주의(Caveat Emptor”(Buyers Beware)).
송무호 박사
송무호 박사는 무릎 인공관절 분야 정형외과 전문의다.
미국 피츠버그대학 정형외과 전임의사,
영국 옥스포드대학 인공관절센터 연수,
미국 하버드대학 MGH 병원 관절센터 연수를 거쳤으며,
2016년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퀴스 후즈후’에 등재되기도 했다.
현재 동의의료원 슬관절센터장을 맡아 진료하고 있다.
정형외과 전문의로서는 특이하게 채식을 권장하는 의사이며,
환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채식의 유익함을 널리 알리고 있다.
[출처] : 건강 다이 제스트 2023년 5월호 144p
송무호 박사 2023.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