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맥도널드와 짓밟힌 케밥
- 영화 <<전투지역>>을 보고
앞서 본 이들 가운데 몇몇이 얘기했다는 것처럼 다소 산만했다. 빠른 속도로 화면이 바뀌었고, 자막을 채 읽어내지 못할 정도로 어수선하게 말들이 이어졌다. 몸이 좀 좋지 않았지만 바짝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나는 이미 자막 몇을 놓쳤고, 어떤 장면에서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놓치지 말아야지. 집중.
영화 초반부 바그다드 폭탄 테러를 카메라가 잡았다. 중무장을 한 채 총을 들고 경계하는 점령군, 사람들을 통제하는 이라크 경찰, 그리고 흥분해있는, 놀란, 소리쳐 누군가를 부르는 이라크 시민들. 길 건너편으로 빨간 간판의 알 카리지 여관 간판이 보인다. 반전평화팀이 머물던 곳. 시커먼 연기를 피우는 자동차가 놓인 그 길은 핫산이 집으로 가는 길, 세이프와 알라위, 레이쓰 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거닐던 자리. 침착해야 한다. 놀라지 말고, 흥분하지 말고. 또 쉽게 감상과 같은 기억에 젖어 아이들 얼굴들부터 떠올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일상이다. 화면 속 검은 연기 둘레로 모여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그이들의 얼굴빛을 제대로 볼 것.
미군 병사들의 인터뷰가 생각보다 많았다. 그것은 진지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함께 보신 분들도 그런 말씀들을 했다. 그곳에 가 있는 미군 병사들이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짓의 의미와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그토록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뜻밖이라고. 병사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은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점령을 목적으로 있는 거라는 것을, 그러한 방식으로는 민주주의도 해방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고 있다는 것을. 뜻밖이었다. 물론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성찰하고 있는 병사들이 아주 없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전쟁수행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여기게끔 세뇌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또는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 속에서 이성을 잃은 채 정신의 파괴를 겪고 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린드그렌 일병처럼, 포로 학대와 민간인 학살에 앞장서게 되었다는 선량한 교사 출신의 그 어느 병사처럼.
자이툰으로 파병한 우리 병사들이 떠올랐다. 글쎄, 지난 달이던가 책방에서 우연히 파병을 다녀온 군인이 쓴 이라크 참전기가 있는 것을 보고 사 읽은 일이 있다. 굳이 사서 볼 것까지야 있겠나 싶기도 했지만 무어라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하고 있는지. 예상과 다르지 않게 그 책에는 파병장병의 자긍심, 뜨거운 사막의 모래 바람 속에서 겪은 고생스러움, 국익을 위한 용기있는 실천을 '눈물겹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투경험을 위해 이라크에 간 거였다는 말에서조차 최소한의 성찰을 볼 수 없던. 파병부대의 자랑찬 활동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었으니 이라크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던. 잠깐 인터넷 창을 하나 더 띄워 자이툰 부대 홈페이지를 살폈다. 혹시, 혹시... 자이툰 부대원이 꾸린 다음 까페 몇 곳도 찾아가 보았다. 그런 글을 찾고 싶었다. 자이툰 부대원들 가운데 이라크인의 눈길과 그곳 사람들 삶의 처지에서 말을 하는 이가 있지 않을까, 그러한 글이 있지 않을까. 부대 홍보용 홈페이지에 그러한 글이 있을리 없었고, 까페 몇 곳에 회원 가입을 해 보았지만 글 읽기가 되지 않는다. 찾지는 못했으나 없지도 않으리라 믿는다.
카메라는 사마라를 비췄다. 한국군 1차 파병지이던 나시리아를 비췄다. 열화우라늄의 피해가 심각한 바스라를 비췄다. 그리고 다시 바그다드. 고물시장이 들어선 싸담 시티, 반전평화팀이 민중지원활동을 하던 뉴바그다드.... 한 사내가 말한다. "나는 농부요, 하지만 이 밭에서 백오십 년 동안 자라온 대추야자 나무들이 이렇게 다 쓰러졌소. 저항세력이 이 밭에 숨어 들어갔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소. 포크레인을 동반한 아홉 대의 탱크가 와서는 밭을 모두 파헤쳤소. 하지만 그들은 이 밭에서 총 한 자루 찾지 못했단 말이오." 그렇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되풀이하고 있는 그들의 방식이다. 애초 그이들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까닭을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이라크 전역 어디에서도 그러한 무기를 찾지 못했다. 그이들은 오사마 빈라덴이 숨어들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빈라덴의 자취는 찾지 못했다. 팔루자에 총공세를 벌일 때에도 알 자르카위를 제거하기 위함이라 했지만 자르카위가 이미 떠난 뒤였다는 것은 미국 정보부가 먼저 알고 있었다. 없으면 그 뿐, 처음부터 그들은 대량살상무기나 빈라덴, 자르카위가 목적이 아니었다. 공격, 그 자체가 목적이고 공포, 그것을 얻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커다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방식은 전쟁의 명분이나 커다란 전투에서만 적용되지 않는다. 일상으로 민간인의 집에 침입해 무릎을 꿇릴 때도, 영화 속 농부의 증언처럼 밭을 갈아 뭉갤 때도, 심지어는 결혼 피로연장에 폭탄을 떨어뜨릴 때도 언제나 똑같은 논리. 저 집에 저항세력의 무기가 있을지 모르니까, 저 밭에 저항군이 스며들었을지 모르니까, 저 결혼 피로연장에 저항세력들이 모여 있을지 모르니까. '모르니까, 모르니까'가 그들의 모든 행위에 명분을 준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건 말건, 그 작전으로 삶의 터전이 망가지건 말건, 그 공격으로 죄없는 이들이 죽어나가건 말건.
영화는 점령이 시작한 뒤 6개월이 지난 이라크라 했다. 바그다드의 함락이 2003년 4월, 부시의 종전 선언이 그해 5월이었으니 화면 속의 모습은 2003년 10월 혹은 11월이었을 것이다. 아직 팔루자에 대한 총공세도 있지 않았고, 나자프에 대한 무차별 포화도, 팔루자와 바그다드, 사마라를 오가는 수니 삼각지대에서의 저항 세력에 대한 전면전도 있기 전이다. 그리고 기만과 협잡으로 종파간 갈등을 조장해온 올 1월의 제헌의회 의원 선거나 오늘로 낫새 뒤에 있을 영구헌법안을 둘러싼 대립도 있기 전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점령 6개월 시점의 이라크에서만 해도 이라크인들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중간중간 이집트에서 온 사업가라는 이가 점령군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맨 마지막에 가서는 우리의 문화마저 짓밟히고 있는 것에는 괴로운 얼굴을 지었다. (아, 미군이 와서 좋다는 말이 한 번 더 있기는 했다. 길가에서 석유통을 놓고 장사를 하는 소년 형제. 순진한 얼굴의 그 아이들이 좋다는 말을 했지. 책이 필요해요, 책이! 라고 카메라를 쫓아와 외치면서.)
화면 속의 이라크에서 두 해 남짓이 흘렀다. 엄청난 두 해가. 지금 그곳의 모습, 그이들의 목소리는 또 어떠할까.
앞서 영화를 본 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것이 맥도널드와 케밥 운운했다는 얘기. 하지만 전해들을 때까지만 해도 왜 다들 그것부터 말을 하는지, 그리 가슴으로 느끼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나 또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그 대목이다. "한 쪽에는 미국에서 들어온 맥도널드, 깨끗하게 포장된 빅맥세트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파리가 날리는 음식점에서 파는, 지저분한 접시에 담긴 케밥이 있다고 해 보세요. 누구나 맥도널드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겠죠. 하지만 우리에게 그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물으면 그 질문에 대한 옳은 답을 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케밥을 택할 거예요. 케밥은 우리가 스스로 살아나갈 기회이니까요. 민주주의는 기회입니다. 바로 케밥이죠."
맥도널드를 민주주의라고 말하지 말자. 총을 든 맥도널드와 짓밟힌 케밥. 그것이 이라크 점령의 본 모습이다.
(* 어젯 밤 울진평화모임에서도 함께 모여 <<전투지역>>을 봤습니다. 장소는 울진읍에 있는 한터울이라는 풍물연습실이었고, 울진중학교 선생님 한 분이 벽에 빛으로 쏘아서 보게 하는 기계(빔 프로젝트라고 하는 거 맞나?)를 학교에서 빌려다 설치해주셔서 영화관 못지 않은 분위기에서 봤어요. 바끼통에서 산 영화 테이프는 상영회에 함께 못한 곳들에 계속 빌려주기로 했는데, 혹 보고 싶은 분이나 모임 들이 있으면 까페에 남기시면 될 거예요. 많은 자리에서 둘레 분들하고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아참, 서울에서 영화 볼 때 앞으로도 이러한 영화상영회를 더 하자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이번 영화처럼 쉽게 보기 어려운, 함께 보면 좋을 필름들을 찾아 상영회로 함께 보고, 상영회에 함께 하지 못하는 자리에는 테이프를 계속 빌려주고 하는 식으로요. 다음 번에는 언제에요? ^ ^)
** 위에 있는 사진은 브라질 만화가 카를로스 라투프의 작품이고 gyuhang.net에서 퍼왔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을 아끼고 섬기는 마음이 자라서 세상을 맑고 밝게 할 거예요.